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인환의 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에서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잘 아는 시인 후배 이름이 ‘인환’이다. 성은 추가이고, 호는 추산(秋山)이다. 그런 그가, 가족을 잃고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다고 신음하고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주 한옥마을로 당장 오라는 것이다. 오지 않으면 자기가 걸어서라도 데리러 오겠다면서. 전주역에 내리면 첫 마중 길에는 프랑스 파리풍의 붉은색 1000번 버스가 한옥마을로 모셔다 드리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코앞에 전동성당이 있다. 맞은편은 경기전이다. 좀 더 걷다 우회전하여 전주천변 쪽으로 100여 미터 가면 최승범 시인의 '고하 문학관'이 나온다. 이어서 천변 쪽으로 더 내려가면 (사)전주한옥숙박체험협회 이사장으로서 이름은 인환이요 호가 추산이라는 시인이 운영하는 업소로써 2층 한옥집이 있다. 명당 터 이마의 대문에는 “한옥의 별” ⸀금원당(琴園堂)」 ‘전주시 지정 한옥마을 우수업소’라는 동판이 붙어 있는데 별 3개가 새겨져 있다. 추산을 만난 그날이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안마소로 데리고 갔다. 육체적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북한은 ‘화성포17형’ 이라고 명명한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일인 3월 24일을 이제 더 이상 평범한 날이 아니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과의 장기적 대결구도에서 강력한 핵공격 수단이자 강력한 핵전쟁 억지력으로 개발되었다’ 고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핵무력 강화를 선전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행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미국과 러시아 갈등상황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행위에 대한 유엔의 추가 제재 조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고, 미국 독자 제재는 이미 작동중이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뒷배 지원으로 그다지 아프지 않다는 심산에서 비롯되고 있다. 미국 관심이 분산된 상황과 한국 정권 교체기를 이용해 핵무력 고도화를 실현할 수 있고, 상황이 변해 미국과 협상을 하게 되면 협상 레버리지를 높이며, 가뜩이나 경제난에 시달려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미 제국주의자들과 힘을 겨루는 강한 국가라는 자부심을 심어 주고자 하는 ‘일석 이조 삼조’의 다목적 행보이다. 현재 북한은 ‘약자이고 피해자’ 라고 하면서 자신들 보호를 위해서는 타방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당돌함’과 함께 ‘전략적 지위’를 가진 강력한 국가가 되고자 하는…
- 쥘리앵의 총격 “쥘리앵에게 그녀의 모습이 그리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부인을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빗나갔다. 그러자 그는 두 번째로 또 발사했다. 부인이 쓰러졌다.” 저격 사건이었다. 그것도 신성한 교회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표적이 명확하게 들어오지도 않았고 첫발은 빗나갔다. 설사 동기가 아무리 옳다해도 의도치 않은 희생자가 생길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격발(擊發)이었다. 놀랍게도 그 표적은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레날 부인이었다. 두 번째 발사라는 대목은 살해 의지가 매우 강했음을 말해준다. 돌이킬 수 없는 결행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그 종반(終盤)대목이다. 1830년, 프랑스 혁명이 좌절당한 채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시대에 미남에 총명하고 야망에 찬 한 젊은이 쥘리앵 소렐의 출세기로 알려진 작품이다.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가보자. 통상적으로 생각해보면 총을 쏜 자는 재빨리 현장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쥘리앵은 그러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뒤 잡혀가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면 이럴 수 없었다. 쥘리앵은 총명하고 계산이 빠르며 출세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
