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잔잔한 날 밭둑에 들불을 놓는다. 라이터를 그어대자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덤불들, 바람의 방향을 따라 불길도 자리를 옮겨간다. 들깨며 콩 옥수수 등 수확은 별로 없고 가지만 무성했던 것들이 잘도 탄다. 콩은 너무 가까이 심어서 줄기만 무성했고, 옥수수는 가뭄에 타고 거름이 부족했는지 꽃 피는 것부터 시원찮았다. 해바라기는 제법 무성하게 자랐는데 태풍에 대부분 꺾이고 몇 송이만 건져 씨앗은 되겠다. 풀을 감당하지 못해 깔았던 검은 비닐이며 이런 저런 것들을 긁어모으고 마늘을 덮고 어린 감나무를 감쌌던 짚을 끌어 모아 태우니 밭이 한결 정돈된 것 같다. 들불을 놓는 것은 한해 농사의 시작이며 땅 밑을 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풀섶 어딘가에 남아있을 애벌레를 혼쭐내는 일이고, 올 한해도 잘 해보자는 땅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삽날을 깊이 박아 땅을 뒤집자 놀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흙이 살아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어설프게 농사를 짓다보니 모순투성이다. 초가을에 심어야할 당근을 봄에 심었더니 장마에 다 녹아 없어졌다. 작년에는 콩을 심기가 무섭게 까치와 비둘기가 파먹어서 애를 먹었다. 녀석들 어떻게 아는지 용케도 콩을 파갔다. 콩 농사 제대로 지으려
평생 한 자리를 지키는 나무, 나무는 한 자리에서 사람들을 한결같이 바라보고 산다. 게다가 나무의 공익적 가치는 홍수조절 등 연간 50억원에 달한다. 이런 나무들의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매년 4월 5일은 국민식수날인 식목일이다. 나무심기는 저탄소 녹색성장과도 밀접하다. 나무심기는 농업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다양한 감축활동과 자발적 구매를 통해 완전 상쇄함으로써 탄소배출량을 많이 줄여준다. 농업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는 1천500만t 정도이며, 이를 모두 배출권을 구입해 상쇄하려면 800억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 하지만 나무를 심어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현 식목일은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날(음력 2월 25일)과 조선의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논을 경작한 날(양력 4월 5일)에 맞춰 1946년에 제정됐다. 일제 때는 4월 3일로 지정됐다가, 1960년에는 식목일을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하여 3월 15일로 지정하는 등 몇 번 날짜가 바뀌었다가 다시 4월 5일로 확정된 후 오늘에 이르렀다. 사실 식목일은 4월 5일이라는 단순한 날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기상상황에 맞추지 않고
박영순 구리시장의 지시가 부당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공무원들이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장에게 ‘들이댄’ 것일까? 본보 지난 25일자 1면엔 독자들의 눈길을 확 끄는 기사가 실렸다. 구리시가 시장의 민원처리 지시를 완강하게 거부한 공무원 3명에 대해 전격 직위 해제시켰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구리시는 물론 도내 모든 공직사회에 파문이 일 수밖에 없다. 좀 더 자세히 기사내용을 살펴보면 구리시가 지난 22일 유모 지방시설사무관(5급)을 비롯, 오모 지방행정주사와 김모 지방시설주사(6급) 등 3명의 간부공무원에 대해 직위해제하고 총무과로 대기발령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징계를 경기도에 의뢰하겠단다. 구리시장은 앞으로 안전행정부의 징계편람을 적용해 중징계할 방침이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청와대를 거쳐 구리시에서 관선시장과 민선 2기, 4기, 현재 민선 5기 시장을 하고 있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박 시장이 이처럼 격노했을까? 대충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다. 2008년 구리시가 고구려대장간마을을 조성하면서 진입로 입구에 있던 A씨의 건축물이 철거당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음식점을 짓기 위해 이축허가를 신청했으나 반려
배우 김혜수씨가 엊그제 석사논문 표절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팬들에게 사과한 후 학위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12년 전 일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코미디언 김미화씨도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부 이론의 재인용 과정에서 연구자의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에 앞서 스타강사 출신 방송인 김미경씨도 자신의 이름을 딴 프로그램을 접는다고 밝혔다. 김미경씨는 2007년 석사학위논문이 기준에 맞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양심을 팔지는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어쨌든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며 방송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세 사람의 기존 이미지와 시비가 불거진 경위가 달랐기에 같은 논문표절이지만 이들에 대한 세간의 여론에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누구에게는 동정론이 우세한 반면 누구에게는 비난이 더 강하게 쏠리기도 한다. 김미화씨의 경우 논문표절과 상관없는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아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모두 결과적으로 깨끗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김혜수씨는 곧 촬영이 개시될 드라마 때문에 활동을 그만두지는 못하지만 학위를 반납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연기에 더 열성을 쏟겠다고 말했다. 대중의 주목을…
구리시의 공무원 직위해제 사건이 경기도내 공직사회에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구리시의 조치는 시장 지시에 불응한 일종의 명령 불복종에 따른 인사조치인 셈이다. 흔히 직무와 관련된 비리 등으로 직위해제 조치를 취한 사례는 있지만, 시장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위를 해제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시가 토지주의 이축 민원을 놓고 시장과 담당 공무원이 각각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법리해석에 따른 상·하간 의견 차이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접근 방법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2008년에 헐린 토지주의 건축물은 법률이 신설된 지난해 3월 17일 이전에 이뤄진 행위이므로 이축허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관계 공무원들의 판단이었다. ‘가능하다’는 시 자문변호사의 의견도 공무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다른 국민들에게 피해가 없고,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고 한 입법 취지도 무색했다. 박영순 시장은 공무원들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한 이유를 ‘무지몽매(無知蒙昧)’에 비교했다. 구리시의 징계는 안전행정부의 징계편람
