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53. 한국전 당시 미군의 비행기 전초기지로 사용되던 백령도 사곶 비행장의 군사명칭이다. 이곳은 원래 해수욕장이었다. 그러나 썰물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 바닥이 워낙 단단해 당시 미군들에 의해 활주로로 활용됐다. 길이는 3km에 폭은 300m에 이른다. 때문에 사곶은 이탈리아 나폴리해변과 함께 세계에서 두 개뿐인 천연활주로라 명성을 얻었다. 종전 후 우리 공군 역시 해병대 보급물자를 운반하는 수송기 이착륙장으로 활용했다. 1991년 이후 지면이 약화되자 현재는 헬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사곶 해면은 큰 관광버스가 속력을 내어 달려도 약간의 흔적만 남을 정도로 여전히 단단하다. 그래서 요즘까지 백령도관광의 필수코스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15일) 주한외국 대사와 외신기자 7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동행했다. 물론 이곳 방문은 백령도 방문 일정 중 한 코스였다. 그러나 한국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천연비행장를 보는 그들의 관심은 남달랐다고 한다. 백령도에 이처럼 많은 외국인이 방문한 것도 처음이다. 관광공사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다. 올해 들어 관광공사는 백령도를 비롯한 연평도, 대청도, 소청도 등 서
큰 아이가 밤낚시 간다고 이것저것 분주히 챙긴다. 아이는 민물낚시를 좋아한다. 저수지로 나가 좌대를 타기도 하고 강을 따라 세월을 건져 올리기도 한다. 낚시는 자주 가지만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오는 일은 드물다.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는 손맛을 즐기기 때문에 잡은 놈들은 그냥 놔준다고 한다. 새벽녘 문득 올라다 본 하늘이 아름답고 물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좋다고 한다. 자식이라지만 말수가 적어 속내를 알 수 없을 때가 많고 친구와 술을 좋아해 가끔은 속을 태우는 아들이다. 철부지인 줄만 알았던 녀석이 여자에게는 잉어가 좋다며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어미를 위해 팔뚝만한 잉어를 잡아다 약을 내려주더니 이번엔 붕어를 잔뜩 잡아와서 아버지 보약 해 드리라고 한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짠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기쁨과 행복만큼이나 나누어야 할 고민도 많고 잔잔한 갈등을 끊임없이 겪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지키고 있다. 물고기를 보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초여름의 등굣길이었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정말이지 커다란 잉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낳은 아이만 하다는 생각을 했으니 크긴 컸던 모양이다. 물에 들어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을 이렇게 끝맺는다. “혹시 저희 요정들이 한 짓이 마음에 안 드시거든 이렇게 생각해 주십시오. 잠시 조는 동안에 꿈을 꾸신 거라고요. 그래야 화도 풀리실 것 아닙니까? 이 빈약하고 요령도 없고 허황된 연극을 부디 심하게 꾸짖지 마십시오.” 요정 왕 오베른의 어릿광대 퍼크의 대사다. 남북의 대화 국면이 후다닥 닭싸움으로 막을 내렸다. 직전까지 ‘전쟁불사’라더니, 느닷없이 날을 잡는다느니 통신선을 복원한다느니 북새통을 피우다가, 그래 차분히 지켜나 보자 했더니, 격이 어쩌고 급이 저쩌고 하다가 순식간에 판이 엎어졌다. 잠시 졸면서 초여름 밤의 꿈을 꾼 건가 싶다. 그런데 사과하는 퍼크도 없다. 이산가족들은 섭섭하기 짝이 없을 터이다. 남쪽 개성공단 입주기업도, 북쪽 개성공단 노동자도 땅을 칠 노릇일 게다. 나름 분주했을 통일부와 통전부·조평통 관계자는 물론이고, ‘혹시나 금강산도…’ 은근 기대를 걸었던 현대아산 관계자도 허탈하긴 마찬가지겠다.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니다. ‘빈약하고 요령도 없고 허황된’ 한반도의…
복잡다단(複雜多端)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남북관계도 그렇고, 또 늘상 그런 정치판의 얘기만이 아니다. 수도권의 화두가 전국적인 바로미터가 되어버린 지금, 경기도와 인천판의 현실은 한 마디로 복잡다단 그 자체다. ‘수원형 모델’이 그렇고, ‘용인 경전철’이 그렇다. 여기에 ‘천당 아래 분당 옆 판교 아래 광교’가 그렇고, 거덜나버린 곳간 쳐다보는 눈길들이 그렇다. 일단 수원형 모델은 잘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잘 되어야 한다. 전국 최대 기초지자체란 허울 좋은 오명만 뒤집어쓴 채 오직 자부심 하나로, 공직자들의 희생어린 봉사와 이해심 많은 시민들의 속 깊은 인내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내며 스스로 도시성장을 만들어 온 역사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또 수원은 물론 창원, 고양, 성남, 용인 등 전국 도시들의 성장 모델로 자리 잡은 100만 도시들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그 정도쯤은 즉각 법으로 지원해야 되는 게 정치의 도리다. 그러나 3급 직제와 1국 3과 신설, 2014년 수원형 모델 본격 시행 등을 담은 본지의 단독 보도 이후 일부에서 참으로 수상한, 그리고 어
미국 연방 대법원은 매년 1만건 이상 신청되는 상고심 중에서 100건 이하만 처리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나라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처리하고 있다. 때문에 연방항소법원은 연방법원의 2심법원이면서도 대부분의 소송에서 사실상 최종심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 권한과 파워가 막강하다. 미국 전역에는 이런 항소법원이 모두 13곳 있다. 그리고 179명의 판사가 종신직으로 재직 중이다. 각 항소법원마다 평균 13명의 판사가 있는 셈이다. 상원의 승인으로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종신직이라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특히 여느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신 판결로 유명하다. 이런 연방항소법원도 무서워(?)하는 게 있다. 바로 국민이다. 그래서 연방항소법원은 10여년 전부터 국민 곁으로 「찾아가는 법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혹시나 받을지도 모를 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이익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법부가 권위를 내던진 일종의 대국민 신뢰 프로세스인 것이다. 국민 곁으로 다가서는 연방항소법원의 이 같은 작은 배려로 인해 권위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사법부가 신뢰와 존경의 상징으로 점차 그 모습이 바뀌고…
