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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다림질 하는 남자

 

며칠 전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여동생이 집사람에게 전화로 “언니, 오늘 예식에 꼭 한복입고 오세요.” 라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치마저고리 싸들고 인근 세탁소를 찾았지만 하필 가는 곳마다 휴일이다. 시간적 여유도 없고 해서 집에서 다려주기로 마음먹고 다시 돌아왔다.

아내는 얼마 전 넘어져 오른손 팔목이 부러졌다. 3개월 간 깁스를 한 상태로 있어야만 하기에 왼손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식사 외에 다른 일들은 무리다. 하는 수 없이 다리미를 꺼내어 마누라 한복을 다림질 하는 남자가 됐다. 그리 몸집이 크지 않았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막상 치맛자락을 펼치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다보니 여인네 치맛자락이 그리 넓은 줄 미처 몰랐다.

주름 주름마다 꼼꼼하게 물을 뿌리고 나서 다리미의 열 수치를 ‘씰크’라고 표시 된 지점으로 조정한 다음 아래 폭부터 다림질을 했다. 난생 처음 여인의 한복치마를 다림질 하고 저고리까지 구김진 이곳저곳을 다리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으니 두해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님 생각이 난다.

나 어릴 적 다듬이나 다림질 한번 하려면 보통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화로에 숯을 피워 다리미에 넣고 다려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세탁소도 없어 온갖 것들을 다 집에서 처리해야 했다.

다듬이 방망이질을 해야만 하는 풀 먹인 옥양목 이불 호창이며, 아버님 양복과 손수건, 자신의 한복

그리고 어린 4남매의 기저귀, 옷가지며 저고리 동정에 이르기까지 다듬이와 다림질을 하시던 어머니

모습. 환갑이 훌쩍 지난 이 나이에 다림질 하다말고 왜 갑자기 가슴 속 깊은 한 귀퉁이에 계셨던

분이 문뜩 생각날까….

아내는 다림질 하는 남편을 물끄러미 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아내는 힘드냐고 묻는다. 아마도 사내가 다림질 하는 모습이 못내 안쓰러움이 생겨 그리 물었나보다. 하기야 어느 남편이 제 아내의 치마저고리를 다릴까. 어찌 보면 궁상맞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신혼 초부터 아니 연애시절부터 자상함이란 남에게만 베푸는 위인이라 여겼는데 이제 와서 다른 일도 아닌 다림질이라니…. 다림질을 마친 후 한복을 입혀주는데 난감한 일이 또 한번 발생했다. 한 쪽 팔에 깁스를 했으니 저고리 동정을 맬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걸 어쩌랴. 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때맞춰 시집간 딸이 손녀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천군만마가 따로 없다.

허둥지둥 시간이 돼 예식장을 향했다. 차안에서 서방이 제 치마저고리 다려주었다고 못내 대견한 듯 딸아이에게 자랑 아닌 자랑이다. 딸아이는 그저 미소만으로 나를 쳐다본다. 일찍 알았다면 서둘러 와서 자기가 다려줄 것을 그리하지 못해 미안함도 포함된 웃음으로 말이다.

이번 달 말일이 아내의 환갑이다. 지난 달 환갑에 맞춰 해외여행 계획을 잡아놓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가을로 미뤄놓은 상태다. 그때는 굳이 한복 안 입어도 되니 참으로 다행이다. 아무리 남녀 구분되는 일 없이 가사도우미를 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궁상맞게 사내가 또다시 여인네 치마저고리 다림질 안 해도 되고, 여행 갈 즈음이면 부러진 팔목도 완쾌될 테니 말이다.

▲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서정문인협회 이사 ▲ 경기도 문학상 수상 ▲ 구름산 예술제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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