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자신의 특허품인 양 떠드는 진보 꼰대나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수구 꼰대나 거기서 거기 같아요." 한동안 20대들하고 책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계급장'을 떼고 매번 수평적으로 토론을 벌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속내가 드러났다. 여론조사나 경제통계 수치 등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20대들의 감성을 들여다본 것이다. "우리는 알바족이잖아요. 술집이나 음식점, 편의점, 백화점 등에서 생활비를 벌기위해 감정 노동을 하죠. 기성세대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과 부딪혀서 생긴 감정의 결과물이죠." 재일 동포 철학자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의 말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사계절)에서 인간의 이성은 변화가 가능하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보통 관념과 정반대 사유다. 감성을 인간 이해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테면 20대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진보든 수구든 하나의 달걀 꾸러미에 넣어 계열화해서 자신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처럼 감성의 성은 생각보다 크고 견고하다. 이제 여론조사 분석이 가능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이는 정치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20대들이 '감성의 섬'에 떠있음을 방증한다. 어디든 휩쓸리지 않고 무시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에 대한 한 묶음 불신은 그들이 고백한 것처럼 어른들과 부딪혀 겪은 감정의 결과물이다. 이 형식을 달리 표현하면 기성세대들의 태도가 아닐까한다. 존중과 배려가 없는 일방향의 소통 방식. 그들은 아무리 맛있는 스테이크라 하더라도 강요하면 라면 먹는 것보다 못하다고 강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부딪힘이 관건이다. 그 속에서 그들의 감정이 형성된 만큼 새로운 방식의 부딪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이 20대를 영혼 없는 대상이 아닌 설렘과 낯섦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타자로 존중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기존의 낡은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바다출판사가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시리즈 첫 작품으로 출간한 루이스 세뿔베다의《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가 자신이 키운 어린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존중과 연대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세대 간 소통을 강조하는 건 당연해서 진부하기까지 하다. 엄마 고양이가 새끼 갈매기에게 당부하는 말은 우리의 기성세대에게 건네는 역설처럼 들리는 건 왜 일까? “(날개만으로 날 수 있는 건 아냐!) 오직 날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날 수 있는 거야.”
내가 살던 곳은 지방의 소도시였다. 요즘 같은 봄날, 주택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과 모종을 심지 않은 밭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마땅한 놀이감이 없던 국민학교 아이들은 무작정 들판에서 뛰어 놀았다. 깡통 안에 돌을 넣어 주둥이를 틀어막으면 훌륭한 놀이감이 되었다. 깡통차기에 지치면 논두렁에 나란히 앉아 들판을 바라보며 숨을 돌렸다. 들판 저 멀리에서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구불구불한 무언가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지랑이는 태양의 복사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간 지표면의 공기와 그 위쪽의 차가운 공기가 대류 현상을 일으키면서 햇빛의 굴절에 의해 아른거리게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에 대한 원리를 전혀 이해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신기하게 바라만 보았을 뿐이었다. 중학생이 될 무렵에는 아지랑..
“연천군 중면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에는 그간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오랜만에 평온함이 감돌았다. 마을에는 주민들이 따뜻한 봄의 온기를 느끼며 여유롭게 담소를 나눴으며, 농부들은 추수를 대비한 농사짓기가 한창이었다.”(본보 22일자 1면) 이지은 기자·박환식 수습기자의 르포 기사 ‘대북전단금지..선물처럼 온 평화’를 읽으며 모처럼 가슴이 따듯해졌다. 민통선은 늘 긴장감으로 팽팽한 지역이다. 특히 이맘때면 연천에 보수·탈북단체 등의 대북전단 살포가 이뤄져 접경지역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전단 살포 때마다 민통선의 출입이 통제돼 생계 수단인 농작물을 방치해야 했던 농민들은 막심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관광객도 감소했다. 한 주민은 북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의 60~70%가 발길을 끊었다고 말했다. “지난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들었는데, 대북전단 살포 등이 이어지면서 더욱 고된 한 해였다”는 그의 말에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 강행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거나 직접 저지에 나서는 등 탈북자단체들과 대립했다. 이들은 안전과 생계 피해를 호소하며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달라고 정부에 촉구해왔다. 이에 경기도가 먼저 나섰다. 이재명 지사가 불법 대북전단 살포를 도민의 생명과 안전 위협 행위로 정의하고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지사는 지난해 6월 18일 자신의 SNS에 “평화 방해하고 도민 안전 위협하는 살인 부메랑 대북전단 살포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연천·포천·김포·파주·고양 전역을 위험구역으로 지정했고 구역 내 대북 전단 살포 관계자의 출입이나 대북전단 등 관련 물품의 준비, 운반, 살포, 사용 등을 모두 금지시켰다. 포천에서는 대북전단 살포를 준비하던 관계자의 집을 적발해 행정명령을 고지하기도 했다. 경기도의 행정명령 이후 대북전단 살포는 중지됐다. 이어서 지난해 12월 2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인천계양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의결됐다. 이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은 3개월간의 계도기간이 끝나는 이달 30일부터 시행된다. 앞으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 전단 살포 등으로 국민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대부분의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과 경기도의 행정명령 등 제재를 환영한다. 표현의 자유에 앞서는 것이 지역 주민의 생존권이라는 것이다. 남북 양측은 지난 2018년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일부 민간단체들은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중지 요청을 무시하고 살포를 강행해왔다. 북한은 대북전단에 예민하다. 지난 2014년 10월엔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 수 십 발을 발사, 실탄 일부가 연천군 중면사무소에 떨어진 일도 있다.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은 국민들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문제란 이재명 지사의 말에 공감한다.
