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 후 독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때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평가받던 독일 축구는 지난 10~20여년 동안 추락을 거듭해 녹슨 전차부대라는 조롱마저 받았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팀은 ‘독일답지 않은’ 축구로 세계인을 열광시켰다. 독일 축구 ‘부활’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함께 독일이라는 나라가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독일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독일은 차관 및 기술, 인재육성을 적극 지원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
1960∼1970년대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보낸 외화는 우리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이들과 가난의 설움을 나누며 함께 울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우리나라 경제성장사의 잊지 못할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독일은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미국 다음으로 선호하던 나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배울 것이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미국과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의 독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은 경제적 측면, 정치, 사회·문화적 측면, 군사적 측면, 기술, 교육 및 환경정책적 측면 등 다방면에 걸쳐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나라다. 세계 4대 경제대국이며 전통적 산업국가로서 세계 최고의 자동차 강국, 철도 강국이며, 신재생에너지, 환경기술 등 신기술 분야에서도 세계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보험과 연금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 근로자 참여를 보장하는 노사문화, 전 근로자의 10%에 육박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의 사회통합정책, 완벽에 가까운 평준화 교육제도 등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와 제도는 선진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산림녹화에 상당한 성공을 거뒀지만, 독일은 인공조림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삼림자원을 확보한 나라이기도 하다. 200년이 넘는 조림산업의 역사를 통해 독일인들의 ‘백년대계’ 정신과 철저한 미래계획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독일의 통일정책을 면밀히 연구한다면 남북한 통일에 있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국민성으로는 흔히 근면성실, 절약정신, 정리정돈과 질서의식, 청결주의, 철저성 등을 말한다.
나아가서, 오랜 독일 유학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독일인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독일식 ‘비빔밥’을 예로 들고 싶다.
독일인들 스스로가 독일의 대표음식으로 꼽는 ‘아인토프(Eintopf)’라는 음식인데, 냄비에 여러 가지 육류와 야채를 두루 섞어 푹 끓인 뚝배기음식으로 수프 겸 메인요리다. 서양 음식들은 까다로운 레시피에 따라 정확하게 재료를 넣어 조리하는게 원칙이지만, 아인토프는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를 마음대로 넣고, 소금이나 후추 등 자신의 입맛에 맞게 양념해 끓인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비빔밥이 비비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맛이 나듯 아인토프도 지방마다, 집집마다 또 끓이는 사람에 따라 고유의 다른 맛을 낸다.
독일인들은 순혈주의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영미의 앵글로색슨족이나, 프랑스의 라틴족에 비해 정치 문화적으로 촌스럽다는 열등감에 시달려 오면서 다른 문화나 제도 등을 게르만적인 특성에 과감하게 녹여 자기 입맛에 맞춘 세계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냄으로써 강대국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이 바로 독일의 ‘아인토프 문화’다.
오랜 부진에 시달리던 독일 축구가 이번 월드컵에서 진가를 발휘하게 된 배경으로 독일의 메르켈 수상은 사회통합정책의 성공을 꼽았다.
국가대표팀 선발규정에서 순혈주의 원칙이 삭제된 후 대표팀에 포함된 다양한 뿌리를 가진 선수들이 독일 국기 아래 하나로 뭉쳐 일궈 낸 성공이라는 것이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은 변화와 화합이라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비빔밥 정신을 통해 유태인 학살 등 20세기의 역사적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 발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나라의 ‘비빔밥 문화’도 우리나라가 21세기 새로운 역사발전과 선진화 사회를 이루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