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3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채 온갖 시비에 휘말려 있다.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 캐치프레이즈의 핵심 성과다. 수십 년간 국가체제 개혁의 최고 어젠다였던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 제고’라는 막대한 사명을 띤 공수처가 출범부터 삐걱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완전히 갇히게 되면 정권 말기에 치명타로 작동될 수도 있음을 간과치 말아야 한다. 중립성과 도덕성·수사력에 대한 ‘국민 신뢰’를 하루빨리 확보하여 정상 가동돼야 할 것이다. 공수처는 지난 16일 부장검사 2명을 포함한 검사 13명을 임명했다. 정원 23명 가운데 절반가량만 가까스로 채운 셈이지만 어쨌든 수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 나오는 13명의 사람이 세상을 바꿨다”며 자신감을 내비쳤으나 항간의 우려를 불식하기에는 역부족인 형국이다. 김 처장이 피의자 신분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면담 조사하기 위해 관용차 편의를 제공한 게 들통나 ‘황제 조사’ 논란을 촉발한 것은 참으로 난감한 실수다. 아무리 야권과 기득권 집단의 티 뜯기 상어 놀음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검사와 비서관 채용 논란 역시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제대로 가동되기도 전에 상처투성이가 돼버린 상황은 국가사회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시점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역사에서 공수처가 어떤 존재 의미를 품고 있는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지난 1996년 1월 참여연대가 도입을 주장한 이래 수십 년 동안 입법기관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끈질긴 방해와 저항으로 출범시키지 못한 공수처가 가까스로 닻을 올린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뜻을 지닌 국가기관이라도 그 씀씀이가 올바르지 못하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한탄을 부르기 십상이다. 공수처가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방책은 국민으로부터 ‘역시 공수처의 수사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길 하나뿐이다. 그동안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이 권력에 휘둘려 못했거나 안 한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부정을 공명정대하게 파헤치고 나라를 진정 ‘윗물부터 맑은 사회’로 가꾸어낼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수처가 ‘1호 수사’에서부터 티끌만큼의 불공정 시빗거리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 4.7재보선 참패의 충격 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4.7재보선이 남긴 교훈 중에서도 으뜸은 젊은이들을 필두로 이제 우리 국민이 ‘불공정’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로 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집권 세력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공수처가 삐끗하여 국민에게 완전히 실망을 주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최악의 골칫거리로 떠오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설치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야권이 사사건건 딴죽을 치고, 검찰이 기득권적 관성으로 어깃장을 놓는 일은 온당치 못하다. 어찌 됐건 공수처 설치는 나라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진보적 자산이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공수처가 올바르게 자리 잡는 일은 오롯이 관계자들의 몫이 됐다. 또다시 실패할 수는 없다.
우리는 1년여 간 코로나 판데믹을 겪으면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있다. 4차 유행을 우려하고 있지만, 백신 접종의 확대 추세를 감안하면 머지않아 코로나는 종식될 것이다. 코로나가 준 교훈 중의 하나는 코로나와 같은 돌출적 위기(surprise)가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 파장 또한 기존의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것은 현재의 코로나 국면 수습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국제정세를 미리 상상해보고 대비하는 일이다.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는 시간적 한계가 5년이라는 통설이 있고, 전문가의 예측조차 틀리는 경우기 비일비재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길이라도 예측하는 노력은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미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열어줄 것이다. 적어도 ‘예고된 위기’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
‘월드뮤직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강의해왔지만 내 강의의 대부분은 음악과 음악인 이야기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역사 강의로 샐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쿠바의 관타나메라’ 를 소개할 때다. 중,노년층의 관심이 늘 뜨겁다. 그들은 70년대 3인조 그룹 세샘 트리오(‘나성에 가면’을 히트 시킨)의 목소리로, 청춘시절에는 미국 조앤 바이즈,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로 만났던 관타나메라를 추억 속에서 호출한다. 흑백 사진첩 넘기듯 아련한 눈빛이 된다. 노래 속 여인의 고향, 황백색 꽃 피는 종려나무 무성한 지구 반대편 섬 관타나모의 풍광을 전하면 ‘죽기 전에 언제 한 번 가보나’ 하는 동경의 눈들로 빛난다. 그러다 노랫말의 주인공, 쿠바 혁명가 호세 마르티 이야기를 하면 노래 이미지 반전에 충격 받는다.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와 미군 주둔 관타나..