진정한 삶이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신력으로 육체를 극복하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습관은 좋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도 그렇다. 좋은 행위도 습관이 되어버리면 이미 덕행이라고 할 수 없다. 오로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만이 덕이다. (칸트)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의 업무를 겸허한 마음과 높은 도덕심으로 쉬지 않고 실천하면, 그 사람의 성격을 공고히 하여, 어지러운 세상 속에 있든, 단두대 위에 있든, 의연하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에머슨) 성장은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지 폭발하듯 갑자기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하나의 학문 체계를 한 순간의 폭발적인 사색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듯, 순간적인 회개를 통해 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적 완성의 진정한 수단은 냉철한 판단력에 의한 부단하고 끈기 있는 노력뿐이다. (채닝) 정신적인 노력과 인생을 아는 기쁨은 육체노동과 휴식의 기쁨처럼 서로 번갈아 찾아드는 것이다. 육체적인 노동 없이 휴식의 기쁨은 없고, 정신적인 노력 없이 인생을 아는 기쁨은 없다. 자신
4월 5일은 청명(寒食)으로 고향 북쪽에서는 공휴일이다. 산에 산에 꽃이 피는 시기이다. 남쪽에서는 벚꽃이 한창이다. 이 시기 북쪽 고향에서는 조상의 묘부터 살핀다. 묘소 주변을 정돈하거나 혹은 묏자리가 좋지 않거나 먼 거리 오가기가 불편하면 청명날에 맞추어 이장(移葬)을 한다. 떡이며 부침이며 과일 같은 구하기 힘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산으로 오른다. 이러한 제례의식에 참여 못하는 사람들은 산에 갈 이유가 없는, 조상의 묘가 없는 사람들이다. 북쪽 고향집도 조상묘가 없어 청명날이면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제상을 차려놓고 집안에서 제사를 한다. 할아버지는 중국 장춘 어디에 묻혔고, 기일(忌日)도 모르는 장손인 아버지는 막연하게 비슷한 날을 추정했다. 생전에 좋아했다는 담배를 상위에 놓으면 신기하게도 사람이 흡인하는 것처럼 반짝이며 타들어갔다. 어머니는 제상 차리는 것을 거들면서도 못마땅해했다. 사진도 없는 제상에서 부모님들은 눈물을 보였다. 나에게는 고향이지만 부모님에게는 타향이고 두만강 건너 정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슬픈 것도 딱히 기쁜 것도 몰랐던 청명(寒食
언어는 은유(隱喩 메타포)의 바다다. 김동명의 시 구절 ‘내 마음은 호수요.’는 비유법 중 은유를 잘 보여준다. 은유는 ‘~과(도) 같다’는 설명을 숨기는(隱) 비유다. 시적(詩的) 표현에만 쓰이는 개념이 아니다. 언어와 사물(일과 물건)의 관계는 대개 은유로 연결돼 있다. 서양 논리학에서 온 말이되, 언어의 작동 원리가 원래 은유적이니 동서양 구분이 필요하지 않겠다. ‘내 마음은 호수와(도) 같다.’가 은유의 상대 개념인 직유(直喩 시밀리)적 표현이겠다. 같은 뜻이되 맛이 다르지 않는가. 예문들의 그 ‘마음’ 즉 ‘마음속 생각’은 한자어로 흉금(胸襟)이 되겠다. 한자어는 한자가 바탕인 외래어다. ‘오픈’이나 ‘클릭’은 영어가 바탕인 외래어다. ‘아침’ ‘무지개’ 같은 토박이말과 함께 외래어는 한국어를 구성하는 요소다. 장제원 당선자비서실장이 최근 대통령과 당선자의 회동 후 “(두 사람이) 흉금 없이...대화를 나눴다.“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혹 회동에서 대통령이나 당선자 중 한 사람이 ‘흉금 없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참 솔직한 표현이군.’하며 어떤 이들은 쓴 웃음을 지었으리라. 장제원 비서실장(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156분간 마음에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우크라이나는 전화에 휩쓸리게 되었다. 이 전쟁의 원인은 무엇이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이 전쟁에 대해 우리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과 영국의 편향된 언론 보도를 복사해 붙이느라 여념이 없다. 러시아 전함과 탱크의 피격 등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예외적인 사실들, 또는 러시아군이 자국 항공기를 격추하는 등 군사반란에 직면했다는 따위의 사실 확인이 안 되는 프로파간다 차원의 기사들을 선택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우리 국민들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 우크라니아 국민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러시아를 비난하게 된다. 러시아의 1차 목표는 백인 우월주의의 극우 나치 민병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아조프 부대를 섬멸하고 마리우폴을 점령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한스크 공화국 사이에 있는 마리우폴을 점령함으로써 돈바스 지역을 평정하려는 것이다. 나아가서 우크라이나를 중립국으로 만들고 나토 가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후 북대서양
