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7~28일 이틀간 사전투표에 이어 본 투표가 내일 실시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지역구·비례대표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지역구·비례대표 기초의원, 교육감 등 모두 7단계의 지방정부 관련 일꾼을 뽑는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치러진다. 이번 선거는 3‧9 대선 이후 3개월여 만에 그리고 새정부 출범 20여일 만에 갖게 돼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선거 고유의 취지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공천이 워낙 촉박하게 진행돼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들의 준비 기간이 짧았고, 그만큼 후보 자신들의 면면을 알릴 기회도 적었다. 게다가 지방선거 및 함께 실시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지난 대선 주자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지며 선거전이 ‘대선 2라운드’ 양상으로 전개됐..
한국방송협회가 주관하는 한국방송대상은 73년부터 그 해의 최고 프로그램에 시상하는 한국방송의 아카데미상이다. 지상파 3사의 연말 방송대상이 자기들만의 위로와 격려잔치를 하는 셀럽들의 송년 프로그램인데 비해 방송대상은 말 그대로 최고의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이다. 드라마가 대상을 처음 받은 게 96년 KBS의 일일연속극 바람은 불어도 이며 이어 98년에는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이, 오락 프로그램으로는 MBC의 칭찬합시다가 99년 대상을 받았다. 교양 다큐가 아닌 오락 프로그램이 대상을 받는데 물경 23년이 필요했다. 2000년대 들어 드라마의 한류 바람과 웰메이드 사극의 인기로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 등이 대상을 수상하였고 2015년에는 무한도전이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그 시기에도 차마고도, 누들로드 등 정말 좋은 다큐멘터..
윤석열정부 출범 3주가 지났다. 윤석열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지난 3월 9일이다. 후보자시절 윤석열씨는 매주 언론사 기자와 만나겠다고 말 한 적이 있다. 당선된 후에도 자주 언론과 만나겠다고 했다. ‘출퇴근하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오며 가며 공식, 비공식적으로 기자들을 만나기도 쉬워졌다. 다른 건 몰라도, 윤석열 정부의 ‘언론공약’은 100% 이상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윤대통령은 5월 16일 자신의 참모들에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각계 전문가들은 물론 언론과 충분히 만나고 대화하면서 적극 소통하라"며 “'낮술'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낮술 권하는’ 혹은 ‘접대와 소통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시중의 민심을 가감 없이 파악해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참모들에게 적극..
‘일본 극우’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토야를 떠올린다. 20여 년 전 남인도에서 만난 친구! 나는 시간을 아껴야하는 단기 여행자였고 토야는 돈을 아껴야하는 세계일주 여행자였다. 오토바이는 내가 빌리고, 운전은 그가, 주유비는 반반씩 부담해 고아와 함피를 둘러보자는 제안에 숫기 없는 그는 당황한 듯 망설이다 겨우 말을 꺼냈다. "저는 극우입니다” 혐한(嫌韓)시위를 다닐 정도라는 그에게 "그게 어때서?”라 되물으며 우리는 역사가 아닌 비즈니스로 만난 관계라 했다. 그렇게 계약이 성립되어 고아와 함피를 둘러봤다. 스콜-늦은 오후 소나기가 내리면 짜이 집에 뛰어 들어가 지붕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우리는 친해졌다. 그는 어릴 때 이지매를 당했고 와세다 법대에 진학,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서 만난 접대부 여성이 그의 첫사랑. 그러나 사랑에 실패하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고 몇 번의 자살 시도, 몇 번의 사법시험 실패 끝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이 극우였던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그는 데려갈 곳이 있다며 언덕 능선을 한참 달리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모래밭 오두막에서 술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토야는 『깊은 강』이라는 책을 주었고 나는 두 가지 숙제를 냈다. 매일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것, 국경을 넘을 때마다 내게 엽서를 보낼 것!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그가 보낸 엽서가 도착해 있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도전, 관계 맺는 즐거움, 새로운 경험이 적힌 우편물이 날아왔다. 