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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후궁 명호 통해본 아름다움의 격, 그리고 우리

 

조선시대 왕의 여자, 후궁(後宮) 내에도 엄격한 서열이 있었다.

내명부(內命婦) 수장인 왕비(王妃)를 정점으로 품계(品階)별로 각각 다른 명호(名號)를 부여함으로써 후궁 간 위계 질서를 분명히 했다.

왕비는 임금의 정실(正室)이기에 품계가 없었다. 하지만 왕의 첩(妾)에 해당하는 빈(嬪)부터는 품계가 적용됐다.

빈은 정1품었고, 빈 아래 귀인(貴人)은 종1품이었다. 귀인 아래로 여러 품계가 있는데 그 명호가 자못 흥미롭다.

정2품 소의(昭儀), 종2품 숙의(淑儀), 정3품 소용(昭容), 종3품 숙용(淑容), 정4품 소원(昭媛), 종4품 숙원(淑媛) 등이 그것이다.

궁격(宮格)을 상징하는 명호는 기본적으로 의(儀), 용(容), 원(媛)의 순(順)으로 삼분했고, 또 각각을 소(昭)와 숙(淑)으로 세분했다.

조선 궁녀의 품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된 성종(成宗) 대에 확립됐다고 한다. 과문(寡聞)하기에 명호의 정확한 유래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자의 뜻만으로 명호에 부여된 의미를 짐작하고자 한다. 또한 궁녀의 서열에 부여된 차별적 명명(命名)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의미를 엿보고자 한다.

먼저 소(昭)와 숙(淑)의 의미이다. 소(昭)는 밝을 소로서 그 의미는 밝음 그리고 환히 비춤을 의미하고, 숙(淑)은 맑을 숙으로 맑음 그리고 정숙함으로 의미한다.

뜻으로 추정하건데 숙은 개인적으로 맑음과 정숙함을 추구하는 개인적 도야(陶冶)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소는 개인적 도야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맑음과 정숙함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변을 밝혀주고 감화(感化)하는 각행원만(覺行圓滿)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자신에 대한 성찰로서 참나를 추구함이 숙이라면 참나의 깨달음에서 나아가 그 생각과 행동이 두루 주변과 원만히 조응(照應)함을 소라 할 것이다. 소와 숙은 각각 개인적 도야 또는 이의 드러남과 비춤 등 궁격(宮格)의 기능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사라 할 것이다.

반면 품계 명호에서 의(儀), 용(容) 그리고 원(媛)은 각각 궁녀로서 그 격(格)의 본질을 나타낸다. 한자의 뜻은 원이 여자, 용이 얼굴 그리고 의는 거동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러한 뜻만으로 추정할 때 원(媛)은 가장 열위의 격으로서 그저 미인인 여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용(容)은 단순 미인에서 나아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경국지색(傾國之色)을 의미해 원보다 우위의 격이다. 마지막으로 의(儀)는 아름다운 여자이면서 동시에 일체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아름답기에 가장 상위의 격이 된다.

원, 용 그리고 의로서 궁녀의 격을 나눴던 본래적 의도는 무엇일까.

궁녀의 궁극 지향을 아름다움으로 전제할 때 그저 외양(外樣)인 아름다움을 가장 열위에 두고 내면의 성숙이 드러나는 행동거지의 아름다움을 가장 상위에 둔 것은 아닐까.

요즈음의 미인 성형은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적극적 결행(決行)이라고 볼 수 있다. 한데 성형의 결행은 일부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상당수가 여건만 되면 성형을 하고자 하기에 그 열풍이 너무도 극성스럽다. 특히 취업을 목전에 두는 경우 성형은 필수적 스펙이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여자대학에 있다 보니 쌍꺼풀 수술을 한 학생들을 자주 본다.

그리고 수술 이후 달라진 학생들의 모습에 의례적으로 예뻐졌다고 인정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고루(固陋)함을 짐짓 알면서도 내 속마음에 미인성형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여염집 규수가 결행하기 힘든 너무도 파격적인 일부의 전유물로서 성형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피상적인 이유 외에도 아름다움의 추구가 단지 외모의 변화로서 달성되지 않는다는 뚜렷한 죽관(竹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우리 선조들이 궁녀의 명호에서 분명히 했던 높은 품격의 아름다움을 바라는 것이다.

성형을 하나의 스펙으로까지 간주하는 요즘, 조선 궁녀의 품계를 치기(稚氣)로 해석하고, 또 내면의 아름다움 또는 비춤의 아름다움을 권면하기에 내 고리타분함은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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