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泰陵)은 중종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의 묘다. 그 옆엔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무덤인 강릉(康陵)이 있다. 문정왕후는 생전 중종 옆에 묻히길 원했다. 그래서 장경왕후의 능 옆에 묻혀 있던 중종의 정릉(靖陵)을 풍수지리가 안 좋다는 이유로 선릉(宣陵) 옆으로 옮겼다. 하지만 새로 옮긴 정릉의 지대가 낮아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나자 결국 그 자리에 묻히지 못하고 현재 위치에 예장되어 중종 옆에 묻히려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태릉은 왕비의 능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봉분을 감싼 12면 병풍석에는 12지신상과 구름 문양을 새겼고, 봉분 바깥쪽으로는 난간석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 상석과 망주석 1쌍을 세웠다. 또한 봉분 주위로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했으며, 능원 밑에는 홍살문도 있는데 당시 문정왕후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 같은 태릉은 1km 정도 떨어진 명종과 인순왕후의 쌍릉인 강릉(康陵)과 함께 사적 201호로 지정돼 있다. 전체 권역은 50만평에 육박한다. 태릉선수촌은 이중 약 10만평 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1966년 당시 대한체육회장이던 민관식 씨가 고 박정희 전 대
철 /박해미 석창 화훼단지에 갔더니 꽃만 만발해 있었다. 그 곳에서 알려준대로 서시장 종묘상회로 갔더니 꽃씨 심을 철이 지났다 한다 나도 참 철 없구나, 돌아오는 길 수년전 내게 신세 진 적 있는 초등학교 근처 작은 꽃집에 들렀다 철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찾는 경우가 있다고 반백이 된 꽃집아저씨 웃으며 건네주신다. 철없이 받아 온 꽃씨, 때 되어 심어 꽃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계간 리토피아 여름호에서 꽃을 심는 마음은 강력한 생명 에너지에서 나온다. 절망이나 포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때 늦은 철에 꽃씨를 사러 갔다가 무안을 당해도 상관이 없다. 그저 즐겁다. 꽃씨를 뿌릴 수만 있다면,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끝없이 행복하다. 또한 꽃씨를 사는 마음은 내일의 꿈이 충만하다는 증거이다. 철 지난 꽃씨를 사들고도 마음이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이유이다. 사철, 꽃을 키우는 마음은 그래서 건강하고 아름답다. /장종권 시인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민간인 거주지역 파주 대성동마을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23일 대성동 마을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김희겸 경기도행정2부지사, 이재홍 파주시장을 비롯해 한국해비타트, 새마을금고중앙회, 청호나이스, LH, KT, KT&G, 네이버 관계자, 김동구 대성동 마을 이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맞이 첫마을’ 대성동 프로젝트 관계기관 협약식을 가졌다. 이 마을의 낡은 주택 개축은 물론 상.하수도 등 각종 기반시설을 재정비해 관광명소화한다는 종합발전계획이다. 대성동 종합개발계획은 지난 1980년에 추진됐으나 이후 35년만에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지난 1980년 주택개량사업 이후 35년이 흘러 주택이 노후화했다. 주민들의 꾸준한 건의로 지난 1월 정종섭 행자부장관이 이곳을 직접 방문해 지원을 약속했다. 만시지탄이다. 대성동마을은 남한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마을로,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있다.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남북에 하나씩 민간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여 생긴 마을로, 북쪽에는 기정동 마을이 조성됐다. 분단
TV 광고 가운데 두 명의 어린이가 길을 걸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서로 이마를 부딪치는 장면이 있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사회는 어린이들까지 스마트폰에 넋을 빼앗겼다. 한때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면서 지나친 시청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캠페인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지금 스마트폰 열풍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음성통화와 SNS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고 각종 정보를 검색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휴대폰 보유율은 92.4%로, 만 6세 이상 국민 10명 중 9명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국민들의 ‘스마트폰 사랑’은 도를 넘었다. 식당에서도 술집에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많다. 나이 많은 노인을 모시고 통닭집에 간 아들·며느리와 손자·손녀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대화상대를 잃은 노인만 멀거니 앉아있는 풍경은 이제 낮 설지 않다. 본인은 스마트폰 폐인이 되건 말건 그래도 이 상황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문제는 보행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도…
칼을 한번 즈음 잡아 본 사람들은 칼에 대한 로망이 있다. 큰 칼을 멋지게 뽑아 시원하게 뭔가를 싹뚝 잘라버리는 환상이다. 옛말에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한번 베어야 한다는 말처럼 칼을 쥐면 멋지게 휘둘러 보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칼에 환상은 딱 거기까지다. 실전에서는 어떠한 고수라도 큰 칼질 한번으로 상대를 두 동강 내버릴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동작이 크면 클수록 공백이 생겨 방어 취약하기에 쉽게 움직임을 만들 수 없다. 역시 다른 맨손 무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신의 발차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영화처럼 하늘을 가르는 멋진 상단발질 한번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주먹 역시 한방에 상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크게 휘두르는 형태는 무모한 움직임인 것이다. 작은 주먹, 짧은 주먹, 작은 발질, 짧은 발질을 교묘하게 섞어 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큰 한방을 뻗어 내는 것이다. 검법에서는 크게 한칼을 베는 것을 씻어낸다라고 하여 세법(洗法)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말로는 베기라고 부르며 짚단이나 대나무를 대체물로 활용하여 베기법을 연습하곤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세법 즉 베기는 동작은 크고 멋있지만, 말 그대
