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는 과거 5세기 중반 로마 제국이 분열되면서 북동쪽에 살던 훈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하고 훈족을 피해 비교적 갯벌이 적고 땅이 단단했던 토르첼로 섬에 모여 살기 시작한 이후 레알토섬을 비롯한 12개의 섬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도시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주변 도시들과 무역활동의 발전으로 118개의 자연섬과 인공섬을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한 거대한 물의 도시가 탄생했다. 이러한 아픔과 발전속에 성장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베네치아’가 관광지로서 유명세를 타는 것은 단지 물 위에 조성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베네치아에는 한때 베네치아를 점령했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낭만적인 공간인 산 마르코 광장과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두칼레 궁전 등 독특한 건축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조성돼있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미술행사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곤돌라 축제 그리고 베네치아(영어명 베니스) 영화제나 다양한 민속축제 등 사계절 내내 쉴새없이 이어지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이를 보기 위해 세계
〈NH농협은행 경기영업본부〉 ◇경기영업본부 ▲마케팅부장 권준학 ◇시·군 지부장 ▲광명시 한재봉 ▲광주시 황경선 ▲구리시 양종인 ▲김포시 최철해 ▲동두천시 박한 ▲부천시 문준호 ▲성남시 이봉의 ▲수원시 김희득 ▲시흥시 박종남 ▲안성시 김길수 ▲양평군 이선기 ▲여주시 이길수 ▲연천군 남헌모 ▲오산시 양승권 ▲의왕시 김봉수 ▲평택시 이원묵 ▲포천시 이용성 ▲하남시 조창희 ▲화성시 김학균
입이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대구(大口).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겨울철 계절생선으로 즐겨 먹고 있다. 지금은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고 있으나 과거에는 매우 귀했던 모양이다. 관청에 바쳐지거나 윗사람에게 선물로 보내지기도 했다. 조선조 초기 문신 권근(權近)은 경상도 관찰사로부터 햇 대구를 받고 쓴 감사의 시가 남아 있을 정도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대구가 많이 잡힌 지역을 경상도의 남해안과 함경도의 동해안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창원, 거제, 진해, 고성, 사천 그리고 함경도의 함흥과 영흥에서 토산품 대구가 많이 잡힌다고 써 있다. 하지만 귀하고 값이 비싼 대구를 잡아 이득을 올리게 되자 인근 지역에서는 대구 어장을 놓고 서로 다투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대구 어획권을 놓고 전갱까지 벌였다. 1950년부터 1970년까지 그것도 세차례나 벌인 ‘대구전쟁(the cod war)’이 그것이다. 그래서 대구는 세계 역사상 전쟁의 이슈가된 유일한 생선으로 기록되어 있다. 흔한 생선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생선, 대구는 소화가 잘되고 맛이 좋아 예부
그냥 /이형우 차 몰고 열심히 가다가 문득 스친 꽃가게 풍경이 다시 떠올라 십 리쯤은 되달려 가서 만든 장미 한 다발 흑장미에서 백장미까지 형형색색 다 만나 한 움큼 손 꽃밭 일구어서 맨 먼저 만나는 여인에게 주고 싶어 그냥 -이형우 시집 〈착각〉, 시인동네 2014년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가는 일. 삶이 그런 것이라고 하자.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실하게…. 그 목적지란 무엇인가. 놀랍게도 죽음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날마다 성실하게 달려가고 있다. 기다리고 있을 죽음을 생각한다면 덜 열심히, 덜 빠르게 달려갈 일이다. 그러니 한 번쯤, 왔던 길을 ‘그냥’ 되돌아가는 일탈의 묘미! 장미 한 다발 사서 맨 먼저 만나는 모르는 여인에게 ‘그냥’ 주는 것. 삶의 여정에서 스스로 설레는 순간들을 만드는 것. 분명한 것들만이 삶의 요소가 아니듯이 더러는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꽃을 건네는 행위. 그래서 삶이 덜 쓸쓸하다면. /이미산 시인
‘삼한사미(三寒四微)’. 수천년을 내려온 우리의 겨울 ‘삼한사온’을 바꾼 신조어다. 심술부리는 추위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즘 세태에 이만큼 적합한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다. 다사다난이란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없던 지난 연말연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대형 사고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없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의 범죄소식과 수없는 정쟁, 암투가 진저리치게 했다. 비명과 선혈이 낭자한 아픔 한복판도 모자라 온갖 추태와 잡음이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고, 정치권만 느끼지 못하는 살을 에이는 물가상승의 칼날과 실업, 수개월치씩 밀린 월급에, 또 서민과 직장인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는 증세 논란까지. 가뜩이나 척박한 기운에도 지치는데 ‘오늘 하루를 살으셨습니까?’란 인사를 건네야 하는 일상은 바야흐로 삶의 공포 그 자체인데 국민의 안전과 외국인의 인권을 둘러싼 논란은 황당하기 짝이 없을 지경이다. 이땅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 인내와 책임을 요구하는지, 솔직히 가끔은 국민의 자격이란 것을 조용히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 우리의 이웃들은 얼마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하여 처음 소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담배통과 물부리 양쪽을 연결한 긴 장죽 또는 설대가 짧은 곰방대를 사용했다. 특히 조정에서는 국사를 논하며 자주 피었지만 불을 붙이는 절차가 번거러웠고 또 연기가 위쪽으로 올라가 담배를 삼가라는 어명이 있었다 한다. 이때부터 존귀한분 앞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예의가 관례가 되었고 이는 웃어른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대가족이 주를 이루던 시절 사랑채에서 담뱃대를 재떨이에 탕탕치는 것은 가장의 권위를 나타내며 가장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때에는 힘든 육체 노동 후 한모금의 담배로 피로를 풀며 하루를 마감했다. 특히 담배 가루는 지혈 효과가 있어 민간요법으로 많이 활용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담배의 유해물질 때문에 금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엄격히 금지시키고 있다. 종류도 다양했다. 광복 직후 누런 봉지의 궐련은 대한민국 최초로 시판되었다. 군인에게 제공된 화랑을 비롯하여 새마을등은 필터가 없었고 최초 필터 담배는 아리랑이었다. 특히 궐련은 가루만 판매하여 소비자들은 신문지 또는 종이를 절단해 말아 피워 원시적이었지만 지금은 니코틴
