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변에 광려천이란 아담한 자연하천이 있다.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천연기념물 수달과 따오기도 사는 하천으로 주민들에겐 귀한 쉼터이다. 도시 주변의 자연하천이 대개 그렇듯이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버려진 쓰레기가 눈에 거슬려 4년 전부터 산책할 때마다 마대자루에 집게로 줍기 시작했다. 재미삼아 이 짓을 300회 가까이 하게 되니 환경에 관심있는 주민들이 하나둘 만났고.. 급기야 ‘줍다’와 ‘조깅’을 합해 ‘줍깅’을 같이 해보자며 ‘광려천을 걸으며 줍는 사람들’이란 모임까지 생겼다. 그러나 줍깅을 반복해도 쓰레기는 재생산 될 뿐 결코 없어지진 않았다. “어떻게 하면 광려천에서 쓰레기를 없앨 수 있을까?” 어디 환경문제 뿐이랴. 세상일도 비슷할 터. 촛불혁명을 디딤돌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게 사람들이 원한..
순이는 우리나라 남쪽 해안가 끝 마을 어디쯤에서 20세기 끝 무렵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가리봉동 염색공장에 다녔다. 순이는 하루 16시간을 일했다. 염색약 냄새가 코를 헐게 했다. 걸핏하면 코피가 터졌고 졸음을 쫓기 위해 타이밍 약을 먹었다. 그래도 순이는 행복했다. 월급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급의 반은 고향에 부치고, 방세내고 나면 남는 돈은 쥐꼬리만 했다. 그 돈으로 영화도 한번보고 푼돈이라도 야금야금 모으기 시작했다. 설날이 다가왔다. 순이는 가리봉시장에 가서 엄마의 외투를 사고, 남동생이 좋아할 운동화와 운동복도 사고, 어린 여동생을 위해 카세트도 샀다. 아버지에게 드릴 용돈은 천 원짜리 새 돈으로 바꿔 놓았다. 설날 하루 전 순이는 공장 정문 앞에서 봉고차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귀향 차표를 구할 수 없어 봉고차..
대한민국의 헌법은 만인의 평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누구도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특권이 있다. 헌법이 명시한 평등의 원칙과 모순된 특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 특권이 한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과 국제적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주어진 법률적 특권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서 안 된다. 하물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에 주어지지도 않은 특권을 누리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특권을 누리는 여러 ‘특권층’이 있다. 법조계는 법률에 명시된 특권과 명시되지 않은 특권을 모두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층의 하나다. 변호사는 변호사법에 의해 법률적 대리행위를 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을 누리..
“우리 삶을 구성하고 단연코 나를 반짝이게 만드는, 영원히 반짝일 모래알들,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사람들과 살아가고 또 사랑을 할 것이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10년 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가 남긴 글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년 내내 뭔가 모를 상실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생활패턴이 바꿨다. 변화된 일상에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해졌다. 바깥 외출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답답함, 몸에 미세한 변화에도 혹시나 코로나가 아닐까하는 마음이 날 무기력하게 만든다. 누굴 만나는 것도 서로가 꺼린다. 이런 감정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가 보다. 코로나 우울이다. 친구들도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우울증이 오는 듯 걱정한다. 생존에 대한 위험신호다. 그렇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에 미아(迷兒)가 될 수는 없지 않은..
현행 정치자금법제 아래서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18세 이상 유권자는 아예 세제지원혜택에서 배제된다. 청소년, 대학생, 전업주부, 노인, 실업자 등 1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저소득층 유권자의 경우 10만원까지는 전액세액공제를 받아 정치후원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후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소득하위 50%는 정치후원금의 2%를 냈을 뿐이다. 거의 1000만 명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4400만 유권자 중 2500만 이상을 정치후원의 세계에서 배제해온 작금의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심각한 차별행위이자 중대한 위헌사태다. 1인1표 유권자들이 국고지원 정치후원법제를 통해서도 동일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요체는 다음과 같다. 첫째, 4400만 유권자 모두에게 국고지..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다가왔다. 상가와 거리가 북적이고 고향가는 마음으로 들떠야 하지만 올해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마음은 무겁고 지갑은 얇다. 코로나가 힘든 것은 맞지만 진짜 국민을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은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다. 오는 4월7일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많은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누가 적임자인지, 비전이나 공약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검증할 길도 시간도 별로 없다. 진보·보수 진영에서 각각 단일 후보를 내면 그것으로 투표하라고 한다. 성 추행 등 도덕성이 문제가 돼, 693억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는 선거에서 당만 보고 찍으라고 한다. 도덕성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는 어떤가. 대법원장은 거짓말 파동에 휩싸였고, 사법농단에 연루돼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안..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팠다. 바흠의 묘혈(墓穴)을 위해. 그리고 그를 그곳에 묻었다.” 잘 알려진 톨스토이의 민담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의 마무리다. 해가 저물기 전 출발선에 다시 돌아오는 만큼의 땅은 모두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계약에 따라 바흠은 진종일 다니다가 노을이 보이려 하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런 계약 조건에 혹하도록 만든 것은 사실 악마의 계략이었던 걸 몰랐던 거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악마는 배를 움켜쥐고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왔다. 조끼도 장화도 물통도 모자도 모두 내팽개치고 괭이자루 하나만 붙잡고 지팡이 삼아 달렸으나 결국 돌아온 출발선에서 숨이 찬 나머지 세상과 하직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갔다. 소유란 어느 정도 필요하..
새해를 며칠 앞둔 2020년 연말 교육청에서 공문이 하나 왔다. 올해 다문화 교육 관련 연수를 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고양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다문화 교육 연수가 필수이니 얼마 남지 않은 12월 31일까지 꼭 15시간 이상 연수를 이수하라고 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소동은 21년 내에 연수를 학습하라는 수정 안내로 마무리 되었다. 다문화 교육이 필수 연수가 된 건 교실에 다문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문화와 크게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고양시 일산구 어느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우리 학교에도 한 학년에 몇 명 정도 학생이 다양한 국적을 가졌거나 부모님 중에 한분 혹은 두분 모두 외국인이신 친구들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비율을 따지면 대략 5% 남짓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율인데 조금씩 비..
고양·김포·파주시의회가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고양시의회는 지난 5일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시행 촉구 결의문’을 긴급발의, 의원 전원 만장일치로 최종 의결했다. 결의문은 국토교통부, 경기도, 경기도의회, 김포시의회, 파주시의회 등 관계기관에 전달했다. 같은 날 김포시의회도 일산대교 통행료 징수 백지화를 촉구하는 일산대교 무료통행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파주시의회 의원들도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 경기서북부 시민들의 교통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의회 고양·김포·파주지역 의원들도 가세했다. 해당 지역 도의원 16명은 4일 일산대교에서 ‘경기도의 일산대교 인수를 통한 통행료 무료화 방안’을 제안하며 관계기관 협력을 촉구했다. 통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 소국이 어우러진 푸짐한 꽃바구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뭐지?’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뜬금없이 우리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이. 친구를 반기듯 꽃바구니를 집안으로 들여 차근차근 들여다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짙은 향이 나는 잘디잔 소국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군데군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눈송이 같은 꽃봉오리가 여리디여린 미소를 띠고. 날개처럼 울타리를 치고 있는 초록의 잎사귀들. 알록달록한 소국의 꽃망울은 빨갛고 작은 장미를 품은 채 잔잔한 위로를 보내오듯 끊임없이 재잘재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소국 좋아하는 나를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친구의 마음처럼, 촉촉한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들처럼 말이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