그러다 일본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1년 만의 재회를 앞두고. 일본인 친구들에게 그가 보낸 편지를 보여줬는데. 얼굴 표정들이 일그러졌다. "글씨가 떨린다. 정신이 불안한 사람이다. 위험하니 만나지 말라"고 했다. 납치 감금 성폭행 살해 등 일본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 들려주는데 오싹했다. 결국 약속장소에 가지 않았다. 수개월 후 토야의 편지를 받았다. 미얀마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으며 곧 결혼하게 될 거라는. 행복해하는 모습에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은 죄책감이 씻겨지는 듯했다. 어느 날 채팅창으로 토야가 말을 걸어왔다. 그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였다. “토야가 자살했습니다. 박영윤 씨가 누군지 몹시 궁금했습니다.”로 대화가 이어졌다. 미얀마 여성을 만나 결혼을 전제로 거액을 송금했으나 사기당하고, 절망해 목숨을 끊은 것 같다는, 우울증이 심했다는, 담담하게 말하던 그녀는 "당신이 토야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외로운 아들의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아. 겨우 그 정도 우정으로 친구 자격을 얻을 수 있다니. 그를 의심해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았던 내가. 토야가 준 책은 여전히 내 책장에 꽂혀 있다. 비가 쏟아지던 날 마시던 짜이도,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의 맥주도, 국경을 넘을 때마다 날아오던 엽서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인연의 깊은 강은 건너지 못한 채.
일요일 꼭두새벽,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씨가 각각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진부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틀째 사전투표를 마친 날이다. 한국은 정말 정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요원하다는 생각. 아마도 다들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개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확대 발전하고 있는데 그 개인들의 역량을 담아낼 국가나 사회와 같은 체제의 용기(容器)는 매우 부실하다. 걱정은,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런 분위기가 오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몇 번을 얘기하지만 아베 이후 일본 영화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신성(新星)이 나오고 있긴..
고백건대, 대선이 끝나고 한참동안 뉴스를 보지 못했다. 괜히 보다간 혈압관리가 되지 않을 듯싶었다. 촛불혁명을 이룩한 나라에서 불과 5년 만에 총풍사건, 차떼기, 국정원댓글사건, 그리고 탄핵까지 국기문란 레퍼토리는 죄다 꿰고 있는 정치집단에게 다시 정권을 넘겼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수레바퀴를 뒤로 돌린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면 검찰이나 언론 탓 이전에 더불어민주당의 자중지란이었다. 선거기간 내내 끊이지 않은 분란과 내부총질이 빚어낸 참사였으니.. 자중지란은 선거패배이후에도 끊이지 않는다. 법무부가 장관직속으로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겠단다. 한동훈 장관에게 검찰 수사지휘권, 인사권, 감찰권 뿐 만 아니라 모든 고위공무원을 검증하는 정보권한까지 쥐어주겠다는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안기부는 정보기능으로 모..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일회용컵에 음료를 주문할 때 보증금 300원을 지불하고, 해당 컵을 구매한 매장이나 보증금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매장에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최근 본보는 6월 10일 시행 예정이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6개월 유예된 후 수원시민들의 반응을 보도했다.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푸념이 지배적이었다. “차라리 텀블러 캠페인을 더 강조하라”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 “손님이 다시 매장에 방문해 컵을 반납한다는 확신도 없고 종업원 입장에서는 일이 더 는다”는 것이 종업원들의 대답이었다. 손님들의 반응도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환경에 웬만큼 신념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300원 받자고 다시 반납하기엔 꽤 귀찮을 것 같다” “차라리 텀블러를 이용하는 게 더 환경 보호적”이라는 것이다. 일회..
