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이은 고임금까지 ‘4고(高) 복합위기’에 무역수지까지 비상이다. 올 들어 6월까지 상반기 무역수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56년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103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5월까지 10~20%대 증가세를 보인 수출도 지난달엔 5.4%대에 그쳤다. 무역수지는 4~6월 연속 적자다. 3개월 이상 무역적자는 14년 만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28년 만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적자다. 5월(10억9900만 달러)과 6월(12억1400만 달러) 연속 적자다. 1994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최악의 기록들이 속출하고 있다. 만성적자인 일본에 이어 대중국 무역마저 적자구조가 고착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중국 무역은 지난해 242억8000만 달러의 흑자를 발생해 홍콩(352억달러), 베트남(328억 달러)에 이..
옥주현 사태로 헤겔의 변증법을 깨치다. 옥주현이 등장하는 뮤지컬 동네 논쟁에 ‘지양’이라는 말이 고개 들었다. 어떤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도구로 쓰인 이 말,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 ‘샤워기 물 낭비 사태’였다. 옥주현은 공연 날 ... 수증기가 목 관리를 위한 것으로 ... 배우와 관계자들이 ‘물이 낭비되니 지양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물을 쉬지 않고 튼다고... - ‘모든 허위 사실 작성, 유통 등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당사 및 배우와 관련해 추측성 보도는 지양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그 단어를 썼다. 다른 기사지만 느낌이나 어색한(서툰) 어휘 전개가 흡사하다. 의도가 불결한, 낚시성 기사로 의심된다. 여러 매체가 약속이나 한 듯 이 기사를 실은 걸 보니 ‘대박’을 기대한 어떤 세력의 작전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요즘 기자, 언론사들은 참 여러 가지 한다. 독자의 신뢰는 망가지겠고. 한자로 止揚이다. 止는 ‘멈추다’ 揚은 ‘오르다’의 뜻. 옳고 그름 시비(是非)처럼 ‘하지 말자’는 止와 ‘하자’는 揚의 서로 어긋나는 속뜻 단어가 함께 붙었다. 한자는 하나하나가 한 단어다. 한 글자만 써도 되고, 몇 개를 붙여 새 뜻을 만들 수도 있다. 원래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쓰던 말이 아니었다. 명치유신(1867년) 이후 구미(歐美)의 문물(文物)을 받아들이는데 온 힘을 쏟은 왜(倭 일본)가 헤겔 변증법을 번역하며 만든 ‘용어’였다. 유럽과 미국의 선진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왜는 구미에 굴종적이었던 것과는 딴판으로 이웃국가를 침략한다. 왜가 번역한 (한자로 된) 용어들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쓰이데 된 계기다. 정반합(正反合)으로 기억되는 헤겔 변증법의 한 해설에서 이 용어의 의미를 보자. - 아우프헤벤(Aufheben)은 '폐기함'과 동시에 '보존하는' 것이다. 이는 헤겔 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다. - 헤겔은 이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활용해, (변증법상에서) 낡은 질(質)이 부정되고 새로운 질로 옮겨 갈 때 낡은 질에 있던 것이 모두 부정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 안의 적극적인 것은 새로운 질의 내부에 보존된다는 식으로 논리를 구성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독일어 단어 ‘아우프헤벤’을 헤겔은 ‘이러저러한 의미’의 변증법 (철학)용어로 채택했고, 일본이 이를 止揚이라 번역한 것을 우리가 쓰게 됐다. 이런 머리 아픈, 어려운 말을 어쩌다 ‘옥주현 사태’의 홍보팀이 ‘하지 말아달라.’는 뜻의 ‘좀 있어 보이는 말’로 쓴 것일까? 개 발에 편자, 상상해보자. 편자는 말굽에 대는 쇳조각이다. 이 편자처럼 ‘지양’이란 말, 뜻도 모르며 의미도 망가진 채 쓰는 이들이 꽤 있다. ‘옥주현과 개 발의 편자 언어’ 쯤으로 기억될, 요즘 말 ‘황당 시츄에이션’이다. 지양, 그 말 안 쓰는 게 낫다. ‘하지 말자.’면 너무 충분하다.
밤새 천둥을 동반한 굵은 비가 내렸다. 낮에도 앞을 가려볼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강물이 불어나면서 교통이 통제되었다. 이북지역인 북쪽에도 28일 밤부터 7월 1일까지 개성과 강원도 황해남북도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경보가 있었다. 그리고 평양을 비롯한 일부지역에 위험 수위를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남북이 동시에 집중호우가 내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지만 사전 통지도 없이 황강댐의 방류는 불안한 예감을 넘어 괴씸한 생각마저 든다. 갑작스러운 폭우는 북쪽에서 최악의 재난상황이 된다. 도로와 철길이 파괴되고 농경지가 물에 잠기면서 눈앞에서 다 자란 농작물을 잃게 된다. 2020년에도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한 일부지역이 폭우로 피해를 입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최고지도자가 황해북도 은파군을 방문하면서 식량..
