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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를 멀리하는 까닭

 

왜 이렇지? 자칭 잘난 사람들 집단인데 국민들은 못 믿겠단다. 검찰과 언론이 그렇다. 수없는 원인이 어우러진 결과겠지만, 자신들의 눈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려는 그릇된 선민의식에 대한 반감이 클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19와 검찰 이슈는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상반기엔 정부의 코로나 방역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았지만 한국언론이 애써 외면했다. 외신들의 찬사는 총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내언론의 보도 프레임이 의도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유신 때나 5공화국 시절 1단 기사의 가치가 1면 톱기사나 9시뉴스 첫 보도보다 더 의미있었던 때가 있었다. 외국 언론의 한국보도가 더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자들을 앞서는 국민들의 뉴스 수용 수준을 보여준 반증이다.  

 

하반기에는 검찰 이슈가 세상을 뒤덮었다. 왜 검찰의 권력집중 문제가 개혁 이슈로 부각됐는지는 찾기 어려웠다. 언론보도는 추미애와 윤석열의 치킨게임, 넓게는 청와대와 윤석열의 파워게임으로 환치시켰다. 공수처 설치의 발상은 왜 나왔는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양은 어떤 연유로 제기 됐는지 그 배경은 다룬 기사는 거의 없었다.

 

두 사안 모두 과도한 정치적 시각으로 기사를 다뤘다.

 

언론이 위기라고한다. 맞다. 다만 전통 언론의 위기일 뿐이다. 코로나19 보도와 검찰보도 같은 기사가 이어지면 독자나 시청자는 이런 언론을 더 멀리할 것이다. 미디어 컨텐츠가 전통 언론의 독점 상품이었을 때는 이렇게 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읽고 시청했다. 이런 상품 공급자의 태도가 발붙일 수 있는 시대는 한참 지났다. 여전히 언론은 수준 이하의 상품을 ‘싸고 좋은 물건’이라고 허풍이다. 어떤 용도로 만든 것인지 조차 혼란스럽다. 생명과 관련된 뉴스도 정치기사로 둔갑시킨다. 공동체의 통합이 필요한 사안도 그렇다. 그 알량한 선민의식으로 우리를 가키려들지 말라고 힐란하며 뉴스 직구로 돌아선다.

 

근대 언론이 태동한 이후 20세기말까지 언론은 ‘세계를 보는 창’ 이이었다. 언론에 보도돼야 있었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어떤 뉴스를 취사선택해 보도하는냐가 막강한 파워를 가져다 주었다. 한 때, 한 신문의 간부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자기 신문을 자찬 했다. 다른 언론에 난 기사도 우리 신문에 나야 진짜 기사라고까지 했다. 지금 들으면 오만의 극치지만 그 당시에는 수긍되는 측면도 있었다.    

 

기사화하지 않거나 기사화해도 한쪽 측면만 보도하면 언론사의 의도대로 시민을 끌고 갈 수있다는 오만은 여전하다. 지난 1월 8일 금요일자 신문들은 전날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법사위를 통과한 내용을 전했다. 한 경제신문은 경영계 입장만을, 한 진보지는 노동계의 입장만을 1면 머릿기사로 다뤘다. 기사 말미 인용된 전문가 목소리는 기자나 그 언론사의 의도를 객관으로 포장하려는 화장술에 다름아니었다. 가식은 친구를 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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