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인용한 매클루언의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기계시대 동안 우리는 우리 몸을 공간적으로 확장해왔다. 전기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지 1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 우리는 우리 행성에 관한 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폐지하면서 우리의 중추신경체계 자체를 지구를 품을 정도로 확장해왔다.” 매클루언에게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대표 저서인 『미디어의 이해』의 부제가 ‘인간의 확장’이다. 미디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얘기다. 신체의 확장, 그중에서도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의사소통의 매개체라는 정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매클루언에게는 옷과 집도 인간의 확장으로서 미디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바깥 온도가 낮으면 몸 안의 열이 밖으로 이동해 추워진다. 특히 35도 이하가 되면 위험해진다. 이때 옷은 체온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피부의 역할을 한다.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의 더운 지역에서 지낼 때 털을 포기하게 된 후, 유럽의 추운 지역으로 이동해서는 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이후 사계절의 변화가 있는 지역에 상주하면서 사는 동안 진화에 의해 지금과 같은 피부를 갖게 되었다. 더울 때는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어야 하고, 추울 때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옷은 피부의 연장으로서 미디어이고, 집은 우리 신체 기관 내부의 체온 조절 메커니즘을 확장한 것으로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수레, 마차, 자동차, 기차 등 바퀴로 이동하는 것은 모두 발의 확장으로서 미디어다. 이들 기계는 우리 몸을 공간적으로 확장해왔다. 문자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 인간의 중추신경체제를 공간적으로 확장해주었으며, 인쇄기는 그 공간을 더욱더 확장해주었다. 전기 미디어는 더 나아가 우리의 중추신경 체계를 전 세계에 동시에 도달하도록 확장해줌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아예 폐지해버렸다. 이 논리는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상대성이론에 기반을 둔 것임을 설명한 바 있다. 인간이 고안해낸 모든 것이 인간의 확장이라는 사실은 생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진화생물학자 도킨스(Richard Dawkins)는 『확장된 표현형』에서 “어떤 유전자의 표현형 효과는 유전자가 있는 몸 밖으로 다른 생명체의 신경계에까지 깊숙이 도달해 있다.”라고 했다.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몸의 안팎으로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 노력의 일환으로 생존기계로 하여금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고안하고 만들게 한다. 진화심리학자 장대익은 “동물들이 만들어낸 인공물들은 모두 자신의 유전자를 더 효율적으로 퍼뜨리기 위한 확장된 표현형”이라면서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화와 문명도 결국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 일 수 있다” 고 했다. 매클루언의 이론과 개념은 이렇게 과학적 지식을 근거로 하고 있다.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점, 그리고 시간의 단축과 공간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특히 전기 미디어는 인간의 눈과 귀가 되어 지구촌 구석구석의 생생한 정보를 빛의 속도로 뇌에 전달해줌으로써 세상만사를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고향은 지척에 있어도 오갈 수 없으니 지구의 반대편보다 더 멀리 있는 듯하다. 때로는 미움에 온 몸을 불사르다가도 때로는 술 한 잔에 목메는 날도 있다. 아니 생각하려 해도 기억을 소환하지 않고서는 나도 모르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 취중에라도 목 놓아 불러보고 싶은 것이 고향이다. 술이라면 제일 먼저 아버지를 떠올린다. 세상살이 어려워 숫 덩이 같은 마음이라도 술 한 잔으로 해독할 수 있다며 이유를 붙여가시면서 드신다. 어떤 술을 마실가. 대부분 누룩을 발효시켜서 만든 증류이다. 알코올을 얻으려면 먼저 누룩이라는 곰팡이 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화학공장에서 나온다. 시장에 나온 것을 사다가 재료(가루)와 섞어 놓으면 곰팡이 균이 자라고 두 번째로 독에 넣고 보름 정도 지나면 술 익는 소리가 엄청 요란스럽다. 뚜껑을 열어 향긋한 냄새가 나면..