한겨레신문은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3월 6일부터 ‘노지원 · 김혜윤 기자 우크라 접경지대를 가다’ 라는 타이틀을 걸고 매일같이 현지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라는 타이틀로 20회 이상 연재중이다. 기자에게 현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사들이 진실을 전달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한겨레신문이 현지 취재라며 전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관련 보도는 객관적 진실을 담고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모든 언론이 편향적이더라도 한겨레신문은 진실을 추적해 보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학자들은 대개 언론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면서 객관적 보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형용모순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이라는 말이며, 그 안에 진실이 있다는 의미다. 주관적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가운데 오로지 이성의 판단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객관성이다. 한겨레신문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도는 이 본령에서 벗어나 있다. 6월 20일자 기사 ‘죽어서야 집으로…가족들은 관 위로 무너졌다 [우크라 현지]’는 이렇게 방향을 잡았다. “군복을 입은 병사 여럿이 삽을 들고 새로 구덩이를 팠다.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영웅’을 묻을 자리다. …18일(현지시각) 낮 12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외곽 도시 부차에 있는 ‘영웅의 골목’ 묘지에선 이날도 장례식이 열렸다.” 주관적 감정을 배제한 이성의 판단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게 포퓰리즘이다. 기자들은 비교적 평화로운 수도 키예프에 머물면서 스케치한 기사를 송고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돈바스 지역이 아닌, 우크라이나 정부가 허가한 제한된 지역에 머물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민들로부터 보고 들은 대로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진중한 생각 없이 그런 현장을 보면 감정이 고조되기 쉬운데, 그걸 진실이라고 믿으며, 그런 감정을 독자들에게 이입시키고 있는 셈이다. 6월 22일자 기사 ‘밤 11시 통행금지…적막 속에 불안이 스며든다 [우크라 현지]’를 보자. “우크라이나군이 수도를 탈환한 뒤 키이우 시민들은 겉으론 일상을 되찾은 듯 보인다. 그러나 어둠이 내리고 야간 통행금지 시각이 다가오면 거리는 적막 속에 빠져들고 전쟁의 긴장감이 다시 도시를 엄습한다.” 기사인가, 소설인가? 한겨레신문은 6월 28일, 우크라이나 시민 10명에게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요?” 라고 물었다며 동영상을 공개했다. 한결같이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로부터 재탈환할 때까지 전쟁을 이어가야 하고, 승리를 확신한다는 내용의 강경한 발언들이이었다. 우크라이나 시민 10명이라고 했지만, 모두 키예프 시민들이었다. 우크라이나 전황을 전달하는 기사에는 빠짐없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에 연대하는 한겨레에 후원해주세요’ 라는 내용의 배너가 등장하는 것도 개운치 않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열악하고 위험한 근무환경에 노출돼 있다. 조리 때 발생하는 매캐한 연기와 청소할 때 사용하는 독한 세정제 증기를 들이마시며 일을 해야 한다. 인력도 부족해 이른 바 ‘만성골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폐암에 걸리고 끝내 숨지는 경우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지부는 얼마 전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에게 “급식 노동자가 업무에 시달려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주기 위해 성실이 일했으나 지금 골병에 시달려 죽음 앞에 놓여있다”며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임태희 교육감 출근을 저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배치기준 테스크 포스 정상화 ▲대체인력제도 개선 ▲안전보건관리체계 확립 등이다.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지난해 4월 27일에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주최 ‘경기도내 학교급식실 집단 산업재해 고발 기자회견’이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당시 광명시 한 중학교의 급식실 노동자가 이렇게 절규했다. “튀김·볶음 조리 때는 3시간 가까이 가스·연기·열기·수증기·기름 냄새를 다 마시고 조리 후에는 대형 부침기와 볶음 솥이 식기 전에 화학약품을 발라가며 세척하면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속이 메스꺼웠다”고.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급식노동자들은 작업 도중 쓰러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19년 발행한 ‘조리 시 발생하는 공기 중 유해물질과 호흡기 건강영향–학교급식 종사자를 중심으로’라는 연구보고서를 보면 심각하다. ‘고온의 튀김·볶음·구이요리 조리 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엔 미세먼지와 1급 발암물질인 벤젠·포름알데히드 등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 성분을 국제암기구는 발암 발생 가능물질로 분류한다. 실제로 몇 해 전 수원시 모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조리실무사가 폐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던 중 사망했다. 같은 곳에서 일하던 조리노동자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안양시의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청소작업을 하던 조리실무사도 중 락스 중독으로 쓰러졌다. 이들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현재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신청은 총 64건이다. 이처럼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지만 급식실 유해요인은 제거되지 않고 있다. 학비노조 측은 급식 노동자 사망의 핵심 원인은 인력부족이라고 주장한다. 공공기관 급식노동자의 식수인원은 한 사람당 70명이지만 교육청은 150명이라는 것이다. 이에 학비노조 경기지부와 경기교육청은 급식실 적정인원 배치를 위한 ‘배치기준 테스크 포스’를 구성했다. 그러나 노조는 교육청이 면피성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교육청이 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산재예방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학생들이 불합리한 계급 사회를 배우고 있다’는 이들의 외침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들이 건강해야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도 생명력이 깃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1인 가구가 늘고 이웃 간의 단절현상이 심화되면서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민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농식품부에서 발표한 ‘2020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서는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가 638만 가구였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 313만 가구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이제 집안에서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애완’이 아니라 ‘반려’로써 인간의 가족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면 가족을 잃은 것처럼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반려동물이 죽으면 쓰레기 취급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다. 폐기물관리법 제2조는 동물의 사체를 생활폐기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폐기물로 취급하는 법 때문에 반려동물의 사체를 자기 땅에 묻는..
