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대동강변에 버드나무가 많아 류경(柳京)으로 불려왔다. 옥류관(玉柳館)은 맑은 대동강 물과 버드나무 강변을 가로지르는 옥류교 옆에 한옥지붕을 얹힌 2층 건물이다. 필자는 2018년 8월 중순 평양에서 열린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참관했을 때 처음 옥류관 평양냉면, 쟁반냉면을 맛보았다. 식당 봉사원이 ‘평양냉면 먹는 법’ 시범에서 꼭 면에 식초를 처서 먹으라는 당부가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당시 평양대회는 분단이후 민간교류 사상 처음으로 서해선 육로(파주~개성~평양)를 통해 선수단 및 관계자들의 방북이 이루어져 국내외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은 북한선수단 평창동계올림픽 참석과 남북단일팀 구성, 4.27 판문점회담 등으로 남북관계가 더할 나위없는 평화적 대화 국면이었다. 8월 평양 국제축구대회도 공중파방송 3사와 JTBC가 동행 취재했고, 금강산피격사건 이후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평양의 모습을 다시금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KBS는 8월15일 9시뉴스 톱으로 평양 현지 생방송을 송출해 경쟁사들의 부러움을 샀다. 또 동행한 언론인들은 10박 11일간의 일정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방영해 평양거리의 변화와 시민들 일상 모습에 목마른 시청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오늘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을 맞았다. 대북삐라 살포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 북한 김여정의 연이은 대남 비난이 계속되고 있어 불볕 더위 만큼 불쾌지수를 높인다. 이 와중에 평양 옥류관 주방장은 “국수를 처먹을 때는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라는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김여정과 옥류관 주방장 발언 사이에 그들이 격앙하는 이유의 실마리가 보인다. 북측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해 적절한 대응 메시지 전략이 긴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평양 보위부의 김선생과 옥류관 이봉사원 동무를 다시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심흥식 논설주간
군산 첫 방문은 고군산군도 탐방이었다. 아침에 새만금방조제 근처를 산책하다 보니까 방조제 규모에 놀랐다. 군산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타고 가는 도로에서 본 군산산업단지를 보고는 다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택시운전 기사가 가는 길목에 펼쳐지는 군산의 산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들려줄 때, 그리고 과거 일제강점기 때 군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군산의 근·현대사에 대해 짧게 이해하게 되었다. 군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생활 터전이 이곳임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군산에 대한 자부심이 인상이 깊었다. 그리고 향후 군산이 타 항구도시보다 근대의 모습들이 잘 간직되어 있는 만큼 많은 외지 관광객들이 꾸준히 올 것이고, 최근 들어 더 꾸준히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군산 구도심 재생은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군산이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남아있던 일본 적산가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존, 유지하고 현존하는 군산시의 근대 건축들을 지역 정체성으로 부여하면서 차별화된 대표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문화관광 정책을 통해 군산 구도심의 문화자산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군산 월명동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에는 지속적으로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군산시 1930년대 근대화 문화 콘텐츠를 통한 관광 정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월명동 주민센터 주변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배경인 초원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많은 외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대부분은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추억에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이 부근을 중심으로 인력거도 운영되고 있다. 과거 일본 적산가옥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든 ‘고우당’은 그 오랜 명성에 걸맞게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고우당’ 근처에 집중이 되어있는 군산의 여러 관광 명소들을 숙박을 하면서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군산은 인천, 부산, 여수 등과 마찬가지로 항구도시로서 물류 및 어업 생산기지이자 경제 중심지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여살고 상업 활동을 하면서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개항기를 거쳐 근대문화의 도시인 군산시 여행의 주제는 ‘Hello Modern 군산시간여행 1930 길’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의 근대 유적에서 시작된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이 ‘근대역사박물관’으로 일제 강점기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근대문화의 자원을 전시하고 있다. 바로 이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옛 군산세관 본점이 있다. 과거 군산세관 본점은 1908년 준공, 서울역사, 한국은행본점건물과 더불어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다. 