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쉽습니다. 몇 줄로 요약한 평생도 그렇습니다. 기록된 평생은 몇 줄의 만남과 그보다 더 길게 남는 헤어짐입니다. 자식으로 만났다가 부모가 되어 헤어집니다. 앞서고 뒤따름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습니다. 가을 다음은 겨울이고 그다음은 분명히 봄이라야 하지 않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사랑보다 앞서, 그리움보다 빨리, 떠나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떠나는 버스를 붙잡을 수는 있어도, 약해지는 호흡과 잦아드는 맥박을 되살릴 수는 없습니다.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헤어짐은 필연입니다. 사랑으로도 묶어둘 수 없습니다. 날개 달린 것들은 날개에 힘이 생기면 둥지를 떠납니다. 발로 서는 것들은 발로 서는 순간 떠남을 예고합니다. 꼬리로 헤엄치는 것들은 알을 낳음으로 혈연을 끊습니다. 인연이 아름다운 것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한정된 삶이 있어서입니다. 영원히 살 수 없어서, 마감할 수밖에 없는 관계는 더 오래 기억됩니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입니다. 산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입니다. 헤어짐은 순간입니다. 순간일수록, 오래도록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이별의 순간인데도, 방금 지나친 일처럼 떠오릅니다. 함께 걸었던 골목의 촉감이 구두에 밟히고,…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 한 분이 대화 중 문득 "저는 말을 많이 하면 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이 지쳐요" 하였다. 사연인즉슨 그는 어린 시절부터 종갓집의 종손으로 각종 집안 행사에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인사하며 잘 맞이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늘 받았다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은 아이에게 처음에는 큰 압박이었지만 자라면서 내면화되어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도 말하며 분위기를 좋게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러다 보면 종종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의 몸은 내원 때마다 자율신경 검사(Heart rate variability; 심박변이도)검사상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비율이 10대 1 정도로 교감신경이 과 항진되어 있었다. 그에게 “ 항상 전투 모두에 있는 것과 같이 긴장되어 있어요. 비유하자면 초원에서 맹수에게 쫓기고 있는 상태와 비슷하지요. 계속되면 긴장 초조 불안한 느낌이 나고 잠도 잘 들기 어렵고 소화 대변 소변 등이 이상이 나타나기도 해요. ” 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실제로 조금만 긴장해도 땀이 많이 났고 밤에 잠들기가 어렵고 여러번 깨고 종종 소화가 잘 안되었다. 그에게 자율신경과 장기능을 돕는 한약과 함께 이완호흡, 마음챙김을…
지난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전 세계 118개국 223개 투표소에서 재외선거가 치러졌다. 약 20만 명의 재외국민이 국외부재자 또는 재외선거인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투표소를 찾은 이들은 단순한 유권자가 아니다. 이들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책임과 연대를 실천하고 있는 진정한 세계시민이다. 그러나 이번 재외선거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낮은 신고·등록률, 근거리 투표소 부족, 우편·온라인투표 미도입, 투표 홍보·캠페인 활동 제한, 과도한 투표비용, 동포사회 분열 우려 등은 여전했다. 각 후보의 공약집과 정책 자료는 충분하지 않았고, 재외 유권자를 위한 맞춤형 정보 제공도 미흡했다. 글로벌 대한민국을 외치면서도 정작 재외국민 참정권은 여전히 선언적이었다. 이번 조기 대선은 12.3 비상계엄과 4.4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치러진다. 새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도 없이 오는 6월 4일부터 바로 국정 운영을 시작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거나 검증되지 않은 리더는 국가 리스크이고, 그 피해는 전 국민에게 돌아온다. 유권자들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20년 미래를 결정짓는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