애견 간식이 배달됐다. 가격은 종전과 같은데 크기가 줄었다. 점심시간, 1만 원 미만으론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쉽지 않다. 휘발유 1리터 가격이 2100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고속도로엔 시속 80~90km의 ‘정속’ 주행 차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고(高)물가 시대, 일상의 한 모퉁이다. 한편, 주가 급락에 따라 증시엔 신용반대매매 리스크가 커졌다. 시중금리 상승으로 가계엔 이자 부담에 비상이 걸렸다. ‘빚투’에 나섰던 젊은이들의 곡소리가 심상치 않다. 전기요금도 인상될 예정이다.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에선 ‘최저임금 동결’을 주창한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인지, 이기주의적 발로의 주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28일, 경제수장인 추경호 부총리는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임금을 올리기 시작하면 물가가 연쇄 상승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과도한 임금 인상’은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한다. 십분 이해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물가상승에 걸맞은 임금인상이 확보돼야 경제도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최저임금 인상’에 줄곧 비판적이었던 보수언론인 조선일보 기자들도 고물가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지난 16일엔 동아일보가 4.7%를, 지난 4월엔 중앙일보·JTBC가 기본연봉 6% 인상을 결정했다. 한국은행의 “올해 물가상승률 4.7% 전망”, 추 부총리의 “6~8월 물가 6%대 예상” 수치와 맞아 떨어지는 임금인상률이다. 예년엔 물가상승률이 2%대여서 임금인상률도 2%대였다.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4.7~6%대여서 그에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위기 상황서 경제주체 한쪽의 일방적 희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때엔 노 젓기(Rowing)보다 방향잡기(Steering)를 잘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가 재벌 대기업에게 법인세를 인하해주면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법인세는 인하하지 않은 정책은 그 방향이 잘못됐다. 공감하기 어렵다. 사내유보금을 켜켜이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에겐 법인세 인하보다 신규 투자를 위한 ‘규제 타파’와 ‘원스톱 행정서비스 제공’이 급선무다. 중소기업 경영난 해결을 최저임금을 동결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인력난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 환경과 임금 수준이 대기업보다 열악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정부는 세세한 개입보다는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미래대응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정부는 경제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줘야 한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국내보다는 국외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정부는 외교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전쟁의 위기를 자극해선 안 된다. 대통령과 장관의 발언이 수시로 바뀌어서도 안 된다. 정책실패 최소화와 정부신뢰 제고… 고물가 시대에 필요한 ‘방향잡기’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이후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벌은 재벌대로 참여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위축된 세계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정경제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비롯한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고, 선진국의 긴축 재정정책은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와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미 디폴트 상태에 있고 몇몇 국가는 디폴트 직전이다. 과연 한국 경제는 이로부터 자유로운가? IPEF 참여는 작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상황을 악화시킬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또 다른 결과는 ‘지경학적 분열’ 현상이다. 세계는 러시아에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는 진영과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 또는 강화하는 진영으로 양분화되고 있다. 설상가상 IPEF의 출범은 지경학적 분열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IPEF가 러시아 진영에 속해 있는 중국의 고립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난 30년간 ‘통합’의 힘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경제 규모를 3배로 늘렸으며, 십 수억 명의 극빈층을 구제하였다. IMF 조사에 의하면, ‘지경학적 분열’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그간 누려온 수출 증대 및 기술 노하우 습득을 통한 부의 축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부담과 혁신 파트너 상실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분열’은 고소득 전문가, 중소득 제조업 종사자, 저소득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득 계층에 피해를 준다. 특히 기술 부문의 ‘분열’은 관련 국가의 GDP를 5% 감소시킬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공급 사슬을 새롭게 재구축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투자장벽으로 인한 비효율로 인하여 통합 이전의 ‘결핍’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지경학적 분열은 기업 경영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주가가 급락한 이유는 미국의 금리 인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경학적 분열이 가져올 시장의 축소와 그로 인한 매출 및 이익 감소 우려 또한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다.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존과 지속 가능 경영이다. 기업 경영자는 ‘탈통합’에 선제적으로 앞장설 필요는 없다. 기존의 글로벌 ‘통합’의 이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서서히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긴 호흡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도 수출 및 수입의 다변화 정책을 통하여 공급 사슬 재구축의 소프트랜딩에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강대국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 맞추어 대응하여도 늦지 않다.
