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 되똥되똥 걸어와 후다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 /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 /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다시 일 나간다” 이시영 시인의 「당숙모」라는 작품이다. 당숙모는 종숙모라고 부르는 5촌으로 시골에서는 흔히 ‘아지매’라 부르기도 했다. 새끼를 여러 마리 품고 있는 암탉의 사진들을 종종 보듯 여기 ‘당숙모’는 그런 암탉으로 그려져 있다. 암탉이 집밖에 나갔다가 꼬꼬댁거리며 집안에 들어오듯 밭일을 나갔다가 당숙모가 집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난장판을 벌이며 놀고 있다. “이놈 새끼들아 제발 좀 어지르지 말고 치우면서 놀아라.” 구시렁거리면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따뜻한 밥을 차려 내온다. 집안에 할머니에게도 차려주고 애들도 먹고 자신도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다시 일을 나간다. “싸우지 말아라. 흙 장난질 치다 옷 버리지 말고…” 또 구시렁대며 밭일을 간다.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미주알은 항문을 이르는 말이니 정말 우스꽝스럽지 아니한가. 다소 수다스럽지만 생활력이 강한 푹 퍼진 아지매의 뒷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몸배바지를 입고 뒤똥거리며 일 나가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절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이 주는 것이 바로 해학의 미학이다. 복잡한 현대 생활을 살아가면서 생활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문학이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학에서 재미성, 더 나아가 해학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현대시나 시조가 고(古)시가보다 못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점에서일 것이다. 고시가에서 해학적 요소는 중요한 미적 요소인 반면 현대시나 현대시조에서는 이러한 면에서 너무 진지한 쪽으로 변모해버렸다. 해학은 잘 알다시피 사회적 현상이나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이다. 해학은 풍자와 함께 혼용되는 중요한 미학적 방법이다. 둘은 주어진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비꼬아서 표현하는 기법이다. 해학이 공격받는 대상에 대한 동정으로 인하여 읽는 이에게 그런 상황을 공감하게 하여 우호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특징이 있는 반면, 이와 비슷하게 쓰이는 풍자는 대상에 대해 부정적 비판적 태도를 취하므로 아이러니(Irony)와 비슷하다. 그러나 풍자는 어떤 면에서 아이러니보다도 더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 의도를 지닌다. 예를 들어 『흥부전』에서 ‘흥부’는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대상이라면, ‘놀부’는 노골적인 공격의 풍자 대상이 된다. 소설에서는 김유정이 「봄봄」, 「동백꽃」, 「만무방」 등의 작품을 통하여 고전문학 속에 나타나는 해학성을 계승하면서 당대 서민들의 현실을 형상화하여 웃음으로 비참한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주기는 했지만 시나 시조에서 이러한 전통계승은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해학적인 시나 시조들이 많이 창작되어 어려울수록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면 좋겠다. 모두가 힘들게 넘어가고 있는 2020년 여름 「당숙모」같은 친근한 웃음이 그리워진다.
