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태수 파도치는 사연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섬이 차마 떠나지 못하는 걸까. 밤에도 몰래 떠나지 못하는 걸까. 끝없는 사연들을 다 듣느라고 저렇게 떠나지 않고 있다. 거친 파도엔 눈물 훔치면서도 도저히 떠날 기미가 없다. --설태수 시집 <말씀은 목마르다>에서 =================================== 사람은 제가 태어난 땅에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다. 아무리 세상이 거칠고 삭막하다 해도 옮겨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세상은 기쁨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해마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낙원은 아니다. 낙원을 꿈꾸며 사는 존재이어야 비로 소 생명의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소리와 빛깔과 향기들은 저마다 우리를 위해 독특한 가치를 선 물한다. 그 가치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우리들의 생명 에너지다. 섬은 붙박이로 고독한 존재이나 거친 바다 속에서 그 바다와 이야기를 나누며 생명을 이어가는 우리들, 강력한 개인의 얼굴이다. 섬은 바다를 떠나면 섬이 아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한 것으로 유명한 조선 초기 문신 허백당(許百堂) 성현(成俔)은 전가사십이수(田家詞十二首)라는 시의 정월령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온 이웃이 술상을 차려놓고 대보름날 밤에 모여/동산 달맞이 하자고 서로 찾아다니네/달은 무심하게 떠올라 비추지만 노인들은 해마다 풍년을 점치네.” 설날이 가족 중심의 모임이라면 이렇듯 정월 보름날은 마을공동체의 단결과 번영을 위한 축제였다. 조선 후기에 저술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민속행사의 종류를 서른일곱이나 적고 있을 정도다. 영월(迎月: 달맞이), 답교(·踏橋: 다리밟기), 농악, 고싸움, 차전놀이, 달집태우기와 마을 사람끼리 편을 나누어 벌이는 횃불싸움, 논두렁과 밭두렁을 태우며 풍년을 기원하는 쥐불놀이, 아이들이 모닥불 위를 나이만큼 뛰어넘으며 건강을 빈 잰부닥불 피우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축제는 월(月) 여(女) 지(地)를 중시하는 농경시대 지모신(地母神) 의식에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특히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앙을 밀어내는 밝음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날에 동제(洞祭)를 지내는 등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해왔다는 것이다.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악화되어가는 경제사정 속에 지방의 중소기업들은 자구책 마련에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경기도는 수출기업의 업무를 맡고 있는 수출멘토링 사업에 중소기업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중소기업의 육성을 위한 신제품 개발과 해외수출전략에 몰두하지 않고 기존의 업무와 중복되는 곳에 예산을 낭비하며 행정손실을 자행하고 있어 도민들의 비난을 산다. 여기에 업체방문에 따른 비용도 기업이 무역전문가와 협의해서 지불해야하는 실정이다. 소외계층의 지원과 당면한 생활시설 개선과제가 산더미 같은데 이를 외면한 채 업무가 중복되는 수출멘토링 사업을 자행하며 돈을 받고 있어 업체의 부담을 가중시켜 간다. 효율적인 광역행정을 위해서 사사롭게 중복되는 분야를 철저하고 과감하게 수정해 가야한다. 탁상 위의 안이한 행정이 아직도 기업체에 부담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기존 업무와 중복되는 업무를 피해서 행정효과를 위한 지원과 관리에 박차를 가해가야 할 것이다. 지역의 수출증진 업무 촉진을 위해서 은퇴한 무역관련 전문가를 모집하여 자원봉사활동으로 업무를 추진해 가는 것도 한 방법임을 강조한다. 이들은 충분하게 해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해외 시장동향을 조사하여 정확한 정보
강원 동해안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눈은 ‘폭설’이란 말로도 모자라 ‘눈폭탄’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엿새 동안 1m가 넘는 눈폭탄이 쏟아진 강원 영동 지방에서는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이 무너지고 교통이 통제됐으며 학교들이 임시 휴교에 나섰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 관련 업소와 음식점들은 뚝 끊긴 손님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도심지는 그런대로 간신히 통행이 가능하지만 산간 마을이나 인적이 드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길이 막혀 바깥출입도 어렵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에는 150cm나 되는 눈이 내렸다고 한다. 금강산으로 가는 옛길 초입에 위치한 작은 암자인 정수암 주지 진관 스님은 처마선과 비슷한 높이로 폭설이 쌓인 이후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보지 못하고 겨우 공양간만 출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당국에 제설신고는 했지만 산골 구석까지 들어올 수 있겠느냐며 지원을 포기한 상태다. 눈이 녹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얘긴데, 이 같은 경우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현재 폭설피해 복구를 위해 민·관·군이 땀을 흘리고 있다. 강원도에 따르면 현재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1만6738명의…