기자에게 “누가 그럽디까?” 묻는 건, 뺨 맞을 일이다. ‘언론의 본디’를 포기하라는 것이니, (제대로 된) 기자에게는 결코 해서는 아니 될 질문인 것이다. 누가 제보자인지를 누설했다면, 어느 누가 언론(인)을 믿고 장차 위험이나 손해를 감수할 제보를 할 것인가? 언론 ‘가치’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꼴 아니겠는가. 언론 문헌에 곧잘 등장하는 ‘취재원 비닉(秘匿)의 원칙’이다. 원칙이란 말은 그 ‘뜻’의 무게를 짊어지는 어휘다. 또 비밀스럽게 숨겨준다는 비닉이라는 낯선 말도 위세를 더한다. 요즘에는 ‘취재원 보호’라는 말로 그 강세(强勢)를 좀 눌러서 쓰는 것 같다. 또 이는 ‘제보자 보호’라는 활용의 폭이 좀 너른 말과 혼용되는 모양새다. 언론뿐 아니라 정치집단이나 경찰 검찰, 각급 정부기구와 기업 등의 감사부서에 ‘내(나만) 아는 사안(事案)’을 공익(公益)의 목적으로 알리는 일은, 세상을 바루는 역할로 중요하다. 사안의 특성상 이 절차는 대개 조용히 진행된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이런 제보자나 취재원을 deep throat(딮 쓰로트·깊은 목구멍)라는 은밀한 속어로 불렀다. 그 판사님이 (고급) 룸살롱에서 향응(饗應)이란 어휘로 통용되는 접대를 받았다면,
새 교황이 탄생되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 14세’, 이는 19세기 말 노동자 착취를 고발한 교회 교리의 아버지 레오 13세의 뒤를 이어받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세상의 불평등에 좌절하고 있는 우리들은 벌써부터 그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5월 18일, 그의 행보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신호탄이 터졌다. 그의 취임식과 그가 집전하는 첫 미사였다. 사도 베드로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이루어진 이벤트였다. 이 성당은 베드로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담긴 상자가 발견된 곳이다. 베드로는 티베르 강 오른쪽 강변에 있는 네로의 서커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또 다른 보석이 있다. 그것은 1498년 로마 주재 프랑스 대사가 의뢰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이다. 흰색 대리석으로 제작된 이 조각품은 구겨진 주름장식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곳 광장에서 레오 14세는 두 가지 상징적인 물건을 수여받았다. 하나는 예수님의 상처와 선한 목자의 상징인 양털 천으로 된 띠, 다른 하나는 성 베드로의 모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어부의 반지’로, 교황의 영적 권위를 상징하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었
일론 머스크는 이 시대의 혁신가이다. 그는 천재성, 통찰력, 뛰어난 기업가 자질을 갖고 있다. 전기차 시대를 이끌고 있으며, 스페이스 X의 저궤도 위성사업인 스타링크를 개척하였으며, 이제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인 로보택시 시대의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론 머스크의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미국 생명공학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뇌를 연구해 왔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생명공학의 장래를 밝게 보고 있다. 머스크는 2016년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Neuralink)를 창업하였다. 이 회사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활용하여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의 뇌에 컴퓨터 칩(임플란트 N1)을 심어서 장애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기업가치가 무려 12조원이다. BCI 기술은 시각장애인에 시력을 찾아주고, 전신마비 환자에 희망을 준다. 향후 미국에서 BCI 기술 시장은 약 540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다. 현재까지 뉴럴링크는 3차례 임상실험을 마쳤으며 올해 추가로 20∼30차례 실시할 예정이다. 뉴럴링크는 5년 내 BCI 기술이 상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 가면서 절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속속 겪으면서 사는 시대이다. 한국영화가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휩쓰는 걸 보게 될 줄은 오랜 영화 경력을 가진 사람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 평생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걸 보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본도 오에 겐자부로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토록 수상을 노렸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미국의 폴 오스터도 그렇게 큰 인기에도 불구하고 상을 타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 통틀어서 전혀 예상을 못했던 일로 쿠테타 만한 일은 없다. 그런 점에서, 곧 화제와 이슈 면에서, 윤석열은 감독 봉준호와 작가 한강을 뛰어 넘었다. 