여름 휴가철이다. 이번 휴가철을 맞아 즐거운 여행을 위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다 보면 갓길에 차를 대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수 있다. 갓길에 차량을 정차하면 뒤따르는 차량이 정차차량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추돌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실제로 고속도로상에서 갓길 추돌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특히 시인성이 떨어지는 야간에 경우 그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와 같이 고속도로 갓길은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는 특성을 감안하여 긴급차량의 통행이나 고장차량의 일시 주정차만을 허용하는 등 그 이용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체고속도로의 교통사고사망자 열명 가운데 한명(9%)이 갓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하니 갓길의 위험성은 반론의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또한, 장거리 여행 시에는 수시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과 번갈아 운전을 하여 졸음운전에 대비해야 한다. 차량고장 등 부득이 갓길에 정차해야 할 경우에는 차량 후방에 삼각대등 안전표지를 설치하여 뒤따르는 차량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또한, 추돌사고를 대비하여 차량에
우리는 매일 인터넷, 방송, 신문 등을 통해 무섭고 끔찍한 교통사고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는 아닐 것이다’라고 넘겨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냥 주위에서 일어나는 흔한 사고로 생각하지만, 그 상황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라면 어떨까? 운전을 하다보면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자주 볼 수 있다. 기초질서·교통법규 지키기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남이 지키지 않으면 비난을 하지만, 자신이 지키지 않는 것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또한 자신의 그러한 행위에 대해 관대하다. ‘나 하나쯤 괜찮겠지’라는 의식이 ‘법질서 지키기’보다 앞서는 것 같은 현실이다. 그러한 의식으로 인해 사소한 교통위반을 하고 그 위반이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교통사고는 교통법규 위반에서 발생한다. 왜 위반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한 ‘나쁜 운전습관’ 때문이다. 너도나도 먼저가려고 하는 조급증 때문에 위반을 하게 되고 그러한 위반이 또 다른 위반을 하게 만들어 자꾸 위반하게
인도 붐바이에 가면 색다른 관광상품이 외국인을 유혹 한다. 아시아 최대 빈민촌 다라비 슬럼을 방문하는 두시간짜리 투어가 그것이다. 가격은 약 200루피, 우리나라돈으로 4800원을 내면 가이드의 안내로 100만명이 거주한다는 슬럼가 구석구석을 둘러볼수 있다. 일종의 체험여행인 슬럼투어는 인도 말고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호싱야,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등 제3세계의 거대한 슬럼가도 인기 있는 장소로 꼽힌다. 인기의 비결은 유적지나 명소 위주의 관광 코스와 차별화된 문화 체험이 가능하다는 이유다. 따라서 유명 슬럼가는 해마다 2만명에서 5만명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세부적인 프로그램도 ‘슬럼가 주민의 집에서 하룻밤 자보기’ '슬럼가 공터에서 축구해보기’ 등등 다양하다. 1992년 브라질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슬럼투어는 1880년대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매우 오래다. 당시 호기심 많은 영국 런던 귀족들이 자선을 명분 삼아 경찰의 호위 아래 슬럼가를 둘러보던 것이 시초라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호기심은 매우 대단해서 런던과 뉴욕의 슬럼가를 비교할 정도 였다고 하는데 뉴욕에선 이들을 고객으로 붙잡기 위한 여행사가 등장했고, 슬럼 가이드책자까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김갑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바람 불고 비 뿌리고 날빛이 소복소복… 아팠다 아팠으므로 천지에 눈 내리고 바람 치고 이렇게 살아서 국 국물을 들이키거나 잡지를 사거나 왈칵 아침이 찾아와… 쓰라렸다 어떻게 정말 다들 미친 것은 아닌지 살아서 나 저녁 길섶에 어두운 기억들 불러모아 두런두런 말하며 저물려 하네 나무나 돌이나 바람이나 혹은 헤어져 버린 사람이거나 오직 지금 말 할줄 모르는 것 하고만! 시에서 어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듯하다. 처음보는 사람과 대하는 차한잔도 그렇고 사랑도 그러하다. 추억을 발견하고 창조한다는 것은 지난 일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뜻일 것이다. 가슴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사연을 묻어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할 줄 모르는 것,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과 대화를 갖는 것이다. 절박한 현실문제가 있지만 터놓고 마음을 나누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이란 현실은 분명 현실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길이다. 세월의 나이를 먹고 주름살 파고드는 절박한 일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대화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더불어 추억을 재생하는 일들이란 자유롭지 못한 병환과 같다. /박병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