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 음악 좀 찾아주세요. 평소 A, B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데 내 취향의 음악이 더 없을까요?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이다. 답변으로는 제시된 음악을 분석해 일정한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그와 유사한 음악을 추천하는 글이 달린다. 취존(취향 존중), 개취(개인 취향)라는 줄임말이 흔히 사용될 정도로 취향은 이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품도 과감한 펀딩을 통해 구매하고, 해시태그를 이용해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태그니티(TAGnity, TAG+Community)를 형성한다. 숨겨졌던 당신의 취향을 찾아주겠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다양한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되는 요즘, 좋고 싫음은 분명하지만 취향에 맞는 것들을 찾아 나설 시간도 열정도 없는 사람들은 SNS(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에 의탁..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전직 해상자위대 간부가 쏜 산탄총을 맞아 사망했다. 최장기 총리를 역임했다는 그의 죽음에 대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지도자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암살에 의한 것이든, 자연사이든 죽음에 사람이 조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베의 죽음은 한국인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를 보는 우리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국가로 만들려 했고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식민 지배를 사죄한 아키히토 일왕을 비롯한 일본 지도자들의 공식 발언을 부인하면서 일본의 침략이 국제법상으로 불법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던 그였다.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강변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종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해 성노예로 삼았던 사실 역시 지어낸 근거 없는 것이라고 주장해 공분을 자아냈다. 또 이 같은 ‘거짓된 진실’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관련해서는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한 언급도 없이 마치 안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의 단순 살해범 정도로 폄하하기도 했다. 최근에 그는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한 보복 조처를 합리화하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해 “약속을 안 지키는 어리석은 국가”, “한국 위안부들에게 사죄편지를 보낼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등의 모욕적 망언도 늘어놓았다. 그는 일본 ‘정치족벌의 황태자’로 정계에 등장해 양탄자를 밟고 성장했다. 한국의 군사독재자인 박정희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후광에 힘입어 출세의 가도를 달렸는데, 정작 기시는 일본 최대 전범 도조 히데키 총리 아래서 군수성 차관을 지낸 같은 전범이었다. 패전 후 재판에서 간신히 살아난 기시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하였고 전범과 재벌의 정치 조직인 자민당 결성과정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했던 거물이다. 아베 아버지 또한 자민당 실력자로 오랜 기간 정계 거물로 지냈던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이 아닌가? 아베의 정치적 신념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정한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평소 존경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 세력은 한국의 극우 친일세력과 지금껏 맥이 이어져 있다. 그런 그이니 욱일기를 보물처럼 다루고 전범들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버젓이 참배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는 재임 시절 장기 집권을 위해 경제체질을 약화시킨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나친 통화 증발을 통해 증시를 부양한 것은 마치 경제가 살아난 듯한 착시효과를 주었을 뿐 경제에 파국적 결과를 가져왔다. 부음기사는 타계한 인물의 功만 아니라 過도 균형 있게 기록해야 한다. 아베의 죽음이 남긴 빛과 그림자에서 아픈 민족사의 교훈을 찾아 보도해야 할 한국의 언론이 공을 앞세운 애도 중심의 감상적 보도를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 한마디 남긴다.