故 장준하 선생(1918-1975)이 저자다. 스무살 때 처음 읽었으니 어언 40년이 넘었다. 그 감동은 줄지 않았다. 그간 또래나 후배들에게 선물한 것만 족히 백 권은 넘는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읽기를 권해왔다. 10여 년 전, 대학생들에게 씨알사상을 강의할 때는 아예 필독서 리스트에 올렸다. 요즘 청소년들은 안타깝게도 김구도 안중근(응칠)도 잘 모른다고 한다. 장준하를 알 리가 없다. "안중근 의사를 안과의사라고 하는 애들도 있다"는 중학교 교사의 탄식도 들었다. 그렇게 자란 친구들이 이 특별한 책을 읽고 발표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뭉클했다. "졸업하고 세상에 나가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장준하 선생처럼 살겠다"던 학생대표의 스피치를 들으며 목이 메었다. 아, 장준하! 박정희의 정적이 둘이라면 장준하와 김대중이다. 하나라면 장준하다. 그래서 먼저 죽인 거다. 독립군 출신 정치인으로서 "독립군을 사냥하던 박정희만은 안된다"며 저항했던 선생은 박정희의 독재가 극한으로 치닫던 1975년 8월 포천의 약사봉에서 암살되었다. 추락사로 위장된 그 더러운 역사는 먼 훗날(2013년 3월 26일) 타살로 결론이 났다. 장준하, 김준엽 등 50여 명의 청년들이 7개
진짜 봄이 온다. 세상을 색색으로 물들이는 봄이. 이맘때쯤이면 사람들은 봄꽃 개화 시기 지도를 펴고 발을 동동 구르지만 봄은 남쪽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온다. 마침내 시린 겨울을 보낸 이들 앞에서 봉오리를 틔우고 고운 잎을 펼쳐낼 때, 모두가 기다리던 봄은 시작된다. 하지만 축제는 없다. 봄이면 늘 수도권을 들썩이게 하던 축제들은 어떻게 됐을까. 황홀한 노란빛 양평 산수유·한우 축제와 이천 백사 산수유꽃 축제, 산자락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부천 원미산 진달래 축제, 아름드리 벚나무 이백여 그루가 수원 팔달구 일대를 화사하게 빛내주는 경기도청 벚꽃축제는 모두 취소됐다. 3년 연속 경기관광대표축제로 선정되며 진분홍빛 철쭉동산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를 펼치던 군포 철쭉축제도 3년째 조용하다. 친구, 가족, 연인이 가볍게 가까운 동네로 나가 봄꽃을 맞이하고 버스킹 공연과 마술쇼를 관람하며 지역 생산품을 구경하다 먹거리를 실컷 즐기는 축제들은 3년째 빗장을 내걸었다. 무엇보다도 안전이 최우선인 시기에 축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고, 각 지역마다 몰려들 인파가 두려워 방문 자제를 요청했다. 그래도 올해는 지난 2년과 다르다. 제주, 대구, 태안 등지에선 예년보다
뉘우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과 단점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는 자기 내부의 모든 악을 질책하는 일이고,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며, 영혼이 선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애쓴다면, 그는 이내 선인에서 악인으로 전락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없고,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탈무드) 신 앞에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타인과 자신 앞에서는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정작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놓고도 오히려 상대를 나쁘게 말한다. 선인이란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고 자신의 선행은 잊는 사람이며, 악인이란 그와 반대로 자신의 선행은 기억하지만 자신의 잘못은 잊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 그러면 남을 쉽게 용서하게 될 것이다. (탈무드) 자신의 지난 악행을 선행으로 덮는 자는, 구름으로 덮인 어둠의 세계를 비추는 달과 같다. (부처) 생명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뉘우치는 것이 좋다. 등잔불이 꺼지기 전에 기름을 부어야 하는 것처럼. (탈무드) 모든 회개는 선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