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보호국이 된 조선 “한국은 어떻게 오늘날 생존하게 되었으며 또 한국의 독립은 누구의 덕택입니까?”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질문에 고종(高宗)은 속으로는 불만스러웠겠으나“짐(朕)도 그에 대해 능히 잘 알고 있다”고 답한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독점적인 영향력을 분명히 한 일본에게 고종이 달리 뭐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어 이토는 고종에게 내궁(內宮)에 보관된 모든 외교문서의 원본제시를 요구했고 내궁의 무녀(巫女)들을 내쫓을 것이며 일본 관헌인 고문(顧問)경찰이 왕궁경비를 맡는다고 통지했다. 이와 함께 “폐하가 대소사를 불문하고 모든 정사에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보호권’이라는 이름 아래 국권이 1910년 병합(倂合) 이전에 이미 일본에게 거의 대부분 넘어가는 한일협약(을사늑약)이 1905년에 이뤄지면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 전문(前文)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일본국 정부 및 한국 정부는 양 제국을 결합하는 데 이해가 같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한국의 부강지실(富强之實)을 인정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아래 조관(條款)을 약정한다.” 조건부로 되어 있지만 그걸 일본이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삼은 대목도 말
예술이란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고, 어렴풋했던 것이 선명해지며,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지고, 우연이었던 것이 필연이 되는 것과 같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작용을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단순화한다. (아미엘) 보통 사람은 생각을 사물에 맞추지만, 예술가는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춘다. 보통 사람은 자연을 불변하는 것,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술가는 자연을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 위에 자신의 존재를 새긴다. 예술가에 대해서는, 불복종의 세계도 지극히 순종적이 되어 그의 뜻에 따른다. 그는 흙덩이나 돌멩이에 인간성의 옷을 입히고 그것을 이성의 표현으로 탈바꿈시킨다. (에머슨) 경쟁심으로는 어떤 아름다운 것도 만들 수 없고 오만한 마음으로는 어떤 고귀한 것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존 러스킨) 진정한 학문과 진정한 예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내면적인 것으로, 학문과 예술의 봉사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희생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외면적인 것으로, 그의 학문과 예술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학문과 예술은 폐와 심장처럼 서로…
밤새 천둥을 동반한 굵은 비가 내렸다. 낮에도 앞을 가려볼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강물이 불어나면서 교통이 통제되었다. 이북지역인 북쪽에도 28일 밤부터 7월 1일까지 개성과 강원도 황해남북도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경보가 있었다. 그리고 평양을 비롯한 일부지역에 위험 수위를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남북이 동시에 집중호우가 내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지만 사전 통지도 없이 황강댐의 방류는 불안한 예감을 넘어 괴씸한 생각마저 든다. 갑작스러운 폭우는 북쪽에서 최악의 재난상황이 된다. 도로와 철길이 파괴되고 농경지가 물에 잠기면서 눈앞에서 다 자란 농작물을 잃게 된다. 2020년에도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한 일부지역이 폭우로 피해를 입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최고지도자가 황해북도 은파군을 방문하면서 식량이 우선 공급되고, 빠른 수해복구를 지시했다. 폭우로 농경지와 도로, 철도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빗물로 인한 식수 오염으로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생겨나 주민들을 괴롭힌다. 북쪽의 장마는 6월 말부터 길게는 8월 초까지 이어지는데, 폭우가 내리면 좁은 강이 삽시에 불어나고 심하면 강뚝을 넘는다. 수면이 낮은 곳은 물난리
한겨레신문은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3월 6일부터 ‘노지원 · 김혜윤 기자 우크라 접경지대를 가다’ 라는 타이틀을 걸고 매일같이 현지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라는 타이틀로 20회 이상 연재중이다. 기자에게 현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사들이 진실을 전달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한겨레신문이 현지 취재라며 전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관련 보도는 객관적 진실을 담고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모든 언론이 편향적이더라도 한겨레신문은 진실을 추적해 보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학자들은 대개 언론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면서 객관적 보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형용모순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이라는 말이며, 그 안에 진실이 있다는 의미다. 주관적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가운데 오로지 이성의 판단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객관성이다. 한겨레신문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도는 이 본령에서 벗어나 있다. 6월 20일자 기사 ‘죽어서야 집으로…가족들은 관 위로 무너졌다 [우크라 현지]’는 이렇게 방향을 잡았다. “군복을 입은 병사 여럿이 삽을 들고 새로
옥주현 사태로 헤겔의 변증법을 깨치다. 옥주현이 등장하는 뮤지컬 동네 논쟁에 ‘지양’이라는 말이 고개 들었다. 어떤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도구로 쓰인 이 말,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 ‘샤워기 물 낭비 사태’였다. 옥주현은 공연 날 ... 수증기가 목 관리를 위한 것으로 ... 배우와 관계자들이 ‘물이 낭비되니 지양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물을 쉬지 않고 튼다고... - ‘모든 허위 사실 작성, 유통 등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당사 및 배우와 관련해 추측성 보도는 지양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그 단어를 썼다. 다른 기사지만 느낌이나 어색한(서툰) 어휘 전개가 흡사하다. 의도가 불결한, 낚시성 기사로 의심된다. 여러 매체가 약속이나 한 듯 이 기사를 실은 걸 보니 ‘대박’을 기대한 어떤 세력의 작전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요즘 기자, 언론사들은 참 여러 가지 한다. 독자의 신뢰는 망가지겠고. 한자로 止揚이다. 止는 ‘멈추다’ 揚은 ‘오르다’의 뜻. 옳고 그름 시비(是非)처럼 ‘하지 말자’는 止와 ‘하자’는 揚의 서로 어긋나는 속뜻 단어가 함께 붙었다. 한자는 하나하나가 한 단어다. 한 글자만 써도 되고, 몇 개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모든 금품을 말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5호). 근로의 대가로 받는 돈이다.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동조 제3호). 