팔순을 맞은 외삼촌이 가까운 친지들을 모아 식사 대접을 했다. 식사 후, 술잔이 몇 번 돌자 취기에 오른 외삼촌이 가족을 불러내 애정과 고마움을 전한다. 의례적이면서도 늘 뭉클한 ‘사랑의 가족’ 모습인데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이 복잡하다. 부부 갈등으로 인한 수 차례의 이혼 위기, 자녀들의 가출 등 쉬쉬해도 소문 돈 지난한 가족사를 떠올렸기 때문 아닐까 싶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 한 곡조를 뽑겠다’는 삼촌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노래일) ‘아, 목동아’를 부른다. ‘산골짝마다 울리는 목동들의 피리 소리’로 시작되는데, 무한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유한한 남녀간의 사랑을 애달파하는 초원의 사랑가다. 삼촌 연배의 분들은 현재명 작사, 작곡의 우리 노래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실은 영국 옆 섬나라 아일랜드의 민요다. 아일랜드인들은 한 서린 자신들의 노래가 지구 반대쪽에서 ‘사랑타령’으로 바뀌어 불린다는 것을 알면 뭐라고 할까. 아일랜드는 700년 넘게 영국 식민지로 있던 나라다. 1916년, 분리 독립 선언하고 봉기한 아일랜드에서는 수많은 청년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전쟁터로 달려갔다. ‘아, 목동아’의 원곡 ‘오, 대니 보이’는 어린 아들을 전쟁에 보내는 늙은 아버지의 유언을 담은 곡이다. 오 대니 보이, 백 파이프 소리가 부르고 있네/ 골짜기로, 그리고 산마루를 따라 들려오네/여름은 가고 장미꽃도 지고 말았다/ 너는 가고 나는 슬픔을 견뎌야 한다......중략......오, 대니 보이, 난 널 사랑한다/ 만약 네가 온다면, 모든 꽃들이 지고 있을 때, 난 죽었고, 죽었다고 해도 너는 와서 내가 누워 있는 곳을 찾아라......후략...... ‘오 대니 보이’의 노랫말을 만든 이는 프레데릭 에드워드 웨덜리(Frederic Edward Weatherly)라는 영국 변호사 겸 작곡가. ‘오 대니 보이’는 아일랜드의 구전곡이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민요 수집가인 제인 로스(1810–1879)에 의해 ‘런던데리 에어(Londonderry Air)’라는 피아노곡으로 악보화 된다. 제인 로스는 이 곡을 어느 날 창밖에서 들려온 집시풍 바이올린 소리로 만났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이들이 이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들어진 노래가 퍼져나갔다. 전쟁의 비극을 담은 ‘오! 대니 보이’도 그중 하나다. 제인 로스가 노래 제목으로 붙인 ‘런던데리 에어’의 런던데리는 ‘오! 대니 보이’ 보다 더 참담한 역사를 품고 있는 지역명이다. 19세기 중엽 , 감자 대기근으로 아일랜드 국민 200만명 이상이 굶어죽고 살아남은 이들은 신대륙 아메리카로 대거 떠났는데 그 이민선을 띄우던 항구가 런던데리에 있었다. 외삼촌의 ‘아! 목동아’가 외삼촌의 전쟁같은 가족사를 품고 있어 가슴 아렸는데 원곡 ‘오! 대니 보이’를 들으니 전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언어의 예술이다. 언어는 사유의 결과물이기에 언어가 빈곤한 사람은 사유가 부족하다. 요즘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화제다. 소통을 위한 적극적 자세가 신선하고 좋아 보인다. 지난 정부의 대국민소통은 답답했는데 이번 정부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은 의도만큼 탈도 많다. 정치인 모두를 지도자라 부르진 않는다. 내 기준으론 당 대표급이거나 대선 후보급 정도는 돼야 정치지도자라 부른다. 대통령은 최고의 정치지도자다. 2017년 문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 주요 사안을 국민에게 직접 브리핑하는 대통령을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오는 시간이 갈수록 쌓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더 심했다. 방미 중 성추행 당사자인 윤창중 대변인의 경질을 알리면서 홍보수석..
초유의 당 대표 징계로 집권당이 내홍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을 받아온 이준석 대표에 대해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 결정을 내렸고, 이 대표는 강하게 반발하며 대표직에서도 물러날 뜻이 없음을 내비치고 있다. 집권여당의 향배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초복합위기로 국가와 서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데 집권당은 집안싸움으로 국민들이 나라와 여당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새정부가 출범한지 2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30%대로 내려가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3개월여 만에 야당에 역전됐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국가적으로 산적한 현안이 가로놓여 있다. 특히 노동‧교육‧연금‧공공기관 개혁은 정부‧여당이 총력적인 대응체제를 구축해..
