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경세가이자, 사상가이고, 조선시대의 스승이다. 율곡은 전형적인 사대부의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학자로 대성하거나, 관료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겨 관료로서 성공하든지, 제자를 키우는 훌륭한 스승이 되는 일 중 한 쪽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율곡은 이를 모두 이루었다는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총명하여 이미 3세에 글을 읽었고, 8세 때에 경기도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화석정은 율곡이 성장기에 학문을 익히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후진을 양성하던 곳으로, 율곡의 학문과 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장소이다. 율곡은 관직에 진출한 이후 시대의 문제점을 통찰하고 이를 고치려한 선각자이다. 임금에게 직언하여 위로부터의 개혁, 곧 경장(更張)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간 잘못된 현실을 고치고자 하였다. 특히 공납과 군역의 폐단 등 수취제도의 잘못을 바로잡고 서얼에게 청요직을 주지 않는 신분제도의 모순을 고치고자 하였다. 또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여 미래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선조는 율곡을 마음으로 존경하였
2천500여년 전 중국 추나라의 철학자인 맹자가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즐거워지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철학적 논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바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름지기 지도자와 리더는 자신들의 독선을 철저히 배격하고 무슨 일이든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눌 때 그 행위의 정당성이 있으며 크게는 죽백청사(竹帛靑史)에도 길이 남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제나라 제선왕이 맹자를 만난 자리에서 맹자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 부강을 이끌고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물음에 맹자가 답하길 나라가 부강하게 되려면 백성과 함께하는 정치 ‘여민동락’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덧붙여 말하길 이익을 논하지 말고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현재 경기경찰청과 각 일선 경찰서에서는 좋은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논제를 연구 진행 중에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을 만들 수 있을까. 직장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떠올려 봤을 것이다. 얼마 전 워크숍 특강에서 최동해 경기청장이 이같이 강조했다. “여러분은 나의 파트너이고 동반자다”라며 일선에서 직원들의…
도덕경 8장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대목이 있다. 그 뜻은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이라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긍정적인 면을 볼 때에 최상의 선과 같다는 것이다. 물이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으니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가히 약하고 미미한 존재 같지만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는 것과 같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항상 가장 낮은 곳을 향하는 게 본질이다. 노자가 논하는 바에 따르자면, 만백성을 통치하는 입장이 추구해야할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노자는 이것을 통치자가 지녀야 할 도덕이라고 칭하였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통치자의 개념은 희미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청렴(淸廉)으로 기울었다. 과거에도 청렴은 존재했다. 조선의 대 실학자인 정약용의 ‘목민심서(木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에서 청렴에 관한 내용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청렴은 본질 자체는 다르지 않으나 도달하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청렴은 투명성 제고에 그 초점을 맞추고
케케묵은 안부를 듣는다. 너무 오래되어 얼굴조차 상상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너무 뜻밖이라 어떻게 안부를 물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지만 반가운 목소리다. 남편 사업 실패하고 태백에서 잠깐 살았는데 그때 알았던 사람이다. 생전 처음 가본 땅, 사람도 낯설고 지형도 낯설고 모든 것이 불안하고 힘겨운 때였다. 지인이 방을 구해 놨다는 말에 무조건 이삿짐 싣고 갔는데 방문으로 장롱이 들어가지 않아 이삿짐을 싣고 다니며 방을 구해 겨우 살림을 풀었다. 두 칸 중 다시 방 하나에 세들었고 부엌은 두 집이 같이 사용해야 했다. 마당의 공동 수도를 써야 했고 물 사정이 어려워 조석으로만 수돗물이 나오니 물 전쟁이었다. 석탄가루가 묻은 흰 셔츠의 깃은 운동화 빠는 솔로 비벼야 때가 빠졌고 아이의 기저귀를 빨아 널면 석탄재가 묻어 거뭇거뭇했다. 이때 만난 이웃이다. 맘 붙일 곳이 없어 아이를 업고 온 동네를 쏘다녔고 그 친구도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업고 자주 나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통했고 어울리게 되었다. 그 친구의 남편이 강원도 사람이라 태백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주었고 강원도 음식을 해서 나눠 먹곤 했다
