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공도읍은 다음달 1일 공도읍 4개 축구장에서 ‘제6회 공도읍장기 축구대회’를 연다. 이번 대회는 공도초등학교와 공도중학교, 대림동산축구장, 송정축구장의 4개 구장에서 경기가 진행되며 공도읍 관내 마을 및 직장의 축구팀 18개팀 선수들과 가족, 동료 등 1천명이 참가한다. 또한 올해는 수원여자프로축구팀을 초청해 체육회 임원 및 관계자와 번외경기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관람객에게는 더욱 특별한 즐거움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성=염기환기자
성남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인 육성을 위해 신진작가 다음달 8일까지 작품 접수에 나선다. 응모 자격은 19세 이상 만 40세 이하 성남시민 작가들이며 분야는 회화, 판화, 사진 등 평면 작품, 희망 작가들은 국내·외 순수 창작작품 2점이 포함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면 된다. 재단은 포트폴리오 심사로 30명을 선정해 전시회(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6월3일~15일까지)에서 현장 심사를 거쳐 대상 1명, 최우수 2명, 우수상 3명, 입선 24명을 선정해 대상과 최우수상 수상 작가에게는 내년도에 성남아트센터 미술관에서 개인전 개최 기회를 제공한다./성남=노권영기자
전 세계 50여 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국악공연 ‘월드비트 비나리’가 29일 오후 8시 군포시문화예술회관을 찾는다. 이번 공연은 관람객 모두의 복을 기원하는 콘서트로 타악과 기악, 소리꾼의 소리를 음악적으로 재구성하고 빠른 비트의 장단과 열광적인 무대로 군포시민의 소원성취를 기원한다. 공연 1시간30분 전부터 로비에서 소원체험 쓰기 이벤트가 진행되며 공연이 끝난 후에도 공연자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대동제 한마당 등이 마련돼 있다. 입장료는 전석 1만원이다. /군포=장순철기자
가평군이 무료 주례서비스인 ‘웨딩도우미’를 연중 운영하고 있다. ‘웨딩도우미’는 전직 간부공무원들로 구성된 무료주례서비스 자원봉사자들로 재직시 주민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에서 구성되어 운영하게 된다. 신청대상은 본인 및 가족의 혼사에 주례가 필요한 가정으로 저소득층과 장애인 가정을 우선 대상으로 하며 신청은 군 홈페이지(www.gp.go.kr)에서 서식을 다운받아 이메일 또는 총무과(☎031-580-5114)로 전화 신청하면된다./가평=김영복기자
‘혜이부지위정(惠而不知爲政)’.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만큼 정치가 어렵다는 말이다. 정치인에게 덕(德)은 필수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고대 정나라의 정치가로 자산(子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그가 진수와 유수를 지나다가 백성들이 물을 건너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자기의 수레에 함께 타고 건너게 해주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자산의 이야기를 듣고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자산은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할줄 모른다. 11월에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를 놓고, 12월에 수레가 지나 다닐 수 있는 큰 다리를 놓으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데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면서 백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치는 삼류정치라고 비판했다. 맹자는 백성들을 수레에 실어 냇물을 건너게 하는 것은 온정을 베푸는 것이지 정치가 아니라며, 백성들의 농한기를 이용해 인도교를 세우고, 수레가 다닐 수 있는 차교를 시설하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될 수 있는데 몇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으로 소임
향토예비군이 창설된지 올해로 43년이 됐다. 그동안 예비군은 전쟁수행의 핵심전력으로 동원태세를 유지하면서 평시 향토방위 임무수행을 위한 교육훈련과 유사시 적의 도발을 격퇴하는 내 고장 안보지킴이 역할을 수행해 왔다. 태풍과 홍수 등 재해재난이 발생했을 때에도 예비군은 지역 재난극복의 핵심요원으로 성공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예비군의 현주소는 ‘노후화된 장비’, ‘예비군훈련 3대 불편’이라는 수식어들이 대변하듯 열악한 수준이다. 2010년 국방예산 12조7천억원 중 예비전력 예산은 현존 전력에 투자될 예산에 의해 우선순위가 밀렸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예비군 육성지원 예산도 각각의 지자체 전체예산 중 평균 0.0132% 정도의 예산을 지원받아 모두 232억원을 교부 받았다. 예비전력 예산과 지방자치단체의 육성지원 예산을 모두 합하더라도 300만 예비군의 전투준비와 교육훈련, 운영유지를 위한 적정 소요예산의 68% 수준에 불과하다. 열악한 국방재정 여건과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위협에 대비해야만 하는 우리의 안보현실을 고려한다면 예비군 육성지원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변화가 요구된다. 예비군 육성지원이란 예비군의 임무수행