모바일로 뉴스를 접하면서 새벽시간 현관 앞에 배달되는 신문을 집어드는 즐거움이 거의 사라졌다.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할 젊은 미디어 수용자들이 있을 것이다. 신문 한 부를 확장하기 위해 자전거를 경품으로 주고, 1년 구독료를 받지 않던 시절이 오래되지 않았다. 이런 행태가 전설로 남겠지만, 지면 신문은 담길 기사량이 제한돼 기사의 질은 상대적으로 정제되었고 높았다. 정보기술은 뉴스의 무한 공급을 가능케했지만, 싸구려 기사가 양산될 가능성을 크게 키웠다. 실제로 뉴스의 질은 크게 떨어졌다. 특히 한국이 유별나다. 기사가 포털을 통해 유통되면서 뉴스 이용자들은 어느 언론사가 제공한 기사인지를 크게 따지지 않는다. 전통있는 언론사조차도 클릭수 높이기 전쟁에 뛰어들면서 이 같은 추세는 가속되고 있다. 선정적인 기사가 난무하는 배경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이 좋아하는 최고의 뉴스 메이커는 뭐니뭐니해도 김건희 여사다. 김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은 대통령의 뉴스를 덮을 정도로 집중적 관심을 받는다. 호불호를 넘어 기사 클릭 로켓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김 여사의 활동이 부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이 압도적으로 많다. 김 여사 뉴스는 청년실업, 경기침체와 인플레,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 미·중간 신냉전 시대 대응 등 산적한 국가적 의제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윤 대통령 취임 1주일 전, 뉴스도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도마토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김 여사의 적극적인 대외 활동에 부정적이다. 국민 66.4%가 조용한 내조를 원했다.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원하는 국민은 24.2%에 그쳤다. 주목할 점은 윤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서울지역 응답자 70%, 보수층의 57%가 조용한 내조를 선호했다. 언론지형의 겉모습은 보수와 진보로 양분돼 있다. 윤석열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보수지는 내편일 것이라는 착각이다. 언론사는 광고수주에 도움이 되면 국가적 의제도 뒤로 한다. 좋은 사례가 있다. 지난 4월 4일 김건희 여사가 자주색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서초동 자택 앞에서 경호를 맡고 있는 경찰특공대 폭발물 탐지견을 안고 있는 사진에 언론은 광란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사에 따르면, 이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네이버에서 ‘김건희’로 검색했을 때 나온 기사가 자그마치 226건이었다. 이중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이 23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조선(15건), 매경(15건), 연합(11건), 중앙(10건), 동아 미디어그룹(10건)이 뒤를 이었다. 보수 언론들이 클릭수 경쟁을 이끌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담을 참석하고도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다. 해외순방 후 지지율이 내려간 전례 없는 사례라고 한다. 언론이 쏟아낸 김건희 여사 패션 기사에 대통령의 순방 성과까지 휩쓸려가지는 않았는지 냉정하게 점검해 볼 때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로 인해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을 보면 2020년에 16%에 이르렀고, 10년 후에는 25% 이상이 될 것이라 한다. 이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서비스 수요 증가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노인 건강복지를 위한 요양병원이나 시설의 경우 냄새, 욕창, 낙상, 와상이 없는 것과 기저귀와 신체 억제대를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고 노인들을 케어하는 돌봄을 지향하고 있으나 간병사나 요양보호사의 간병 수가가 도입되지 않아 돌봄 서비스 경쟁보다는 간병 단가를 낮추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건강과 보건 의료분야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big data), 가상현실(VR), 모바일 앱, 원격의료, 소프트웨어 등의 첨단기술을 결합한 전 세계가 지향하고 있는 새로..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관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남북관계가 재개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본다. 5월 16일 정부는 코로나 방역협력을 위한 남북실무접촉을 제의했고, 6월 21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장소, 의제, 형식 등을 가리지 않는 조건없는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7월 1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통해 신종코로나 진원지로 대북전단지를 지목하며 대남 비방에 나섰다. 이 점을 우리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대화제의에 대한 답변을 북한 신종코로나 확산의 원인제공자로 남한을 지목했다는 점이다. 코로나와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주민들의 동요를 막고 대남 적개심 고취를 통해 민심을 다잡기 위한 행보라고 단순하게 해석할 것은 아니라 판단된다. 통일부에서 북한..