실로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유명이 아니라 오명과 악명이지만. 한국 영화계가 비교적 전혀 예상을 못한 일 중의 하나는 젊은 층 관객을 프로야구에 뺏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요즘 프로야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 유니폼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정도이다. 프로야구 팬들 가운데는 2~30대 여성이 압도적이고 40대 이상의 ‘줌마’ 관람객들도 상당수이다. 여성들은 한국의 극장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 우린 자연스레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뇌가 부정을 ‘전혀’ 이해 못 한다는 건 과장이지만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말보다 무엇을 ‘하라’는 말에 더 잘 반응한다는 심리학적 원리를 강조한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아이들이나 초기 학습자에게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지시를 통해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뿐이겠는가?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장애물을 만날 때 그 장애물만 생각하면 우리 머릿속에선 장애물만 떠오른다. 오히려 그 장애물 사이의 길에 집중하면 우리의 인식은 그 틈을 향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 간단하지만 큰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는 202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의 동영상 강의에 등장했고 짧은 클립으로 편집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통찰을 준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이 강의를 접하기 한참 전에 비슷한 원리를 알고 있었는 듯하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격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은 단순히 깨우침을 주는 속담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점에
이주 배경 학생 수가 2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교육부의 2024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 배경 학생 수는 19만 3,814명으로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학생의 3.8%에 해당한다. 다문화 학생 수를 처음 집계했던 2006년만 해도 9천여 명 수준이었던 규모가 20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학령기 전체 학생의 지속적인 감소세와 미취학 다문화가정 아동의 증가세까지 고려하면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2006년 이래 정부는 매년 다문화가정 자녀 대상 교육지원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다문화교육 선진화 방안’이 발표된 2012년에는 공교육 내에 최초로 한국어(KSL; Korean as a Second Language) 교육과정이 도입되었고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교재가 개발되었다. 2017년에는 ‘개정 한국어 교육과정’이 고시되었으며 이에 따라 학교급, 학년군별로 세분화된 교재가 새롭게 개발 보급되었다. 2023년 9월에는 기존의 다문화교육 지원 정책 외에도 중장기 계획으로 ‘이주배경학생 인재양성 지원방안(2023-2027)’이 발표되었다. ‘다문화학생 교육기회 보장 및 교육격차 해소, 다
네모진 콘크리트 벽에 깨끗한 벽지를 바르는 순간 콘크리트 벽이라는 점을 잊게 된다. 거실이라고 하여 아파트 평수 따라 공간의 넓이도 다른데, 거실 공간의 정면 중앙에는 가족사진을 앉히고, 오른쪽으로는 지리산 일출광경의 사진을 걸었다. 왼쪽 탁자 위에는 집주인의 작품인 천 년 학이 얹혀 있다. 따라서 가족사진 아래 긴 탁자 위에는 TV가 턱 버티고 있다. 그 맞은편 의자에서 집주인은 때때로 하품을 하며 별로 볼 것도 없는 TV 화면을 보며 다이얼을 돌리다 침실로 들어가 홀로 잠을 청한다. 5월이 깊어지면 산과 들의 나뭇잎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녹색으로 건너가면 산 까치들이 제법 시끌벅적하고 운 좋은 날은 꾀꼬리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대지마을 과수원에도 가랑비는 내리고 있었다. 잠시 산책을 한답시고 서서히 걷는데 복숭아나무 과수원은 나무 아래의 풀들을 개운하게 베어냈다. 그곳엔 살찐 암탉들이 뒤뚱뒤뚱 거닐고 목과 꼬리가 긴 수탉은 붉은 몸매에 긴 다리로 겅중겅중 걷다가 꼬끼오! 꼬끼오! 하고 자기 영역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때 나는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소환하게 된다. 그리고 무심히 잃어버린 사람과 고향에서의 삶을 반추하거나 추억을 더듬으며. 내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