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마다 빚은 늘어나고 수입은 오르지 않아 생활이 팍팍해지고 있다. 가진 자도 지갑을 열지 않아 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에서는 경제 진작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온 국민이 슬기롭게 어려운 시기를 넘겨야할 때이다. 세계적인 경제사정을 인식하여 현명하게 대처해가야 한다. 인문사회분야에서 취업하기는 경쟁이 치열해서 너무 어려운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첨단기술 분야와 의료분야에는 일자리가 있어 다행스럽다. 지자체에서도 지역여건을 적극 개발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야한다. 그러므로 정착기회를 확충할 수 있으며 인구유출을 막을 수 있다. 가평군은 올 상반기 경기지역 31개 시·군 중 이천시와 함께 고용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다. 통계청발표에 따르면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시군별 주요 고용지표 집계 결과 경기지역 31개 시·군 가운데 가평군과 이천시가 각각 64.5%로 가장 높다. 안성시가 62.6%, 화성시는 61.6%, 오산시가 61% 순으로 나타났다. 동두천시는 51.8%로 가장 낮은 고용률을 기록하며 52.8%의 고양시와 55.7%의 용인시 등이 뒤를 이었다. 경제활동 참가율도 이천시가 66.4%, 가평군이 65.8%로 선두
Q:국민연금, 낸 돈보다 많이 받는다는데, 사실인가요? A:최초로 연금을 받는 시점에 과거의 소득을 현재가치로 재평가해 연금액을 산정한다. 연금을 받는 중에는 물가상승분에 따라 연금액도 오르는 등 납부한 보험료보다 연금 수령액이 많다. 그렇습니다. 국민연금은 납부한 금액보다 나중에 연금으로 받는 액수가 훨씬 많습니다. 국민연금은 현재 소득의 9%를 납부하고 2028년 이후부터 소득대체율 40%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인 61세(1953년생 이후부터는 출생연도별로 61~65세)가 받는 연금액을 계산할 때, 가입기간 중 소득은 연금수급시점의 가치로 재평가해 그동안의 물가 및 소득상승분을 반영합니다. 또한 연금을 받는 중에도 통계청에서 고시한 전년도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만큼 매년 연금액을 인상해 지급하기 때문에 실제 받는 금액은 본인이 납부한 보험료에 비해 훨씬 많게 됩니다. 즉, 가입자인 국민의 부담 수준에 비해 혜택은 비교적 높게 설정돼 있어 사기업의 개인연금상품과 비교해도 국민연금만큼 수익이 높은 상품은 없습니다. 이유는 공적연금으로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운영비용의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하며 수수료 등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
우리는 개국 이래 지금까지 크고 작은 외세의 침략을 무수히 당해 왔다.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살펴보면, 1592년 일본의 임진왜란과 1597년의 정유재란과 1636년 청나라의 병자호란, 최근의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천안함 폭침에 이르기까지 990여회에 걸쳐 외세의 침략을 당해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받았을까? 임진왜란 때에는 국민의 50%가, 병자호란 때에는 40%가 죽어갔고, 6·25 한국전쟁 때에는 남북한 모두 250만명이 죽었다. 산업시설은 80%가 파괴 되었으며 1천만명의 이산가족을 발생케 하였다. 또한 1895년의 을미사변은 일제의 폭력배 20여명이 고종황제의 침실에까지 들어와 명성황후(민비)에게 온갖 성추행과 폭행을 하고 결국 살해를 하였다. 민비가 죽어갈 때에 외친 한마디는 “우리나라의 군인들과 청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당시에 궁궐 안에서는 정파싸움으로 갑론을박만을 주장하다가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참하게 살해당한 것이 바로 ‘민비시해사건’이다. 심장이 터지는 치욕적인 국가망신의 사건이다.…
집회와 시위는 ‘의사표현’ 방법 중 하나다. 표현의 방법이 다양한 가운데 목소리를 크게 내며 주위의 관심을 끄는 방법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의 소음발생은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음’을 선택한다면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없어 마땅히 규제를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여기서 자유란 모든 행동을 허용하는 자유가 아닌 타인에게는 불편과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즉 상호 공존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전제한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집회·시위의 자유 또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그 한도가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한계 범위를 만든 것이 제도에 의한 규제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개최되고 있는 집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의사전달 목적이 아닌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는 목적이 명백하거나 일부러 소음을 발생시켜 민원을 유발해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일부 단체에서는 한계를 넘은 집회 소음에 대해 경찰의 유지명령시 볼륨을 줄였다가
유방통은 외래 진료를 오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호소할 정도로 흔한 증상입니다. 이분들 대다수는 유방암에 대한 걱정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지만, 사실 유방에 통증이 있는 경우보다 딱딱한 것이 만져지는데 아프지는 않다는 분들이 정말 유방암인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방암은 30대와 40대를 합쳐 56% 정도라고 보고가 있을 정도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검사를 받지 않아 조기 발견되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정상적인 유방 촬영사진을 보면 유방조직은 하얗게, 지방조직은 검게 나타나는데요. 종양의 경우도 흰 그림자를 남기게 됩니다. 