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수원시 화성박물관에서는 한.일 세계문화유산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그 첫날인 지난 10일 개막식에는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 대사가 참석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주제로 인사말을 했다. 그런데 하루 뒤인 11일 오후 일본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대참사가 벌어졌다.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무토 대사가 지진과 쓰나미 발생 이후 초췌한 얼굴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원을 제의했지만, 특별히 한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의 피해가 컸다. 앞으로 희생자가 몇 만 명이 될지 모른다고 한다. 오죽하면 일본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과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는 정신대 할머니들조차 “하늘 아래 다 같은 생명이 아니냐. 날개라도 달려 있으면 날아가 두 손을 마주잡고 위로라도 해 주고 싶다”라고 애도하고 있겠는가. 수원시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화성과 화성행궁 앞에도 한국어와 일본어로 ‘아픔을 함께 합니다, 힘내세요 일본!’이란 현수막이 걸렸다. 지진 이후 일본인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 발길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 현수막을 본 일본인들은 자국의 참상과 한국인들의 성원에 눈물을 글썽거리
청년실업은 어제 오늘에 머물지 않고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지만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직업을 찾지 못한 청년들이 아예 직업갖기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무위도식하면서 취업 활동도 하지 않는 이른바 ‘비구직 청년 무업(無業)자’가 100만명을 넘어 섰다고 한다. 비구직 청년 무업자는 교육, 훈련, 일 가운데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가운데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15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층을 말한다. 학계는 청년 무업자를 ‘니트’(NEETㆍ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족으로 부른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노동정책분석실장은 노동리뷰 3월호에서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 1월 기준 비구직 니트 인구는 103만2천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는 1개월 전인 작년 12월의 97만5천명에 비해 5만7천명, 전년 동기인 작년 1월보다 2만9천명 각각 증가한 수치다. 비구직 니트 인구가 100만명을 웃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정규 교육기관이나 입시학원 또는 취업을 위한 학원이나 기관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육아나 가사를 하는 것도 아닌 데도 놀고 먹으면서 일자리를 찾지 않는 인구가 100만명
일본 동북부 지역의 여러 도시들이 한 순간에 폐허로 변했다. 대지진의 여파로 땅 위에 세워져 있던 대다수의 건축물들이 무너져 내렸고, 수만명 주민들의 생사는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재앙이 일본 열도를 덮친 것이다. 언론에 비쳐지는 참상을 대하자면 허망함을 넘어 구원의 애절함이 솟구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시선을 잠시 달리하자면 이 같은 모습이 오늘에의 기성세대들에게는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반세기 전 3년에 걸쳐 이 땅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은 이 나라 전체를 황폐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우리였는데 이제 많은 우리 국민이 일제 강점기의 아픔까지도 삭이고 이웃의 아픔을 달래주려 마음을 모으고 있다. 단지 온당한 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대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는 너무나도 험난한 세월들을 보내야만 했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우리는 온갖 역경을 피와 땀으로 온 몸을 적셔가며 헤쳐 왔던 것이다. 6ㆍ25 당시 60불이었던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지금은 2만불을 상회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과연 오늘에 우리가 이 같은 과거의 우리의 자화상을 자
봄볕이 따사로운 오후 눈부신 3월의 햇살이 삶의 풍요로움처럼 포근히 다가온다. 봄을 상징하는 꽃과 나무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듬뿍 받으며 맘껏 뽐내고 있다. 내 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의 책장을 넘겨 본다. 우리의 첫 만남은 3월의 어느 봄날…. 흐린 회색빛 하늘의 아침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일요일이면 함께 등산을 다녔는데 그 날은 도봉산으로 갔다. 중턱쯤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장 밑에 비를 피할 만큼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비도 피하고 점심도 먹을겸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배낭을 풀고 고체연료에 불 붙이고 찌개거리도 만들고 바삐 움직였다. 이때 등산복을 잘 차려입고 우산까지 받쳐든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우산도 받쳐주고 이것 저것 도와 주고 내려갔다. 오후가 되니 날씨가 활짝 갰다. 산 속의 모든 것들이 봄비에 씻겨 상큼한 오후였다. 하산 길에 중턱쯤에서 또 그를 만났다. 선후배들과 같이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같이 하게 됐다. 유머도 풍부해서 친구와 나는 배꼽이 달아날 정도로 실컷 웃었다. 성인이 된 후 가장 많이 웃었던 하루였다. 청명한 하늘에 닿을 것만 같던 계곡에 울려 퍼지던 맑은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오랜 세월이 흘러
도내 축산업계 전반을 붕괴 위기까지 몰아 넣었던 구제역 사태가 발생 5개월여 지나면서 종식 국면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도는 지난 13일 가평·김포 등 구제역이 발생한 도내 19개 시군의 가축이동제한 조치를 모두 해제했다. 가평과 김포가 17일 재입식한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시·군도 해제 시점에 따라 가축 재입식을 시작할 예정이다. 구제역 발생농가 반경 10㎞ 내 농가에 적용되는 이동제한은 해당 지역에서 3주간 구제역이 발병하지 않으면 해제돼 바로 재입식이 가능하고, 발생 농가는 해제 후 30일이 지나야 재입식 할 수 있다. 도는 빠르면 이달 말 부터 구제역이 발생한 도내 농가에 대한 가축 재입식을 시작할 방침이다. 도내 재입식 가축 수는 한우 3만3천두, 젖소 3만1천두, 어미돼지 15만두 등 모두 21만4천두. 도는 가축 방역관과 민간 컨설턴트를 활용해 축산 농가에 대한 방역 상태에 대한 확인에 들어갔다. 또 지난 16~23일 구제역이 발생한 한우 633개 농가, 젖소 533개 농가, 돼지 1천58개 농가 등 모두 2천224개 농가를 대상으로 매몰지 소독 등을 하는 ‘축산 클린 대청소’를 시작했다. 이번 대
