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민주주의 정치는 국민의 참여로부터 시작된다고 표현한다. 국민의 정치참여라는 표현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직접 혹은 이런 저런 간접의 여러 수단을 동원해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참여 및 정치적 충원을 논의할 때 그것들의 가장 일반적인 메커니즘으로 표출되는 것이 선거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선거는 통치권을 창출하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통치권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이 정치 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며 그 수단의 중심에는 지지 계층의 여론형성이 상당히 중요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선거를 의식한 개인이나 조직은 여론의 흐름을 예민하게 주시하게 되고 수시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여론의 흐름이란 다름 아닌 민심의 흐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각인시켜 주거나 혹은 대중으로부터 믿음을 지지해 주는 증거에 주의를 기울리는 이른바 포퓰리즘에 민감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사실에 근거한 정책적인 것에서 부터 대중의 지지를 얻기위한 인기 위주의 단발성 공약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대중(大衆)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형태인 포퓰리즘의 경우 대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화 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거부감을 일으키는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 한국 정당들이 공감정치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정부의 후기 정책기조가 친(親)서민 공정사회고, 손학규 체제의 민주당 기조도 친(親)서민 공감정치다. 정책 실천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하다.
한나라당 대표는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70% 복지시대를 여는 개혁 중도 보수정당으로 다시 서겠다고 약속했고, 민주당은 의료·보육·교육 등 사회 서비스를 국민 전체에 확대하는 보편적 복지를 당의 강령으로 채택했다.
복지정책 분야를 비유해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래도 현실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어느 특정한 부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우선 경제적 측면으로 1인당 국민소득을 꼽을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도 주요 기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은 총체적인 국력을 비교할 때 주로 이용된다. 국내총생산이 반드시 선진국이나 삶의 질이 높은 나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과 선진국의 척도가 꼭 같은 것은 아님을 의미하는것과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실제 국민소득이 2만달러 후반대나 3만달러에 진입하면, 소득 수준으로는 선진국 행세를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것 이다.
중요한 것은 복지에 대한 예산의 완급과 선진화에 대한 기본 철학을 정립한 다음에 정책적 논쟁을 하는 것이 순서라 여겨진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서구는 복지국가의 최정점까지 가 봤던 국가들이다. 복지가 일정 부분 근로 의욕과 성취동기를 저해하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에 대한 완급 조절과 시정일 뿐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복지의 시행에 있어서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소득 1만달러 일때, 서구 국가가 복지예산을 평균 15% 배정한 반면, 소득 2만 달러인 한국은 현재 10%수준이다. 한국은 미국식의 복지 개념에 경도돼 있다. 사회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 대해 능력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 대해 인간으로서 존엄할 권리를 찾아주기 위함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사항이기도 하다.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경제의 민주화 조항이 명문화 돼 있다. 어설픈 논리로 함부로 우파니 좌파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용어를 남발해선 안된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삶의 질 문제로 귀착된다는 복지에 대한 기본 개념과 정책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편일률적인 논리 전개는 식상하고도, 사리에 맞지 않다.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에 대한 포퓰리즘의 다툼 보다 진정한 선진의 의미와 복지에 대한 개념부터 성찰하는 자세가 아쉽다./강준의 용인대학교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