치밀 유방이란 유방촬영술상 유방 조직이 하얗게 나와 치밀하다면, 유방 내 뭔가가 있더라도 같은 밀도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치밀유방의 경우에는 유방 사진이 전반적으로 하얗게 나타나게 되어 하얗게 보이는 종괴와 같은 이상소견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방암이 있을 경우 암덩어리는 유방 촬영상 하얀 멍울로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치밀유방을 갖고 있다면 사진이 전체적으로 하얗게 나오기 때문에 큰 암덩어리는 몰라도 작은 종양은 구별해 낼 수 없게 됩니다. 유방초음파는 대부분 7.5MHz 이상의 선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주민들과 정부가 상호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로 주민들이 아고라에 모여 관심사항에 대하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지역과 도시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아고라는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이며 주민들의 의사소통공간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이후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의 규모도 커지면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도 어렵게 되었고, 또 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민주주의 형태도 변화되어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주민들과 정부와의 의사소통도 주민대표를 통하거나 여러 단계의 의사전달 경로를 거치게 되면서 주민들의 의사와는 다른 서비스들이 제공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여 주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현재 많은 지방정부에서는 다양한 정책홍보도 하고 여론조성도 하면서 주민들의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지금 하고 있는 정부 서비스에 대하여 만족하는지, 바로 잡을 것이 없는지 등을 파악하고자 조사도 하고 의견도 청취하는 등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주민들이 지방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떠한 정보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행정정보공개 요청을 통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제도 역
수리부엉이 /김선향 어미는 죽어가는 새끼 입에 먹이를 찢어 넣어 준다 새끼의 심장이 싸늘히 식자 어미는 죽은 새끼를 먹어치운다 새끼는 어미의 커다란 눈동자에 영원히 박힌다 - 김선향 시집 ‘여자의 정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행위는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의 본능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 의무이자 신성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정의(正義)다. 그런데 ‘새끼에 대한 어미의 관계’에서는 그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새끼의 목숨이 곧 어미의 목숨이다. 단장(斷腸)에 대한 고사(故事)에서 새끼를 잃은 어미의 창자가 토막 났듯이, 새끼의 죽음은 곧 어미의 죽음이 된다. 이 시에서 우리는 죽은 새끼를 먹어서라도 다시 살려내려는 어미의 처절함을 볼 수 있다. 죽은 새끼를 결코 보낼 수 없는 어미의 창자가 조각나는 고통. 어미의 눈동자에 박힌 새끼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 /김명철 시인
‘새 역사를 위하여’는 내가 대학시절에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책이다. 나의 서재 한켠에 묻혀 있던 책을 찾아내어 오늘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쓴 분은 유달영 교수이다. 유 교수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피난살이 하던 대구에서 이 책을 썼노라면서 서문에서 다음같이 쓰고 있다. “1952년 공산군 침략 때에 대구에 피난하던 중 단칸방에 4·5인이 복작이면서 휴지조각에 초고를 쓴 것이 이 책이다. 처참한 전쟁 중에서 나는 이 민족을 구원하는 길을 찾아보고자 애태우는 심정으로, 밤과 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내버리는 광고지 뒤에 이 원고를 썼다. 전선이 일진일퇴하는 중에 가족들은 갈라져 생사도 모르는데… 덴마크의 역사 속에서 우리도 살길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기에 쓴 책이다.” 대학시절 이 책을 읽으며 감명을 받은 나는 졸업할 즈음에 진로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되었다. 키에르케고르 같은 철학자의 길을 갈 것인가, 그룬트비 같은 개척자의 길을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철학자였고, 그룬트비히는 목사이면서 개척자였다. 19세기 초 조국 덴마크가…
문화유산여행을 떠날 때면 문화유산여행지에서 커피 한잔을 하려고 애쓴다. 분위기 좋은 현대식 카페보다는 그 지역의 주민들이 운영하는 소박한 곳을 주로 찾는다. 차 한 잔을 시켜 놓고, 나만의 여유시간을 만끽한다. 여행지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하늘을 온 몸으로 느끼고,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도 느껴보는 시간이다. 오늘은 그러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500년 전통의 양동마을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양동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이가 바로 점방이다. ‘점방’이라는 단어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양동점방은 ‘100년이 넘은 양동점방’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나무 푯말이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열 평이 조금 넘는 작은 건물의 양동점방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낡고 초라한 듯 하지만 150년 된 웅장한 고목이 자리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임을 실감케 한다. 산비탈의 고즈넉한 풍경과는 달리 이곳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을 드나들며 소주 한잔을 기울이시기도 하고, 우리 같은 여행객들의 쉼터이자 안내소 역할도 하고 있어 마을 사랑방 역할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이 곳은 ‘양동B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