미국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 이론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개입을 반대하는 극단적 자유주의 이론에서 시작해 이제는 강대국 자본가의 패권적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세계 곳곳에서 큰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칠레에서는 1970년대 미국 자본 소유의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추진하던 아옌데 정부가 미 CIA 주도의 군사쿠데타로 전복됐다. 냉전 종식 이후 이 이론은 한 단계 더 포악한 얼굴을 띠게 된다. 유통-제조업을 수직 계열화한 금융자본이 ‘최상위 포식자’가 되도록 돕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다. 이들은 현지 정부를 세계화와 ‘작은 정부’라는 그럴 듯한 담론에 매혹되도록 해 가장 먼저 자본 이동의 장벽을 스스로 허물도록 한다. 이후 허술한 자국 화폐 시스템을 집중 공격해 현지 정부가 이를 이겨낼 수 없도록 한 다음 부도 위기로까지 몰아간 뒤..
떠났던 자유가 돌아왔다. 2년여 동안 수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만남과 이동을 제한하고 사람들을 옭아맸던 코로나가 기세를 꺾었고, 이제 매일매일 가파르게 상승하는 확진자 수 소식 대신 자유로운 시대를 향한 소식이 쏟아진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여전히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원숭이두창 같은 새 전염병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해외는 아직 두렵고 국제선 항공권 요금은 2~3배로 치솟아 여행의 자유는 국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시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2 여행가는 달’ 캠페인을 추진한다. 6월 2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KTX와 5개 관광열차 요금 최대 50% 할인, 5만원 숙박 특별 할인권, 지역 특화 콘텐츠 등 다채롭고 풍성한 혜택을 마련했다. 국내 여행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고, 멈춰있던 대한민국을 살리자는 의미를 담은 ‘2022 여행가는 달’의 주제는 ‘여행으로 재생(再生)하기’다. 재생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테이프나 필름 등으로 본래의 소리나 모습을 다시 들려준다는 의미.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 또, 상실된 생물체의 일부가 다시 자라나는 일이라는 의미. 어떤 의미든 개인과 여행에 모두 적용된다. 코로나 시대는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만남도 여행도 억제된 시기에 고립된 사람들은 그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마침내 한 움큼의 자유가 쥐어졌고, 날개 꺾인 새처럼 침울해 있던 사람들은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사람들은-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큰 결핍이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보상심리에 젖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힘들었던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지나친 보상심리는 격렬한 행동을 통해서만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끝내 파괴적인 보복심리로 이어진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존재다. 결핍과 상처만 바라본다면 기껏 얻은 자유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해방감에 취해 시간과 재화와 체력을 탕진하기 쉽다. 단, 자신의 기준과 가치가 분명하다면 결핍을 채우는 적절한 보상으로 인해 오히려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억압된 시기를 견디느라 힘겨웠다면 이제 자신을 곰곰이 들여다보자. 그동안 무엇이 가장 그리웠는지,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낱낱이 살펴보면 원하는 것이 뚜렷해지고 자신을 알게 된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이루어도 좋고, 최근 여행 트렌드인 휴식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한 시기가 끝나가는 무렵 코로나 시대 이전의 자신을 돌아보고, 죽어가던 마음을 살리며, 잃었던 자유가 다시 자라날 수 있게. 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시기가 도래했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재생하겠는가./자연형 여행작가
미즈노 남보쿠(1757~1834)는 200년 전 일본의 관상가다. 열살에 조실부모(早失父母)했다. 그 때부터 술을 마시고 싸움질을 밥먹듯 했다.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도박에도 손을 댔다. 마침내 열여덟 살에 감옥에 들어간다. 그는 "짐승 보다 못한 삶이었고, 스물 전에 죽을 운명"이었다고 고백했다. 감옥에서 소년의 인생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죄수들의 관상과 행태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도 교도소를 '인생대학'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곳은 '역설의 대학'이다. 그 관찰력은 훗날 그의 성공에 큰 자산이 된다. 출옥하자마자, 이름 높은 관상가들을 찾아다녔다. 한 사람이 "1년 안에 칼 맞아 죽을 팔자"라고 단언하며 스님이 되길 권한다. 절에 가서 사정을 고백하고 받아주길 청했으나, 스님은 "1년 동안 콩과 보리만 먹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