군산시는 이러한 근대유산을 바탕으로 외지인들의 관광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근대 유산을 지역 문화관광의 정체성을 통해 그 문화자산으로 삼고, 복원 및 원형의 보존을 통해 군산 원도심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에서는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소개되었던, 옛 조선은행은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한국은행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을사녹약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광복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됐다. 동네 앞길로 기차가 지나갔던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은, 총 길이 2.5㎞로 1944년 4월 4일 신문용지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기차가 지나갈 때에는 역무원 세 명이 기차 앞에 타서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쳐 사람들의 통행을 막았다고 한다. 2008년 7월 1일 통행을 완전히 멈추었지만 철길은 그대로 남아서 이를 통해 기억의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구도심의 재생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렇듯 군산은 문화관광 콘텐츠를 첨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의 창고를 통해 그 지역의 정체성과 대표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8년 세계은행은 ‘What a Waste 2.0’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세계의 쓰레기 위기에 관한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세계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고형 폐기물)의 양은 2016년 약 20억 톤에서 2050년 34억4000만 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환경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국내 하루 평균 폐기물 처리량은 26만 톤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3.2%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중 건설 폐기물(21만 톤, 46%)과 사업장 폐기물(17만 톤, 38%)이 가장 많다. 둘을 합치면 84%나 된다.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비해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소각 시설과 매립 시설 등은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폐기물 배출을 줄이거나 이를 재활용하..
어느덧 무더위가 시작됐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 확산 추세는 지속되고 있어 걱정이 크다. 더욱 우울한 소식은 올해 안에 코로나19 종식이 어려운데다 예방 백신이 나오지 않으면 이 상황이 2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다. 손 씻기 생활화, 기침 예절준수,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이다. 특히 마스크 쓰기는 필수다. 8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영국 의학 학술지 ‘랜싯’에 나온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마스크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과 관련한 문헌 44개를 메타 분석한 연구 결과다. 이에 따르면 병원에서 마스크를 쓰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85% 감소하며 물리적 거리를 1m 유지할 경우 감염 위험은 82% 감소한다는 것이다. 1m 간격씩 추가될 때마다 효과는 2배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정본부장은 더워지는 날씨에 불편하고 힘들어도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유지를 일상생활에서 습관화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열대야까지 시작된 여름철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통풍이 잘되고 호흡곤란을 일으키지 않는 덴탈마스크를 권장하고 있지만 현재 공급물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최근 코로나19 산발적 집단감염이 일어난 클럽, 물류센터, 교회, 방문판매회사, 탁구장 등은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확산세가 지속되자 당국은 마스크 착용을 거듭 호소했다. 지난달 26일부터는 버스와 택시,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불응한 승객이 운전기사와 역무원을 폭행하는 일까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강제 규정이 아니므로 기사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해도 승객이 이를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안일한 사람들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며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또 다른 청원자는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은 당당하고 오히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그들을 피해 다니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며 마스크 미착용은 경범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벌금 부과 등 실효성 있는 단속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다. 조속한 종식을 위해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식탁이었다. 큰 꽃잎 문양이 수놓아진 식탁보 한가운데 해바라기와 이름 모를 꽃들로 장식된 화병이 놓였다. 냅킨이 곱게 접혀있었고 은색 숟가락과 포크가 놓여있었다. 큰 접시들에는 구운 오리고기와 오믈렛과 샐러드, 미군들이 먹는다는 햄과 베이컨과 ‘에그 프라이’가 그득했다. 선교사님이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이모와 사촌 형, 누나들이 자리에 앉자 선교사님이 기도를 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이모님이 나를 위한 기도를 특별히 하셨다. 