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부터 5일까지 시카고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위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시카고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 경제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이나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는 이러한 세계의 흐름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연구하고 있다. 이번 국제대회에서 나는 수원시 의원, 공무원, 연구원과 함께 참여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사례로 수원시를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시민들이 요구한 예산이나 몇몇 쟁점이 되는 경우에 현장을 방문하여 확인하는 모습에서 특징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공무원이 적극 참여 과정에서 지원하는 것도 특이한 과정으로 평가하였다. 외국은 집행부의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무엇보다 시민이 요구한 사업과 예산을 의회에서 삭감하지 않고 원안 통과하게 배경과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요약하면 수원시의 참여예산제가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시민과 공무원 그리고 의회가 잘 연계되어 3각(triangle)의 협조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이…
우리나라는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들에게 원조를 받던 개발도상국 중 하나에 속했다. 그러나 원조를 받아 경제성장을 시작한 이후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선진 원조 공여국으로 발돋움한 세계 최초의 나라이다. 2000년 UN총회에서는 189개국 동의하에 새천년개발목표(MDGs: Millenium Development Goals)를 채택하고 2015년까지 빈곤층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목표를 정하였다. 그에 맞춰 우리나라도 원조 규모를 2015년까지 국민소득 대비 0.25%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의 주된 목적은 그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전쟁, 기근, 자연재해 등의 사유로 인하여 세계인구 7분의 1에 해당하는 8억5천만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명을 연장하며 살고 있다. 빈곤과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빈곤과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립역량을 키우고, 각 국의 기후와 환경에 맞는 농업기술의 개발로 식량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는 전년도에 수확한 쌀이 충분치 않아 이듬해 늦봄 보리가 생산되
삼남길과 더불어 의주길, 영남길, 경흥길, 평해길, 강화길을 조선시대 6대 길이라 불렀다. 삼남길은 그 중 대표적인 조선시대 길이다. 남태령을 지나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 전라도(해남), 경상도(통영)로 이어졌으니 지금의 1번 국도라고나 할까. 삼남길이 남쪽으로 뻗은 길이라면 의주길은 한양∼고양∼파주∼평양∼정주를 거쳐 국경 의주(義州)에 이르는 북으로 가는 길이다. 두만강에 이르며 백두산 가는 길로도 이용됐다는 경흥길은 한양∼양주∼영평(포천의 옛 지명)∼원산∼영흥∼함흥을 거치는 길이다. 동쪽으로 통하는 길도 있다. 평해길이다. 평해(울진 옛 지명)길은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노래한 길이기도 하다. 한강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동해로 가는 길이었으며 양평 횡성 강릉을 거쳐 울진까지 구백이십 리에 달한다. 이밖에 한양∼김포∼통진∼강화로 가는 강화길, 한양∼용인∼양지를 거쳐 부산 동래까지 연결된 영남길. 당시 이 같은 길을 통해 조선 팔도 거의 모든 곳과 연결됐다. 그리고 각지에서 한양으로 통하던 군사 이동 통로이자 관리들을 임지로 파견하던 길로, 보부상들의 봇짐이 드나들던 장터길로 이용됐다. 또 지역 특산품을 궁궐에 진상하던 이동로였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봄이다. 그것도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다. 그 화사한 봄날 드디어 ‘수원의 자랑’ 팔달문이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무려 3년여 만이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4개 성문(城門) 중 남문인 팔달문은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 준공 이래 일제의 침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 온 수원의 산증인이다. 팔달문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이 문을 통과해서 사통팔달로 통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인근에 ‘왕이 만든 시장’인 팔달문시장이 있고, 수원의 역사와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난해 콘크리트로 덮인 지 21년, 복원 공사가 시작된 지 16년 만에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수원천에 이은 팔달문의 중건과 개방이 주는 감동은 괜한 봄날의 열병처럼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들떠 며칠을 보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수원천을 걸어 올라가 팔달문을 마주하자 설렘과 들뜸의 궁금증은 봄날 눈 녹듯이 자연스레 풀렸다. ‘귀환’. 시민의 힘으로 시민 중심의 도시를 만들고…
황산 일출 /전오 여명(黎明)의 운해 호자관해(狐子觀海) 정상에 하늘이 앉았다. 기기묘묘한 암봉 위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호자(狐子)가 앉았다. 천년이 하루련가? 세월의 덧없음을 알몸으로 끌어안고 발갛게 익은 햇덩이에 몸을 던진다. 운해 아래 세상은 욕망으로 앓아대는데 구천 봉우리 헤집고 오르는 새날은 참으로 신선하다. 청정하다. 중국 황산은 바위와 소나무, 구름 등이 빚어낸 절경으로 유명한 산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오악(五岳: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황산은 중국 최고의 명산이다. 이 시는 그런 황산의 풍경을 한 폭의 수묵담채화처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열 번 올라가도 한 번 볼까 말까 한 황산의 일출, 이 시의 화자는 운 좋게도 황산 일출을 만끽하고 있다. 운해 사이로 여명이 밝아오자 간밤의 어둠과 안개가 걷히고 기기묘묘한 암석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웅장한 풍광 앞에서 시간의 덧없음과 욕망 가득한 산 아래의 세상살이를 깨닫게 된다. 그와 더불어 새날의 소중함도 마음에 담아낸다.
