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정책 기조를 펼치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개정을 위해 발을 맞추고 있다. 경영계와 노동계로부터 ‘졸속입법’이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 만큼, 법의 완성도를 좀 더 높일 필요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 덧없이 스러져 가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막는다는 당초의 입법 취지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시행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법을 보완 입법이라는 이름으로 솜방망이로 만드는 개악만은 삼가야 한다. 중대재해법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은 사고통계로도 나타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산재사고 사망자는 모두 15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고작 8명이 감소한 수치다.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는 7명 줄었지만, 제조업은 오히려 7명이 늘었다. 여전히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는 노동자들이 매월 50여 명에 달한다는 얘기다. 현행 중대재해법에 대한 경영계의 불만과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인 이상 기업 930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는 뚜렷하다. 전국 순회설명회에 참석한 기업 10곳 중 7곳가량은 중대재해법 대응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법에 맞춰 ‘조치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고작 20.6%에 그쳤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중대재해법 6개 항목의 시행령 개정 건의서를 제출했다. ‘직업성 질병자 중증도 기준 구체적 명시’, ‘중대 산업재해 사망자 범위에 급성 중독 질병자 한정’, ‘경영책임자의 대상과 범위 구체화’ 등이 그 내용이다. 정부는 이르면 오는 7월 경영책임자의 의무 명확화를 위해 시행령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도 안전 및 보건 확보를 위한 충분한 조치에도 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의 처벌 형량을 감경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감경해주겠다는 여당의 개정안 흐름이 문제다. ‘경영책임자에게 강력한 예방 의무를 부과해 산재를 줄이겠다’는 법 제정 취지를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개정안과 관련, “아무리 살인죄 형량을 높여도 살인 범죄가 줄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 발언은 야당일 때 합의한 법 제정 취지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논리다. 중대재해법은 지난해 연초 입법과정에서부터 졸속입법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경영계는 처벌 대상의 모호성과 과도한 징벌 문제를 들어 반발하고, 노동계는 현장 개선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입법이라는 주장을 거듭해왔다. 현재까지 기업들은 산업현장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예방보다 처벌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해 온 게 사실이다. 일부 정합성이 맞지 않는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법이나 시행령 개정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재해를 막아 귀한 생명의 덧없는 희생을 차단한다’는 본질적 취지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보완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의 산재 예방 노력 실질화 여부, 산재 감소 여부, 부당한 경영책임자 처벌 여부 등 법 시행의 결과를 세밀하게 따져보는 일부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겉절이는 비교적 간단한 반찬이다. 신선한 배추와 갖은양념을 잘 버무리면 된다.. 알쓸신잡은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이라는 고급스런 재료를 나영석 특유의 판깔기와 편집으로 잘 버무린 겉절이다. 혹자는 이들 출연자를 보고 방송에 등장해 인문학 르네상스를 펼치는 어벤저스 군단이라 한다 알쓸신잡, 알아도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의 줄임말이다. 파격적 브랜드 네이밍이다. 이런 황당한 줄임말이 귀에 쏙 들어오고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즌1-2가 시청률 6-7%, 시즌3가 4-5% 정도면 비지상파 채널에서 그것도 비예능인 중년 남자 출연자들만으로 이룬 대성공이다. 나에게 알쓸신잡은 알아두면 (잘난 체하는데) 쓸모 있는 신나는 잡학사전이다. 내 잘난 체에 짜증 내거나 관심 없는 것은 듣는 사람 사정이고 난 잘난 체하면서 신나면 그만이다...