종편 방송을 중심으로 불붙은 ‘트로트’ 신드롬이 실로 대단한 광풍이군요. TV조선이 시작한 트로트 경연 열풍에 거의 모든 방송사가 영향을 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발라드·재즈·록 등은 물론 아이돌 출신들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앞다투어 몰려드는 풍경이 일상이 됐네요. 배우들이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일도 귀한 일이 아닙니다. 트로트 경연에 나온 유명 발라드 가수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짠하게 만들더군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장르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어쨌든 도전하는 모습은 참 대단합니다. 평생을 걸고 해온 음악을 버리고 트로트에 뛰어드는 행태에 대한 일부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은 장르마다 특징이 있고, 독특한 매력도 따로 있긴 하지요. 그 가치를 지키는 일도 소중하지만, 다양한 도전을 끝내 비난할 이유..
세계 질서와 안보가 미·중 패권 구도로 긴박하게 빠져들고 있다. 지난주 미국에서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강력한 대중국 공조를 천명하면서 미중 사이의 대치 전선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미·일은 특히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중국에게 가장 예민한 대만 문제를 50여년만에 두 정상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일본으로서는 1972년 중국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한국처럼 대중국 교역 비중이 큰 일본이지만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을 향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도쿄올림픽에 대한 지지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방위를 재확인하는 반대 급부를 얻어냈다. 이를 놓고 일본 내부에서 우려와 함께 여러 시각들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미·일정상회담을 계기로 동북아와 동중국해 등 역내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와 함께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두 나라는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동맹 및 지역의 안전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방위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결의했다”고 명시했다. 지난 3월 미일 외교·국방 장관(2+2) 회담에서 밝힌 ‘동맹 강화를 위해 능력의 향상을 결의했다’에서 수위가 올라갔다. 일본 언론 조차도 이례적으로 평가하는 이같은 선언은 패권을 유지해야 하는 미국의 이익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당장 아사히(朝日) 등 일본 언론들은 “현 단계에서부터 미군과 자위대 사이에서 대만해협 유사 사태를 가정하고 실천적인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들이 대두되고 있다는 식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또 대만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미군을 후방지원하는 '중요영향사태'나 집단자위권을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존립위기사태'를 검토중이라는 기사까지 내보내고 있다. 일본의 역대 정권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안팎으로 억제하고 있지만 이번 미·일 공동성명에 따른 방위력 증강 소요로 2%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미·일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반도체, 5G(6G), 양자컴퓨터 투자 등 산업 분야에도 의기투합했다. 앞으로 식량, 에너지를 포함한 어떤 부문이 미중 싸움에 휘말릴지 알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현실을 보라. 국제질서가 구한말이나 냉전처럼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북핵 문제에다 일본 군사력 증강까지 이어지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달 바이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필두로 경제협력, 백신 확보 등에서 미국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반면에 미국은 대중포위 전선에 한국의 합류를 강력히 요청할 것이다. 어렵지만 국익과 한미동맹을 살리는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미정상회담 결과가 초래할 파장까지 모든 부문에서 사전에 우리의 내부를 점검해야 한다.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 15만명 앞에서 행한 그 연설을 지켜보면서, 이제 남북의 실질적 평화시대, 나아가 남북연합의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조였던 기억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분단 70여년의 역사가운데 그 날처럼 한반도 평화의 꿈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실감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이 문재인정권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해 김정은위원장 신년사와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 이 후 특사파견에 따른 북미정상 만남의 주선과 4·27 판문점 남북정상의 만남에 이은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실현, 결과물인 합의문에서 북이 그간 그렇게도 바라왔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이라는 성과를 얻게 되면서 우리 문..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1936~2011) 대통령이 유명했던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청바지를 입고 뒷 주머니에 시집을 꽂은 채 주말이면 공연을 보러 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건 상당 부분 하벨이 대통령이 된 후에 윤색된 얘기이거나 그의 전기 영화에 쓸 요량으로 첨삭된 각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벨처럼 시인이나 극작가는 정치를 해서 비교적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는 있어도 그 역(逆)은 그리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정치라는 영역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끌어 들일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는 얘기다. 수많은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한 것은 인문학과 예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그랬다. 