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바람에 새벽비 뿌리더니 새가 떨어졌다. 장산곶에서 날아오른 매가 지친 날개를 접었다. 밖에서는 수리와 겨루고 안에서는 구렁이와 싸우던 장산곶매가 날갯짓을 멈췄다. 황망한 소식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황망함을 아들에게 전했지만, 내 아들은 백기완 선생을 몰랐다. 선생을 모르는 대학생 아들과 밥상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돌아설 때, 비로소 선생의 부고(訃告)를 절감했다. 아, 선생이 가셨구나. 가셔도 벌써 가시고 이 세상에 없었구나. 아들아, 고백하건데 아비는 백기완 선생을 오래도록 흠모했다. 너에게 조언했던 여러 말들 또한 선생의 책과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비가 선생을 처음 안 것도 너처럼 대학시절이었다. 국어순화론자인 선생의 우리말 사랑 덕에 ‘새내기’가 되어서 ‘동아리’ 활동도 하였다. 학우들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시간 전화 대화를 했다. 취임 후 첫 통화다. 백악관이 공개한 대화 내용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비롯해 신장위구르 인권, 대만 문제까지 민감한 현안들을 꺼내며 시진핑 주석과 강한 기싸움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직후 트럼프 정부에서 탈퇴한 ‘파리기후협약’(탄소배출을 줄이자는 국제협약) 재가입을 공식화했다. 또 재무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은퇴연금(401k) 법안도 재검토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연방정부가 전기자동차 등 물품을 구매할 때 미국산을 우선으로 하는 이른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후 진행한 일련의 행정서명이나 정책 등은 공통적인 지향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뉴욕 월가의 시대적 패러..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앞선 부모들이 늘 그렇게 말씀하시며 살았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세대였던 만큼 하루하루가 위태로웠을 것이다. 눈앞에서 코 베어가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기대했던 삶의 해결방식은 양심이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원. 근데 그 기준은 늘 애매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게 다였다. 상식은 기준이 없다. 원칙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상식’으로 분쟁이 해결될 때가 적지 않았다. 일종의 ‘무질서의 질서’인 셈이다. 지금은 오히려 ‘질서의 무질서’의 행태들이 넘쳐 나고 있지만. 영화평론가인 만큼 이번 달은 영화 얘기를 두어 편 하겠다. 하드 보일드 작가로 유명한 미국 보스톤의데니스루헤인은 지금까지 연인 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딱 5권만 썼는데 그중 꽤나 유명한 작품이 '가라 아이야 가라, Gone baby gone' 이고 2007년 배우 벤 에플렉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패트릭켄지 역은 케이시에플렉이, 앤지 제나로는 미셸 모나한이 했다. 이 소설과 영화의 핵심은 4살짜리 아이 아만다의 유괴범을 잡는 일인데 처음엔 미해결로 보였던 (그래서 아이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종결처리된) 사건이 또 다른 유괴 살해사건과 연결되면서 우연히 실마리를 찾는다. 문제는 진짜 유괴범이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는, 모범적인 사람이고 정작 친엄마 헬렌(에이미 라이언)은 마약중독에 난잡한 성생활, 마약 조직과도 연관이 있는, 양육에는 최악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서로 지독하고 쿨(cool)한 사랑을 나누기로 유명한 켄지와제나로는 이 일로 부딪힌다. 제나로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사건을 이대로 놔둬야 한다고 말한다. 켄지는 법리의 원칙대로 유괴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는 친엄마의 품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둘은 결국 이 일로 오랜 파트너 생활을 정리한다. 김학의 사건을 두고 법을 수호합네 어쩌네 하면서 법리 공방에 나서 있는 일부 일선 검찰들께서는 실체적 범죄가 어떻든 그 범죄를 가리는 절차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의 행복이 중요한지 아이를 둘러싼 범죄를 소명하는 게 더 중요한지에 대한 켄지와제나로의 논쟁과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소설과 영화 속 켄지와제나로는 둘 다 목적이 순수하다. 그게 돌아가는 길이건 지름길이건 모두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각자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학의에 대한 법적 절차 논쟁은 켄지나제나로와 달리 한쪽의 의도가 순수치 못하다. 여기엔 단지 큰 범죄와 작은 범죄가 있을 뿐이며 작은 범죄가 큰 범죄와 연동돼서 일어난 일이다. 당연히 큰 것 먼저 잡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세상은 상식적으로 움직여져야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는다. 인간들이 양심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된다. 얼굴도 다 공개됐는데 식별할 수 없다며 무죄, 출국 금지를 시킨 것이 절차상 하자가 있는 식으로 온갖 판례를 일방적으로 동원해 또 방면하려는 의도는 상식적이지 않다. 세상은 상식이 움직여야 한다. 