LH 땅 투기 사건이 온 나라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온갖 이슈를 다 삼키고 있네요. 양파껍질 벗기듯이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처참한 양상입니다. 정치권은 상대방을 할퀴려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소재로나 쓰고 있군요. 권력과 금력, 그리고 정보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지는 이미 오래됐잖아요. 전수조사가 어쩌고, 특검이 어쩌고 난리가 났네요. 정치권 공방의 속셈을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지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민심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 정책들을 막 쏟아내는군요. 급기야는 “LH를 당장 해체해야 한다”는 과격한 목소리도 있네요. 어째 세월호 사건 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르대던 “해안 경찰 해체” 극약처방 쇼가 떠오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부동산 투기는 오랜 세월 은밀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횡행해온 ‘적폐(積弊)’ 맞습..
학문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여기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일상생활에서도 두 사람이 대립각을 세우고 싸우면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판에, 학문 세계는 오죽할까? 무릇 학문 연구란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지, 한쪽 입장만 대변하거나 연구자의 주관적 경험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게 불문율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과학의 보기를 들어보자. 19세기 유럽에서 인기를 끈 골상학의 경우다. 당시 유럽은 턱의 모양, 안면의 각도, 골격의 모양 등을 토대로 인종과 남녀를 구분하는 골상학이 유행했다. 이를테면 뇌의 무게를 비교해본 결과 여성의 뇌가 남성보다 가벼우므로, 여성은 지능이 낮으며, 그래서 대학교육을 받는 게 무리라는 식의 결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흑인의 뇌는 백인보다 가볍기에, 흑인이 백..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코로나19가 초래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단순히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의 복귀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19 확산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 마련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순환경제는 지역을 기반으로 생산과 소비 활동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주민 일자리 창출, 소득개선 등의 효과를 낳는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 고도화로 야기된 지역 간 경제적 격차 해소를 위한 대안 경제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 예산을 들여 거둔 다양한 경제 성과가 과실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최대한 지역에서 순환하며 승수효과를 창출하는 경제 개념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역화폐는 지역순환경제를 촉..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람이 살아생전 훌륭한 일을 해 후세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이 말에는 사람은 개인의 이름 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도 있다. 사람이 남긴 흔적은 기록물처럼 오랜 세월 후에도 선명하게 그 당시를 설명해주는데, 그릇이나 집터, 의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고, 이름은 그 자체를 설명하기도,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땅도 마찬가지다. 지명(地名)을 통해 지형이나 역사, 전설 등을 알 수 있는 이유다. 이에 본보는 ‘광주대단지사건(8·10 성남민권운동)’ 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인 성남시를 살펴보고자 윤종준 성남문화원 부설 성남학연구소 상임위원과 함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을 기획했다. ▲숯 굽던 마을 숯골(炭洞, 炭里) 성남의 원도심지 일대는 고려 때부터 숯골이라 불리어 왔고,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군 세촌면 지역으로 숯골 또는 탄동(炭洞) 혹은 탄리(炭里)라고 표기했다. 지금의 수정구 일대에는 당시 숯골, 독정이, 남씨편, 음촌건너말, 새터말 등의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중 숯골은 탄리, 탄동, 태평동·신흥동 등으로 행정구역이 변화해 왔다. 성남의 숯골 지명으로 가장 오래된 문헌기록은 고려 말의 이달충(李達衷, 1309~1385)이 탄동에 새로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지은 ‘탄동신거(炭洞新居)’라는 시인데, 제목 설명에 “숯골은 광주 남문 밖 10리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시에서 자연을 벗하며 술도 마시고 물고기도 잡아 먹으며 늙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숯골에는 세종의 일곱째 왕자인 평원대군과 그의 봉사손으로 입적된 제안대군 그리고 선조의 아들인 영창대군, 현종의 두 딸 명선과 명혜 공주의 묘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었던 곳이다. 