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아침 한 신문 1면에는 검찰청사에서 조사받고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진이 게재되었다. 이 사진에는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낀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서 있었고, 맞은 편에서는 검사와 수사관이 공손히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우 전 수석의 이야기를 서서 듣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사진 기자가 공개한 또 다른 사진에는 우 전 수석의 변호인이 활짝 웃고 있었다. 누가 조사하는 사람이고, 누가 조사받는 사람인지, 뒤바뀐 듯한 광경이었다. 휴식 시간 때의 상황이라는 것이 검찰의 해명이었지만,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가 어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이었다. 그래서 ‘황제 조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미 그가 검찰청사에 출두할 때도 논란이 있었다. 검찰은 당초 비공개 소환이라고 밝혔다가, ‘황제 소환’이라는 비판이 불거지자, 결국 우 전 수석을 포토라인에 서도록 공개했다. 이렇게 검찰을 향한 비판이 터져나오자 김수남 검찰총장이 수사팀을 질책하고 나섰고, 우 전 수석의 직무유기 여부에 대한 수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야 출국금지 조치도 취했다. 검찰은 수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압수수색조차…
가을비가 그치자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을 치고 겨울이 온 것처럼 쌀쌀해 저절로 웅크리고 다닐 지경이 되어 그렇게 싫어하던 햇빛이 드는 자리로 골라 앉는다. 남은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삶은 계란을 호호 불어가며 먹다가 불현듯 예전에 들은 강의가 떠오른다. 지금은 우리 동네 같은 면 소재지에도 마트가 세 개씩이나 되어 영세 상인이나 노점상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옛날에는 가게 하나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노점상을 하고 조금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트럭에 먹거리나 생필품을 싣고 주택가나 산간지역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장에 갈 시간도 없고 딱히 살 것도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시기부터 행상을 하는 트럭에도 마이크와 확성기를 장착하고 고객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목청껏 부르느라 힘들이지 않고도 사람들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찾아왔다. 트럭에 가득 계란을 싣고 여기저기 다니며 확성기로 손님을 불러도 그날따라 찾아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시간은 가고 계란장수도 점점 힘이 빠져도 트럭에 실린 계란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낭독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묵독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낭독 자체를 잃었다. 문자를 눈으로만 읽는 게 당연해져 입으로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산 것이다. 그런데 낭독을 해보면 소리 속에서 살아나는 글자의 청각적 즐거움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다. 시가 지닌 본연의 노래성을 불러내 밝혀주고 들려주는 것이다. 낭독의 힘을 다시 본 것은 시민들의 시낭송 덕분이다. 시에서는 낭송이 늘 함께였고 독자와의 만남으로 이어졌으니 새로울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반 시민들의 낭송 시간은 잊었던 낭독의 맛과 재미를 일깨웠다. 자신이 고심해 고른 시를 들고 나와 조금씩 떨며 낭독하는 모습 자체도 좋았지만, 눈으로 읽은 시를 귀로 다시 들려주는 효과가 컸던 때문이다. 시인들의 낭송보다 더 친근하게 몰입되었다는 청중은 낭독에 서린 추억을 돌아보며 뒷이야기로 시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새삼스럽지만 낭독은 소리 내어 읽기의 효과를 환기한다. 소리는 글의 이미지나 정서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힘을 지닌다. 낭송을 ‘한 사람에 의해 음악적으로 표현되는 이야기’로 정의한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따르면 낭송은 표현력도 길러줄 수 있다. ‘장식적인 음성표현
193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랜던 후보가 맞붙었다. 선거를 앞두고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가 무려 1천만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유권자 4.5명 중 1명꼴이라 오차가 거의 없을 것으로 확신하며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조사에선 랜던이 57%의 지지율로 이긴다는 예상이 나왔으나 뚜껑을 열자 루스벨트가 62%를 득표해 당선됐다. 선거사상 최대 표차라는 기록도 세웠다. 부유계층만을 참여시킨 잘못된 여론조사 표본 추출이 이유였다. 여론조사는 통계학이 빚어낸 과학적 산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처럼 통계에 숨어있는 허점 또한 극명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이번에도 여론조사는 어김없이 헛 다리를 짚었다. 출구조사도 크게 빗나갔다. 미국 대선에서 대 이변을 연출하며 트럼프가 승리, 당초 예상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민심의 과학화가 여론조사다. 하지만 과학을 동반한 여론조사도 늘 공정성에 도전을 받는다. 통계학이 빚어낸 과학적 산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통계에 숨어있는 허점 또한 많아서다. 특히 알고리즘이 진화하고 조사기법이 발달했지만 어떻게 대상자를 모집했는지, 어떤 단어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역마차 다방 /채선 막차를 놓쳐본 적 있나, 당신 간발 늦게 당도하여 점점 멀어지는 시간의 꼬리 도마뱀처럼 달고 카바이드 냄새나는 겨울비에 젖어보았나. 만연한 문장 같은 역전 골목 파르라니 떠는 불꽃, 머리 박은 채 꼬치를 먹는 사람들과 거대해진 머리 흔들리는 포장마차 그림자 사이 떠나야 했을 당신과 떠나지 못한 당신 사이 막차는 뜨고 한때 빡빡머리 청춘들의 홍염이 들러 간 자리 낡은 석유난로에 겨울비를 넣고, 홀로 짜글짜글 시간을 끓이고 있는 늙은 마담 앞에서 뿌옇기만 한 연애처럼 졸아본 적 있나 한 번 놓친 막차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체 기다리며 늙어가는 당신. 어디론가 늘 한 발 먼저 떠나는 것들의 꼬리 기적만큼 길다. - 채선 시집 ‘삐리’ / 한국문연 막차를 기회로 읽어본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온다는 말이 있다. 그 기회를 낚아채는 사람과, 무심히 흘려보내는 사람과, ‘간발 늦게’ 놓쳐버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스스로 복이 많다고 행복해하거나 지지리도 운이 없다고 불평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막차는 오늘의 막차이며, 내일은 또 내일의 막차가 기다릴 것이다. 막차를 놓쳤다고 늙은…