국민은 개 돼지가 아니다. 영화 얘기 하나 더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부 시리는 1, 2, 3으로 돼 있다. 한편 모두 걸작이지만 역시 1편이 최고다. 1편에서 주인공 대부 비토꼴레오네(말론 브란도)는 뉴욕 채과상 앞에서 총을 맞는다. 총상에서 가까스로 회복은 했지만 큰 아들은 죽고 막내 아들마저 곁을 떠나 있는 걸 알게 된비토콜레오네는 수십년은 더 늙은 얼굴과 표정으로 미국 내 모든 패밀리들의 회합을 주도한다. 그는 모든 것을 협조하겠다고 약속한다. 마약을 매매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상관 안하겠다고 한다. 매춘으로 돈을 벌겠다고 하면 그것도 용인하겠다고 한다. 그의 조건은 단 하나다.시칠리에 있는 아들 마이클을 무사히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이클이 돌아 오는 길에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만에 하나 그 아이의 머리에 번개가 떨어진다 해도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자리가 숙연해진다. 아들 마이클은 무사히 뉴욕으로 복귀한다. 각 패밀리들은 서로의 아이들과 여자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룰을 지킨다. 아이들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상의 상식 중의 최고 상식이다. 그래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곽상도와 나경원은 그런 점에서 상식적이지 않다. 곽상도는 오래 전 유서대필사건을 조작해 강기훈을 장기간 투옥시킨 사람이다. 그런 정도의 범죄를 저질렀고 세상이 다 알고 있으면 조용히 세상 한켠에 물러나 있어야 한다. 다시 정쟁을 일으키며 대통령 아들의 있지도 않은 특혜논란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려 하지말아야 한다. 인간이 양심이 있어야지 원. 곽상도는 상식의 이름으로 처벌돼야 한다. 그는 그 때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나경원은 다른 건 다 몰라도 두 가지 점에 있어 상식의 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는 본인의 아이 문제다. 법적으로 다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해도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어떻게 해서 아이의 성적이 D학점에서 A학점으로 고스란히, 여러 과목이나 조정될 수 있었는지. 본인 만큼은 잘 알 것이다. 나경원은 조국과 어렸을 때 학교를, 그것도 같은 과를 다닌 적이 있다. 흔히 얘기하는 친구인 셈이다. 같은 학번 동기이다. 그러니 친구의 자식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건 뉴욕 마피아들도 안하던 짓이다. 골목 깡패, 양아치 짓이다. 그러니 나경원 역시 한켠에서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 가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사람이 양심이 없다. 상식을 못배워서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전문가가 움직이지 않는다. 테크노크라트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다. 상식을 지닌 보통 사람들, 제너럴리스트들이 궁극적으로는 지배한다. 지금 세상이 복원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국민들은 개 돼지가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생각하는 영장류이다.
천성적인 소박함과 예지에서 오는 소박함이 있다. 이 둘 다 사랑과 존경을 불러 일으킨다. 인생의 문제는 대부분 대수방정식과 같다. 즉 가장 간단한 형태로 바꿈으로써 풀리는 것이다. 진실한 말은 언제나 꾸밈이 없고 단순하다. (마르실리우스)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간결하다. 어린아이와 동물이 지닌 매력은 바로 소박함에 있다. 자연은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조작한 차별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연은 신분이나 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자질을 부여한다. 자연스럽고 선량한 감정은 오히려 서민들 가운데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다. (레싱) 사람들이 교활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은, 우리를 속이거나 잘난척하기 위함이다. 그런 사람들을 믿어서는 안 되며 흉내를 내서도 안 된다. 좋은 말은 언제나 간결하고 누구나 알기 쉬우며 논리적이다...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1년도에도 나는 사찰 대상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시절에 정부가 맺은 미국소고기 수입 조건이 과학이나 국제기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정원 사찰 대상자였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 특명팀에 의해 소위 '종북좌파연계 불순활동혐의자'라는 특정 30여명 중의 하나로 2011년에도 관리되었다는 것은 매우 낯설었다. 과연 2011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해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의 상임의장으로서 쌍용차 사태와 함께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에 연대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탔다. 정동영, 이정희 등 당시 야당 정치인들과 함께 경찰의 초록색 물대포를 맞은 기억이 있다. 그 김진숙이 '복직 기원 희망 뚜벅행진'의 이름으로 부산..