농부에게 한 알의 종자는 수백, 수천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다. 오늘날의 농업은 이러한 식량 보급뿐만 아니라 생명(BT)산업, 정보(IT)산업과 융·복합하여 첨단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전자원 활용으로 인류의 편의와 발전을 향상시키는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 미국 최고의 주식 투자가 ‘워렌 버핏’이 즐겨 마시는 음료는 바로 콜라다. 피자나 햄버거 등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즐겨 찾는 콜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콜라는 합성 음료’라고 오해하고 있다. 최초의 콜라는 1886년 미국의 ‘J.S. 펨버턴’ 박사가 코카나무와 콜라나무 열매의 추출물을 혼합해 만들었다. 이 혼합물은 머리를 맑게 하고 두통에 효과가 있어 처음에는 약국에서 의약품으로 판매됐다. 콜라나무는 서아프리카가 원산지이며 높이는 20m에 달하는데, 콜라나무 종자에는 커피의 2~3배에 달하는 ‘카페인’과 ‘콜라닌’이 들어 있다. 그래서 종자를 생으로 씹으면 흥분과 활기를 느끼기 때문에 예부터 아프리카 사람들은 건조시킨 콜라나무 종자를 가루로 만들어 물에 녹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운데 갑자기 다가와 인간을 흔들고 파멸에 이르게 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재앙이다. 하지만 재앙이란 닥치기 전에 이미 재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禍之作不作於作之日). 說苑(설원)에는 무릇 인간에게 있어서의 患亂(환란)과 재앙이라는 것은 음란함과 거만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음주에 대한 예를 중요시 했다. 사람은 귀에는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눈으로는 바르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발에게는 바른 걸음과 태도로 걷게 하며, 마음에게는 바른 도리를 논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종일 술을 마셔도, 過失(과실)이 없어야 하며 가까이는 며칠, 멀리는 몇 달이 되어도, 덕을 그 속에 갖추어 더욱 선한 길로 가야 한다. 詩經(시경)에는 ‘취하기는 술로 취했으나 배부르기는 덕으로 했네(旣辭以酒旣飽以德)’라 했으니 술을 적당히 조절하여 재앙에 이르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또 원망은 보답해 주지 않는 데서 생기고, 화는 多福(다복)에서 생긴다 하였다. 안정과 위험은 스스로 어떻게 처하느냐에 달려 있고, 곤핍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미리 예측하는 길밖에 없다. 또 존망은 어떤 사람을 얻느
요즈음은 어디에서건 중국인 관광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모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은 약 400만명으로 외국인 입국자의 3분의 1 이상이며, 씀씀이도 외국인 중 1위로 7조원에 가까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였다 한다. 우리에게는 빈객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37%가 우리나라에서 무시를 당하였다고 느꼈다 한다. 우리경제에 큰 도움을 주는 이들을 푸대접하면, 언제 반한감정이 폭발하여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게 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중국 관중들은 우리 팀에게는 야유를 보내고, 무조건 우리의 상대 팀을 응원하였다. 심지어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본과 우리의 야구 경기에서도 일방적으로 일본을 응원하여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표면적 이유로는 티베트 사태에 대한 우리의 비판적인 여론, 성화 봉송을 방해한 서울의 데모, 동북공정에 대한 항의, 사천성 지진 때 일부 네티즌들이 ‘천벌을 받았다’는 등으로 중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결정적으로, 모 방송이 국제관례를 깨고 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장면을 보도하여 한껏 부푼 김을 새게 만들
3년 전인가. 후배의 연락을 받고 개업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수원에서 목이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영통지역 중심가에 커피숍을 겸한 빵집을 차렸다고 해서다. 그날 후배 얼굴을 잠시 본 후 열흘 뒤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모 은행지점 중견간부였던 그가 자영업을 하는 것이 궁금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것도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 브랜드를 택해서였다. 후배의 대답은 간단했다. 조직 내에서 자꾸 밀리는 위상을 명퇴로 보상받고 노후를 준비하는 첫 단계로 시작했으며, 신생 브랜드를 선택한 것은 기존 업체보다 매우 좋은 조건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꽤나 많은 자금을 투자했지만 돈값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보였다. 그동안 모임에도 나오지 않아 ‘바쁜가보다’ 했던 후배를 얼마 전에 만났다. ‘잘 되냐’는 나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넘긴 지 좀 됐다’고 했다. 폐업을 안 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엄청 손해를 봤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하소연도 했다. 결정부터 성급했다는 게 그의 서두였다. 나만 열심히 하면 최소한 월급은 가져가겠지. 그래서 임대료도 높고 권리금도 비쌌지만 상관하지 않았고
명예(名譽)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 지난 10일 수원에서 ‘명예’에 걸맞는 행사가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최동호 수원시 인문학 위원장의 ‘수원중학교 명예 졸업장 수여식’이 바로 그것이다. 수원시 남창동 출신인 최 시인은 1960년 수원중학교에 입학, 이듬해 선친의 직장관계로 전학을 간다. 입학 후 54년. 수원중학교를 떠난 지 53년 만에 정말 ‘명예’로운 ‘명예졸업장’을 받은 것. 다시 돌아오기까지 53년. 고향을 떠나 4년여 세월을 돌아 다시 귀향하는 연어보다 무려 13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시인에게는 귀한 졸업장이었을 게다. 명예졸업장을 받는 순간 파르르 떨린 시인의 눈에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간직했던 모교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시인은 고향을 떠나 타향을 떠돌면서 내면의 결을 쌓고 영혼의 깊이를 더해 대한민국 문단의 큰 별이 됐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강단을 떠날 때까지 시와 평론분야에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