한국인의 기민한 손재주는 가히 세계적이다. 세계기능올림픽에서 연속 18회 종합1위를 석권한 나라, 금메달 최다 획득의 쾌거를 이룬 나라가 바로 기술인재강국 대한민국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글로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무기, 국가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특단의 무기는 바로 각 분야에서 멀티플라이어들, 능력 있는 최고의 핵심 기술 인재들을 확산적으로 양성해 내는 일이다. 창의적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 히든 챔피언’들이 길러져야 한다. 그 어느 나라도 범접하지 못하는 놀라운 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일·학습병행제가 주목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지금은 능력중심사회’, 개성을 살려 일하면서 공부도 한다는 일석이조의 일·학습병행제가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대학 진학 대신 기업 현장에서 실무교육을 받고 대학 학위나 자격을 취득하는 새로운 교육훈련제도이다. 교육 수준과 기간에 따라 고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의 학위 또는 자격도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다. 일과 학습이 함께 하는, 일터가 일터로만 끝나지 않고 최고의 배움터로 변신하는 일
“우리는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We are sinking fast). 1912년 4월15일 당시 최대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최후를 맞으며 타전한 마지막 전문이다. 1천513명의 희생자를 낸 타이타닉호는 6cm 두께의 강판과 300만개의 리벳으로 조립된 튼튼한 몸체와 16개의 수밀격실(水密隔室)로 이루어진 선체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 중 4개에 물이 차도 부력엔 전혀 이상이 없어 ‘불침선’(不沈船)이라고도 불렸다. 해서 총톤수 4만6천t, 길이 269m, 너비 28.2m, 20층 건물에 해당되는 높이를 가진 초대형 배가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그리고 첫 출항이 마지막 항해가 됐다. 엊그제가 꼭 101년 되는 날이다. 아직도 타이타닉 참사의 원인을 둘러싼 설은 분분하다. 쌍안경 없이 육안에 의존해 빙산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 근처 캘리포니아호에 빙산이 있다는 경고를 했는데도 무시했다, ‘신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여겨 구명보트를 제대로 구비하지 않았다, 설마 가라앉겠느냐며 보트에 타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배의 철판에 황 성분이 많아 구부러지지 않고 갈라졌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믿기 어려운
꽃 동냥치 /박상률 밥 한 주먹 담아 먹을 양재기 하나 없어도, 동전 몇 닢 받아 넣을 깡통 하나 없어도, 그는 동냥치다. 한 면에 한 마을씩 가가호호 제삿날만 챙겨 두면 먹고사는 일 정승 판서 부럽지 않은 그. 등짝에 지고 다니는 망태기엔 철따라 달리 피는 들꽃 가득하여 꽃동냥치라 불리지만, 그는 여태껏 무얼 동냥한 적이 없다. 어쩌다 제사 없는 날엔 아침 일찍 뒷산에 올라 마을 사람 아침잠을 다 깨운다. “내 며느리들 빨리 일어나서 나 먹을 아침밥 지어라!” 졸지에 한 마을 아낙이 모두 그의 며느리가 되고 만다. 그가 죽어 그의 꽃 망태기도 같이 묻혔다. 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났다. 지금 내가 그에게 동냥을 청한다. “꽃 한 송이, 내 등짝에도 피어나게 해 주세요.” -박상률 육필시집 『꽃동냥치』 2013 이 시는 박상률 시인의 소설 『봄바람』에 삽입된 시이기도 하다. ‘동냥치’는 불교용어인 동령(動鈴)에서 나온 소위 탁발승의 세속적 표현이다. 시인의 어린 시절 보았을 동냥치들은 승려가 아니어도 마치 승려같이 보시(布施)주머니인 망태기를 들고 동네 잔치집 혹은 상가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동냥
지금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핵심 화두는 단연코 규제개혁이다. 지난 3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규제개혁이야말로 경제혁신과 재도약에 있어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핵심열쇠”라고 말했다. 매번 정부 출범 초기 중앙정부는 규제개혁의 당위성을 피력하며 수많은 정책수단을 동원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우리나라 규제의 수준은 아직도 높은 편이다. 규제란 국가질서유지를 위한 순기능과 기업의 투자촉진, 자율적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역기능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규제정책은 정책방향 오류 및 적절한 규제수단 등을 조합하지 못한 채 획일적 규제만을 강요하고 있어 국가발전 및 지역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규제의 공급자인 정부와 규제의 수요자인 국민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규제정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국내 최대의 제약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IT, BT 등 첨단산업의 중심지임에도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공장 신&mid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