지난 달 29일 충남 연기군 세종시로 행정기관 이전을 백지화하는 내용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표결에서는 수정안에 반대해온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 50여명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 120명의 대부분이 반대표를 던지는 등 각 정파에서 이탈표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된 법안이 정략적 판단에 따라, 여권 내부의 조직적인 반발로 무산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갖게 한다. 국정주체세력으로 국민들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어야 할 여권세력이 친이, 친박 등 계파정치에 매몰돼 국가의 명운을 걸 수정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그러나 정부 대전청사의 전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정부부처가 내려간다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기업은 물론 국내 최고의 대학들도 등을 돌리고 과학벨트마저 물 건너간다면 남는 거라곤 속빈 강정뿐이다. 쓸데없는 정치 논리에 발목이 잡혀 실리를 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18대 국회 전반기 의정활동을 뒤돌아보면 2년에 걸친 국회의 이슈는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밖에 없었다. 정치권은 국가 미래에 대해 고심하지 않는다. 국민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두 가지 문제에 매몰돼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적 총력을 모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국회가 제 본분을 다했는가 하는 점에서는 국민들의 냉엄한 비판과 질타를 받아야 마땅하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천안함 사건에 있어서도 국방 태세를 확립하기는 커녕, 당리당략적인 시각으로, 심지어 북한의 입장을 여과 없이 대변하는 세력이 국회에서 활개를 치기까지 했다.
나로호의 2차 실패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나로호’는 러시아 흐르니체프사가 1970년대 군용 로켓을 개조해 상용모델로 개발 중인 ‘앙가라’ 로켓의 시제품을 한국에서 시험하다 실패했다. 고다이 도미후미(五代富文·78) 도쿄대 항공우주회 회장(전 국제우주연맹 회장)도 “나로호는 한국 돈으로 러시아 로켓 개발 시험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던 사업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추진하는 우주발사사업이 잘못되어도 책임 소재와 문제점에 대한 추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국회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고 국가 에너지를 결집시켜 나가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한국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던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IT산업의 현 주소를 냉엄히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 6월 28일 세계적인 회계컨설팅그룹인 딜로이트와 미국의 국가경쟁력위원회는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인도가 8.15점으로 2위, 한국이 6.79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 5년 후 경쟁력지수 전망에서 역시 중국(10점), 인도(9.01점)에 밀려 한국(6.53점)이 3위를 머무를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은 제조업 국가로 중국과 인도에 경쟁력 열위에 있고, 그 미래전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다.
한 언론인은, 한때 한국의 상황을 빗대 중국이 시속 100마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고 일본이 저속에서 벗어나 60마일에 재진입한 반면 한국은 비포장도로로 빠져 40마일의 속도 밖에 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정치 현안에만 몰두하지 말고, 외부로 시각을 돌려 실력을 키워나가지 않으면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국제 경쟁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중국 한비자의 나라 망치는 ‘다섯 좀벌레(五=오두)’이야기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한비자는 세 치 혀로 지도자를 현혹하는 자(권력자의 측근), 사욕을 채우는 권력자, 곡필아세(曲筆阿世)하는 지식인들, 폭리 취하기에 눈먼 상인들, 무리 지어 싸움만 일삼는 폭력배들을 다섯 좀벌레로 꼽고 있다. 과연 우리 주위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