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 총장이 다시금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추진 덕분이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검찰에 지나치게 힘이 쏠렸었고, 힘이 넘치면 어떤 존재이든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권 조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권력 분산을 통한 상호 견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새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힘의 분산”이 아니라, “힘의 박탈”인 것 같아 걱정스럽다. 박탈된 힘은 다시 어디론가 “전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전이된 힘”을 소유하게 된 존재는 다시금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지난 자유당 정권 시절, 경찰이 부패와 문제의 근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예견은 충분히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권력이 선(善)하면” 그런 문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이 신도시 예정 지역인 광명·시흥에 100억원대의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총리실 지휘아래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LH뿐 아니라 국토부, 관계 공공기관에 걸쳐 발본색원, 전수조사를 지시한 것도 그만큼 사안이 엄중함을 의미한다. 우리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오랜 역사와 뿌리를 갖고 있다. 권력형 게이트는 물론 세무비리, 각종 뇌물, 특혜성 비상장주식 보유, 자녀 입시·취업 특혜, 성상납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20년 한국의 국가청렴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23위로 발표했다. 전년보다 4계단 올랐지만 여전히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의 구조를 보자. 우선 이번 사건을 맡는 정부의 전담팀은 도마위에 오른 LH 직원은 물론 국토부와 관계 기관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것이다. 그런데 조사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제대로 이뤄질까. 역대 정부에서 보면 관료 집단 이기주의로 조사 과정에 보호막이 쳐지고, 설령 비위 사실이 더 드러나도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축소지향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조사가 이뤄져 관련자들을 수사 의뢰하고 법정에 간다고 치자. 여기서는 유전무죄의 법칙이 작동한다.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를 내세우면 얼마든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시간이 흘러 국민의 관심에서 비켜나면 공직자에 대한 처벌 수위는 후퇴하고 제도개혁은 허공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잠시 움추렸던 공직사회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비리를 저지르는 공직자나 그것을 다스려야 하는 또다른 공직자, 법적인 심판자, 국회 등 제도개선의 주체들, 모두 그동안 국민들에게 투영된 모습을 보라. 국가청렴도를 높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부·명예·정보로 구축된 고위·특권층의 성채(城砦)는 스스로 문을 열고 내려오지 않는 한 외부에서 허물기가 쉽지 않다. 이번 LH 직원들의 도덕적 또는 법적 일탈 의혹은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다. 그 완결판은 역대 고위 공직자(후보)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 그들이 공공기관 직원들의 얼굴이었다. 이번만큼은 조사·수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그러리라 믿는다. 혹시라도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어느 일각에서 축소·은폐하려 한다면 현 정부를 더 힘들게 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문제처럼 머뭇거리면 더 이상 국정 동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여러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공공기관의 중·하위직 재산 공개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것도 공직자가 실거주하는 행정복지센터(옛 동사무소)에 열람하도록 해 상시 주민 감시 체제를 구축하자.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철옹성처럼 구축돼 있는 한국사회의 부패구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인사청문회를 더욱 엄격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이 공약만 지켜도 역사에 남을 것이다.
내 방에는 아직도 예전의 카세트테이프들로 가득하다. 그 시절 돈이 모이는 대로 레코드 가게에 달려가 하나둘씩 사서 듣고 모았던 보물 같은 것들이, 이제는 먼지 쌓인 골동품이 되었다. 가끔 옛날 생각날 때 한 번씩 듣고 싶어도, 플레이어가 없어 이내 다시 내려놓게 된다. 차에서 들어볼까 하다가도, 요새 카 오디오는 카세트는커녕 CD 플레이어마저도 없는 게 대부분이라 또다시 포기하고 스트리밍 앱을 켠다. CD가 나왔을 때 일부 마니아들은 아날로그 방식의 LP에 비해 절대 음질이 떨어지기에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관리와 운용의 용이성 덕분에 CD는 LP를 누르며 차세대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고, 나름 오랫동안을 음악을 담는 중요 매체로 살아남았다. 그 후 대안으로 MD가 나왔지만 실패하게 되고, MP3의 등장 이후 그 무형의 파..