이재명 지사가 “개성공단은 한반도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남북 노동자들이 신뢰를 쌓은 작은 통일의 공간”이라며 “연대회의가 개성공단 재개의 물꼬를 트고 남북관계 진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경기도 역시 변함없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일 DMZ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열린 ‘개성공단 재개 선언 범국민 연대회의 출범식’에 보낸 영상축사 내용이다. 연대회의는 민족문제연구소, 개성공단기업협회, 민화협, 평화철도, 겨레하나, YMCA, YWCA, 민주평통, 개성공단기업협회, 개성공단협동조합, 천주교 주교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학계, 종교계, 개성공단 기업인 단체 약 40곳이 참여했다.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 최종환 파주시장 등 관계 인사와 윤후덕·박정·이규민 국회의원, 심규순 도의회 기재위원장 등 정치계 인사들도 공동..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서문에서 ‘나라가 털끝 하나도 병들지 않음이 없으니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필히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썼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면서 이 글이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이후 쌓일 대로 싸인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그대로 두고는 새로운 미래사회가 열리지 않을 것이기에 이 시대의 화두는 여전히 개혁이다. 얼마 전까지 크게 거론되던 검찰과 언론 그리고 아직 거론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종교계, 재벌, 고위관료층, 학교, 군 등등 줄줄이 개혁 대상의 예비군들이다. 최근에는 판사가 탄핵되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판결을 잘못하거나 개인 비리 등으로 탄핵당하는 판사가 다반사이지만 우리에게는 최초의 탄핵이었다. 그동안 국가폭력의 최종 판정자들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본 사람들에..
2021년도 한달이 훌쩍 지났다. 매년 이맘때면 그해의 할 일에 대한 계획 다듬기와 실행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다르다.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예측과 전망이 암흑 속에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이다. 그러나 트랜드 읽기는 꼭 필요하다. 작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각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관광은 유독 심했다. 2020년의 여행 트렌드는 ‘주말보다 평일’, ‘성수기보다 비수기’, ‘관광지보다 소도시’, ‘대규모보다 소규모’의 키워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 키워드의 근간은 안전이다. 안전 확보의 최선책은 대면의 최소화이며, 이런 영향은 여행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왔다. 작년 일주일 중 숙박가격이 가장 비쌌던 요일은 주말이 아니라 수요일이었다. 주말을 피해 주중인 수요일에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많았던 것..
이재명 경기지사가 주도해온 ‘기본소득제’가 여권 대선주자들 사이에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재명 지사가 주창하는 ‘기본소득제’에 대해서 경쟁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날 선 비판을 제기하면서 설전이 시작됐다. ‘기본소득’은 코로나19 등 희대의 국가재난이 불러온 필연적인 시대적 화두다. 여권 잠룡들이 감정적인 공방이 아닌 ‘현실성’ 위주의 건강한 논쟁을 펼쳐가길 바란다. 기본소득제란 모든 국민에게 재산, 소득, 고용 여부 및 노동 의지에 상관없이 동일한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소득분배 제도다. 오래전부터 이 제도의 도입을 설파해온 이재명 지사는 “1인당 연간 100만 원(분기별 25만 원씩) 기본소득은 결단만 하면 수년 내 얼마든지 시행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얼마 전 미국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가 한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꼽았다. 블룸버그는 ‘2021 혁신지수(Bloomberg Innovation Index)’를 산정한 결과 한국이 지난해 2위였으나 한 계단 상승하여 1위를 탈환했고, 블룸버그 혁신지수가 발표된 9년 동안 우리나라는 7번 1위를 차지했었다 보도하며 대한민국의 혁신성을 극찬했다. 미래사회의 핵심 동력은 무엇일까? 당연히 혁신성과 창의성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 하지 않는다.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피터드러커(Peter Drucker) 교수는 혁신에 대해 “참신한 생각(bright idea)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만 기대는 것은 잭팟을 노리며 슬롯머신에 머무는 도박꾼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혁신은 고되고 지속적인 노동에 가깝다.”라고 말하며 혁신을 위해 고되고 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