고려시대는 여자의 지위가 남자 부럽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혼과 재혼도 자유로웠다. 재혼을 한 부모를 둔 자녀들도 사회진출에 차별을 받지 않았고, 여자가 전(前)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는 일도 꽤 있었다. 심지어 성종과 충숙왕, 충선왕 등은 이혼을 한 여자들을 왕비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중국 송나라의 서긍이 고려를 방문한 뒤 돌아가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진다’라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시대는 이혼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인 규범이나 제도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아내가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삼불거(三不去)’에 해당하면 이혼을 할 수 없었다. 또 이혼을 하려면 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더구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재혼이 가능했으나 성종 16년(1485) 재혼이 법적으로 금지되며 중기 이후로는 이혼한 여자는 자식도 남편에게 빼앗기고 남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했다. 조선시대에 이혼이 어려웠던 것은 조선사회의 가치관이 유교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옥
조현오 경찰청장이 ‘화살표 3색 신호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 중이다. 조 청장은 “우리나라는 보통 3~4개씩 도로에 차로가 많다. 운전자들은 우회전할 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며 “제대로 정착되면 이런 혼란을 걷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호체계 변경으로 인한 혼란과 예산낭비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해 더 이상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다음 아고라 토론게시판을 비롯한 트위터 등 실시간 소통미디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굳이 돈을 들여 바꾸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이가 없네”, “누구에게 편리한 것인가”, “더 혼란스럽다” 등의 내용이다. 27일 경기지방경찰청의 ‘화살표 3색 신호등’ 시연회를 본 취재기자로서도 의문이 든다.. 차로별로 신호등을 제각각 설치하고, 좌회전 차로에서는 화살표 신호등을 설치한단다. 하지만 좌회전 2개 방향이 있는 교차로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구상도 못한 상태며, 차로별로 제각각 설치하다보면 설치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차로가 많은 구간의 설치방안도 두리뭉실하다. 특히
경기도내 자치단체와 기관 등이 오는 5월 5일 ‘제89회 어린이날’을 맞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 즐거운 시간과 추억을 선사한다. 안성시는 안성종합운동장에서 어린이날 큰잔치 ‘얘들아 놀자’를 개최한다. 시와 안성시보육시설연합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날 행사는 뮤지컬 및 인형극 등 다양한 볼거리와 가족사진찍기, 물풍선 터트리기, 전통놀이체험, 투척용소화기 체험등 30여개의 다채로운 체험부스로 운영될 계획이다. 특히 이번에 3번째로 실시되는 ‘거북이 마라톤’은 종합운동장에서 무지개 꽃밭인 플로랜드까지 1시간여 도보를 하면서 가족과 함께 봄기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김포시는 시청소년육성재단과 함께 걸포중앙공원에서 ‘마음껏 펼치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개최한다. 식전 행사로는 어린이 합창과 동아리 축하공연, 어린이 헌장 낭독, 기념사, 축사 순으로 기념식이 열리며 식후행사에는 공연·이벤트, 전시·체험활동, 상설행사 영역 등 5가지 영역을 통해 어린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중앙무대에서는 마술 및 버블쇼 등 어린이 및 가족들 모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볼거리가 제공되며 에어바운스, 비눗방울체험 등 상설체험마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날이었다. 제대 후 서울로 올라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때였다. 출퇴근 시간이면 버스 안에서 그를 종종 만났으나 서로 말은 없었다. 그는 평소 말은 적은 편이었으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내가 바쁜 일로 밤샘을 하던 어느 새벽이었다. 그날따라 당직이었던 그는 창문으로 비추는 불빛을 보고 확인 차 왔다고 하면서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서류를 만지작거리다 도와 줄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의자를 당겨 내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 이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아주 가까워 졌는데 얼마 안 돼 그는 내가 있는 부서로 옮겨와 같이 근무를 하게 됐다. 그는 급한 일 일수록 침착하고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타내 보이기를 꺼려했으며 마음은 언제나 겸손하고 진실했다. 그의 생활은 항상 바빴지만 매우 부지런 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전철 안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그의 자택을 가게 됐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