예술이 사라진 사회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인민에 봉사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한들 선전(宣傳), 선동(煽動)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벨이 체코의 벨벳혁명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늘 미완의 혁명이며 때문에 영구적으로 혁명을 수행해 나가야 하되 수평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한다는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와 그녀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칼 리프크네히트(1871~1919)의 얘기는, 그래서 맞는 말이다. 반면에 수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 역시 인문학과 예술의 정치에로의 수렴을 거의 생각조차 못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나라가 거의 최고조의 수준이다. 그래서 정치가 늘 천박하다. 천박한 정치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주고, 그 냉소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무관심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역사적 무지와 정치적 사고의 왜곡을 가져 온다. 예컨대 소위 아이비 리그 중 하나라는 미국 예일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아무리 부동산 부자나 개발론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시장이 됐다 손 치더라도 이 코로나19 정국에서 음식점이나 유흥업소의 영업제한 시간을 22시에서 24시까지 연장하는 것보다는 관객 수가 격감한 극장이나 공연장에 수행원없이 가는 일(시찰보다는 관람)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뒀어야 했다. 극장과 공연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안팎의 자영업자까지 거의 문을 닫았을 정도다. 문화를 살리면 경제를 살릴 수 있되 방역의 정치 영역에서 가장 점진적이고도 조심스럽게 자영업자들을 살릴 수 있는 일이다. 법률 공부는 했지만 예술은 별로였던 모양이다. 상상력이 별로이다. 사람은 빵이 없으면 살지 못하지만 빵만 가지고는 절대로 살 수 없고 결국 장미가 있어야 한다는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를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강남 쟁골 마을이라는 전원 고급 주택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대의 사건(MBC TV '실화탐사대')을 보고 있으면 정치가가 예술적이거나 교양스러워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하벨처럼 예술가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쟁골 마을에서는 진대제 전 장관, 이인제 전 의원, 안상수 전 창원시장, 그리고 다수의 재벌기업 회장 등이 수십억원대의 집을 짓고 살면서 한 젊은 부부가 이웃 해서 작은 집을 짓는 것을 온갖 추접스러운 수단을 써서 방해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그 ‘작은 집’이 자신들의 조망권을 해치고 결국 동네 집 값(진대제의 집은 40억원으로 알려졌다.)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이쯤 되면 거의 악마 수준이다. 이런 자들과 신임 서울시장이 다시 손을 잡고 서울을 부동산 개발 공화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최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칼럼에서 하벨을 소환시킨 모양이다. 하벨처럼 윤석열도 정치에는 문외한이지만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기 위해서이다. 이건 전광훈이라는, 자칭 목사라는 자가 본 회퍼의 생을 들이대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 마디로 ‘얻다 대고’이다. 윤석열은 하벨처럼 체코의 ‘프라하의 봄’ 때 저항을 했던 인물이 아니다. 윤석열은 그 반대로 소련의 탱크에 앉아 있었던 군인 같은 인물이다. 전광훈이나 진중권을 두고 견강부회(牽强附會)란 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논에만 물을 끌어다 대는 일, 곧 아전인수(我田引水)인 셈이다. 이들 모두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기사들일 뿐이다. 실로 조심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굉장히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모른다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다. 아무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잘못된 일이다. 지식인들의 논리 정연해 보이는 말들은, 때때로 어떻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애매한 의미를 언어에 부여함으로써,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회피하려고 한다. 이유는 ’모른다‘고 하는 매우 솔직담백한 말이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 인간의 무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태어나면서부터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무지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현자만이 도달하는 깨달음의 무지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것저것 거죽만 핥은 얄팍한 지식을 갖고 대..
지난 13일 오전, 일본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발전소 부지 내 탱크에 저장해오던 다량의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로 각료회의에서 최종확정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과 유엔도 유감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내에서의 ‘퍼블릭 코멘트’라는 의견공모에서 조차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전 세계인을 피폭자로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난하며 70%가 바다 방류를 반대 하였지만 이러한 모두의 우려섞인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독선적 판단임이 분명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명백한 전범국가이다. 본인들의 군국주의 야망에 사로잡혀 전 세계, 특히 동아시아 국가에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일으켜 전 세계를 불행의 그늘로 몰아넣은 것이 고작 70여 년 전이다. 전범국으로 본인들의..
떨어진 목련은 걸음마도 못하고 죽은 아기 발바닥 같다 어떤 어미가 있어 잘 드는 칼로 죽음의 발바닥을 벗겼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한 겹 두 겹 내려놓고 아장아장 걸어가길 한없이 빌었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사월에는 발도 없는 아기가 와서 발바닥으로만 발바닥으로만 하얗게 걸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