두 공주의 묘는 1936년 일본이 고양의 서3릉 구역으로 이장했으며 왕자들의 묘는 성남시가 만들어지던 광주대단지사업 때에 모두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 성남 봉국사(奉國寺)는 천연두에 걸려 3개월 사이에 죽은 명선·명혜 공주의 원찰이다. 성남 지역이 숯을 굽던 곳이었음을 보여주는 문헌 기록은 많다. 김종직(1431~1492)은 ‘마천에서 본 것을 기록한다’는 제목의 시에서 “숯을 굽느라 골짝엔 연기가 나네”라고 읊었고, 병자호란 후에는 전시에 대비해 남한산성 성벽 둘레 94곳에 숯을 2만4192석을 매립했다고 한다. 경기도 일대에는 광주시 탄벌리(숯가마골), 화성 동탄, 고양과 파주 탄현 등 숯과 관련된 지명이 여럿 있으며, 용인에서 성남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탄천도 숯내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일보 1927년 4월 9일 지방소개에는 경기도 광주의 땔나무와 숯은 경성과 고양으로 수출되어 농작물 수입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도 소개됐다. 숯은 다양한 쓰임새를 갖고 있는데, 옛날에는 질병치료를 위해 부적을 태워 물에 타 마시거나 숯을 갈아 마시기도 했다. 왕릉을 조성하는 데에도 사용 되었고, 집터 다지는 데에도 사용됐다. 신라의 도성 안에는 숯으로 취사를 해 연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숯은 공기를 정화시켜 주기도 하고 습도조절 기능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숯이 잡귀를 막아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장을 담그고 장맛을 제대로 들이기 위해 항아리에 금줄을 두르거나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쳤는데 여기에 숯이 사용되었다. 수서의 율현에서 성남의 율동까지는 숯을 굽기에 가장 좋은 참나무가 많았던 고장이다.
미 애틀랜타에서 한 미치광이의 총기 난사로 한인 여성 4명 등 아시아인 6명을 포함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반아시안 증오범죄’로 받아들여지면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시끄럽다. 미주 한인사회는 물론이고 한국계 스타들, 미 정치권 아시아계 의원들이 중심에 서고 있다. 그런데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를 놓고 미국의 ‘반인권’을 마냥 비난해서는 안 될 참괴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2일 이주노동자에게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강요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명령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전원위원회를 열고 “이주노동자만을 분리‧구별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도록 강제한 일부 지자체 행정명령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처”라고 판..
영화만큼 진실을 알리는 매체도 없다. 아니 영화가 유일하게 진실을 알리는 매체이다. 다만 그것이 조금 늦을 뿐이다. 영화는 언론과 달리 실시간으로 사건을 중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1991년 논란의 영화 'JFK'를 만들었다. 영화 'JFK'는 1963년 11월 텍사스 댈러스에서 암살당한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범인을 추적하는, 일종의 미스터리 드라마다. 35mm와 16mm, 슈퍼 8mm를 동원해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었으며 컬러와 흑백촬영을 동시에 하고 대규모의 장면전환과 별도의 시각처리가 동원된 올리버 스톤의 정치적 야심작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JFK'는 정치영화가 아니다. 철학적인 영화이다. 사실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모르게 될 때까지 진실이 조작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사실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모르게 될 때까지 진실이 조작되는 과정은 고도의 음모집단이 언론과 함께 벌이는 일종의 군사첩보작전이다. 지난 2년간 우리 안에서 벌어진 소위 ‘조국 사태’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의 과정을 보면 오래 전의 사건인 JFK의 암살과 그걸 영화로 만든 올리버 스톤의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국내의 파시스트들(극우 자본가와 반공주의자)과 우매하고 사악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총알받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사건의 본질보다는 그 본질을 흐리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는 의도적으로 과도하고 왜곡된 공정성 논란을 가열시키며 진실을 왜곡시켰다. 이른바 박원순 사건은 2차 가해라는 미명 하에 실체적 진실을 가리게 했다.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매입 과정도 후보 단일화 이슈로 덮는다. 박형준의 L시티 특혜 의혹은 현 정부의 있지도 않은 실정(失政)이라며 만들어 낸가짜뉴스로 무마시킬 태세다. 무엇보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모해위증교사 사건이야 말로 검찰이 기획하고 조작했음이 분명해 보이는데도(다수의 증인이 출현해 증언을 했다. 비망록도 나왔다.) 전국 고검장들이 참석한 대검 회의에서는 ‘아니다’ ‘검사들은 죄가 없다’는 말이 10명 중 8명의 입에서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를 받아 ‘사기꾼 말만 믿은 당연한 결과’라는 사설이 나왔다. 