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적인 자연 변형, 도시개발로 문명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후, 필연적으로 발전의 그늘에 가려진 것들이 어찌 하나 둘이겠는가? 성장과 발달의 준거로 외형적 물량적 확장에 편의성이 더해져서 현대인들은 좀처럼 개발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문명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은 과거의 형상에 대한 어떤 정보나 인식조차 없다. 따라서 그들의 무한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과거는 덮여져야 하고 미래 또한 불확실할 수도 있는 가시밭길을 감추려 한다. 도시개발이 한창인 평택시 소사벌지구 내에 들풀로 하늘거렸던 삼남대로 구간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으니 푯말 하나 세울 곳도 관심도 없을 듯하다. 이 개발에 밀려 실종된 것들을 생각해본다. 먼저 역사의 실종이다. 현대인들의 역사인식의 부재를 증명한다. 개발의 최종 종결은 무엇인가? 자본의 이익이다. 역사의 토대는 안중에도 없는가 보다. 과거의 기름진 토양이 없이 현재의 열매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현대화는 불행하게도 현대화로 직행할 줄만 알았지, 과거 지도(地圖)는 무참하게 여지없이 삭제되는가 보다. 그 증거물들이 철저하게 영구 삭제돼 가고 그 지도를 보는 직책의 사람 또한 바뀌어 더 이상 계승 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역
브랜드커피를 마시며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을 가리켜 ‘파노플리 효과 (effect de panoplie)’라고 한다. 상품을 통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을 장 보드리야르가 ‘파노플리 효과’라고 부른데서 유래됐다. 커피는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 ‘카파(caffa)’ 로 불렸다. 이 말은 ‘힘’을 나타내며, 동시에 커피나무가 자생하는 곳의 지명이기도 했다. 이것이 아라비아에서 ’qahwa’가 되고, 터키에서 ‘카베(kahve)’로,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카페(cafe)’가 되고, 영국에서는 ‘아라비안 와인’으로 불리다 17세기 중반 헨리 블런트에 의해 오늘 날과 같은 ‘커피(coffee)’가 됐다. 커피는 예술의 창작활동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오스트리아의 ‘보그너’나 ‘실베르네’ 같은 커피 하우스에는 슈베르트와 베토벤, 베를리오즈, 리스트 등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프랑스는 소르본느 대학 인근에 탄생한 ‘카페 프로코프’가 성공하면서 카페 시대의 막을 열게 된다. 그리고 커피광(狂)이었던 오도레드 발자크가 1830년에 발표한 ‘파리 지붕 위의 한 위인’이라는 소설이 프랑스 카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커
4월은 봄바람이 가득한 설레임의 계절이고, 새로운 기대 속에 다시 한번 자신에게 다짐을 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4월은 내게도 매우 뜻 깊은 계절이다. 지난 해 4월 20일 나는 한나라당으로부터 공천을 확정 받고 정치라는 또다른 지역봉사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평범한 주부로서 남편과 세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온 내가 꿈같은 시의원에 당선돼 벌써 1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의원으로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힘들고 벅찬 느낌이 먼저 든다. 모든 것이 생소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흘러 의원으로 지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관점’이다. 지역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생활 속 불편사항을 모르고 지나치거나 혹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고도 ‘누군가가 시정하겠지’ 하면서 무관심하게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새록새록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누군가 시정하겠지’했던 ‘누군가’가 바로 내가 된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가로등을 교체해야 될 것 같다’ ‘신호체계를 개선 해야겠다’ ‘입간판을 정리하면 보기 좋을텐데’ 등 우리들이 일상에서 생활하면 불편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머릿속
경기도가 뒤늦게 내놓은 ‘뉴타운 사업 대책’의 골자는 주민동의 확인강화,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 완화 등이 다. 그리고 앞으로 뉴타운 지정은 더이상 없을 거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경기도가 4년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주민들의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벌였던 ‘공약’이 그야말로 ‘빈말’이 되고 만 것이다. 이같은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수반돼야 할 조치들 가운데 경기도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대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의 개정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발의해 놓은 비슷비슷한 관련법령 10여건 대부분 상임위에 계류중이어서 실현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더욱이 경기도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지원책은 거의 없다. 경기도의 대책을 보면 뉴타운사업조합 설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사업구역에 대해선 시장·군수가 주민 의사를 확인한 뒤 촉진계획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추진위가 구성된 62개 구역은 주민의사와는 관계없이 강행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의 경우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는 주민들과의 마찰을 비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여 새 불씨를 안고 있다. 또 임대주택 의무 건설 비율의 완화와 기반시설 설치비 지원
병인양요(丙寅洋擾)는 1866년(고종 3년)에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전쟁이다.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진짜 목표는 천주교 박해에 대해 보복보다는 자국의 통상이익을 위해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는데 있었다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도 존재한다. 병인양요 때 조선군의 반격에 패퇴한 프랑스군은 자국으로 철수하면서 강화도에 소장돼 있던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고도서를 약탈해 자국으로 가져갔다. 그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이 145년만인 14일 고국으로 귀국했다. 이번에 되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유일본 30권 중 일부를 포함해 총 80여권으로, 다음달 말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돌아온다. 비록 대여형태지만 5년 단위의 갱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영구반환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7월 19일부터 9월 18일까지 환수문화재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145만에 고국 땅을 밟는 외규장각 도서를 환영한다. 아울러 이번에 이 자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관계자들의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외규장각 도서 귀환의 일등공신은