창밖에는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고흐가 생 뽈(Saint Paul) 정신병동에 들어간 1889년 어느 여름날, “그가 본” 바깥 풍경이었다. 고흐가 화실로 썼던 방이 지금은 박물관으로 남아 있는 이곳은 본래 11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이었다. 1605년 프랜시스코 교단의 한 수도자가 여기에 정신병동을 세우자 아예 그렇게 역할이 바뀐 지 오래였다. 별이 빛나는 밤, 그 탄생 빈 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태어난 자리는 “침실”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그림 바로 옆 작은 방이었다. 고흐에게 특별히 주어진 화실이었다. 생 뽈 시절은 기묘하게도 고흐에게 가장 많은 작품들이 그려진 시기였다. 그의 정신은 뭔가에 감전된 듯 폭발 상태였다. 고흐에게 힘겨웠던 건 밤에 본 풍경을 낮에 되살려 그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마을은 근처 생 레미(Saint Remy)를 떠올렸다.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출생지로 유명해 사람들이 법석거리는 이곳을 그는 조용한 시골동네로 바꾸어 그렸다. 한 켠에는 사이프러스(Cypress)라고 불리는 측백나무가 하늘에 닿을 듯 높다랗게 서 있다. 12세기에 세워진 생 마르탱(Saint Martin) 성당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고 주변 언덕은 출렁이는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그림이다. 역시 “별이 빛나는 밤”에서 압권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달과 함께,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무엇과 만날까?” 돈 맥클린의 “빈센트” 돈 맥클린(Don McLean)이 1971년 빈센트 반 고흐를 위해 부른 노래 “빈센트, 별이 빛나는 밤(Vincent, Starry starry night)”은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올라 전 세계에 퍼져나간 노래다. 돈 맥클린은 고흐의 전기(傳記)를 읽다가 그가 미친 게 아니었고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을 뿐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노래 가사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다. “어느 여름 날의 풍경을 내다 보렴, 내 영혼의 어느 자리인가에 어둠이 깔려 있다는 걸 깨우친 시선으로 말일세...이제야 빈센트 당신이 무슨 말을 그리도 애써 내게 하려 했는지 알아듣겠어.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신의 영혼을 도닥거리며 일으켜 세우려 했는지. 그래서 그 영혼이 자유함을 얻게 하려 했는지. 하지만 세상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어. 그래도 이제는 들으려 할지 몰라. 별이 찬란하게 빛나는 밤이여.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강렬하게 남긴 인상은 색감의 선택이었다. 고흐의 세계에서 색은 온통 격렬하게 춤을 춘다. 감당하기 어려운 파도다. 나의 감상평은 이런 것이었다. 그림 앞에 서다 “내게는 밤하늘에 폭풍이 몰아치는 게 보인단다. 별은 그렇게 폭풍 속에서 태어나는 게 아닐지? 때로 자기 인생에 거센 바람이 몰아쳐 오는 것 같은 날이면 두려워말고 내 안에서 별이 태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순간 이 그림은 청춘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이 그림 앞에 설 때 이들이 만나게 되는 건 때로 자신의 삶이 겪어내는 고통과 그걸 넘어서 보게 되는 새로운 미래이면 싶다. 이게 빈센트가 정작 하려던 이야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흐의 영혼을 뒤흔든 빛의 소용돌이는 정물화가 아니었다. 살아움직여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다. 다시 그림을 본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묘목이었을 사이프러스가 어디까지 자라는 걸까? 고흐의 영혼의 키는 그렇게 높았다. 생 레미 마을 중심에는 생 마르탱 성당이 서 있다고 했다. 고흐 곁에는 그를 돌봐주는 프레데릭 살르(Frédéric Salles)라는 개신교 목사가 있었다. 생 뽈 병원은 수도원의 풍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수백년 된 사원(寺院)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젊은 날 신학생이었고 선교사의 경력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정신세계를 말해준다. 아버지가 목사였고, 고흐는 탄광의 광부를 비롯해서 최하층 빈민들에게 다가가 열정적인 선교를 했던 바 있다. “성직자 고흐”, 상상하기 어렵다. 굴곡 많은 인생사였다. 그러나 그의 영혼에서 사원이 무너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늘까지 닿아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생 마르탱 성당으로 표현된 성소(聖所)는 그가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정신의 열망과 거처였다. 시대와 불화했던 한 빈곤한 천재화가의 고독을 치유해줄 유일한 보루였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별들, 그 빙빙 돌아치는 광선의 환영에서 예기치 않은 천체의 무도곡(舞蹈曲)을 듣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신탁(信託)에 귀가 열린 자에게 허락된 은총이다. 신탁의 힘과 소크라테스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polis) 정치”를 발명했다. 