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을 목표로, 비능률적이긴 하지만 일은 중단하지 않은 채 꾸준히 이어 간다. 모든 일에 인내심 부족해 항상 서두르고 성급하기만 한 우리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 또한 끈질긴 ‘인도 정신’이다.” 돌아가신 법정스님의 인도 단상(斷想)이다. 짧은 글 속에 느리게 사는 여유가 느껴진다. 법정스님뿐 아니라 세계인들 가운데는 인도를 ‘인류의 정신적 고향’으로 우러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죽기 전에 한 번은 인도를 찾으려는 순례객들이 쇄도한다. 현재 국민 대다수가 힌두교도이면서도 불교의 발상지이니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은 흥미롭다. 또 인도 하면 생각나는 ‘요가’ 역시 정신수양의 한 가지에 불과하니 영적 세계를 향한 호기심은 인도를 향할 수밖에 없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는 높은 빈곤율로도 유명하다.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은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의 IT와 우량한 학생들은 글로벌기업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핵무기와 항공모함을 일찍 보유한 세계적 군사강국이다. 한데 요즘은 인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성폭행으로 얼룩진 야만적 모습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고전동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가 한국형으로 변신하여 ‘도로시 난장굿’ 한 판을 벌였다. ‘예술의 전당’에서 관람하고 시일이 한참 지났는데도 그 발랄하고 신선하고 환상적인 느낌이 영 떠나지 않는다. 『오즈의 마법사』는 어린 아이 때부터 읽혀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나 또 다른 꿈을 꾸게 하여 많은 사랑을 받는 동화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연극이나 뮤지컬공연을 한다. 그러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캐릭터들이 신진예술가에 의해 한국전통형으로 바뀌어 공연한 젊은 패기가 넘치는 ‘도로시 난장굿’이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다. 젊은 감각의 전통연희 공연으로 풍물, 살풀이굿, 봉산사자탈춤, 사물놀이, 상모돌리기까지 그리고 속이 후련하게 멋들어진 사설창이 이어진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 아이콘인 도로시의 구두가 현대의 탭댄스 슈즈로 변신하여 타악기에 맞추어 한 판 신명이 나는데 그 발랄하고 명쾌한 동작들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상상의 나라로 이끌어가는 독특한 피날레 무대이다. 주인공 도로시는 1인3역을 하는데 한국의 삼도 무속음악을 연구한 양보나가 그 주인공이다. 젊은 창작연희…
3월 초에 1주일 정도 파키스탄에 다녀왔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요청으로 파키스탄에서 진행 중인 공적원조사업에 젠더 전문가로 다녀오게 되었다. 처음 가는 나라인지라 사전 조사를 많이 했다. 자료를 찾던 중 파키스탄의 성불평등과 여성의 지위향상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하여 다량의 연구논문을 쓴 현지 남성 연구자를 발굴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가 2012년 세계 135국 중 134위인 나라로 성불평등 수준이 심각한데, 그런 중에 이슬람 남성 연구자의 성평등에 대한 관심과 연구 성과를 보게 되어 참으로 반가웠다. 그러나 나의 반가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 연구자의 박사학위 논문에 나와 있는 감사의 글을 보다가, 그의 부인이 여러 명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글에는 학위를 마치는 데 도움을 준 알라 신과, 지도교수들과, 부모님, 그리고 ‘아내들’에게 감사하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 나라의 남성들은 이슬람의 옛 관행대로 일부다처를 유지하는가? 이런 관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남녀에게 수용되는가? 파키스탄 현지에서…
배꼽 살구꽃 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 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 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 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아내랑 아기랑 배꼽마당에 나와 배꼽비 본다 꽃비 배꼽 본다 출처- 박성우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 2011년 창비 모든 꽃이 진 자리에 비가 내리고 있다. 직선으로 내려오는 비는 떨어지면서 몸을 바꾼다. 그래서 ‘자두꽃 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 자리에는 복사꽃비’, ‘살구꽃이 핀 자리에는 살구꽃비’가 내린다. 빗줄기는 가느다랗게 내려오다가 땅에 떨어질 때는 동그랗다. 이 동그란 빗방울은 배꼽과 닮았다. 그래서 시인은 살구꽃비는 살구의 배꼽, 복사꽃비는 복숭아의 배꼽이라고 쓴다. 아내와 아기가 마당에 나와서 빗방울이 번지는 것을 보고 있다. 갑자기 마당은 커다란 배꼽이 된다. 이때 시인은 비를 우주와 연결된 탯줄처럼 느꼈을까? 내리는 비를 보다가 시인은 배꼽비라고 불러본다. 모든 꽃비에 젖으러 배꼽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물 안 쓰는 소변기’를 관리하려면 하루 몇 차례씩 대량으로 물을 퍼부어야 한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린지 모르겠다. 본보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수원시가 공공화장실에 설치한 ‘물 안 쓰는 소변기’에서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 물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청소할 때 방향제와 세정제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물 절약 친환경이라는 취지와는 정반대라니 어이가 없다. 현재 수원시내 각종 공원과 시청 화장실 등에는 모두 262대에 이르는 ‘물 안 쓰는 소변기’가 설치돼 있다. 시가 2005년부터 기존 소변기를 떼어내고 교체한 결과다. 그런데, 이 가운데 시청 1층 화장실에서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자 2011년 기존에 쓰던 방식의 소변기로 다시 바꿔달기도 했다. 이후 곳곳에서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처음에 설치했던 미국산 제품 대신 국산 ‘물 안 쓰는 소변기’로 교체하는 소동도 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변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배관이 막히는 일이 여전히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교체비용은 교체비용대로 들고, 환경에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관리비용만 더 들이는 꼴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어이없는 일이 ‘물 안 쓰는 소변기’ 자체가 안
