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말 쯤이었을게다. 나는 대구에서 울산으로 가는 마지막 고속버스 맨 뒤편 좌석에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눈을 떴다. 눈앞에 정복경찰 두 명, “신분증 좀 봅시다” 내미는 주민증을 보더니 “주민번호가 어떻게 되요?”하고 물었다. 아뿔싸.. 당시 나는 5공화국의 3년차 수배자였다. 주민증은 우리 친형님의 것이었는데 늘 외우던 주민번호가 갑자기 가물가물했다. 자다 깨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했더니 차에서 내리란다. 경찰이 앞장서고 내가 통로를 뒤따라가는데 누가 부른다. “아저씨, 가방요~” 내 발밑에 두었던 가방을 가져가라는 소리다. 아.. 어떻하나.. 고백컨대, 가방에는 족히 수십명은 조직사건으로 엮고도 남을 만치의 비합법 노동운동조직의 문건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잡히는건 문제도 아닌.. 가방만은, 가방만은 숨겨야 했다..
사회적경제는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나 재정적 보상보다는 지역사회를 위해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의해 통제되지도 않고 자율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되며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이견을 조율해 간다. 자본보다 사람과 사회적 목적에 우선순위를 두며 참여와 권한을 강화하여 책임을 중요 원칙으로 삼는다. 또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서로 힘을 합쳐 협력하여 해결해 나간다. 사회적경제의 핵심 주체인 사회적경제기업은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면서 재화 및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소비 등의 영업활동을 하는 사업 조직으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그리고 소셜벤처 등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
치명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을 가까스로 넘어서는 듯한 시점에 호환·마마보다도 더 무섭다는 물가인상 폭탄이 터지고 있다. 4월 기준 경기지역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4.8% 오르며 두 달 연속 4%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긴 바이러스 감옥에서 근근이 탈출하나 싶더니 날마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은 비명이 절로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영세민들의 생계가 걱정이다. 갈수록 하루하루 연명이 힘겨워지고 있는 영세민을 보호할 정책 마련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지난달 우리나라 전체의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8% 올라 IMF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 10월 이후 13년 8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경인지방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4월 경기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도내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9(2015년=100)로 전달대비 0.7%, 전년동월대비 4.8% 각각 상승했다. 3월 4.2% 상승에서 0.6% 더 치솟은 수치다. 지난달의 경우 물가 상승을 견인한 품목은 휘발유, 경유, 자동차용 LPG, 등유 등 석유류와 같은 공업제품으로 파악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이 맞물리면서 국내 공업제품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라는 게 통계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도 상승세다. 전체 458개 품목 중 소비자의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 144개를 토대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전달대비 0.7%, 전년동월대비로는 무려 5.6%가 각각 올랐다. 식품은 전달대비 0.5%, 전년동월대비 5.5% 동반상승했고, 식품 이외 품목도 전달대비 0.9%, 전년동월대비 5.7%가 각각 올랐다. 통계청 관계자는 “오름세를 둔화시킬 만한 요인은 현재까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지구상에서는 1천5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누적 사망자도 2만3천 명을 훌쩍 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빠른 전파속도와 높은 치명률에 속수무책이던 인류사회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난 뒤에야 가까스로 생환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게 현실이다. 더욱이 이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전문가적 전망이 적지 않다. 바람이 불든, 눈비가 내리든 맨 먼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생계유지가 여의치 않은 영세민 계층이다. 길고 긴 세월 코로나바이러스 회오리에 속절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한층 더 깊은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원래 글로벌 경제파동이나 전염병 충격이 현실적 타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상당한 시차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후폭풍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 정부들이 지금 최우선으로 챙겨보아야 할 대상은 헐벗은 계층이다. 물샐 틈 없는 복지정책으로 구호가 필요한 국민을 찾아내어 세심하게 보살피는 게 옳다. 물론 정부에 모든 역할을 미루고 민간 시민사회가 나 몰라라 하는 일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지역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상부상조의 미덕을 살려 나가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가 활동하던 2013년 1월21일(월).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북 탈출 주민 서울정착 지원업무 탈북 공무원 간첩혐의 구속’이라고 보도했다. 다음날도 1면 머리기사로 ‘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사설과 기획기사까지 이어졌다. 당시 이 사건을 동아일보에 이어 기사화한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22일자 사회면에 공안당국 발표를 인용, 간략하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간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탈북자라고 했다. 두 신문을 빼고는 어떤 신문도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간첩 누명을 뒤집어 썼던 유우성씨는 2년 9개월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때문이었다. 2018년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진상위원회 재조사 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국민..