이모는 나를 부를 때 ‘미스터 고’ 라고 했다. “미스터 고가 주님의 은총으로 명문 ㅇㅇ대의 법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크게 쓰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모의 기도는 밝고 높은 톤이었다. 특히 법대라는 대목에 강한 악센트를 주셨다. 이모는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조카의 앞날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선교사님과 이모는 영어로 대화를 나눴고 누나들도 가끔씩 영어로 농담을 했다. 그들은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손짓을 했는데 나는 몇 마디 단어를 알아들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아이 언더스탠드’ 라고 겨우 대답했다. 그러나 덕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이모의 충고가 시작되었다. 이모는 한국의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한국 사람은 게으르고 더럽고 무엇보다 법을 지키지 않는 무식한 민족이었다. 한국 사람은 무식하게 술을 많이 먹었고 심지어 밥상에 책상다리로 앉아서 밥을 먹는 것도 미개한 행동이었다. 그에 반해 미국은 모든 것의 표준이었다. 이모는 ‘아메리칸 스탠다드’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그런 이모의 말에 주눅 들었다. 무엇보다 영어는 내 인생의 큰 콤플렉스였다. 전곡에 사는 이모는 선교사의 초청으로 식구들을 전부 이끌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그때부터 전곡이모는 미국이모로 불렸다. 나에게 미국이모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국이모는 세련됨 그 자체였다. 나는 미국이라는 제국을 동경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인연은 내 생애 딱 한번 뉴욕에 열흘 출장 간 경험밖에 없었다.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나는 미국이라는 제국에 탑승하지 못한 승객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미국으로 갔던 사촌형이 제일 먼저 귀국했다. 형은 십 년을 미국에서 살았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귀국한 형은 술에 쩔어 살더니 어느 해 여름 홍수로 차가 흙탕물에 휩쓸려 돌아가셨다. 이내 두 누나가 귀국했다. 누나들은 영어학원에서 강사를 한다고 했다. 그 후 미국이모도 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 나는 이모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재회를 위해 전곡에 갔다. “아이고 행곤아, 너도 많이 늙었구나.” 미국이모에게 나는 더 이상 미스터고가 아니었다. 호호백발이 되신 이모의 주름진 얼굴이 애처로웠다. 이모는 더 이상 미국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모의 아메리칸드림은 깨진 걸까? 최근에 미국에서 들려온 지인들의 증언이 자꾸만 귀를 울린다. “코로나가 분명하지만 병원비가 겁나서 진료를 포기했다.” 흑인을 목 졸라 죽인 백인 경찰의 득의만만한 표정과 시위하는 시민에게 경찰차를 몰아가는 뉴욕경찰의 모습을 CNN 뉴스에서 본다. 숨이 막힌다. 나의 아메리칸드림은 깨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용시장 충격으로 5월 취업자 수가 39만 명 이상 감소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기업들을 옥죄는 노동조합법 개정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권 초기 호기롭게 표방했던 ‘일자리 정부’ 구호가 떠오른다. 배고픈 국민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코로나를 핑계로 허술히 가고 있는 점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 고쳐가야 할 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만3천 명 늘어난 127만8천 명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0.5%포인트 오른 4.5%로 역대 5월만 놓고 보면 통계 작성 후 최고 수준이다. 경제활동인구는 1년 전 대비 25만9천 명 감소했다. 구직 의지가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전년 동기 대비 55만5천 명 증가한 1천654만8천 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 고용률을 살펴보면 60세 이상 고용률만 0.3% 늘어난 43.1%를 기록했고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전년 대비 모두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1.4%포인트 줄어든 42.2%로 하락 전환했다. 이미 예상됐던 코로나19가 잇따라 몰고 오는 경제 혼란 쓰나미가 드디어 시작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고용 창출을 위해서 먼저 집중해야 할 정책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60대 이상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아무리 늘려도 ‘좋은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말할 수 없다. 청년층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진정한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만들어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반기업적’ 대선공약에 발이 묶여 시의적절한 정책들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공약은 ‘늘·줄·높’(일자리는 늘리고, 비정규직·근로시간은 줄이며, 일자리의 질은 높인다)으로 요약된다. 집권 3년을 넘긴 지금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지 딱히 짚이는 구석이 없다.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專任者) 임금 지급 금지조항 삭제’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와 경영자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밝힌 “고용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말이 자꾸만 초라한 변명으로 들린다. 핑계만 있고 감동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 ‘일자리 정부’ 공약(空約)에 대한 국민적 아쉬움이 깊어가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실용적’인지 깊이 점검해볼 시점이다.