봄철이 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혼인식을 알리는 청첩장과 핸드폰 문자, 메일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천지의 모든 기운이 상승하는 봄날에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마땅히 가서 축하해주어야 할 하객들은 부담이 크다. 청첩장이 봄철과 가을철에 한꺼번에 몰리는 데다, 혼인식 자체도 점차 호화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국수나 갈비탕 정도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최소 뷔페가 대세가 됐다. 뷔페 가격은 보통 3만원에서 4만원 사이인데 이건 약과다. 서울의 유명 호텔서 하는 경우는 1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러니 축의금 봉투에 5만원이나 10만원을 차마 넣을 수 없게 됐다. 원래 우리의 혼인잔치는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형편껏 음식을 내놓았다. 그래도 흉보는 사람이 없었다. 잔치 부조도 형편 따라 계란 한 꾸러미, 국수 한 관, 닭 한 마리 정도면 됐다. 아주 가까운 이웃은 돼지를 내놔 잔치판을 풍성하게 했다. 그러나 경제 발전과 함께 가정의례는 호화와 사치를 점차 더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계층 간의 위화감이 조장됐으며 일부 서민이 부자들을 따라하다가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적 타격을 입는 일도 종종 있었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19
최근 세계 식량 수급의 패러다임은 잉여생산에서 부족한 시대로 전환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식량부족 현상은 식량 생산의 안전한 증가세임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 중심의 인구증가와 중국과 같은 신흥국가들의 소득수준 향상으로 식품소비 패턴 변화 등으로 식량의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식량 수급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무엇보다도 안정적 식량생산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위해서는 식물병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식물병은 말 그대로 식물이 정상적으로 생육하지 못하고 환경적인 측면과 병원균의 영향으로 이상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식물병은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피해 중 하나는 1845년에 아일랜드에서 발병한 감자역병이다. 당시의 감자역병으로 전체 인구 800만 명중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기근으로 죽어갔으며, 15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미국과 같은 신대륙 이민으로 인해 전 인구의 3분의 1을 잃었다. 식량부족 현상 부르는 ‘식물병’ 또 다른 역사 속 식물병의 예는, 1943년 인도…
경찰교육원에 도착하자 눈발이 갑자기 날렸다. 겨울이 지나갔는데도 바람은 스산했다. 아마도 이 눈이 마지막 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상의 많은 것들이 하얗게 점철되었다. 정문 초입에 들어서자 ‘교육개혁 원년! 교육만이 살 길이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안병하홀, 정종수홀, 최규식홀, 후생관 등에서도 이러한 문구가 선명하게 보였다. ‘교육만이 살 길이다.’ 이 말은 경찰지휘부가 교육에 대한 열망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고 국민을 섬기는 감성치안과 인문학을 중요히 여기며 경찰교육기관에서 강의하는 필자로서는 반가운 마음이다. 교육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조화와 화합을 이루며, 인류 공영의 근간이다. 특히 헌법에 명시된 인간다운 삶, 풍요로운 삶, 인권적 삶을 행복으로 견인해 주는 견인차 역할을 하며, 각종 범죄 예방 및 타자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가능케 하는 상호 호혜적 평등을 실현하는 구심점이다. 21세기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지식인재 육성 발굴을 위해서도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인문학과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어서 때론 오해를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유명한 영화감독 알
바람 잔잔한 날 밭둑에 들불을 놓는다. 라이터를 그어대자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덤불들, 바람의 방향을 따라 불길도 자리를 옮겨간다. 들깨며 콩 옥수수 등 수확은 별로 없고 가지만 무성했던 것들이 잘도 탄다. 콩은 너무 가까이 심어서 줄기만 무성했고, 옥수수는 가뭄에 타고 거름이 부족했는지 꽃 피는 것부터 시원찮았다. 해바라기는 제법 무성하게 자랐는데 태풍에 대부분 꺾이고 몇 송이만 건져 씨앗은 되겠다. 풀을 감당하지 못해 깔았던 검은 비닐이며 이런 저런 것들을 긁어모으고 마늘을 덮고 어린 감나무를 감쌌던 짚을 끌어 모아 태우니 밭이 한결 정돈된 것 같다. 들불을 놓는 것은 한해 농사의 시작이며 땅 밑을 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풀섶 어딘가에 남아있을 애벌레를 혼쭐내는 일이고, 올 한해도 잘 해보자는 땅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삽날을 깊이 박아 땅을 뒤집자 놀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흙이 살아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어설프게 농사를 짓다보니 모순투성이다. 초가을에 심어야할 당근을 봄에 심었더니 장마에 다 녹아 없어졌다. 작년에는 콩을 심기가 무섭게 까치와 비둘기가 파먹어서 애를 먹었다. 녀석들 어떻게 아는지 용케도 콩을 파갔다. 콩 농사 제대로 지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