도시 국가의 운명을 치열한 이성의 논쟁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은 “로고스(logos)의 건축가”들을 출몰하게 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연 선두다. 로고스는 이성의 정점에 있는 사유의 원리다. 인류 역사 최고의 지성 플라톤에게도 넘을 수 없는 스승이 있었다. 그 스승은 그리스의 정신을 혼란케 한 죄목으로 독배를 마시는 사형에 처하고 만다. 왜 그런 처형을 당했던 것일까? 당연한 것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질문하는 소크라테스는 답이 궁색해지는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불편했다. 결국 미움을 샀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신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성의 건축가들을 기른 이와 신탁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다. 그러나 신전은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중심이다. 정신의 절대적 거점은 시민들의 광장 아고라가 아니었다. 신전을 거쳐 아고라이지, 아고라의 변두리에 신전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는 이 신의 음성에 의심을 품는다. 그럴 리 없다는 겸허한 자의 본능이다. 신탁은 그에게 정치조직 민회로 가지 말고 시민들의 삶으로 들어가라고 이른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시작되는 현장이었다. 질문받는 자들의 무지가 드러나고 폭로되는 괴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이런 소크라테스가 대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서 위에서 권력을 누리는 자들에게 반가울 까닭이 없다. 이른바 자만 또는 오만으로 번역되는 “휴브리스(hubris/hybris)”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도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무리 쫓아도 계속 들러붙는 ‘등에(gadfly)’같은 존재였다. 영구적 추방이 필요했다. 신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 한 죄가 그에게 씌워졌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심판한 재판을 도리어 유죄로 판결한다. 신탁을 왜곡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이었다. 휴브리스와 사원 고대 그리스가 신화와 신전의 도시라는 것을 잊으면 철학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이성을 초월하는 음성에 귀 기울이는 이가 이성의 머릿돌을 놓는다. 어느 특정 종교의 신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칸트가 모든 윤리적 사유의 기본인 양심을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신의 목소리”라고 한 것도 그런 각도에서 깊게 짚어볼 바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심층의 육성, 그걸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는 현실의 소란스러운 아우성과는 다른 소리가 들린다. 정신의 깊이를 깨우치는 힘을 가진 존재가 세상을 바로 잡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사원이 사라진 시대와 도시, 그리고 역사는 이성으로 가장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주장의 난투극에 빠질 뿐이다. 그래서 매일 혼탁한 구정물로 시작하고 그걸 서로 내뱉고 마시면서 하루를 끝낸다. 아고라만 번창한 폴리스는 허물어져가는 신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뻐기는 휴브리스의 지배가 판을 칠 뿐이다. 그건 강하나 의롭지 못하다. 그래서 악이다. 이런 곳에는 사이프러스의 키가 자라나는 마을도 없고 성당의 종소리는 폐기된 지 오래이며 휘몰아치는 별들의 춤에 눈뜨는 이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이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구나.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을 지켜라. 오갈 데 없는 고아와 과부를 보살펴라.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려 들지 말라.” 신탁을 받은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다. 모든 사원은 인간의 불의한 오만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비를 귀하게 여긴다. 폭풍이 몰아쳐 오고 있어도 별이 태어나는 걸 보지 못하는 시대는 봄에도 춥다. 모두가 고독해지고 우울한 싸움에 나날이 지쳐갈 뿐이다. 정신의 역병에 맥을 못 추게 된다. 자기 집보다 먼저 사원을 세워야 할 일이다. 그래야 집을 제대로 지을 수 있다. 정신의 거점이 무너진 처지에 무엇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열린 사원이 있는 도시가 보고 싶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워한다면. 더는 빈센트를 외롭게 할 수 없다. 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 또한.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여자배구 국가 대표 선수 등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 폭력 문제로 떠들썩하다. 그들이 10여 년 전 초중고 시절에 벌인 일들은 끔찍해 입에 담기조차 힘들다. 스포츠 선수들의 과거 폭력을 현재화해 엄벌에 처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전근대성을 벗어나고 있다는 하나의 조짐으로 읽힌다. 