얼굴은 ‘얼의 꼴’이다. 법정 스님이 한 말이다. 얼은 넋이고 꼴은 겉모양이니, 얼굴은 넋의 겉모습인 셈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신의 줏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고들 한다. 법정 스님의 말대로라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넋에 따라 삶의 궤적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이 곧바로 얼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얼굴에는 삶은 없고 정신의 줏대만 있다. 졸업논문과 연봉계약서와 등기부등본은 없고 뼈와 살과 주름만 있다. 뼈와 살과 주름을 따라서, 부딪고 보듬고 벼르는 생각의 흔적만 있다. 얼굴에는 거짓이 없다.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감춰지지 않는다. 뼈를 깎고 주름을 덮어도 정신의 줏대는 바뀌지 않는다. 얼굴은 저마다 지닌 정신세계의 조감도(鳥瞰圖) 같아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묻어난다. 인물 사진..
윤석열 새정부가 오늘 출범했다. 국민들은 희망의 새출발을 염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앞에 놓여 있는 국내외 환경이 너무 엄혹하다. 국내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에 저성장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급격히 불어난 국가‧가계 부채와 폭등한 부동산 문제 등은 뇌관으로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 환경이 외통수처럼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소대야의 충돌 구도다. 윤석열 정부 첫 인선과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여야가 극단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장관의 인사 제청권을 행사해야 할 새 국무총리 인준이 막혀있다.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의 경우 민주당이 한동훈 법무,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문제 등과 연계해 임명 동의안 표결을 늦추고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
신정부의 외교안보분야 공약의 캐치프레이즈인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는 표면상 보기에는 괜찮다.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결의라면 높은 점수를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그 내용에 있어 진정 실질을 추구하고 바른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재고해 봐야 할 것 같다. 과거 2008년 MB정부가 들어서던 상황이 재현될까 두려움이 앞선다. 선 비핵화 후 관계회복, 한미동맹과 확장억제 강화, 선제타격 등 주장 내용이 거의 MB정부의 주장 내용과 일치하고 더욱이 이 일의 담당 주역도 과거 MB정부의 인사들이다 보니, 금강산관광 폐쇄,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이 떠 오른다. 당시 상황과는 크게 변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감안할 때 더욱 신경이 쓰임은 나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업시간에 책 한 권을 느리게 읽는 슬로리딩, 혹은 온 책 읽기라는 교육 방식이 꽤 혁신적이었다. 정해진 교과 시간에 교과서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전적인 수업 방식이었다. 처음 우리 반에서 온 책 읽기를 진행할 때 학년 부장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수업하면 학습 결손 생긴다.”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온 책 읽기의 정확한 기원이 어디인지,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있고, 한국의 몇몇 선생님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초기에 드문드문 퍼지던 온 책 읽기는 교육과정 재구성과 결합해서 몇 년 동안 각종 교사 연수에 필수코스처럼 등장했다. 그러다 국어 교과 단원에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1년에 정해진 시간 이..
큰 스승으로 모시는 어른들 가운데 세계적인 육종학자 한상기 박사(1933~ )가 계시다. 서울농대를 거쳐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모교의 조교수가 되었을 때, 이 젊은 학자는 두 가지의 기회 앞에 섰다. 38세. 하나는 영국 캠브리지대학 식물육종학 연구소, 또 하나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국제열대농학연구소. 그는 이 순간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떠올렸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훗날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일왕불퇴(一往不退:한번 가기로 했으면 결코 물러나지 않음)의 주사위를 아프리카 대륙 위에 던진다. 1970년대 아프리카는 내전, 자연재해, 전염병에, 매해 50만 명이 굶어죽는 슬픈 땅이었다. 역시..
"한 후보자는 즉각 자진 사퇴하길 바란다" 민주당 지도부의 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부적격 인사라는 뜻이다. 총리 후보자는 국회의 “인준” 대상이어서,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윤석열 당선인이 총리로 임명할 수 없는데, 민주당이 국회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낙마시킬 수 있다. 만일 한덕수 후보자가 낙마하게 되면, 이론적으로 윤 당선인은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된 장관 후보자들도 장관으로 임명할 수 없다. 법적으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장관을 임명해야 하는데, 제청할 총리가 공석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현직 총리인 김부겸 총리가 추경호 경제 부총리 임명 제청을 하고, 이렇게 임명된 추경호 부총리가 “공석”인 총리를 대신해 장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