“한자를 쓰려면 확인을 해야지...” 지적하니 그는 의아한 표정이다. 저널리즘 글쓰기 강의에 제출한 리포트, ‘...여론(與論)을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 쓴 것을 ‘輿論’으로 고쳐야 한다고 얘기해주니 그 학생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한참 보더니 “아, 글자가 좀 다르군요.” 한다. “그래도 발음은 같으니 그냥 쓰면 안 되나요?” 반문한다. 알아들으면 되지 않느냐는 항변인 셈이다. 여론 ‘여’의 한자는 수레 輿다. 차(車) 즉 바퀴 여럿인 수레를 여러 사람이 움직인다고 하여 ‘여럿’ ‘다수’의 뜻이 됐다고 푼다. 여럿이서 뭔가를 들어 올리는 그림글자 舁(여) 안에 車가 들어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여론이다. 조선시대 김정호의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輿이기도 하다. 수레(輿)처럼 만물을 실은 땅(地)이 여지(輿地)다. 이 말은 대지(大地)나 천지..
첫사랑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차라리 슬픔이었다. "언제 처음 사랑에 빠졌어요?“ 내 질문에 그는 머뭇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가 그렁해졌다. 그날 수업 주제는 첫사랑이었다. 20대 초반, 나는 장애인 야학 교사였다. 어떤 성인 장애인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는 자기 이름 석 자만 쓸 수 있었다. 수업에 사용할 한글 교재를 찾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알록달록한 그림과 스티커, 큼직한 활자는 스무여섯 살 청년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유아용 교재로 한글을 배우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고심 끝에 직접 교과서를 만들기로 했다. 주제를 정해 대화를 나누며 녹음했다. 녹취를 풀어 문법에 맞게 글을 다듬고 이를 모아 교재로 엮어냈다. 그의 머리와 가슴 언저리에 머물던 정직한 시간 속에서 곰삭은 어휘가 종이 위에 펄떡거렸다. 경험..
노동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뜻이다. 노동자를 구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 말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고용형태에 따른 구분이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즉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계약이면 정규직이다. 반대로 비정규직은 기간이 정해진, 그 기간이 끝나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노동자다. 단시간 근로자라는 개념도 있다. 주위 다른 노동자에 비해 근무시간이 짧은 이들을 뜻한다. 그런데 이렇게 근로시간이 짧은 노동자 중 1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을 별도로 구분하여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부른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이, 평균 근로시간 노동자에 비해 단시간 노동자가 그리고 다시 초단시간 노동자가 더욱 열악한 경제 상황에 놓여 있고는 한다. 한 사업장에..
지난 3월 30대 미용실 주인이 전단지를 우편함에 넣었다는 이유로 70대 할머니를 다그쳐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만든 해괴한 일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이 깊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강퍅한 인심이 공존하면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서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세상이 온통 대통령 선거 같은 거대담론에 휘둘리고 있을 때 사회의 저변을 잠식하는 몰상식, 몰인정한 처사들이 인심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반증이다. 구성원들의 인성이 이토록 망가진 천박한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사건은 한 유튜버가 자신의 방송에 할머니 B씨가 무릎 꿇고 사과하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다. 공개된 사진에는 얇은 패딩 소재 점퍼를 입은 한 여성이 미용실 내부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비는 모습이 담겨있..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거대한 대기가 내 책을 폈다가 다시 접는다. 가루 같은 물결이 바위에서 솟아난다! 날아가거라 정말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희열하는 물로 부숴라. 삼각돛들이 모이를 쫓고 있는 이 지붕을. 계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거대한 바람, 치솟는 파도, 부서진 포말. 시원하고 거침없는 한나절의 해안가 파노라마다. 해변의 묘지(Le Cimetière marin). 20세기 최대의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대표작이다. 이 시를 발레리는 그의 고향 세트(Sète) 언덕에 있는 한 공동묘지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 스산한 공동묘지. 그 묵중함을 경쾌한 미로 승화시키는 이 마법. 거장 발레리가 아니면 누가 감히 이 기교를 부릴 수 있겠는가. 이 마법은 발레리의 고향 세트로부터 나왔다. 발레리의 정신적 동반자였던 세..