흔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반인륜적 만행으로 1937년 12월의 난징대학살을 말한다. 보통 3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알려졌음에도 난징대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名古屋) 시장의 망언이 공분을 사고 있는데, 일본의 양심적인 역사학자 히메타 미쓰요시(姬田光義)가 쓴 『三光作戰とは何たったか-中國人の見た日本の戰爭』을 보면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270만 명 이상의 중국 민간인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를 중국에서는 삼광정책이라 말하고, 일본식 표현으로는 삼광작전이다. 삼광작전은 ‘모두 죽이고( 光), 빼앗고( 光), 불태우는( 光)’ 작전으로 게릴라전을 펴는 중국 공산군, 특히 팔로군 배후 촌락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미 대장정을 통하여 사기가 드높은 팔로군은 철저한 군기 이행으로 민심을 얻어 1939년부터 1940년 사이에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수백만의 백성을 지배하에 두었다.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해방군이란 칭호를 얻기도 하였다. 국민당군과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작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을 괴롭혔다. 1940년 8월 팔로군은 ‘백단대전(百團大戰)’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평택시가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계고장을 보냈다고 엊그제 밝혔다. 오는 15일까지 평택공장 정문 맞은편과 송전탑 아래 천막을 치워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평택역 주변 천막농성장을 22일까지 철거하라는 계고장도 이미 발송한 상태라고 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평택시의 처사가 매우 못마땅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업무인 것도 사실이다. 어느 지자체든 도로와 시유지를 장기간 불법 점거하고 있는 상황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 시의 이미지가 흐려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평택시로서는 지역여론이 농성자들에게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의 입장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정부나 공권력의 하수인으로 몰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초 대한문 앞 분향소를 철거한 서울시 중구청도 관할 지자체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시민사회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다. 문화재청의 하수인 노릇을 한 정황이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정부와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 사안에 본의 아니게 말려들어 악역을 맡아야 하는 지자체로서는 억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의 남문인 보물 402호 팔달문 해체·보수공사 준공식이 오늘(3일) 오후 2시부터 팔달문 옹성 내에서 열린다. 2010년 6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진행된 팔달문 해체보수 공사가 끝난 것이다.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에 준공된 팔달문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이 문을 통과해서 사통팔달로 통한다는 의미의 건축물로,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4대문 중에 화서문과 함께 보물로 지정됐다. 이 팔달문이 해체·보수공사를 마치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팔달문 해체·보수공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전흥수 대목장이 도편수를 맡아 2010년 6월부터 팔달문 문루 1, 2층을 해체 보수하고, 옹성 내·외부 전돌의 백화를 제거한 뒤 부식되지 않도록 경화 처리했다. 팔달문이 해체·보수공사를 하게 된 것은 목부재의 변형으로 인한 원형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목부재의 1차적인 변형 원인은 220여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탓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성문 옆을 지나는 대형버스나 트럭 등의 진동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차량 통행이 이뤄지는 성문에선 석재 균열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팔달문이나 장
史記(사기)에 莊王(장왕)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나(朕)를 간(諫)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는 삼년간 국정도 멀리하고 주색에 빠져 지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한 사람이 죽음을 각오하고 諫言(간언)할 것을 결심하였다. 하지만 直言(직언)보다는 수수께끼로 돌려서 하기로 마음먹고는 전하에게 수수께끼를 내겠다고 아뢨다.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해 ‘저 언덕 높은 곳에 큰 새 한 마리가 있는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인가’ 하니 장왕은 대답하기를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요.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不鳴卽已 一鳴驚人). 3년이 지나고 장왕은 酒色(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는데 3년 동안 주색을 가까이 했던 것은 忠信(충신)과 奸臣(간신)을 가리기 위한 공작이었고, 국정에 임하면서는 많은 충신들을 새로이 등용해 나라를 다스렸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어느 지역 인사를 쓴다느니 쓰겠다느니 미리 말할 것이 아니라 충신과 간신을 가려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믿고 따를 만한 인재를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