지난 금요일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삼십 여분 동안 마음앓이를 했다. 탑승구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 이십대로 보이는 두 남녀를 지나치고 있는데 갑자기 남성이 소리를 지른다. “내가 가자고 하잖아. 따라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역사 안의 의자에 앉아 지켜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가 남성이 여성의 손목을 움켜쥐고 기둥 뒤로 끌고 갔다. 처음에 여성은 가겠다고 하면서 손을 놓으라고 하다 지나던 사람들이 흘끔거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여성은 포기하고 따라갔다. 기둥 뒤에 일부분 가려졌지만 더러더러 남성의 손이 여성을 향해 움직일 때마다 여성이 움찔움찔 거리는 모습 속에서 그 여성이 느끼고 있는 폭력의 위협이 바라보고 있는 내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한참이 지나 ‘야, 너 정말 죽을래?’하는 남성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여성이 눈물을 훔치며 급히 탑승구로 뛰어내려가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딸에게 방금 전의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엄마, 나도 지하철에서 가끔 그런 광경 봐요. 얼마 전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 뺨 때리는데 여자가 챙피해서 그런지 ’제발 제발‘ 하
몇 해 전 처음으로 임진강을 찾았을 때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스산한 풀밭 사이로 우뚝 서 있었다. 당시 가슴이 서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달 28일 다시 임진강을 바라보면서 임진각에 올라 북녘 하늘을 올려다 볼 기회를 가졌다. 신체장애우들과 함께 임진각을 둘러보고 예술의 마을 헤이리를 구경하는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80여 명의 사랑 나눔 가족들이 버스 두대에 나눠 탔다. 적십자의 봉사원 10여명이 함께해 휠체어도 밀고 손을 잡고 즐거운 봉사로 하루를 보냈다. 이날 나눈 정은 오랜만의 행복, 감동, 최고의 날이었다. 임진각 주변 넓은 주차장은 평일이어서 황량한 채 바람이 찼다. 그래도 파릇파릇 움트고 있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북녘의 하늘로 날아가는 철새의 그림 같은 풍경도 볼 수 있었다. 6.25의 잔상이 진열된 탱크, 장갑차, 비행기, 트럭 등이 상처를 안고 진열돼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지긋이 눈을 감고 그때 그 전쟁을 기억했다.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6.25의 핏물이 저 임진강 속으로 스며 흐르고 있을 것 같아 슬픈 마음이 기쁜 관광을 잠시 거둬갔고 6.25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라 소름도 끼쳤다. 장애우들과 즐겁게 사진도 찍
3월 11일 금요일 일본 도호쿠지방 부근 해저에서 발생한 진도 8.8의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해일이 미야기현 나토리 시내를 집어 삼켰다.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이 허물어진 집채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여기 저기 떠다녔다. 비행기와 자동차가 아무 힘 없이 휘청거렸다. 한평생 살면서 이런 재해는 처음이었다. 그 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 했을까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한달여가 지난 7일밤 나토리시에 지축을 흔드는 지진이 또 찾아왔다. 시내 한 호텔에 묶고 있던 두명의 한국인은 소스라쳐 놀라 잠을 깼다. 이들은 다름아닌 분당을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등록했던 장석일씨와 동행인이었다. 장씨는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공천경쟁을 벌일 당시 일본을 휩쓴 쓰나미 현장을 찾을 계획을 세웠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촉박한 당내 공천 일정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긴박한 사정 때문이었다. 산부인과 의사출신으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본으로 달려가 고통에 신음하는 일본인들을 돕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공천이라는 굴레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국내 정치상황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공천’은 정치 신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
요즘 이상(李箱·1910~1937)을 다시 읽으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말이 있다. 그 말은 20대 시절, 내 친구가 편지로 보내준 것이기도 했는데 이는 다름 아닌 단편 ‘실화(失花)’의 첫머리에 나오는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었다’는 구절이다. 이 뿐 만이 아니라 이상은 시인답게 단편의 도입부를 시적인 언어로 장식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날개’에서는 ‘육신이 흐느적 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라 했고, ‘봉별기’에서는 ‘스물 세 살이오. 3월이오, 각혈이다’라 했다. 그렇다면, 이상의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이상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공연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잊었던 이름, 그 여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두 명의 천재와 살다 간 여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변동림(卞東琳·1916~2004), 또는 김향안(金鄕岸)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시인 이상의 아내였을 적엔 변동림이었고, 화가인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1974)와 재혼해서는 김향안으로 살았다. 1930년대 경성(京城)의 최고 트렌드는 ‘자유연애’였다. 자유연애를 빼놓고는 이 시기 ‘모
지난 주말 지방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주중이어서 정체 없이 달리는 차창 밖 풍경에는 봄이 이미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봄 가을은 없고, 여름 겨울 두 계절만 남았다. 지난 겨울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추웠다. 지구온난화로 그동안 겨울이 겨울답지 않았고 그 정도의 추위에 익숙해진 우리는 겨울이 겨울다웠을 때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이던 1970년대 전후의 겨울은 시리도록 추웠다. 봄은 봄답고, 여름은 여름답고, 가을은 가을답고, 겨울은 겨울다운 것이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이제 정국은 보궐선거로 뜨거워지고 있다.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의 복지문제, 고유가, 고물가, 실업문제, 전월세 대란 등으로 여야는 목숨을 건 경쟁에 돌입했다. 2012년의 19대 총선, 대선의 전초전으로서 여야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책 사안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골몰해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서를 막론하고 수백 년을 수성한 왕조들에서 교훈을 얻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