도시화는 영국에서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계기로 영국에서 발원하여 유럽 및 전 세계로 확산됐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주택이나 도시 시설의 건설이 불가피해지면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됐다. 도시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과 문화적 편리함을 제공한다. 반면, 환경오염, 열섬현상, 소음, 범죄, 교통사고, 이웃 간의 갈등 등의 부작용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니와 도시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지금 인간이 체험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의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원인이며 도시화가 빚어내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은 예상하지도 못했고 지금 우리가 그것을 처음 겪고 있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는 세계인구의 76%가 도시에 집중해 살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조사한 '2018년 도시계획현황 통계'를 보면, 한국 국민의 92%가 국토면적의 17%에 불과한 도시에 모여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 인구가 모이게 되면 도시개발이 (인구이동이 먼저인지, 도시개발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산림훼손이 수반된다. 야생동물은 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채 대부분 별 이상 없이 공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식지와 먹이를 잃게 되어 마을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야생동물이 기침을 하면 그 바이러스가 77억의 사람과 그보다 더 많은 가축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대도시는 바이러스 전파의 최적지인 셈이다.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의 약 80%가 수도권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발생했다. 영국의 사우샘프턴대를 비롯한 3개국 연구기관이 공동 조사한 바에 의하면 코로나 확산 위험이 있는 세계의 30개 지역은 모두 대도시였다 (서울은 4위로 분류). 국내에서 한때 발병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수도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연구결과를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전염병 확산의 근원지가 되는 대도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다. 아무리 편리한 여건이 갖춰져 있다 해도 생명과 건강보다 앞서는 가치는 없다. 민선 경기도지사들은 정부와 지방의 자치단체를 상대로 수도권규제법령을 철폐하는 투쟁과 논쟁을 끊임없이 지속했다. 더 나아가 A지사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초강대도시’ 육성을 주창한 바 있는데, 경기도가 이미 포화상태이며 난개발이 만연한 상태에서 이런 주장들은 정부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성과도 극히 미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들의 주장이 국내외 현실 인식, 지방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타주의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도시정책을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 맞춰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자체장의 치적을 위한 도시개발을 멈추고 현재의 도시가 지속가능한 차원에서 인구의 적정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진단해야 한다. 규모가 초과상태라면 인근 지자체들과 협력하여 분산을 모색하고 필요하지 않은 과잉 도시시설을 덜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필자가 만나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 중에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원주택을 구입해 교외나 농·산촌으로 이사할 계획을 구상 중이거나 실제로 실행에 착수한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 또한 조그마한 전원주택과 텃밭을 갖는 것이 꿈이다. 대도시의 종말과 중소도시의 부활의 시대가 오고 있다. 뉴노멀 시대의 도시 모델은 숲, 농지, SOC가 적절히 조화롭게 갖추어져 있고, 적당한 사회적거리를 유지하고도 공동체의 숨결이 살아있으며, 도시 자체나 인근 지역에 적정한 근린생활시설을 구비한 중소도시가 대세가 될 것이다.