최근 달라이 라마의 영어 통역자로 활동했고 스탠퍼드 대학 자비명상 프로그램의 개발자인 툽텐 진파 박사의 “공감과 자비의 과학”으로 워크숍이 있었다. 그는 달라이 라마의 말을 통역하듯이 불교수행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점을 재구성해서 세상에 알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공감과 자비의 훈련이 왜 필요할까?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에서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듣는 것에 머물고 마음은 상징에 머문다, 기라는 것은 텅 비어 있으면서 외물을 맞이 하는 것이다,’ 라고 한 것과 유사하다. 사람은 타인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거나 말하는 것만 듣고 있어도 거울 뉴런이 실제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활성화 된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연결 될 수 있다, 자비심은 넓은 의미에서 타인의 고통을 마주했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 타인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비심의 근간에는 인간의 취약성과 보편성에 대한 이해가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유한한 인간으로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고통받을 수 있고 모두 언젠가 병들고 죽기 마련이다,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도 고통을 피하고 싶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툽텐진파는 책 (두려움 없는 마음)에서 ‘자비심이 일어나면 먼저 알아차리고 무의식적으로 그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다“고 한다. 공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최근 국제명상엑스포에서 독일의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타니아 싱어는 흥미로운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 중 티벳승려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의 굶주리고 고통을 받고 있는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주며 뇌자기공명영상을 촬영하였는데 공감은 자비와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감할 때는 고통과 관련 부위가 활성화되고 자비심은 뇌의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고통에 대한 지속적 공감은 소진을 불러오지만 자비심은 그렇지 않다. 공감을 넘어선다. 그녀는 9개월의 자비심 훈련 과정 후에 주의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호르몬의 분비가 유의하게 감소했다고 보고한다. 자비심 훈련은 주관적 스트레스 느낌과 별개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해 몸의 건강에 직접 도움이 된다. 자비는 자신에게도 향하는 것이 조화롭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익숙해진 수치심과 자기비난때문일까? 많은 이들이-한 연구는 무려 78%이다- 타인에 대한 자비를 보내는 것이 자기에 보내는 것 보다 쉽다고 한다. 자기자비는 자신에게 친절을 보내고 마음챙김으로 자신을 돌본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겪는 고통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큰 맥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통찰한다.
셀럽(Celeb). 젊은 세대에겐 일상화된 말이지만 기성세대에겐 익숙지 않은 말이다. 셀러브리티(Celebrity)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유명인이다. 언론이 본질적으로 좋아한다. 독자·청취자·시청자를 모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광고로 보상받고, 셀럽은 유명세를 더욱 공고히 한다. 반면 뉴스의 질은 곤두박질한다. 최고의 셀럽 중 한 명이 진중권이다. 그의 한 마디는 놓쳐서는 안 될 취재원으로 둔갑됐다. 언론의 짝사랑 정도를 알아봤다. 지난 한 달간(5월 20일-6월 19일) 네이버 뉴스에서 ‘진중권’이란 키워드를 넣고 검색했다. 세계일보 37건, 중앙일보 34건, 국민일보 32건, 조선일보 22건(주간조선 6건 별도), 문화일보 18건, 서울신문이 10건을 기사화했다. 이어 한국일보가 5건, 경향신문, 동아일보, 내일신문이 각각 1건이었다. 한겨레만 한 건도 없었다. 이중에는 16일 자 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의 칼럼처럼 진중권의 발언을 질타하는 경우도 있다. 진중권은 김건희 여사가 지인을 대동해 봉하마을을 방문한 데 대해 비선논란이 제기되자, 14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 “공식적인 자리에 비공식적으로 사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며, 이런 식이면 예수도 잡아넣을 수 있다”고 했다. 안 위원에게 비판은 받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은 크게 성공했다. 진중권 발언 받아쓰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발언 내용의 옳고 그름 때문이 아니다. 언론의 천박한 취재원 인용 때문이다. 2018년, 한국의 주요 일간지와 해외 유력 일간지를 비교한 의미 있는 책 한 권이 출간 됐다. ‘기사의 품질’(이화여대출판부)이다. 이 책의 4장을 조선일보 출신의 고려대 박재영 미디어학부 교수와 동아일보 출신의 연세대 이나연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가 공동 연구했다. 취재원 활용 방식을 분석해 기사의 품질을 평가했다. 국내 주요 일간지의 1면 기사에 포함된 취재원 수는 평균 3.33개로 뉴욕타임스(14.14개)의 23%에 그쳤다. 한국언론이 취재를 게을리하거나 기사의 깊이가 없다는 반증이다. 취재원 수 뿐만 아니라 투명성도 문제였다. 익명 취재원 이용 비율이 국내 신문은 34.3%였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1.4%였다. 취재 부실에 익명 인용까지 가세해 기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특정인의 SNS 내용을 전달하는 기사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인용된 취재원의 숫자를 따져 기사 품질을 평가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보인다. 마침 ‘프로보커터(Provocateur)’라는 흥미있는 책이 나왔다. ‘나쁜 관종’,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다뤘다. 연세대서 포퓰리즘을 전공하는 김내훈이 저자다. 진중권과 서민 교수가 우리 사회를 혼란케 하는 프로보커터로 나온다. 지난 5월, 서민은 진중권을 손절했다. 그 이유가 “의견이 다르면 막말하고, 예의가 없어서”란다. 그런 분을 상왕으로 모시는 언론이 부지기수다.
