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할 무렵 지휘본부차를 앞세운 119가 다급하게 달려 도로변 주차해 놓은 차량 근처에서 급커브를 그어 멈춰 선다. 뒤를 따르던 소방차도 지휘본부 차량을 따라 멈춰 서고 대원들이 차량을 주변을 살피더니 논두렁으로 내려가 눅눅하게 타고 있는 불씨를 끈다. 차량을 지나치던 누군가가 차에서 연기가 난다며 차량 번호와 함께 119에 신고를 했고 긴급 출동한 것이다. 담배꽁초가 원인인 듯, 불이 논두렁을 태우고 그 연기가 길 한 켠에 주차해놓은 차량 밑으로 스며들어 언뜻 보면 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시민의 신고와 119의 발 빠른 대처로 불씨는 바로 잡혔지만 자칫하다간 큰 사고로 변질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건조해진 대지와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 도로변에 주차해 놓은 많은 차량을 생각해보면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사고를 낼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119대원들은 그 불씨가 완전히 제거된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이동했고 모여든 사람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또한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몹시 바람이 부는 봄날이었다. 아버지 옆에 누워있던 네 살 난 남동생이 라이터를 들고 뛰어나가더니 축사 옆에 쌓아놓은 짚동가리에 불을 붙
오늘을 사는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듯 싶다. 분홍빛 미래를 약속하는 정치인 들을 비롯해 방송 매체를 통해 매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업광고, 개인과 개인 간 에 오가는 비꼬이고 뒤틀린 대화는 물론 형언할 수 없는 온갖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 집단이나 사회, 넓게는 한 국가에 있어서 정신적 신뢰성의 부재 현상은 곧 그 사회의 언어의 혼란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은 학문적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익히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우리사회는 어디가 그렇게 병들었기에 이처럼 사실의 진위를 가늠하기 힘든 혼란에 싸여있으며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둠 속에 갇히게 됐고 그로 인한 후유증은 무분별한 집단 신경 증세에 휘말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돼 또 다시 치유하기 힘든 흑과 백의 양극 논리로 채색되기에 이르렀는지 사뭇 궁금하다. 실제로 오늘날의 각종 미디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흘러가고 오는 말과 글의 홍수시대에 어떤 의미에서 말과 글, 특히 범위가 제한된 부문에 대한 교육이나 소개가 아니고 자신의 의견이나 주의주장을 피력하는 일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그 이유 중 자신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의 뜨거운 열기가 국민들 시선을 붙잡고 있을 때 갑작스레 미국과 북한이 합의안을 내놓았다. 미국과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앉는다는 소식이 들려도 워낙 지지부진한 흐름이라 주목치 않았던 언론들도 화들짝 놀라는 표정들이다. 국내 여론이 ‘누더기 선거구’ 획정이라는 정치인들의 몰상식에 들끓던 지난달 29일,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사전조치와 대북(對北) 영양지원에 전격 합의했다. 특히 양측이 1년 이상 논제로 삼았으나 별진전이 없던 우리늄농축프로그램(UEP) 가동중지와 북한 김정은체제 안정을 위한 영양지원의 구체적 내용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북한이 서방세계를 움직이는 지렛대인 핵관련 구체적 합의는 곧바로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양측의 틈새에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소위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미국과 교류하고 남한을 고립시킨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이 고정화된다는 느낌이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이 무르익고 있는 시점에도 우리측을 향해서는 전쟁불사를 천명하며 강경발언을 일삼아 왔다. 이는 미국과의 협상과는 별개로 남한과의 갈등은 피하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음이 분명하다. 이웃 강대국의…
제93주년 3·1절이 지나갔다. 전국 곳곳에서 3·1만세운동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서울에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이 열렸고,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도 93년 전 그날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만세운동의 민족혼을 숭앙했다. 경기도 곳곳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다. 광주 나눔의 집에서 3·1절 행사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가 진행됐다. 추모제는 순국선열과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묵념, 헌화, 추모사, 추모글 낭독, 타임캡슐 매설, 문화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3·1운동의 역사적 현장인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일대에선 시민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운동 기념비 참배, 만세재현 등의 행사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이 오늘날 더욱 빛나는 것은 위대한 ‘관용’ 정신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군대위안부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진정한 동반자 관계가 구축되려면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다. 군대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못박은 셈이다. 집권 4년을 넘긴 이 대통령이 3·1절이나 8·1
지난달 27일 한 대형마트 회장이 현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깎아내리며 정부에 각을 세우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대형마트 회장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경영운동’ 행사장에서 정부정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정부의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정책에 대한 비난이었다. 정부는 심화되는 양극화 추세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소상공인이나 중소제조업체, 전통시장을 돕기 위해 상생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정부의 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정책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도 없는 정책’이라며 정면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국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들과 SSM으로 인해 수많은 골목 영세업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마당에 그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했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친재벌, 친대기업 정책을 펼쳐왔다. 이런 정책은 골목 상권을 위협했다. 많은 영세 상인들이 도산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정부가 나선 것이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대형마트들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일제 도입은…
