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 여명 작전’ 도중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상을 입고 오만에서 치료를 받아온 석해균(58)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29일 밤 서울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돼 치료에 들어갔다. 석 선장의 귀국은 지난 21일 인도양 해상에서 청해부대의 ‘아덴만 여명 작전’ 도중 해적으로부터 총상을 입은 지 8일 만이다. 아주대병원은 석 선장이 도착하자 수술이 가능한지 살피기 위해 정밀검진에 들어가 수술이 가능한 몸 상태로 확인되면 곧바로 수술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정밀검진에 들어간 병원 측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수혈에 필요한 혈액을 확보하고 정형외과와 신경외과·일반외과·성형외과 등 11개과 의료진 20여명이 석 선장의 몸 상태를 살피며 수술 시기와 치료 방향을 협의하고 있다. 복부 3곳과 왼쪽 팔 등 최소 6곳 이상 총상을 입은 석 선장은 범발성 혈액 응고 이상증(DIC), 패혈증과 함께 중증 외상환자의 70%가 겪게 되는 합병증인 괴사성 근막염이 진행되고 있는 위독한 상태다. 아덴만 구출작전이 성공한 뒤 군 당국은 석 선장이 부상은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며 위독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석 선장 상태는 매우 위독한…
일제 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로 끌려간 한인동포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이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특히 2008년부터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 국가에서 살던 동포 3천여명이 대거 입국했다. 대부분 고령인 이분들은 현재 국내 19개 지역에서 분산생활을 하고 있다. 경기도 내에는 1천200여명의 사할린 동포들이 안산의 고향마을과 파주 우정마을을 비롯해 화성, 김포, 오산 등의 정착마을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이분들을 통해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외세로부터 지배를 당했을 때 국민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는가를 배울 수 있다. 이에 경기도는 지난 25일 파주시 문산읍 우정마을 경로당에서 ‘우정마을 행복학습관’ 개관식을 가졌다. 우정마을에는 지난 2009년 12월부터 사할린동포 102명이 정착해 살고 있는데 이날 행복학습관이 개관됨으로써 사할린동포 노인들은 노후의 여가를 즐기고 배우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또 인근의 노인들과 함께 어울려 친교를 나누는 사랑방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도 행복 학습관이 다른 사할린 동포 정착촌에도 세워지길 희망하며 아울러 정부와 정치권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의 수가 10만명을 돌파했다. 인도 출신으로 현재 부산외국어대 부교수로 재직 중인 로이 알록 꾸마르(55)씨가 24일 10만번째 귀화자로 법무부의 허가를 받은 것이다. 1957년 2월 8일 당시 대만 국적을 갖고 있던 손일승씨가 첫 귀화자가 된 이후 54년만의 일이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라 할 수 있겠다. 귀화자의 수는 최근 들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34명에 불과했으나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연평균 9천816명에 달했다. 최근 10년 동안 귀화한 숫자가 전체의 98%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어서 이러한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귀화자 수는 향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귀화자의 급증은 국제결혼에 따라 결혼 이민자가 크게 늘어난 데다 정부의 동포 포용정책으로 중국 동포의 입국 문호가 확대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귀화자 수의 괄목할 만한 증가를 보며 세심하고 구체적인 다문화사회 정책을 세워 대비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귀화자가 아닌 한국 거주 외국인의 숫자만도 125만여명에 이르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
전국이 구제역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구제역 발생 60일째를 맞은 26일 현재 살처분·매몰 가축이 272만 마리를 넘어섰고 경기도에서만 소 6만2천303마리와 돼지 140만4천921마리가 살처분됐다. 방역과 축산 관련 공무원을 비롯해 관련되지 않은 공무원들도 작은 도움이나마 보태기 위해 현장으로 급파됐고, 경기도의회도 이에 질세라 현장에 뛰어들었다. 많은 도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남의 지역구 할 것 없이 피해가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피해 농민들과 관련 공무원을 위로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한파에 몸을 떨면서 몇일씩 밤을 세기도 하고, 연찬회 시간을 쪼개며 방역작업을 하기도 했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들을 뽑아준 도민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의에 빠진 피해농민들과 쉴새없이 이어지는 업무로 지친 공무원들에게는 크나큰 힘일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비상사태에서 도의원들이 해야할 일이 봉사활동 외에도 참 많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지금 피해농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봉사인력이 아닌 대책마련이다. 도의회에서는 구제역과 관련한 회의는 지난 19일 열린 농림수산위원회의 대책회의가 전무한
제주도 유배 길에 추사(秋史)는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草衣)를 만났다. 귀양살이 가는 처지임에도 추사는 그 기개는 살아 있어 대흥사의 현판글씨들을 비판하며 초의에게 하는 말이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것이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인데, 어떻게 안다는 사람이 그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버젓이 걸어놓을 수 있는가”라며 짜증을 냈다. 초의는 그 극성에 못 이겨 원교의 현판을 떼어 내고 추사의 글씨를 걸었다. 햇수로 9년 만에 유배가 풀린 추사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초의를 만나 회포를 풀던 자리에서 추사는 말했다. “옛날 내가 귀양길에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지금 어디 있나? 있거든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서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광화문이다. 따라서 광화문의 현판을 가리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명함’이라고 부른다. 이 광화문의 현판글씨가 한글로 돼있었다.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그리고 이 글씨는 어느덧 40여 년의 세월속에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그런데 지난 해 광복절에 새롭게 복원한 광화문 현판은 다시 한자로 돌려졌