경기도보건교사회와 경기도전문상담교사협회 회원들이 화났다. 지난 2일 도교육청이 비교과 계열(보건‧영양‧전문상담‧예술창작 4군) 장학사를 기존 전문전형(5년)이 아닌 임기제 전형(3년)으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부터다. 전문전형 장학사는 5년, 길게는 9년까지 일하면서 장기계획과 정책을 수립할 수 있지만 임기제 장학사는 임기가 3년이다. 책임감 있는 상담과 위기지원 정책을 펼칠 수 없으며 본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 2년간 장학사 지원이 제한돼 직무연속성으로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장학사는 교육현장을 지도·조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교육전문직 공무원이다. 이들은 교육의 목표와 내용, 학습지도법 등 교육에 관한 모든 조건과 영역에 걸쳐서 협력과 조언을 해준다. 전기한 것처럼..
불멸의 작가 기 드 모파쌍(Guy de Maupassant). 그 역시 천재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신의 부르심은 너무도 빨랐다. 그가 생을 마감한 건 서른일곱 살 청춘. 하지만 100년을 살다 간 사람을 무색게 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첫 성공작 ‘비곗덩어리’부터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여자의 일생’, 그리고 파리의 불쌍하고 추잡함을 고발하는 ‘롱돌 자매’ 등 주옥같은 소설을 300편 넘게 썼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대화, 시선을 섬세하고 애잔하게 표현했다. 이런 모파쌍의 탄생지는 특이하다. 그는 미로메닐 성(Château de Miromesnil)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페깡(Fécamp)에 있는 이 성은 18세기 프랑스 법무재상이었던 미로메닐 공작의 소유였다. 백성을 사랑한 미로메닐 공작은 죽으면서 이 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모파쌍의 부모는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페깡시장과 주임신부에게 부탁해 이 성을 빌렸고 거기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어린 모파쌍은 지극히 평범했다. 말이 없고 페깡의 바다와 항구, 선원들을 무척 좋아했다. 스포츠광에 자유를 만끽한 행복한 아이였다. 그가 페깡을 떠난 건 스무 살 때. 파리 해양부장관실 공무원이 되면서였다. 이때 플로베르로부터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았다. 플로베르는 문학에 심취한 어머니의 친구였고 어머니는 플로베르의 대모였다. 플로베르는 모파쌍에게 위스망스와 도데, 졸라를 소개시켜줬고 이 유망한 청년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훗날 손꼽히는 작가가 됐다. 모파상은 농부, 간교한 사람, 부르주아, 바보, 불우한 사람들의 삶 속을 파고들거나 외관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그는 특히 노르망디 농부들의 사투리를 재치 있게 표현했고 그들의 삶을 설득력 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런 그의 문학적 원천은 고향 페깡이었다. 이곳은 노르망디 공작의 저택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공작들의 궁궐이 많고, 아주 빼어난 생트 트리니티 사원까지 어우러져 있어 기품이 넘친다. 어디 이뿐인가. 기괴한 베네딕틴 궁과 맛과 색깔이 신비한 페깡의 위스키인 리큐르 베네딕틴은 매력적이다. 거기에 온갖 식물이 뿜어내는 향기와 향료들의 풋풋한 냄새. 코를 찌른다. 페깡에서 에트르타로 넘어가는 알바트로 해안의 하얀 절벽과 모파쌍이 사랑했던 이뽀르(Yport)에 펼쳐진 특이한 여름별장들,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과 바다, 갈리아 요새, 대서양의 장벽까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찾을 수 없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걸어봐야 할 코스로 이곳을 선정했을까. 올 여름 페깡의 자갈해변에서 강렬한 태양을 즐기고, 바람의 언덕으로 옮겨 리큐르 베네딕틴을 마시며 아름다운 절벽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유유자적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녹아내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