한국은 숲 가꾸기에 성공한 나라로 손꼽힌다. 1960년 대만해도 한국산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즐비하였다. 그러나 관민이 힘을 합하여 숲 가구기에 열심을 다하여 지금은 모든 산에 푸른 숲이 우거져 세계가 알아주는 숲 가꾸기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숲 가구기 성공사례를 배우러 찾아온다. 그런데 아직 문제가 있다. 숲 가꾸기에는 성공하였으나 숲을 활용하는데까지는 성공치 못하였다. 최근 들어 산림청을 중심으로 산과 숲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고 있어 퍽 바람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나는 5년 전 70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에 은퇴 후의 삶을 보람되게 살아보자는 열망을 품고 지금 살고 있는 동두천 산속으로 들어왔다. 산을 잘 가꾸어 청소년들의 심신훈련장을 세우고,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그때 최고의 선택을 하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숲에는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을 약속해 준다. 그래서 노장청(老壯靑)이 어울려 생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나의 꿈이다. 나는 늙어서 일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늙었다고 기침이나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잔소리나 하고 병 치례를 하면서 살게 되면 가족들에게
겨울철 아이들이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화상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그중 가장 많은 사고로는 뜨거운 물에 의한 열탕화상이다. 아이들은 뜨거운 것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해 정수기의 뜨거운 물, 뜨거운 철판, 다리미, 전기장판 등 가전기기의 뜨거운 열기에도 살을 데기 쉽다. 어른들은 뜨거운 것에 데면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거나 응급처치를 신속하게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재빨리 반응하지 못해 화상 정도가 심해지기 쉽다. 게다가 피부조직이 연약해 똑같은 화상을 입더라고 어른에 비해 이차감염이 발생하거나 상처가 더 오래간다. 화상은 열에 의한 피부 파괴나 괴사를 말하는 것으로 대개 70% 이상이 가정에서 일어난다. 화상은 손상 깊이에 따라 1도에서 4도까지 있으며, 1도 화상은 태양노출 시, 뜨거운 액체 접촉 시 통증과 빨간 발적으로 물집이 없는 상태로 수일 내 호전된다. 2도부터는 적극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2도 화상은 열탕, 화염, 접촉 등에 의해 발생하며, 이때부터는 물집(수포)가 형성되고, 통증, 부종 등이 보이며, 이를 표재성 2도 화상이라 한다. 이보다 더 깊은 조직으로 진행되거나 감염에 의해 더 깊어진다면 반흔을 남길 수 있는…
작가 윤흥길의 대표적 소설 ‘완장’에는 저수지 감시원 종술이가 등장한다. 1980년대 초 전북 익산의 시골 농부 최씨는 땅 투기로 큰 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관공서에까지 줄을 댈 수 있게 된다. 최씨는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동네 건달인 임종술에게 관리를 맡긴다. 노란색 완장을 찬 종술은 무단으로 낚시질하던 도시에서 온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고, 한밤에 몰래 물고기를 잡던 친구와 그 아들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이 맛에 신이 난 종술은 읍내에 갈 때조차 완장을 두르고 활보하면서 완장의 힘과 권력을 실컷 만끽한다. 마침내 완장의 힘에 도취된 나머지 고용주 일행의 낚시까지 막으려다 결국 쫓겨난다. 그러나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여전히 완장을 놓지 못한다. 가뭄이 들어 저수지의 물을 빼야 하는데도 수리조합 직원들과 충돌하게 된다. 술집 작부 부월이는 “진정한 권력자는 완장을 차지 않는다”며 권력(?)은 허망한 것임을 일깨워주자 완장을 저수지에 내던지고 부월이와 함께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사건’을 보면서 불현듯 &lsquo
나무시집 /김길나 한때, 견고했고 불꽃이기도 했던 몸들이 녹아 흐르는 물, 삶과 죽음의 소용돌이를 걸러낸 물, 걸러진 고요 속에서 푸른 힘을 뽑아 올린 물, 그 물을 내부로 빨아들이며 나무들이 시를 쓴다 수없이 잎을 지우고 꽃을 넘어온 과육 씨알로 되돌아올 줄 아는 시는, 그러므로 죽지 않는다 나무가 된 시인의 시집을 나는 혀로 읽어 삼켰다 시인이 시 안에 살고 있는 시를 - 김길나 시집 ‘시간의 천국’ 좋은 시 쓰기란 쉽지 않다. 시는 이 세상 온갖 삼라만상이 들어앉아 있는 시인의 깊은 내면에서 잉태되고 발아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 그 속에서 때로 어느 순간 종소리처럼 울려 나와 시인에게 한 편의 시를 자동기술 하게도 하지만 많은 시가 시인의 깊은 사색과 몰입의 시간에 의해 완성된다. 독자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 누군가의 결핍을 채워주는 한 그릇 밥이 되는 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절대 죽지 않는 시, 그러한 시 한 편 쓰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니 하물며 좋은 시집을 내는 일이란 시인이 시안에 온통 살아야 한다. 그동안 여러 권의 시집을 내며 이러한 점을 체득한 시인은 타인의 시집을 혀로 읽어 삼킨다. 단어 하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