6·25전쟁의 그날이 오고 있다. 고요한 일요일의 평화를 깨었던 총성이 울린지도 반세기를 넘었다. 그럼에도 이 땅에는 아직도 평화가 오지 않았다. 거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예상과 다르게 장기화 되고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 폭탄, 탱크, 피난민, 이러한 것은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에는 기억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전쟁은 다시 반복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꼭 무력으로 싸운 전쟁의 경험만이 아니다. 가볍게 시작하자면 북쪽의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0년대의 이야기이다. 한두명도 아니고 무리지어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전쟁과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6·25전쟁에 대해 2011년 개봉된 영화 '고지전'에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싸우기 싫으면서 싸워야 했고, 살고 싶으면서도 맞서야 했던 것이 '고지전'이라 한다면, 북쪽 고향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은 죽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죽기내기로 살아내야 했다. 유일할 방법은 도강, 탈출하는 것이다. 6·25전쟁으로 분단이 되었고 그러므로 북쪽 사람들이 많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피난민들이 많이 왔으므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 시댁, 우리 남편 쪽, 우리 친정 쪽 하면서, 북쪽과 인연이 되어 관심을 가지고 물어오게 된다. 어떻게 오셨어요?고 물으면 전쟁 같은 상황인 '고난의 행군' 시기를 평화롭게 답해주기가 어렵다. 전쟁 같은 상황을 평화롭게 기억하기가 어렵다. 아니면 어떻게 기억해야할지가 어지럽다. 망각해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니면 새롭게 심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6월이 있어 잊을 수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디부터 이야기하지. 언젠가 행사가 있어 고향 동료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당시 상황을 물으면 동료는 그냥 헝~ 헝 소리만 내고 아무런 표현도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적절한 묘사를 찾지 못했다. 동병상련을 느끼는 가엽은 친구는 그 뿐이 아니다. 기억도 전쟁이다. 거룩한 이름아래 순결을 잃은 사람들, 두만강, 매콩강에서 불귀가 된 사람들, 학대당한 사람들, 수십년을 숨죽여 사는 사람들 등 이름을 호명 할 수 있다면 6월의 붉은 장미가 떨어진들 무순 대수랴. 다음해 6월이면 다시 필 것을. 주변에는 아픈 사람이 참 많다. 모두 전쟁 같은 '고난의 행군'과 연관된 후유증이다. 그리고 그 치료법을 모른다. 전쟁의 기억법을 알고 있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찌 일어나겠는가. 전쟁은 국가에 의해 일어나지만 개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내동이친다.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기억하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은 가족을 살리는 전쟁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부모는 무엇이든지 희생을 해야 했다. 불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비가 아니라 강을 건너 엉겅퀴숲을 지나며 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북한이탈주민은 경계의 가시울타리를 부여잡고 해마다 6월이면 피어나는 붉은 장미이다.