그렇다면 임금은 노동의 대가다. 노동(勞動)은 힘들여 일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돈을 받고 “힘들여 일함”을 판다. 사용자는 돈을 주고 “힘들여 일함”을 산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시간을 들여 일한다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을 내어주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삶을 임금과 교환한다. 인간의 삶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다. 상품으로써의 노동은 산업화의 산물이다. 물론 농경사회에도 노동과 임금은 존재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정해진 가격(임금)과 규격(시간)에 따라 하나의 상품으로써 거래되는 노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이 상품이라는 주장은 사실이지만 불편하다. 인간의 삶이 조각조각 나뉘어 상품으로 거래된다는 것이 편할 수는 없다. 애초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상품일 수 없음에도 상품이 되어버린 노동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 덤핑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저임금을 만들었다. 과도하게…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교권’을 찾아보면 ‘교사로서 지니는 권위나 권력’이 나온다. ‘보호하다’를 검색하니 첫 번째 뜻으로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보다’가 나온다. 교권 보호를 국어사전 뜻풀이대로 해석하면 ‘교사로서 지니는 권위나 권력을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이 된다. 권위나 권력을 잘 보살펴 돌본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교사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권위를 보살펴야 하는 게 말이 되는 시대가 됐다. 교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교사들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공감받기 어렵다. 힘들겠구나-라는 반응보다는 ‘라떼는 말이야’가 먼저 튀어나온다. 20년은 족히 넘었을 옛 시절의 이야기들. 그때는 학생들이 교무실 청소를 도맡아 하고, 체벌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나 또한 교사들에게 종종 맞았고, 일정한 주기로 교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했고, 학생은 중앙현관을 사용하지 못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교사가 되었더니 이제 학생이 이틀에 한 번꼴로 교사에게 욕이나 폭언을 하고, 가끔은 때리는 게 당연한 일이 된 세상이 펼쳐져 있다. 교사가 폭언 및 폭행을 당해서 신고된 사안만 5년…
도어스테핑(doorstepping). 윤석열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대통령실 청사에서 행해지는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이다. 대통령이 기자가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한다. 간단한 형식이지만 국민은 대통령의 발언내용이나 생각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특정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극명한 매체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뉴스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은 언론의 축소나 과장보도가 없는 팩트를 접할 수 있어 반가운 일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실의 한 참모가 “정권교체 후 거의 유일하게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사례”라고 말할 정도다. 대통령도 본인의 생각을 여과 없이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집권 초기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언론접근 방식이라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관건은 지지율이 내려가고 여론의 비판을 받는 때가 와도 초심을 잃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퇴임 때까지 지금과 같은 방식의 언론접촉방식을 지속한다면, 어떤 대통령도 실현하지 못한 ‘소통의 대통령’으로 자리매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도 홍보수석, 대변인 등 고위관계자가 전하는 일방적인 말이…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이후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벌은 재벌대로 참여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위축된 세계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정경제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비롯한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고, 선진국의 긴축 재정정책은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와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미 디폴트 상태에 있고 몇몇 국가는 디폴트 직전이다. 과연 한국 경제는 이로부터 자유로운가? IPEF 참여는 작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상황을 악화시킬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또 다른 결과는 ‘지경학적 분열’ 현상이다. 세계는 러시아에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는 진영과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 또는 강화하는 진영으로 양분화되고 있다. 설상가상 IPEF의 출범은 지경학적 분열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IPEF가 러시아 진영에 속해 있는 중국의 고립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난 30년간 ‘통합’의 힘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경제 규모를 3배로 늘렸으며, 십 수억 명의 극빈층을 구제하
공동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회적 자본은 신의가 첫째로 꼽힐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신의이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는 곧잘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운다. 예부터 왕과 신하, 백성 상호 간, 스승과 제자, 부부 사이, 부자 관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자 판단 근거이었다. 춘추전국시대 秦 나라의 실력자 公孫 앙(鞅)은 위 나라에서 사이좋게 지냈던 公子 앙(卬)을 전쟁터에서 상대국 장수로 맞는다. 하지만 공자 앙에게 과거 인연을 미끼로 서로 싸우지 말고 동시에 병력을 철수시키자며 거짓 화친을 제의한다. 그는 이에 속은 공자 앙을 불러내 붙잡아 죽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의는 무너진다. 새로 등극한 왕이 ‘믿음이 안가는 인물’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시 위 나라로 피신했으나 하급 현령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대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니 내가 당신을 챙겨주어야 할 도의란 찾을 수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속임수로 권력에 오른 자의 배신행위가 낳은 인과응보이다. 권력자들은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