한국 사회에 최근 몇 년간 걷기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걷는 길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걷기보다 등산을 즐긴다. 산이 많은 한국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데 익숙한 한국인의 정서에 맞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들이 세운 신기록들을 듣고 있노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등산을 즐기던 한국인들이 걷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는 한국인들의 삶의 태도가 변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된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인은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으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 왔다. 그 결과, 한국은 산업화를 19년 만에 달성하였고,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국민의 경제생활 수준을 나타내주는 국내총생산이 2만5천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경제적 성취를 이룬 만큼 행복해하지도 않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경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긍정적 정서’가 높아야 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
본보는 12일자 ‘자진사퇴 시기마저 놓친 윤화섭 도의장’ 제하의 사설을 통해 ‘모든 일의 진퇴(進退)에는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윤화섭(민·안산) 도의회의장은 실기(失機)를 한 것 같다. 사퇴하라는 여론이 확대되기 전에 진즉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섰어야 했다’고 윤 의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이 더 악화되고 있는 지금 윤화섭 경기도의회 의장의 거짓말이 또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13일 국가·지자체의 보조금을 유용한 위법한 돈으로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경기도의회 윤화섭 의장과 김경표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비롯, 관련 직원이 행동강령을 위반했다고 통보한 것이다. 권익위는 윤 의장과 김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해 도의회에 통보하고, 부천시에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사무국 직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권익위 조사 결과, 윤 의장과 김 위원장은 사전에 공식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도 예산 지원을 받고 있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으로부터 위법하게 집행된 여행경비 1천36만원을 지원받아 프랑스를 여행해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 제11조(금품 등을 받는 행위의 제한) 및 제13조(국내외 활동 제한 등)를 위반했음이 확인됐다고 밝
엊그제 열린 행복주택 공청회가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파행을 겪은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나 진배없다. 지난 5월 계획 발표 직후부터 안산 고잔, 서울 목동 등 행복주택 예정지 주민들은 입지의 부당성 등을 들어 강력한 반대의사를 드러냈다. 해당 지자체들도 국토부의 안에 이의를 제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어서인지 국토부는 일사천리로 예정된 수순을 밀어붙였다. 요식행위를 거쳐 향후 일정을 강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주거단지 건설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불행하게 출발하는 것은 문제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은 지구에 따라 다양하다. 입지 상 주거단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고, 슬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계획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다 해명이 가능한 걱정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또한 주민들의 주장을 지역이기주의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항변은 단순한 우려나 걱정 수준 이상이다. 특히 지자체들까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계획 자체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자체의 협력 없이는 행복주택 20만 채가 온전히 지어질 수 없다. 땅값이 들썩이는 문제 등으로 인해 사전에 주민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는 1950년대 외신의 비평처럼 과거의 한국 민주주의는 절망의 언어였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가 세계 167개 국가를 대상으로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 분류돼 종합순위 20위로 미국(21위), 일본(23위)보다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는 최근 선거한류(K-democracy)로 대표되듯이 후발민주국가의 모범적인 롤 모델(Role model)이자 희망의 언어가 됐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가 성공적인 제도화를 넘어서 심화 단계로 발전·안착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선거과정(9.12)과 정부의 기능(8.21)부분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으나 정치참여(7.22)와 정치문화(7.50) 분야에서는 답보상태로 매우 저조한…
「배짱」은 긍정과 부정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1982년 출간된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책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쓴 것이다. 배짱을,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소신이 동반된 행동으로 보고 이를 긍정적으로 풀어내 당시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것을 보면 배짱은 역시 갖추고 싶은 필수 인성(人性)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선천적 강심장을 빼고는 배짱을 갖추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닌가 보다. 대부분 사람들이 두둑한 배짱을 동경하니 말이다. 정치가 중 배짱이 가장 두둑한 사람은 아마도 농사를 짓다가 하루아침에 국상(國相)이 된 을파소(乙巴素)가 아니가 싶다.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인 진대법을 시행했던 그는 191년에 고구려 국상이 되어 12년간 고국천왕과 산상왕을 섬겼다. 삼국유사는 그의 발탁과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국천왕이 하루는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라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를 너희가 책임지고 추천해라.” 이에 신하들이 농사를 짓고 있던 을파소를 왕에게 추천했다. 면담한 결과, 왕은 그를 인재 중의 인재로 판단했다. 하지만 왕은 관직경험이 전무한 을파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