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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푸른 장미, 불가능의 절대 상징인가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을을 두고 높다란 하늘을 가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하며 그가 가지고 있는 푸르름을 동경했다. 선비들은 ‘푸른색은 쪽에서 뽑은 것이지만 쪽풀보다 더 푸르다’는 뜻의 청취지어람(淸取之於藍)을 군자의 언으로 새겼다. 도종환 시인은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푸른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衝椽)를 보라한다’고도 했다. 상징적인 의미의 푸른색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비로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푸른색은 우리에게 선의와 갈망이 공존하는 색이라 할 수 있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여성부터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싶어 하는 생명공학자들에게 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푸른 장미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실제 영어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적혀져 있다. 또한 소유자에게 젊음을 주거나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는 바바 야가(자연을 상징하는 변덕스러운 늙은 여신으로 낮을 상징하는 하얀 기사, 밤을 상징하는 검은 기사,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기사를 시종으로 부린다)에게 푸른 장미를 바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슬라브 신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들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푸른 장미는 불가능한 일이나 그 일을 달성한 것을 뜻한다.

푸른 꽃에는 블루진(blue gene)이 존재한다. 블루진이란, 꽃에서 파란 색소를 구성하는 효소를 합성할 수 있게 해주는 청색 유전인자이다. 혹자는 파란 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닭의장풀 외에 히야신스나 물망초, 도라지 등이 블루진을 가지고 있는 꽃들이다. 이런 꽃들에서 블루진을 분리시켜 장미의 유전인자에 이식을 하면 장미는 파란색 유전자를 가진 효소를 배양할 수 있게 된다. 생명공학자들은 블루진을 장미 유전자에 이식해 파란 색소를 가지고 있는 효소를 배양해 낼 수 있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완벽한 푸른 장미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식물의 색소는 황색을 내는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 무색의 플라보노이드가 있다. 안토시아닌의 색소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붉은색의 시아니딘, 주황색의 펠라고르니딘, 파란색의 델피니딘이다. 이들은 하나의 물질에서 유전자에 따라 색소가 나뉘고, 최종적으로 DFR(Dihydroflavonol 4-reductase)이라는 유전자가 각각의 초기 색소를 꽃 색으로 나타나게 한다. 하지만 장미는 유전적으로 푸른색을 내게 하는 색소인 델피니딘을 생산하지 못한다. 또한 델피니딘을 꽃 색으로 나타나게 하는 DFR 유전자도 가지고 있지 않다. 파란 색소를 이루는 효소 중의 플라보노이드3과 히드록시라제5를 아주 조금씩 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색소를 뺀 흰 장미에 푸른꽃의 색소를 빨아들이는 방법으로 염색했는데, 아쉽게도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유전적인 이유로 푸른 장미는 자연적으로 날 수 없지만 생명공학의 이론으로는 충분히 실현가능하다. 호주의 자회사 플로리진(Florigene)과 일본의 산토리 사(社)가 13년간의 공동 유전공학 연구로 2004년에 유전학 최초의 푸른 장미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장미의 색소를 나타나게 하는 기존 DFR을 차단하고 파란 색소를 만드는 델피니딘 색소 유전자와 파란색을 발현시키는 DFR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의 결과인 푸른 장미는 창공의 그것보다는 밝은 보라색에 가깝다. 장미 유전자에 삽입한 델피니딘이 다른 물질과 잘 결합해야 완벽한 색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의 푸른 장미들과는 달리 청색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아무리 완벽한 푸른색이 나오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는 단순히 식용색소를 사용해 만들어낸 파란 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어온 과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야말로 바늘구멍 사이로 벽을 통과하는 난제였기 때문이다. 지난 60여 년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아온 푸른 장미, 이제는 불가능이라는 말 대신 인간의 끝없는 발전과 희망, 무소불위의 극복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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