검사들이 옵티머스 건으로 로비를 받으면서 룸 살롱에서 술을 먹은 것도 별다른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지 오래다. 벌서 잊혀졌다. 온갖 사건이 묻혀지고 있다. 누군가가 사건을 사건으로 묻고 이슈를 이슈로 덮고 있다. 이른바 ‘감정적 진실’이 완전히 짓밟히고 있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현학적인 한자어로 만들어 낸 수많은 법리(法理)로 판단하기 이전에 직관적으로 사건을 궤뜷어 본다. 그래서 진실을 알고 있다. 그게 흔히들 얘기하는 집단지성일 것이다. 그런데 매번 그것이 부인되고 있다. 부인도 한두 번이 아니다.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성이 모호해진다. 가짜뉴스에 휩쓸리게 된다. 감정적 진실이 파묻히면 결국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런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세월호 사태는 아직 상처로 남아 있다. 전두환 군부의 광주 학살은 6.25 전쟁만큼 여전히 상흔이다.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봉인되고 있다. 땅땅땅. 관을 두드리는 못질 소리다. 한국사회가 암흑에 묻혀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그 소리를듣지 못한다. 조선과 동아 같은 수구 언론들이 확성기를 꺼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JFK 암살음모를 밝히기 위해 미국 의회가 구성한 워렌위원회도 사건을 덮었다. 위원회는 사건을,사회주의자이자 친 카스트로 주의자인 리 하비 오스월드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을 냈다. 그러나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즈의지방검사인 짐 개리슨은 이에 의혹을 품는다. 그는 케네디의 암살이 명백한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미국에는 정부 외에 또 다른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CIA와 군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두 기관이 공모하고 여기에다 反카스트로 세력과 현지 마피아가 동원됐다는 것이다. 전쟁은 돈이 된다. 그러나 케네디는 미-쿠바 미사일 사태에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흐루시초프와 손을 잡았고 베트남 지상군도 철수할 생각이었다. JFK가 죽자마자 후임인 린든B. 존슨에 의해 베트남전은 확전이 됐고 라오스 캄보디아 공습이 시작됐으며 칠레는 파시스트 피노체트의 쿠데타 조짐으로 나아가는데 미국은 이를 조종하다가 각종 사건을 일으킨다. 미국엔 거의 동시에 워터게이트 사건까지 터졌으며 이 모든 일들은 1980년대에는 이란 콘트라 사건으로까지 번진다. 결국 JFK의 암살은 미국 현대사의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얘기다. 짐 개리슨은 JFK 암살이 군산복합체와 극우 자본이 공모한 최악의 비열한 음모였음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는 고군분투했으나사건의 진실은 결국 파묻혔다. JFK 암살에 대한 모든 비밀은 75년간 봉인됐다. 2038년에 가서야 가까스로 당시 사건에 대한 모든 조사 기록들을 볼 수가 있다. 'JFK'를 만든 후 짐 개리슨처럼 온갖 비난에 시달리던 와중에 올리버 스톤은 자신의 모교인 힐 고등학교에서 이런 강연을 한다. “탐욕은 군림하고, 탐욕은 전쟁을 하고, 탐욕은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 돈에 의해 언론도 대부분 침묵을 강요 받습니다. ‘타임'과 ‘뉴스위크’, ‘CBS’ 등에서 여러분은 진실을 알아내지 못합니다. 진실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을 관에 묻을 것인가. 진실이 흔들리니 회색주의자들, 있지도 않은 제3지대자들이 판을 친다.한때 진보 논객이라 불리던 (불렸던 모양이지만 그렇게 인정할 수 없는) ‘김앵커’가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책을 썼다 해서 일촉의 관심을 모으는 모양이다. 그는 진보인 적이 없다. 진보인 척 했을 뿐이다. 이제는 스스로 보수를 자처한다.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시장 선거가 위험하긴 한 모양이다. 권력에 붙고 권력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늘어난다.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 식으로 얘기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심히 ‘걱정’이로소이다. 대중들은 일어나고, 젊은이들은 분노하며, 지식인들은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진정 그래야 할 터이다.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새로운 전략무기’ 고도화를 공언한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와 앞으로 있을 협상 우위 선점을 위해 적절한 시점에 ‘새로운 무기’를 선보일 것이란 관측이 대세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새로운 전략무기’가 무엇이며, 그 발전은 어느 정도이고, 이에 대해 우리 군은 효과적인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간 북한이 언급한 것과 발사한 내용들을 토대로 추론하면, ‘새로운 전략무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MIRV(다탄두각개목표 재돌입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V(우주발사체) 등이다. MIRV는 다양한 목표물에 대한 동시공격이 가능하고 적성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SLBM은 2차 타격능력을 확보하고 한미연합군에 대한 군사적 대응옵션을 확대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S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