환경운동가 출신의 염태영 시장이 세 번 째 연임중인 수원시는 ‘환경수도’, ‘생태도시’, ‘레인시티’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수원시는 타 지방정부에 앞선 환경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증가된 강우 유출로 인한 오염 부하를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기법으로 관리하기 위한 ‘레인시티’ 사업이다. 빗물정원, 빗물을 이용한 사계절 노면 살수, 빗물침투화단, 투수블록, 빗물침투도랑, 빗물저금통, 빗물주유기, 나무여과상자, 투수성주차장 등 빗물 이용시설과 중수도 시설, 그린 빗물 인프라 등 물 순환하는 사업들이 시작됐다. 이후 빗물의 표면 유출량이 감소되고 빗물 침투량은 증가했다는 물수지 분석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창가에 녹색식물을 심어 태양광을 차단함으로써 실내온도를 3℃ 이상 낮추고 전기에너지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
미래통합당에서 시작된 어젠다들이 뉴스를 장식하면서 제1야당이 총선 대패의 충격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인상이다. 진보적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내놓으면서 대중의 관심을 일깨우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비대위원장)에 대해 기존 통합당 중진들이 비판을 꺼내 들고 있다. 그러나 ‘보수’를 표방했던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포함)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김종인의 이슈 파이팅을 비판할 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논쟁을 시도하는 게 맞다. 통합당의 잠재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원희룡 제주지사가 뜻밖으로 한바탕 ‘보수 타령’을 늘어놓았다. 원 지사는 9일 미래통합당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실력을 인정할 수 없는 상대한테 3연속 참패를 당하고, 변화를 주도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잃어버렸다”며 “보수는 우..
텔레비전 화면에서 송해를 볼 때마다 아련한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란 제목으로 1972년에 시작했다가 1977년 4월까지 진행했다. 1980년에 ‘전국노래자랑’으로 재탄생한 뒤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5년 11개월 동안 맡다가 몇 개월 다른 사람이 맡던 것을 1994년 10월부터 다시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뒤에 맡은 기간 만도 26년, 그 전까지 합치면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얼마전 그만 둔 강석, 김혜영은 각각 36년, 33년 동안 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진행자의 재능 여부를 떠나서 특정인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는 ‘가요무대’가 있다. 1985년 11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사회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맡고 있다. 2대째인 1985년 11월부터 2003년 6월을 진행한 뒤 다시 2010년부터 4대째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4대만 본다면 10년, 2대 9년까지 더하면 19년을 같은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해당 프로그램의 상징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바뀌면서도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프로다. 1964년 ‘라디오 서울’(RSB)에서 첫방송을 시작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동양방송(TBC)을 거쳐 한국방송공사(KBS)로 넘어간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성화 아나운서가 초대 진행을 맡은 이후 37명째 진행자가 바뀌었지만 같은 타이틀로 56년을 이어 오고 있다. 1991년 프로그램 개편으로 폐지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이듬해에 같은 제목으로 다시 살아나 최장수 프로그램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69년부터 시작해 오남열, 차인태, 이종환, 조영남, 이문세, 이휘재 등 27명의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5월부터 김이나 작사가가 27대 진행자를 이어 받았다. 역대 진행자들은 각각 다른 솜씨의 진행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진행자가 바뀌어도 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 이어 장수 프로그램으로 통하고 있다. 어느 진행자가 특정 프로그램을 오래 맡고 있다면 나름의 개성이 있거나 방송국의 전략적 의도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특정한 프로그램이 장수하는 것은 탓할 일이 없다. 특정한 진행자가 장수하는 것과는 다르다. 방송은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닌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동원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진행자가 오래될수록 해당 프로그램은 진행자와 동일시되거나 진행자가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본인이나 기획자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유화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특정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장수하면 상대적으로 진행자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널리 알려질수록 친근함도 높아져 유명인이 되기 쉽다. 어느 진행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 기념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기여도가 큰 인물 중에서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진행자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내기까지 한다. 특정 프로그램에 광고를 붙이는 일은 진행자가 결정하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그램 진행과 광고를 함께 듣는 기분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유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방송을 사유화하는 것은 방송의 공공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진행의 능숙함 여부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능숙하다거나 그만한 진행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안일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진행자가 바뀌어도 프로그램은 온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는 증명하고 있다. 세상 모든 분야에는 정년이 있고, 정년이 아니더라도 물러 나야 할 때가 있다. 공공방송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공재인 방송이 특정인의 노후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