조중동에스와 종편 등 ‘적폐언론’의 무기는 불법, 탈법으로 장악한 기득권과 선택적 ‘담합저널리즘’이다. 이들의 특권을 통한 여론시장 개입과 왜곡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최근 이들 적폐언론의 부당한 기득권과 여론시장에서의 횡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 서울행정법원은 11월 19일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셜록 등 ‘독립언론’들이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서울고등검찰청)을 상대로 제기한 ‘출입증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거부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법조기자단’을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법원은 “신청이 거부됨에 따라 침해되거나 제한되는 기본권 내지 법률상 이익은 그 소속 기자들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언론기관 고유의 것도 포함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적시함으로써 배타적 기자단 운영으로 특정 언론기관이 배제될 경우, 그 언론과 관련한 국민의 보편적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법조기자단 카르텔은 검찰과 언론 유착과 ‘부당거래’의 핵심 고리였다. 감시대상과 감시자의 담합결과 언론사는 기소되지 않는 특권집단이 되었고 검찰비리는 언론보도의 성역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검찰기자단 폐지 국민청원에 대해 34만 3622명의 국민이 동의를 표한 바 있다. 둘. 경찰은 11월 23일 신문 발행 부수를 조작과 관련하여 조선일보 지국 6곳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3월 2일 언론소비자주권행동과 민생경제연구소 등 8개 시민단체에서 불공정거래행위와 보조금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3월 18일 더불어민주당 김승원·김용민 의원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 국회의원 30명이 ‘부수 조작, 광고비 사기 및 정부보조금 편취’ 혐의로 각각 조선일보를 검찰에 고발한 지 8개월 여 만의 일이다. 어떤 ‘조작 자료’를 확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셋. 서울남부지법은 11월 25일 부패방지법 위반과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혜원 전 의원 관련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천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손 의원의 거래가 시세차익을 통한 부동산 투기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끝까지 판다’며 집요하게 손 전 의원을 부동산투기꾼으로 몰고 갔던 ‘토건방송’ SBS는 2심 결과에 대해 “‘목포 투기 의혹’ 손혜원, 2심서도 유죄”라는 제목을 뽑았다. 자신들이 집요하게 문제 삼았던 사건이 무죄로 결론지어졌으면 일단 사과하는 것이 순리다. 수미일관한 왜곡보도로 자신들이 기레기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서울방송(SBS)의 손혜원 전 의원 관련 보도는 전형적인 ‘허위조작정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해당 언론사와 기자가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분위기다. 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손배제가 필요한 지 잘 보여준다. 대폭 강화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급하다. 다시 국회가 나설 차례다.
‘개고기 식용’ 관련 논란을 생각한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구라파와 미국, 특히 불란서에서 고급요리로 치는 푸아그라(foie gras)다. 유럽과 유에스에이(U.S.A. 아메리카), 프랑스를 동아시아 방식으로 부른 것은 ‘문화의 차이’를 보이고자 함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의 동아시아의 용(龍)과 동굴 속 공주를 구하는 기사(騎士)의 창에 찔려 피 흘리는 서구(西歐)의 드래곤(dragon)은 전혀 다른 상상의 동물이다. 상당수가 龍의 번역어가 ‘드래곤’이라고 착각하는 마당이다. 개고기 문제의 (문화적) 발생 지점으로 읽는다. 나는 푸아그라를 즐기는 저 사람들을, 속으로는 못마땅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먹어봤다. 맛있었다. 그 후 먹지 않았다. 그 뜻은 ‘기름진 간’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요리다. 한국의 일부 식품점, 서양..
한의원 대기실이 시끄럽다. 알고 보니 한 환자가 이사회 회의하다 말고 너무 아파왔다고 하며 빨리 치료받고 가야 한다며 간호사를 재촉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난 모양이었다. 처음 내원하면 하는 잠깐의 예진 시간에도 마음이 쫓기는 말쑥한 양복차림의 그는 붉은 얼굴과 크고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급하게 들어온 진료실에서도 목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데 중간에 나온 이사회 회의 걱정이 먼저이다. 목과 어깨 근육이 긴장으로 전체적으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고혈압으로 혈압약도 복용 중이다. 그녀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마감에 항상 쫓긴다. 예민한 성격인데 완벽하게 일하길 원하고 또 그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지속되니 몸이 영향을 받는다. 혼자서 일하다 보니 입맛이 없을 때도 있고 귀찮기도 해서 식사시간이 들쭉날쭉이다. 입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