요즘 도심이나 골목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샌드위치가 진열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최근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물결이 식당가로 밀려오면서 직장인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의점의 한끼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에서 평범한 점심을 하려해도 1~2만원은 기본인데 비해 편의점의 도시락 가격은 보통 5000원 안팎이고 샌드위치는 2500원 내외다. 서민들과 직장인, 특히 영끌‧빚투족이 고물가‧고금리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에 맞서 28년 만에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 자료를 인용해 연준이 올 연말까지 제시한 3%대(현재 1.5~1.75%)에서 4~7%까지 더 강력한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그만큼 불투명하고 심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이고, 6월 물가상승률은 1997년 IMF위기 이후 최고치인 6%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종전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평가 대상 63개국 중 27위로 지난해보다 4계단 내려갔다고 발표했다. 재정적자가 늘고 연금 적립금은 줄어드는 등 재정 여건 악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 비상한 시기다. 윤석열 새정부는 지난 16일 향후 5년간의 장·단기 경제정책 밑그림을 담은 이른바 ‘윤노믹스’를 내놨다. 민간주도와 규제 개혁을 두 축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함께 법인세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경감, 연금과 공공, 노동, 교육, 금융 구조개혁 등 포괄적인 내용을 담았다. 문제 인식과 방향에서는 긍정 평가할 만하다. 우선 발등의 불인 고물가부터 대처해야 한다. 원자재 확보 등에서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근본적인 처방은 기초체력을 확실히 다지는 일이다. 가장 시급한 게 규제개혁과, 노동, 연금 개혁 등이다. 하나같이 지역이나 노사, 세대 등의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험난한 과제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인구까지 감소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더 큰 난관은 정책방향의 추진동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경감 등에 대해 ‘대기업특혜와 부자감세’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거대야당의 동의가 있어야 실행력을 갖게 된다. 그런데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산업부 블랙리스트’와 ‘성남시 백현동 개발’ 의혹 관련 등 수사, 전 정부 정무직 거취 논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까지 신‧구 권력이 전방위로 대립하고 있다. 불가피한 갈등이나 수사라 하더라도 여야 전선이 너무 넓다. ‘전선확대‧강대강’이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전쟁중에도 막후 소통은 이뤄진다. 민주당도 지금과 같은 위기에 사회적 약자들이 더 취약하다는 것을 직시하고 기업경쟁력과 국익창출에 협력해야 한다.
고르디우스 매듭은 고대 설화의 소재 중 하나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뜻한다. 국민통합 역시 이 매듭의 범주에 들어간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갈기갈기 찢어 놓았기 때문이다. 서슬퍼런 적폐청산의 회오리 바람 속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휘말려 들어가 남모를 고충을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다. 산에 오르거나 공부에 집중하면서 섭섭함과 울분을 달랜다. 회오리 바람에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삭히고 토로하지만, 이를 이해하거나 동정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도 이들의 아픔을 더한다. 한 때는 경쟁자였거나 자기보다 잘 나가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뒤돌아서서 엷은 미소를 짓는 것이 인간의 생리다. 그러나 한 줄기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사회에 주역에서 말하는 ‘大人’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인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한다. “무릇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고, 사계절과 더불어 그 질서를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한다.(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주역의 인간관은 기본적으로 우주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이를 현실 인간사회에 실천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그 본질이다. 우주 자연의 질서에서 인간 삶의 의미와 사적인 이익을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관점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그간 뜻있는 지식인들 상당수가 입을 닫았다. 입은 있으되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로 갈려 치우기 어려울 정도의 불신과 반목의 쓰레기 산을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통합’을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주역은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라고 강조한다. 하나는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국정을 맡길 인재 발탁이다. 그래서 주역 시대의 묘당을 상기한다. 묘당은 이데올로기 통합의 장소였다. ‘王假有廟 利見大人(왕가유묘 이견대인)’이라 했다. 왕은 묘당에서 지극히 제사를 지내고, 대인을 찾아 살피니 이롭다는 뜻이다. 새 정부 조각도 거의 마무리되었다. 국정을 이끌어갈 대인은 찾은 셈인 만큼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통합의 첫 단추가 지난 정부에서 형극의 길을 걸은 사람들을 解冤(해원)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일평생 몸을 던진 사람들이다. 법적 처벌을 거의 받은 만큼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면 복권해주어야 한다. 주역 地澤臨(지택림)괘는 이렇게 말한다. 大亨以正 天之道(대형이정 천지도). 크게 형통하는 것은 하늘의 도라는 뜻이다. 윤 정부는 하늘의 도에 따르기를 충언한다.
