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을 쓰는가?” “문학하면 배고프다.”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나도 여러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러나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당연하다. 각기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다르고 글을 쓰는 자세 또한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세상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느끼고 싶은 충동에 글을 쓴다”라며 행동의 전제조건임을 표했다. 칸트는 “자연적인 미에 예술적인 미를 접근시키기 위한 행위”라고 했고,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지도자인 빅토르 위고는 “진보를 위한 예술을 한다”라고 했다. 누군가는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는가 하면 최고의 고독을 즐기기 위함이라고 상반되게 언급한 사람도 있다. 이렇듯 글쓰기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개성적인 작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헝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과 동시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이기도 하다. 안으로 자기를 정돈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싶은 말을 쓴다. 아무도 나의 붓대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아무에게
역사상 초유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일은 국가정보기관의 위상추락은 물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표어대로 음지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정보기관이 국가안위와 무관한 일로, 양지에서 난타당하는 모습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여야의 막무가내식 당파이익 추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회가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합의해 놓고도 여야가 극한대치로 치닫고 시한이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조사범위와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국정조사는 ‘국정원 직원 댓글 관련 의혹 국정조사’다. 즉 국정조사의 범위가 국정원 직원의 댓글에 관한 것이다. 정문헌 의원이나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등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 혹은 무단불법 사초열람 및 공개라는 의혹을 갖고 있지만 이번 국정조사 범위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야당은 NLL관련 논쟁에서 궁지에 몰렸던 것이 사실이고 국정원의 협조 하에 이 이슈가…
사상 최장의 장마가 끝나자마자 무더위가 시작이다. 연일 32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전력 수요도 더욱 늘어날 조짐이다. 전력당국도 다음 주가 전력수급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전망한 예상수치를 보면 더욱 심각하다. 거래소는 8월 중 예비전력률을 551만kw 확보하고 있으나 둘째 주에 마이너스 103kw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정전사태인 블랙아웃 상황이 일어날 최대위기다. 전력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전력수급이 이처럼 아슬아슬한데도 우리주위엔 아직도 정부의 에너지 절약시책을 외면하는 곳이 너무 많다. 단속이 있지만 냉방기를 가동한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업소는 줄지 않고 있다. 나 하나는 괜찮겠지 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대정전으로 입을 엄청난 손실을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공공기관을 비롯 업소에서는 전력낭비를 최소화하는 등 절전 생활화 등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개개인도 언제든 전력대란이 닥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물 쓰듯 전기를 낭비해선 안 된다. 안 쓰는 전기 플러그는 뽑아놓고 불필요한 전원은 끄는 등 일상에서 절전을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여름철
예전 해외여행은 부자나 이른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이나 방학 중 연수 코스가 될 정도다.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모아 외국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외국여행이 국내여행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형편이 좋아진 중국인들도 최근 무더기로 외국여행을 즐기고 있다. 올해 1~5월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인이 무려 연인원 3천800만명에 육박한단다. 엄청난 숫자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중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외국으로 나가다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문화적 차이라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다. 중국인들은 외국여행 시 자국에서 하듯이 침이나 껌을 함부로 뱉는다. 무질서하고 시끄럽다. 금연구역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우거나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행위 등이 지탄을 받고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이 오는 10월 새 ‘관광법’ 시행에 맞춰 해외여행 중 현지 공공질서를 위반한 자국민을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자국민이 해외여행 시 일종의 행동 서약서를 추가로 작성하고 여행 중 이를 위반하면 귀국 후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위반자에게는