한 가정에서 가장이 실직하거나 급여가 줄었다면 그 가정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앞날을 걱정하며 살아갈까? 생각만 해도 막막하고 황당한 일인데 한 가정도 아닌 인구 7만2천명이 속해 있는 도시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암담한 일이다. 2011년 과천시 예산은 2천127억원이다. 이중 45%에 달하는 959억원(징수교부금 90억 포함)이 레저세로 과천시 재정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과천이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이유가 레저세 등으로 확보된 세수를 각종 복지예산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과천의 윤택한 복지와 풍부한 문화혜택은 레저세가 없으면 결코 이뤄질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이라는 슬로건에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레저세를 절반으로 줄이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의문 부호를 갖게 된다. 지난해 8월1일 민주당 김영록 의원 등 13명의 의원들이 경마에 대한 레저세율을 현행 10%에서 5%로 낮추는 내용의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과천시의 레저세 수입이 연간 960억원에서 480억원 가량 축소돼 재정파탄마저 우려되
그동안 필자는 참으로 많은 아트센터를 벤치마킹했다. 벌써 이 일을 시작한 지, 20년. 그러나 아직도 아트센터에 대한 갈증이 깊다. 생각해 보면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아트센터는 지방재정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관계로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하나의 커다란 애물단지 건물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해 질 것이다. 최근 지방 문예회관 관계자들이 필자가 근무하는 아트센터를 방문했다. 그들을 만났을 때 너무나 놀랐던 것은 전혀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예회관 공정을 다 마무리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공사가 다 끝난 지금에야 자문해달라고 한다. 이래서는 지역에서 지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트센터의 공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책임자급 2명(기획, 기술)은 최소한 필요한 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건설에 관련된 경비도 줄일 수 있고, 향후 운영하는 데 있어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정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필자가 지적한 이 부분을 받아들인 지방의 문예회관에서 전문가급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창룡문’은 여야가 선거구 획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게리맨더링’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었다. 우려의 근거는 상식이다. 선수인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뛸 경기의 규칙을 스스로 정하겠고 나선 것이 원죄(原罪)다. 또 정당간 극심한 갈등이 뻔히 예상되는 선거구 조정을 선거가 코앞에 닥친 시점에 시도한 무능한 정치일정도 문제다. 여기에 끝도 없는 정치인의 탐욕이 국민을 우롱하는 하는 결과를 낳았다. 덧붙여 ‘국익과 품위’라는 선진적 관례를 기대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자질도 누더기 선거구를 만드는데 한몫 거들었다. 불량 정치인들의 사생아라 할 ‘누더기 선거구’가 가장 극심한 곳은 경기도다. 게리맨더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식과 여론이 무시됐다. 여주는 생활권인 이천에서 떨어져 종단거리 104㎞, 차량이동시간 3시간여인 가평·양평 선거구로 붙었다. 용인은 기흥구인 동백동과 마북동을 이웃한 처인구로 합치고, 수지구인 상현2동만을 빼내 기흥구로 붙여 그야말로 너덜너덜한 선거구가 탄생했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수원시의 선거구 조정이다. 권선구청이 위치한 서둔동을 권선구에서 뽑아내 팔달구에 더하는 기형아를 만들어냈다. 당연히 지역의 반발이
공정(Fairness)은 결코 녹록치 않다. 우리 사회에 ‘정의 신드롬’을 낳았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 하버드 대학 교수는 공정 또는 불공정을 나누는 기준을 ‘소득, 명예, 사회적 지위 등 가치 있는 파이를 어떻게 나눠 갖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공정을 분배의 문제로 본 것이다. 어느 골프대회에 10억원의 상금이 걸렸는데 1등을 한 선수에게 8억원을 주고 나머지 2억원은 대회에 참여한 50명의 선수들에게 성적에 따라 상금을 분배했다면 과연 공정한 분배인가?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 중·고등학교 때 장학금을 놓쳐 본 일이 없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 우수한 성적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고, 유명대학의 교수로 취직했다. 그리고 연봉 1억원을 받고 있다. 또 한 친구는 중고등학교 때 놀 것 다 놀고 온갖 말썽만 피우다 지방의 단과 대학을 겨우 졸업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임원으로 일하면서 연봉 2억원을 받고 있다. 이런 경우는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위 사례가 얼핏 불공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를 불공정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국민들이 고대해온 가정상비약의 약국외 판매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는 지난 27일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었으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약사법 개정안 등 일부 안건의 통과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감기약 등 편의점 판매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약사법 개정안은 표류가 불가피해졌다. 법사위 측은 3월 초에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을 차질없이 통과시키겠노라고 했지만 이 또한 가봐야 알 일이다. 설사 법사위를 통과해도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면 만사휴의이기 때문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시원치 않은 18대 국회의 자화상이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국회는 너무 심하다. 엊그제 법사위 무산은 소속 의원들이 ‘지역 일정’을 이유로 들어 법안 심사 자리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되지 않았던가. 입으로는 국리민복을 외치지만 몸으로는 자기안위를 도모하기 급급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동안 약사법 개정안 상정에 마뜩지 않은 듯 미적지근한 자세를 취해오던 의원들이 애초부터 처리할 뜻이 없었던 것 같다는 의심과 푸념은 그래서 나온다. 누차 강조하거니와 국회는 국민의 의사와 이익, 편의를 무엇보다 우선해 고려해야 한다. 민의존중이 첫 번째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