공동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회적 자본은 신의가 첫째로 꼽힐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신의이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는 곧잘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운다. 예부터 왕과 신하, 백성 상호 간, 스승과 제자, 부부 사이, 부자 관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자 판단 근거이었다. 춘추전국시대 秦 나라의 실력자 公孫 앙(鞅)은 위 나라에서 사이좋게 지냈던 公子 앙(卬)을 전쟁터에서 상대국 장수로 맞는다. 하지만 공자 앙에게 과거 인연을 미끼로 서로 싸우지 말고 동시에 병력을 철수시키자며 거짓 화친을 제의한다. 그는 이에 속은 공자 앙을 불러내 붙잡아 죽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의는 무너진다. 새로 등극한 왕이 ‘믿음이 안가는 인물’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시 위 나라로 피신했으나 하급 현령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대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니 내가 당신을 챙겨주어야 할 도의란 찾을 수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속임수로 권력에 오른 자의 배신행위가 낳은 인과응보이다. 권력자들은 주로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신하곤 한다. 무릇 사익에 빠진 자들은 처음에는 서로 돕지만 나중에는 미워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마는 법이다. 신의와 함께 지혜가 공직자의 소중한 덕목이라고 역설하는 역사적 사례도 넘쳐난다. 나라를 망칠 군주는 겉보기에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고, 간신 역시 충신처럼 위장하니 제대로 사람 됨됨이를 살필 일이다. 역사는 지혜를 갖춘 권력자의 작은 善은 큰 선을 불러오지만 어리석은 자의 작은 악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가르친다. 중국의 西周 왕비 포사가 나라를 망친 것도 유왕이 지혜를 못 갖추고 그녀의 작은 즐거움에 집착했던 탓이다. 결국 나라는 망해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의 신하들이 모두 달아나 버리고 유왕 자신도 참극을 당하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지난 3월25일자 '공동선' 참조) 오늘의 대한민국은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자신이 전임 대통령에게 검찰 개혁을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이를 배신해 최고 권력에 오른 사람이다. 나아가 검찰 조직을 진두 지휘해 개혁을 추진하는 인사를 도륙을 내더니 대통령이 된 이후는 아예 검찰공화국의 건설에 몰두하는 듯하다. 또한 그 부인은 엉터리 논문에 허위 이력,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도덕적 기준을 넘어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법과 원칙’ 적용 기준에서는 예외인 듯하다. 도덕적 틀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새 정부에서 신뢰는 누구에게 구할까? 개인이나 법인, 특히 모든 권력은 유한한 생명체이다. 언젠가는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시민들의 어깨가 이제 조금 더 무거워졌다. 기본적 신의마저 저버린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일이 우리 역사 앞에 놓인 것이다.
할머니가 앉았다. 시장 입구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한다. 생김새만 보아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천막 같다. 생김새만 닮았을 뿐, 저렇게 작은 천막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쪼그리고 앉은 라면 박스 위로 비가 들친다. 할머니 발치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에도 비는 어김없다. 상추랑 쑥갓은 이천 원이고 고추는 천오백 원이다. 파란 바구니가 상추랑 쑥갓이고 빨간 바구니는 고추다. 빨간 바구니는 파란 바구니보다 작다. 할머니의 굽은 어깨도 비닐을 씌운 우산보다 작다. 우산을 씌운 비닐을 타고 빗물이 줄줄 흐른다. 비닐 안쪽은 할머니의 입김으로 뿌옇다. 비 오는 날의 하루가 뿌옇다. 할머니 앞에 아주머니가 앉는다. 두부가게 아주머니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하는 할머니에게 콩물을 건넨다. 콩물 담은 바가지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