폭력은 단순히 나쁘다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타자를 굴복시켜 주종 관계를 일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이 기득권층의 무기이자 숨겨진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간의 역사가 이를 증언한다. 멀리 갈 것 없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합법을 가장한 제도적 폭력이 지금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기득권층이 자신들을 특권화하는 수단으로 가하는 이 수직적 폭력을 보통 사람들이 내재화한다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5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친일 청산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일부 친일 세력들은 “해방된 지가 언젠데, 무슨 잔재가 남아 있다고 아직까지 친일 청산을 얘기하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독일과는 반대로 일본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역사 왜곡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이걸 또 옹호하는 한국인들이 있으니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들은 ‘토착왜구’라고 불린다. 이에 대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에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던 친일세력의 반발로 친일 잔재 청산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며 “그 후과를 지금도 겪고 있으며, 잊을만 하면 독버섯처럼 되살아나는 과거사에 관한 망언 역시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사는 지난 1일 3·1절 기념사를 통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았지만 ‘미완의 해방’이었다고 지적했다. 피해 당사자인 한반도가 분할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냉전의 최전선으로써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왜곡된 역사는 왜곡된 미래를 낳습니다. 우리가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에 얽매이거나 보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지사의 말에 동의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해서 그대로 놔두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올해를 ‘경기도 친일청산 원년’으로 삼아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도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도내 친일잔재 조사를 시작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을 의뢰, 자료를 수집했다. 이 결과 친일인물(257명), 친일기념물(161개), 친일 인물이 만든 교가(89개), 일제를 상징하는 모양의 교표(12개) 등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한 뒤 친일 기념물에 역사적으로 잘못 알려진 부분은 바로잡고, 친일 행적 등 역사적 기록을 명확히 담은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친일 행적이 확인된 작곡가가 만든 '경기도 노래'도 폐지하고 새로 만들었다. 이에 앞서 수원시 권선구는 2019년 9월 권선구 88올림픽공원에 있는 난파 홍영후 동상 앞에 ‘봉숭아’를 비롯한 많은 가곡과 동요 100곡을 남긴 업적과 함께 2009년 대통령 소속기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됐다는 사실이 기록된 안내판을 설치한 바 있다. 도는 안내판 설치와 함께 친일문화잔재를 디지털자료로 기록·보존·관리하는 아카이브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도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친일 관련 행적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일방적 ‘청산’ 작업을 넘어 수원시 홍난파 동상의 경우처럼 공과(功過)를 같이 기록해 후대에 남겨주자는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국내외 과거사 청산 사례를 소개하고 친일잔재 아카이브를 구축해 기득권을 위해 공동체를 저버리는 세력이 다시는 득세할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은 지금껏 ‘역사 바로 세우기’를 이어오고 있다. 감추고 왜곡하기 급급한 일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기도의 의지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K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식구를 이끌고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갓 돌이었던 K는 열병을 앓았고 소아마비가 와서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다. K는 아무 목표도 없이 중학생이 되었다. 희경중학교 다닐 때 김광석(우리가 모두 아는 그 김광석 말이다!) 선배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었다. 그래도 아무런 의욕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과 같았다. 덕수상고에 갔지만 상고를 졸업해도 장애인이 갈 직장은 없었다. 작은 아버지 신발도매상 장사를 도왔다. 노점상도 해봤다. 그러던 중 덕수상고 선배를 만났다. 마침내 K는 할 일을 찾았다. 삶에 목표가 생긴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K는 장애인 운동뿐만 아니라 ‘세상을 뿌..