수원 정자초등학교에서 수원문인협회 시화전이 있었다. 필자는 이곳저곳 초빙강의를 하느라고 들리지 못하다가 철수기간(撤收期間)이 며칠 지난 오후에 정자초등학교를 찾았다. 필자는 정확하게 42년간 교직에 몸담았지만 정자초등학교의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이유는 친절 문제였다. 필자는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동안 경기도 교육청 친절강사로 활동을 하였고 관공서나 각 급 학교를 다니면서 친절에 대하여 강의를 했는데 정자초등학교를 들어서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온몸으로 웃으면서 교문에 들어서자 기사님이 나와 친절한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마침 교장선생님이 출장중이서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방학 중이라 근무조만 있었는데 세 사람이 나를 반겼다. 그들은 얼굴만 웃는 모습이 아니라 온몸으로 웃으면서 나를 맞이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필자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모르면서 친절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또 잠시나마 나를 뒤돌아 보았다. 내가 교장으로 있었던 학교에서 과연 나는 내 자신이 학교를 방문하는 분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행동을 해주었는가? 답은 그들의 친절에 비하면 불합격이라고 스스로 판정을 내렸다. 왕자가 된 기분 세
며칠 전 늦은 저녁 시간에 수원 경수대로 변에 있는 한 연구소 회의실에 경기학(京畿學)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모였다. 열 내지 스물 명 정도의 소모임이라 생각하고 참석했던 사람들은 회의장에 들어오면서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참석자 중의 한 사람이 말하였듯이 요사이처럼 바쁜 세상에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40명이나 되는 연구자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 정부 출연 연구기관 연구원과 공무원,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모인 사람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였다. 연령도 20대 대학원생부터 60대 학자까지, 전공도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예술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 영역에 걸쳐 있었다. 경기도 사람만이 아닌 서울을 비롯하여 멀리 충청북도에 사는 연구자까지 모였다. 이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100여 명이나 되니, 경기학이라는 주제가 큰 이슈임이 확인되는 자리였다. 모임은 그동안 경기학 연구 성과에 대한 발표가 있은 후, 참석자들이 평소 생각하던 경기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의 시점에서 경기학의 학문적 정립과 이를 연구하기 위한 학회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앞으로 몇 차례
연말정산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이번 연말정산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는 중산·서민층 직장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정부 여당이 국민들의 거센 분노를 잠시 회피하기 위해 ‘분납을 하겠다’, ‘간이세액표를 개정하겠다’는 등 조삼모사식의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의 화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분노는 21일자 본란에서도 지적한바 있지만 이번 연말정산 때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재벌들의 감세, 서민 증세로 인해 부글부글 끓던 민심이 연말정산을 계기로 분출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정부는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는 세제혜택을 주고 봉급생활자의 세부담은 증가시켰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재벌과 대기업 등 부자감세가 시작돼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박근혜 정권 들어 담뱃값 대폭 인상과 연말정산 방식으로 인해 민심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세금 많이 내서 억울한 게 아니라 재산 많은 부자들, 기업들에겐 세금을 깎아주면서 서민 가계를 더 궁핍하게 하는 정부에 대한 노여움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요구사항은 ‘서민증세 중단’ ‘부자감세 철회’다. 우리나라 중산층과 서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성과 효율성에 근거한 예산집행은 기본이다. 경기도는 유령회원으로 구성된 사단법인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경경련)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어 도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지방재정자립도가 부족한 현실을 직시할 때에 당국의 현명한 조치가 절실하다. 당연이 제도를 개선하고 불법적인 예산낭비에 대한 환수조치가 시급하다. 경기도는 조례 제정으로 연간 수십억 원의 도비를 경경련에 투입하고 있는 경기도 행정에 도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도민의 혈세를 올바르게 집행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집행이 수년간 이어져왔다. 경기중소기업연합회의 경우 지난 2011년 경기지방중소기업청이 사무국 입주 공간을 무상 제공키로 하자 특혜 논란이 일어 지원 안이 즉시 철회한 사례가 있다. 공공민간단체의 편협한 특별지원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도민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기도의 이러한 奇行은 전무후무한 일로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로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경경련은 지난 1999년 경기도 경제단체의 의사 집약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1998년에 ‘경경련 도지원조례’를 제정하여 사무실 임차료와 운영비, 사업비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경기도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