정오/임동확 아스팔트 위의 고양이, 길가 풀섶의 앉은뱅이 망초, 냉장고 속의 마늘 싹들까지 가장 외롭고 높게 맑고 푸른, 그 어느 하나 빠트리지 않은 채 남김없이 빛나는 생의 정오 오로지 흠가지 않는 보석처럼 찬란한 눈망울을 마치 처음인양 깜박이며 다가오는 한 아이가 제 어미젖을 빨다 방긋 웃고 있고, 또 은어 새끼 한 마리가 제가 태어난 강을 떠나 막 바다로 향하고 있을 때 소리도, 형체도 없는 그 하늘이 그저 두려울 뿐 어찌 더 이상 무엇이 괴로우며 아쉬울 것인지요 논둑에서 긴 목을 빼고 있는 쇠백로 한 마리, 전나무를 기어오르는 칡덩굴, 비 개자마자 밤꽃을 탐하는 호박벌 한 마리 더욱 뚜렷하고 투명하여 제 속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환한 비밀의 대낮 금세 달라붙은 어두운 그림자조차 녹여낼 듯 뜨겁게 입술과 입술을 맞댄 채 마치 마지막인양 키스를 나누는 그 누군가 여기 결코 죽어서가 아닌, 살아서 기어이 갈참나무 숲을 이루고, 드디어 보리밭 위로 종달새 울음이 떠오를 때 끝끝내 안식을 모르는 생멸과 재생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 소란하고 분주한 땅의 그 어느 이슬 한 방울인들 우연히 맺혀있을 것인지요 어찌 축 늘어진 8월 태양 아래의 호박잎, 오솔길에 달라붙은…
중국에선 한 자녀를 잃어버린 가정을 ‘스두자팅(失獨家庭)’이라 부른다. 지난 3월 중국의 최대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정치협상회의)에서는 이런 가정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 물론 대외적으로 10대 정치 핫이슈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논란은 매우 뜨거웠다. 한명뿐인 자녀가 부모가 생존한 상황에서 먼저 세상을 뜰 경우 양로 문제가 심각한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외동아들·딸은 모두 2억1천8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중 1천만명가량이 25세 전에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녀 없는 가정도 매년 7만6천 가구씩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만명의 노인이 노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거노인은 올해 중 1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자 정부 차원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1979년 이후 한 자녀 정책을 기본 국책으로 강력하게 시행한 중국은 현재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스두자팅(失獨家庭)뿐만이 아니다. 샤오황디(小皇帝)에 대한 문제점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그중 주링허우(90년대 이후 출생자)에 대한 우려는 더
행정학에서 ‘티부의 가설(Tiebout hypothesis, 1956)’이라는 게 있다. 일명 ‘발에 의한 투표(voting with the feet)’로 설명되는 이 가설은, 주민들이 각각의 선호에 따라 지역 간에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스스로 지방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민들이 내는 세금과 그들이 제공받는 공공서비스의 비교 평가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지방정부의 공공재 공급의 적정규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티부의 가설이 외부효과를 배제하고 주민들의 완전한 정보소유와 완전한 이동성 등의 전제조건들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지방자치시대에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봄직하다. 앞으로 지방정치가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민주당 지도부에서 지방의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와 관련하여 전 당원 투표를 진행하였다. 그 동안 많은 국민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의 하나로 여야 유력 대선후보가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내세운 사항이기도 하다. 투표 결과, 투표에 참여한 민주당 당원의 67
그 옛날 조용필이 간절하게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를 불렀을 때, 그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열광했다. 처음으로 교복 입은 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인 그 촛불은 그러니까 안타까운 사랑의 기원이었다. 지금 다시 촛불이 화제다. 지금 우리에게 촛불은 무엇일까? 촛불이 무엇이기에 보수세력들은 민주당이 ‘촛불 세력’과 손잡으면 국민의 지지를 잃는다고 조바심을 내는 것일까? 마치 민주당을 위하는 것처럼. 그나저나 민주당이 지금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생각한다. 민주당의 문제는 촛불 세력과 손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촛불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촛불은 기원이며 성찰이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그 촛불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이 있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다. 내가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보다도 좋아하는 그림이다. 그 그림은 막달라 마리아가 왼손을 턱에 괸 채 작은 촛불을 응시하는 그림이다. 그 그림의 매력은 마리아의 오른손에 있다. 오른손으로 그녀는 해골을 만지고 있는데, 그녀의 태도에서는 한 치
<설국열차>는 꽤 실망스러웠다. 현란한 홍보에 기대치가 한껏 부풀어 있어서였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고 그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알고 갔으면 실망이 덜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열차 판 아니냐고 두덜거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속이 빤한 알레고리에 헛웃음을 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장쾌하게 설원을 달리는 기차 안팎의 액션과 스펙터클을 126분 동안 별 생각 없이 보고 극장 문을 나서면 그만이었을 텐데. 시작은 그럴 듯했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찾아온 새로운 빙하기, 윌포드 열차 한 대만큼만 살아남은 인류, 새로운 봉기를 획책하는 ‘꼬리칸’의 역동적인 풍경 등등. 딱 거기까지였다. 열차 안 감옥에서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광호)를 구해내는 장면, ‘일등칸’ 유치원 아이들이 윌포드를 찬양하는 유머러스한 신, 커티스가 털어놓는 ‘꼬리칸’의 비밀 정도를 빼면 별로 건질 게 없다. ‘닫힌 생태계’ 운운은 너무 식상해서 감동도 재미도 별로다. 봉준호 감독 작품 맞아? 마지막 장면에서 남궁민수의 딸(고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