세탁기가 있고 맨발로 들어가기엔 바닥이 차서 슬리퍼를 신어야 하는 곳, 종종 빨래를 걸어 말리기도 하고 화분을 놓아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는 햇빛이 잘드는 곳, 가끔 삼겹살을 부르스타에 구워먹으며 소주 한잔할 수 있는 환기가 잘되는 곳, 한국 아파트의 발코니 공간이다. 원래 발코니는 건물의 외벽 창가에 돌출되어 마련된 공간으로 바깥 경치를 즐기며 쉬기 위한 공간으로 유럽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국 아파트 단지에서 발코니가 처음으로 선보인 것은 1960년대 마포아파트에서였다. 마포아파트는 6층 정도의 공동주택으로 건물 외관이 단순하고 기능적이어서 유럽풍의 운치는 없었으나 개방형 발코니가 세대마다 있었다. 여름의 장마, 태풍, 고온 다습 무더위, 겨울의 삭풍과 강추위 등으로 발코니 내측의 창문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웠다. 봄, 가을이라..
'처음' 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항상 특별하다. 첫사랑, 첫학기, 첫등교, 첫만남 등. 매년 3월이 되면 학교는 다시 처음을 맞이한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출발이다. 움크렸던 겨울을 지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될 때, 아이들은 한살 더 커서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러 학교로 온다. 항상 설레기만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설렘보다 떨림이 더 많다. 나만해도 그렇다. 개학날이면 늘 배가 아팠다. 원체 예민한 장을 가졌기도 했고, 불안과 걱정 많은 성격이 장을 괴롭힌 탓이기도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에 도착하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교문에서부터 교실까지 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면 뛰어가서 나와 같은 반인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는 얼굴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친한 친구가 반에 앉아 있으면..
코로나 재난지원금과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으로 나랏빚이 크게 늘면서 여당을 중심으로 증세론이 활발하다. 증세론은 정치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기본소득제도와도 연계돼 있다. 오랫동안 복지는 늘리자면서 증세는 반대하는 모순 속에 찌들어 있던 정치권이 이 만큼이라도 정직한 논쟁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재정난 타개를 위해 증세 말고 찾을 수 있는 해법이 뭐가 있나. 이젠 솔직할 필요가 있다. 야당이 정부·여당에 “퍼주기 정책 남발”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면서 대안을 말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그래도 세금 부담을 늘리면서 복지도 늘리는 ‘중부담·중복지’를 주장해왔다. 유 전 의원은 다만 “경기가 좋아도 조세저항이 심한데 지금은 적절한 시기라 보기 어렵다”며 시기 조절론을 펼치고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국정운영을 책임진 여당으로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기본소득제를 줄기차게 주창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증세에 대한 국민 합의를 전제로 목적세 추진을 거론한다. 그는 조세감면 축소와 함께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탄소세, 디지털 데이터세 등의 신설과 함께 불로소득에 부과하는 기본소득토지세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고소득층과 주요 기업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사회연대특별세’ 법안의 3월 초 발의를 예고했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복지체계 조정으로 80조 원, 부가가치세 3% 인상 등으로 100조 원 등 연간 180조 원 정도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2% 인상해 코로나 손실보상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말한다. 윤후덕 국회 기재위원장은 “화끈하게 지원하고 화끈하게 조세로 회복하는 체제가 정직한 접근”이라면서 “증세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공식 발언했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동조하는 ‘기본소득연구회’의 지난달 23일 토론회에서는 기본소득세 5% 신설, 공시지가 1%의 국토보유세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보편증세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증세론은 여전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여러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해온 대표적 기본소득 전문가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우리나라같이 조세저항이 큰 나라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증세 합의 운동’의 성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증세의 목적이자 수단이기도 한 묘한 성격을 지니는 기본소득은 더욱더 정교한 프로그램 연구가 필요하다. 지구촌 인류의 삶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이견은 없다. 대한민국도 막대한 출혈재정의 뒷감당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획기적인 국정운영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굳이 ‘저조세-저복지-저신뢰-저조세’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서의 기본소득제도가 아니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증세론을 들여다볼 때가 된 것이다. ‘부자 증세’, ‘예산 절약’ 같은 종래의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땜질 궤변만으로는 이젠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