1999년 8월,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 네이멍구(內蒙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다니던 신문사의 창간특집 기획기사 취재차 방문이었는데 일정에 ‘사막에 나무심기’ 행사가 들어있었다. 선양(瀋陽)에서 버스를 타고 네이멍구의 관문격인 퉁랴오(通遼)로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밭으로 이어졌다. /그 황당하고도 환장할 풍경이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노정(路程)이다. 퉁랴오에서 하루를 묵고 네이멍구에 있는 유일한 조선족 마을이라는 ‘선광촌(鮮光村)’엘 들렀다. 선대(先代)가 충청도에서 이주해 이곳에 정착하며 마을이 형성됐다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이 마을 입구에 줄지어 선채 환영해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러한 환영이 진정한 동포애에서 우러난 것이란 착각도 잠시, 마을 촌장이란 사람이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바람에 씁쓸한 기분으로 향한 곳이 바로 커얼친(科爾泌) 사막이 있는 나이만치(奈曼旗)란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환대는 대단했다. 기차역에 악대(樂隊)까지 동원해 그야말로 ‘열렬히’ 환영해준 것은 물론 황량한 사막에서 몽골의 축제인 ‘나담’을 다시 열어
아, 어찌 이런 일이…. 지금 일본 열도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탄식의 소리가 높다. 아이티 대지진 참사와 칠레의 강진에 이어 일본 열도의 강진으로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가져 왔다. 현재 인류는 잇따른 재난에 따라 환경재앙을 우려하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번 일본 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 기록상 최고 규모로 전 세계가 대지진의 전조가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와 심지어 호사가들은 ‘지구종말론’까지 운운하고 있다. 이번 일본 지진은 동쪽에 있는 태평양 지각(地殼) 판(板)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일어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구 표면은 작은 천 조각을 이어붙인 조각보처럼 거대한 땅덩어리들이 맞닿아 있는 형태인데 일본 열도는 이 중 4개의 지각판이 만나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 서쪽의 유라시아판, 동쪽의 태평양판, 북쪽의 북미판, 남쪽의 필리핀판이 그것으로 이 지각 판들은 그동안 꾸준히 활동을 해오면서 일본 열도를 수시로 뒤흔들어 놓았고 많은 피해를 가져 왔다. 얼마 전 ‘해운대’라는 재난영화를 단지 픽션인 것처럼 태연하게 감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화된 일본 재해를 보면
무위지치(無爲之治)란 말이 있다. ‘성언의 덕이 크면 클수록 백성들이 저절로 감화돼 따른다.’는 뜻이다. 이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 “세상의 존경을 받으려면 말과 행동이 겸손해야 한다. 사람을 인도하려면 앞에서 외치지 말고 뒤에서 밀어야 한다. 그리하면 한사람의 원수도 만들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중국고대 전설상의 제왕인 요임금이 미복잠행해 민정시찰에 나섰다.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태평성세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위지치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정치란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하는게 좋은 정치라고 할 때 쓰이는 말이 무위지치다. 일본 후쿠시마 현의 산골마을 야마쓰리라는 곳에서 있었던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 선거가 일본열도를 달군 일이 있었다. 투표일을 열흘쯤 앞뒀는데 후보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야마쓰리를 24년간 장기집권한 ‘네모토’단체장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주민과 의회가 그의 연임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또 그가 없는 야마쓰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마땅한 후임자나 정적도 없어 이 직책을 물려 주어
고령화 사회는 보다 많은 비용지출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한 국가의 쇠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출생률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할 경우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들었다. 통계청의 ‘2010년 사회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은 1980년 3.8%에 불과했으나 2050년에는 38.2%로 70년간 34.4%p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기 퇴직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송세월 하는 노인 아닌 노인들이 우리 주변에는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고 또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0 고령화 통계’를 살펴보면 55~79세 고령자 중 60.1%는 앞으로도 일하기를 희망했지만 55~64세 연령대의 실제 고용률은 60.4%, 65세 이상 고용률은 29.7%에 불과했다. 각 자치단체에서 노인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경기도내 노인 일자리 확대를 위해 설립된 ㈜경기희망일터가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향군회관 2층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경기희망일터는 노인 일자리 용역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자연 자원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구를 보존하자는 차원에서 세계 모든 국가정책 과제로 채택되고 있다. 1992년 브라질 리우회의(UNCED)의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선언문 채택과 의제21(Agender 21)에서 핵심적 화두로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천명했다. 리우회의 이후 여성환경문제는 거의 모든 세계회의에서 중요한 의제로 포함됐다.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 1995년 코펜하겐 사회개발정상회의 등 유엔개발회의에서도 그 의제가 포함됐다. 그러나 여성은 지속가능한 사회 관점에서 소외되고 있다. 여성의 성 주류화와 성 인지적 정책은 남녀 모두에게 득이 되는 상생의 정책이며 남녀통합의 사회를 목표로 한다. 이는 경제성장과 환경보존, 사회통합의 특성을 조화롭게 이뤄가는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의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구현돼야 하는 요소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들로 정책기구의 정비와 예산의 확충, 성 인지적인 통계, 정책과 프로그램 담당자의 성 인지력 향상, 정책과 프로그램의 성분석 등이 개발돼야 한다. 모든 정책에 성평등의 시각이 적용될 수 있도록 남녀가 사회각 분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