김건희 여사의 행보를 두고 불필요한 시비가 오가고 있다. 야당은 “비선 실세”를 들먹이며,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국정 농단 프레임”을 떠올리게 하려고 힘을 쏟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런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제2 부속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는 영부인이기 때문에, 김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간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고, 또한 공적 활동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김건희 여사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공격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김건희 여사의 활동이 베일에 싸일수록 이상한 말들을 만들어내며 공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개 행보를 하더라도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고, 집에만..
서울민예총 주최로 광주에서 6월 1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된 ‘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 전시회에 출품된 박찬우 작가의 작품 ‘기자 캐리캐처’를 두고 기자들이 발끈했다. 조선일보는 박찬우 작가에게 4월 8일까지 삭제할 것을 요청하면서 납득할만한 조치와 답변이 없을 때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국일보는 ‘명예훼손 등에 따른 전시 금지 요청의 건’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기자협회는 성명서까지 냈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전시회를 강행하고 언론인에 대한 적대적 표현을 계속한다면 언론의 자유와 기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기자협회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겁박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이라는 표현도 웃기고, 언론의 자유와 기자들의 인권을 들먹거리는 것도 가관이다. 언론기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기는데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언론의 자유를 기자들이 누리는 특권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이며, 기자는 뉴스라는 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언론사의 종업원이다. 물론 언론이 진실보도와 공정보도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전제에서 그만큼 대우해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바다. 언론의 자유도 그 전제에서만 유효한 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언론과 기자들이 그 전제를 충족해주고 있는가? 언론의 자유는 기자들의 특권이 아니다. 언론의 자유가 천부적 권리라고 주장했던 자유주의 사상가들도 기자들을 그 권리의 주체로 지목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기자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 권리이자 자기들의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짓 주장을 하고 걸핏하면 소동을 일으키는가? 시비지심이 없는데, 수오지심까지 없으니 기자 이전에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철학 부재의 상태에서 어설픈 논리로 기자들의 만행을 두둔하는 언론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될 때 기자협회는 조건반사의 토끼처럼 반응했고, 일부 언론학자들이 기자들을 옹호하고 나섰던 것이다. 과거에 기자들은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을 상대로 투쟁했지만, 지금 기자들은 자유의 남용에 허위조작정보를 남발하면서 시민들을 상대로 싸운다. 기득권 기자들의 언론자유 과잉은 진실한 기자들의 자유를 위축시킬 따름이다. 이런 공식은 어떤가? C=R/L. 언론의 신뢰도(Credibility)는 규제(Regulation)에 비례하고, 자유(Liberty)에 반비례한다. 자유와 규제가 균형(1)을 이룰 때 언론의 신뢰도는 높아진다고 할 때, 한국 언론의 낮은 신뢰도는 자유의 과잉과 규제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정명근 화성시장 당선인이 최근 화성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과 인수위원 위촉장 수여 행사에서 화성시정연구원 설립을 제안했다. 화성시의 미래발전 비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정연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당선인의 생각은 옳다. 화성시는 균형발전이란 큰 숙제를 안고 있다. 또 GTX-A, GTX-C, 분당선, 신분당선, 신안산선 등 여러 노선이 동시에 진행 중이어서 교통현안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계속되는 인구 증가로 시민들이 행정서비스 측면에서 불편을 겪는 지역도 있어 분동 등 행정적 조치도 필요하다. 화성시의 시정연구원 설립 움직임은 몇 해 전부터 있었다. 서철모 시장은 지난 2020년 전국대도시시장협의회 제8차 정기회의에서 인구 100만명 미만의 도시에서도 시정연구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제 개선을 건의했다. 진정한 지방자치 분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