때 아닌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마치 정치권이 ‘복지’를 화두로 삼아 어떻게 하면 표심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될까에 골몰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복지’란 무엇일까? 사전을 참고하면 ‘사람들의 만족상태와 행복도’를 뜻하는 것이라고 돼 있다. 결국 ‘사람들의 만족감과 행복도’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가 변수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구체적 실행방안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와 더불어 그 재원마련 또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모아진다고 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요즘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무상의료 논란’에 대해 우선 한마디만 거들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경우, 보도에 의하면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 20년 후에는 우리가 지금보다 무려 4.5배나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무상의료를 전면 실시해야 한다며 입에 거품을 무는 것이 과연 가당하기나 한 노릇인가를 세차게 묻고 싶다. 하지만 필자가 본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정작 이
요즘 논란이 일고 있는 고표평준화는 지난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시작됐다. 중학교 교육이 고교입시 위주로 과열되자 교육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별로 선택 지원하는 고교입시를 폐지한 것이다. 이같은 입시제도가 일류고 진학 경쟁을 부추겨 과열과외, 재수생 양산 등 많은 사회적 교육적 문제를 야기하자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한다는 이유에서 출발했다. 이어 1975년에는 대구, 인천, 광주 1980년도에는 원주, 천안, 군산, 이리, 목포, 안동, 진주 등으로 확대 1981년도에는 창원시에까지 확대 시행됐다. 그러나 고교평준화는 학력저하·교육여건 미비 등을 문제삼아 학부모와 관련 단체들의 반대가 이어지자 1980년대 말부터 정부는 평준화실시와 해제에 대해 각 지역에 선택권을 부여했다. 그러자 일부지역에서 고교평준화 해제가 잇따랐으나 200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선안에 따라 수원, 성남, 고양, 안양, 부천 등 수도권 5개 도시에 고교 평준화가 확대 실시됐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교육의 하향평준화,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교육의 획일화, 사립고의 자율성 제한 등의 불만이 쌓여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과학고, 외국어고 등 다양한 유형의
유교의 이상적 목표는 인(仁)이며 이는 인성 개선이라는 성선 사상이 전제가 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원래부터 선하다고 하고 인간이 인간된 까닭은 인하기 때문이며 인간의 정신생활에서 인을 제하고 나면 그때는 육신의 덩어리지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오랜 가르침의 의미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생활에서 자유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인간은 독립적 존재이기 때문에 독립적 존재로 의식하고 행동하고 생활할 때 인간으로서 자존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자유에 대해 논한 사람들이 많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사상은 각 시대의 사상가,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에 따라서 상이한 형태의 표현으로 설명되며 발전돼 왔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는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고, 인간은 자연과 역사의 지배하에 있는 피 제약자로서가 아니라 자연과 역사를 자기 생활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는 능력을 갖춘 능동적 인간으로 될 때 자유롭다고 설명한다. 실제 자연과 역사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이며, 인간만이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여 우주를 지
날씨가 추워지면 통증과 저림증을 가진 환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날씨가 추울수록 운동량도 줄고 몸도 움추려 들기 때문에 통증과 저림증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림증의 경우 날씨가 추워지면서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오는 환자가 많은 데 신경과 관련된 질환도 증상이 심해진다. 50대 주부인 이모 씨의 경우도 조금씩 저리던 손이 최근 심해지면서 밤에 자다가 손이 저려 깨는 경우가 많아지고, 손을 주무르고 손을 터는 동작을 여러 번하고 나서야 잠을 다시 청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부어 있고 뻣뻣한 느낌이 들면서 손이 잘 쥐어지지 않는 현상이 생기고, 역시 손을 주무르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손의 움직임이 나아지는 등 저림 증이 점차 더 심해지는 양상을 느끼고, 더 이상 치료를 늦출 수 없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내원했다. 저림증과 관련한 증상은 정형외과, 신경외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등 여러 과에서 진료를 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진료를 받으면 되고, 병원 안내를 이용하면 더 쉽게 진료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과를 보더라도 꼭 해야 하는 검사는 근전도 검사이다. 근전도 검사는 신경과 관련된 질환에서 빠질 수 없는 검사이므로
비록 아시안컵 4강에서 라이벌 일본에 석패하며 아쉽게 됐지만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이 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센트리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의 승패를 떠나 축하할만한 일이다. 박지성의 센추리클럽 가입은 우리나라 선수로는 8번째다. 센추리클럽은 FIFA가 정한 A매치 또는 국제대회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그룹을 말한다. 보통 한 해 A매치는 10차례 안팎이다. 10년 이상 국가를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부상없이 꾸준하게 뛰어야 달성할 수 있는 대기록이다. 박지성의 첫 A매치 출전은 2000년 4월 5일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전이다. 당시만 해도 무명에 불과했던 박지성을 올림픽대표로 발탁한 허정무 감독에 의해서다. A매치 첫 데뷔무대이기도 한 아시안컵에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기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달려오는 동안 그의 발자취는 한국축구 영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 첫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 동안 무려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의 당당한 주역으로 활약했다. 한국축구는 ‘박지성의 시대’에 아시아의 호랑이를 넘어 세계축구의 다크호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