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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영화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지금의 영화계 모습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같다. 나치에 저항했던 학생운동의 얘기, 잉게 숄의 작품 제목을 여기다 갖다 붙여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영화계를 누가 미워하겠는가. 다들 나름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끼고, 나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란 소리를 종종 하며 살아간다. 한때 국민 1인당 연평균 관람 횟수가 4.5회로 전 세계 최고였을 만큼 어마어마한 영화 사랑의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다. 지난 몇 년간만 해도 봉준호가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하고 박찬욱이 칸에서 감독상을 타고 등등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것은 2020년이었으며 박찬욱이 칸에서 감독상을 탄 것은 2022년, 그러니까 불과 작년, 팬더믹이 여전히 단말마의 절정이었을 때이다. 모두들 K-컬처, K-컬처 얘기를 해대곤 했다. 실로 엊그제의 추억이다.

 

그런데 단 1년 만에, 그것도 팬더믹이 종료된 지금, 한국 영화계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음에도 죽어가고 있고, 거의 사망 신고 직전인 상태가 됐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에이 설마.’ 아니면 적어도 이런 반응들이다. ‘일시적일 거야. 곧 나아지겠지.’ 그러나 최근 주변 극장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왠지 심각성을 느낄 것이다. 극장에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다. 관객 수는 지난 3월 12일 현재 전국 2,123만이었다.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50% 수준이다. 1년 관객 수도 2022년 1억 1,281만 명이었는데 이 역시 코로나 이전 절반의 수치다. 더 나쁜 것은 이 수치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체되거나 심지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해 보면 유럽의 경우 대체로 코로나 이전 80%의 관객을 회복했고 미 대륙의 경우 거의 원상 회복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계속 관객 수가 증가중이다.


한국의 극장이 이렇게 된 데에는 쉽게 말해 이렇다 할 흥행 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배급이라는 영화계의 복잡한 방정식의 딜레마가 작동하고 있는 바 코로나로 극장에 관객이 올 수가 없자→1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던 한국형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일제히 개봉을 미뤘고→그렇게 창고에 쌓아 둔 영화가 90편에 이르렀으며→극장들이 일제히 티켓 가격을 올려 기대치는 높아졌고 →그러다 보니 상영 전선에 투입된 중저예산 영화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당연히 극장의 수익이 더 떨어지고→그러니 향후에는 재고 영화만으로 시장을 풀겠다는 심산이 작동하게 됐고→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신작 투자를 일제히 멈춘 것인 데, 겉으로의 이유야 극장에서의 마이너스 수익으로 투자할 제작비가 더 이상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흔히들 동맥경화라는 말을 쓴다. 어딘가가 단단히 뭉쳐있고 막혀 있는데 정밀한 내시경으로 이를 뚫지 않으면 심장이고 뇌혈관이고 모두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모든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 극장 상영까지 짧아야 1년 반, 평균 2년이 걸린다. 지금 만들기 시작한 영화는 2025년에 극장에 걸리게 된다는 얘기다. 지금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2025년 상반기부터는 극장에 걸 한국영화가 없게 된다. 그럼에도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로 불리는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이 모두 투심(투자심사)을 종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방출의 빗장을 걸었다. 이들 모두 현재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운영 기조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이니 다들 돈 줄을 찾아 방황할 수밖에 없고 그 같은 움직임이 글로벌 OTT업체 넷플릭스 앞에 줄을 서게 하는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나 애플 TV는 아직 그다지 한국 콘텐츠 투자에 열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디즈니 플러스는 이제 막 시즌 드라마 ‘카지노’를 터뜨린 상태이고 애플은 ‘파친코’의 명성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오로지 넷플릭스인데, 최근의 ‘더 글로리’나 ‘길복순’의 메가 히트를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쪽 동네’도 국내만으로 보면 심상치 않다. 애당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지 못했던 웨이브, 티빙 등은 초기 투자에 따른 누적 적자만 각각 1200억 원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TV도 선제적인 국내 투자에 대해 호흡조절에 들어간 상태다. 국내 OTT로 선두급이었던 왓챠가 매물로 나온 것도 시장 경기에 악재로 작동하고 있다. 인구 5000만의 내수 시장으로는 과도한 OTT 투자가 어떤 피로감을 가져오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막힌 곳이 어디인지는 조영제를 넣어 봐야 한다. 현재 영화계의 조영제는 양적 완화다. 개봉지원 자금이 됐든 새로운 제작비가 됐든 자금을 풀어야 한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000억 원을 풀었던 것이 지금의 K-콘텐츠의 모태가 됐다는 점을 유의 깊게 되돌아봐야 한다. 전임 정부에서 배우라.

 

양적 완화라는 조영제를 통하면 막힌 곳이 어디인 가가 정확해질 것이다. 영화를 더 만드는 것이 급선무인지, 개봉을 하면 그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게 좋은지, 극장 티켓의 가격 인하 분만큼을 보전해 주는 것이 더 나은 지 등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그 모든 것을 해야 한다. 티켓 값이 1만 5000원이다. 관객들에게는 9000원을 받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하면 좋을 것이다. 이런 것부터 하나하나 해 나가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정부 부처,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정책 기구의 액션 퍼포먼스가 너무 늦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그건 늘 그래 왔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마지막이다. 잘 나가던 ‘영화판’을 한 번에 ‘말아먹은’ 정권 소리를 듣지 않을 기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제발 좀 업계 사람들,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정부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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