얼마 전 자기 분야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계신 양식 있는 분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좋은 분위기에 한창 흥이 오를 무렵, 갑자기 어색한 상황이 생겼다. 내가 앞자리에 계시던 분이 듣고 싶어한 말 한 마디를 입 밖에 내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지며 으쌰으쌰 하던 분위기는 나와 그 분 사이에 흐르는 냉기로 인해 점점 싸해졌다. 그분이 나에게 듣고자 했던 한 마디는 바로 ‘형님’이라는 호칭이었다. 자신이 한 살 더 많다는 사실을 몇 번씩 얘기하며 은근히 강조했는데도, 내가 주어를 생략한 대사를 계속 드리니까, 결국엔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굳은 얼굴을 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가버렸다. 그땐 이미 여러 차례 술잔이 오간 터라 속으로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닌데 그냥 편하게 분위기에 묻어갈 걸 그랬나?’ 하다가도 동의할 수 없는 뭔가를 느꼈다. 가끔은 자신이 나이가 한두 살 많은데도 상대에게 형님이라고 먼저 불러주는 경우도 보았다. 주로 이해관계가 걸린 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몇 살 많은 을이 바람 앞의 풀처럼 바로 눕는 경우이다.…
우리는 외국에서 한국인들이 겪는 부당한 행위에 분노한다. 호주에서 한국인 관광객이나 유학생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에 격분한다. 러시아의 스킨헤드족에게 한국인이 끔찍한 범죄를 당했다는 보도에 신문을 내던진다. 인도에서 당한 한국인 관광객의 성폭행 피해에는 ‘단교(斷交)’라도 해야 할 것처럼 화를 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외국인의 불이익에는 눈을 감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백의민족’이라는 단일민족 의식이 어려서부터 주입된 탓인지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이 배어있다.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특히 외국인을 구별해 차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피부색이 희고, 검은 것에 대한 시선이 천양지차다. 피부색이 희면 선진국 출신이라고 예견한다. 반면 검은색 피부의 외국인은 후진국 출신으로 지레 짐작한다. 나아가 피부색이 흰 선진국 출신은 ‘신사숙녀’로 치부된다. 그러나 검은 피부의 외국인은 후진국 출신으로 마치 ‘예비 범죄자’라도 되는 양,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이런 우리의 편견을 비웃는 자료가 공개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외국인 범죄는 늘었으
지난 22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도 한층 탄력 받을 전망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최대 이슈로 꼽히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도 그동안 법적 근거가 없어 장관 청문회조차 열리지 못했던 서러움을 날려버리게 되었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업무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의 일부 업무가 이관되어 연구개발(R&D)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한 업무를 총괄하고 근무인력만 800명 이상이 될 전망이다. 연간 예산도 과학 연구개발 17조, 방송통신발전기금 1조2천억, 정보통신진흥기금 1조2천억 등 20조원에 육박한다. 새 정부의 ‘공룡부처’로 불리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부과천청사에 입주하기로 확정됐다. 과천청사는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 농림수산식품부가 세종시로 이전하는 등 올해까지 14개 기관이 이전했거나 떠날 예정이다. 대신 방송통신위원회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 14개 정부 기관이 새로 들어온다. 경기도와 과천시는 과천청사 기관들이 세종시로 이전한 뒤 새 기관들이 입주하는 데 최대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해 도시기능 상실과 지역상권 붕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을 말할 때 쓰인 글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것이다. 만남은 이별의 시작(合者離之始)이라 하지 않았던가. 위의 말은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제자에게 한 말로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 빠짐없이 덧없음으로 돌아가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것일 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게 마련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의례 그런 것이거늘 어찌 근심만하고 슬퍼만 하랴’했다. 제자가 울면서 말했다. ‘하늘에서나 인간에서 가장 높으시고 거룩하신 스승님께서 머지않아 열반에 드시게 되니 어찌 걱정되고 슬프지 않겠습니까’ 하며 ‘이 세상의 눈을 잃게 되고 중생은 자비로우신 어버이를 잃게 됐나이다’ 하니 부처님은 ‘걱정하거나 슬퍼 말아라. 비록 내가 한세상 머문다 하더라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 본바탕이 그런 것이리라’라고 답해 주었다. 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가 그것이다. 즉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것. 만해 한용운의 시 한 수 속에는 다음과 같이 녹아내리고 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
지난 24일 수원화성행궁에서는 ‘화성행궁 상설한마당’ 개막공연이 펼쳐졌다. 정조대왕 화산릉행차를 비롯해 무예24기 공연, 비밥공연, 줄타기, 장용영 수위의식 등 각종 공연이 펼쳐져 행궁광장에 모인 5천여 시민과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이날 특히 관객들의 눈길을 끈 것은 조선 정조시대 최강의 군대인 장용영 군사들이 익혔던 호국무예 ‘무예24기’ 공연이었다. 진검을 휘두르며 각종 검법을 시연하고 진법을 펼쳐 보이며 짚단과 대나무를 베는 이 공연은 단연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날 무예24기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상무예였다. 마상무예는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말 위에서 펼치는 6가지의 무예다. 무예도보통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각종 외침을 겪었던 조선이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 삼국의 무예 중 정수만을 집대성한 실전무예서이다. 더욱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의 무기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던 무기들까지도 그 동작 등을 실어 실전의 교범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 가히 당대 최고의 무예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예24기는 동작 하나하나가 수련하기에 결코 녹록치 않다.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들도 대부분 칼날이 날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