미국이 난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사회혼란을 겪고 있다. 방송에서는 상점을 약탈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위대의 자정 노력에 의해 약탈 행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약탈자가 대부분 흑인 중심의 유색인종이라는 것이고, 여기에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였던 미국이라는 국가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종차별주의가 2020년에 다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종차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노예제 폐지를 두고 격돌했던 남북전쟁 이후에 인종차별이 더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원인이 있었다.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남부의 7개 주는 미연방에서 탈퇴하였지만, 테네시주의 앤드류 존슨은 링컨을 지지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남북전쟁 중이던 1864년 링컨이 재선에 도전하였고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발탁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1865년 4월 링컨이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을 당해 사망하였고, 앤드류 존슨이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남부 출신의 앤드류 존슨은 남부 주들이 해방 노예의 권리를 제한하는 주(州) 법안을 만들어도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데, 이는 노예해방 전쟁이었던 남북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부 지역이 오랫동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상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화 ‘그린북’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영화는 천재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 박사의 운전기사로 고용된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가 미국 남부 지역으로 콘서트투어를 떠나면서 겪게 되는 차별과 혐오를 그리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흑인이 미국 남부를 여행할 때 출입 가능한 레스토랑과 숙박업소를 알려주는 책이다. 현실에서도 ‘흑인’ 아버지에서 ‘흑인’ 아들로 대물림 되었던 책! ‘그린북’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이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증거물이었으며, 과거의 유물쯤으로 치부되었던 그 책의 음울함은 아직도 미국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미국의 다문화주의를 표현할 때 ‘용광로(Melting Pot)’ 모델이라고 한다. 거대한 사회인 용광로에 다양한 민족을 ‘미국’이라는 가치로 녹여낸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백인 주류 문화를 중심으로 소수 민족과 유색인종을 대상화하여 통합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주류 사회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대변된다. 이 용어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수 디그비 발트첼(E. Digby Baltzell)이 그의 책(The Protestant Establishment: Aristocracy & Caste in America. 1964년)에서 언급하면서 대중화되었는데, 사회학적, 문화적, 민족지칭어라고 할 수 있다. WASP는 백인이면서 앵글로-색슨 민족이며 개신교도를 일컫는데, 미국의 다문화정책은 개신교 신자인 백인의 정체성을 근간으로 ‘위대한 미국’의 건설만이 목표였고 이민족이나 흑인의 다양성은 존중받지 못하였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위한 정책은 북부지역에서 조차 보잘 것 없었다. 피츠버그에서는 백인과 흑인학생이 함께 교육받지 못했고 로드 아일앤드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금지되었었다. 이와 같은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교육 받을 권리에서 멀어져 있다. 2019년 미국의 4학년, 8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전국학업성취평가(NAEP)를 보면 흑인 및 히스패닉 계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역사적으로 지속되면서 흑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이 백인 주류사회와는 다른 ‘터그라이프(Thug life)’라고 생각한다. 터그라이프는 폭력을 일삼는, 쿨(cool)한, 얽매이지 않는 등의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백인 주류 사회를 향한 저항이자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으며 스스로의 삶을 세상에 내던져버린 막장의 삶이기도 하다. 2020년 오늘의 미국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청산하고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을 것인가 아니면 백인 중심의 사회를 고집하면서 반복되는 사회혼란을 감내할 것인가. 과연 트럼프의 트위터는 어떤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을까?
1987년 서울시청앞 광장, 광화문, 종로, 남대문시장, 명동을 가득 메운 함성으로 전두환 독재정권의 ‘6·29 항복선언’을 받아낸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이 (구)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렸다. 6·10민주항쟁은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공안경찰의 거짓수사 발표로 우리들 뇌리에 남아있는 부산 출신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본부가 강력한 반독재 저항을 전개하면서 시작됐다. 광주출신 연세대생 이한열군 최루탄직격 사망사건은 국민적 저항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게 되었고,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길에 위치한 경찰청 산하의 대공수사기관으로 5층에 취조와 고문이 이뤄졌던 15개 조사실이 있었고, 박종철 열사는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509호에서 사망했다. 경찰청 인권센터를 거쳐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관리이관되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름 지어졌고, 2022년 정식 개관이 예정되어 있다. 전 세계인이 함께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감동을 느낄 민주주의의 기념비적 장소로 탄생하길 바란다. 살아남은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이제는 열사들의 희생으로 다져진 제도적 민주주의를 주춧돌로 삼아 민주주의의 일상화, 생활 속 민주주의로 뿌리를 내리고 꽃피워나가야 한다. 이 길이 목숨을 다해 민주주의를 만든 열사들의 헌신에 답하는 길이다. 이한열 열사를 광주망월동 묘지로 떠나보내는 날 연세대학교 영결식장에서 모두 함께 불렀던 노래가 입안에 맴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중략)…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심흥식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