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에 오자마자 쓱 내민 종이에는 ‘제9회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2013 수원 화성돌기’라고 적혀 있었다.3월 30일 오전 9시 화성행궁에서 출발하여 사대문을 돌아 다시 행궁이라는 문구와 함께. 근무지에서 우연히 행사 팸플릿을 보고는 내가 좋아할 것 같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수원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부산에서 수원으로 이사 온 지 1달. 태어나서 줄곧 부산에서만 살았던 내게 수원은 설렘의 도시다. 처음 수원에 와서 길을 가다가 보이는 화성과 사대문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 화성과 사대문을 봄바람 맞으며 걷는다니 솔깃할 수밖에. 게다가 주말마다 어디 놀러갈 곳 없나 기웃거리는 신혼부부에게는 더욱 좋은 기회였다. 남편이 점심으로 수원왕갈비를 쏘기로 하고 그 날을 기약했다.
드디어 3월 30일!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우리 부부가 기적과도 같이 오전 7시에 일어나 화성행궁으로 출발했다. 꽃샘추위로 날씨가 조금 쌀쌀했지만 너무도 맑고 화창한 하늘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행궁에 도착하니 엄청나게 많은 수의 학생들이 행사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여기저기 물어 등록을 하고, 경품행사에 참여할 응모권도 받은 후 출발! 친정어머니께서 2시간 30분을 기다려 화성열차를 타시고도 정말 탈만하다며 좋아하신 그 경치가 궁금해져 더욱 기대가 되었다.
화성행궁 뒤의 산길로 쭉 걸어 올라가자 퀴즈의 첫 번째 정답인 서장대가 나왔다. 오랜만에 폭신폭신한 산길을 밟는 느낌이 좋았다. 등산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에게도 많이 힘들지 않고 산책하기 좋은 코스였다. 서장대에서 아래를 보니 수원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낮은 안개가 껴 수원 특유의 고풍스런 멋이 더 살아났다. 밤에 오면 왠지 야경도 멋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도 찾아보고 바람도 쐬다가 다음 화서문으로 출발했다. 나지막한 내리막길에 솔솔 부는 바람이 아주 상쾌했다.
220년 전에, 그것도 28개월 만에 지은 화성이 이렇게 튼튼하고 웅장하다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멋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화서문 근처의 막걸리 집을 내려다보며 옛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성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짐을 멘 상인들이 주막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술 한 잔 기울일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절로 났다. 또 사대문의 입구를 보호하기 위해 성벽으로 입구를 감싼 것도 아주 멋졌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니 약간의 의문점이 들었다. 까치발을 들어 성벽을 내다보았는데 성벽이 전체적으로 낮다는 것이었다. 검색해보니 이는 당시의 전쟁 특성을 고려한 것이란다. 성벽을 타고 넘는 것이 아니라 성벽을 화포로 쏴 무너뜨리는 형태였기 때문에 성벽이 좀 낮더라도 더 튼튼하게 짓기 위함이란다. 역시 수원화성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한 후 지은 곳이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남편이 아주 멋진 곳이 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로 방화수류정! 전시에는 적군을 감시하고 방어하기도 하고, 평상시에는 정자로 사용하여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는데 군사적인 성벽을 이렇게도 활용하는 우리 선조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잠시 앉아서 땀을 식히노라니 주말의 한적함과 여유가 밀려왔다.
창룡문을 지나 마지막 퀴즈의 정답지인 봉돈에 이르렀다. 봉수대의 형태가 잘 나타나 있었다. 응모권에 정답을 적어 넣고 상자에 넣은 후 다시 화성행궁광장으로 향했다. 우리 부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수원화성의 명칭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역시 문화유산의 도시 수원시민들이다 싶었다.
화성행궁은 번갈아 수원을 찾아오신 양가 부모님 덕분에 문화해설사님의 설명까지 들으며 한 달 사이 2번이나 방문하였지만 화성을 한 바퀴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런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준 행사였다. 게다가 화성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친절한 설명 덕에 화성에 대하여 꽤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만하면 나도 이제 수원시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1시간 동안 두근거리며 기다린 응모권 추첨에서는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따뜻한 봄날 가족과 함께 주말을 즐기기에 딱 좋은 화성돌기를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