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창을 들고 “이 창은 예리해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방패를 들고 “이 방패는 견고해 어떤 창도 막아 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 말을 듣은 한 구경꾼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한 번 뚫어 보면 어떻겠소?”하자, 장사꾼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모순(矛盾)이다. 요즈음 일본의 ‘독도망언’ 파문이 전국을 들끓게 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전면적 마찰로 몰아갈 것인지에 대해 “냉정한 국익적 판단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감정적 대응으론 오히려 한국에게 불리한 결과가 올 수 있다”며 냉정하게 대처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일본은 당장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영토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어떻게든 지배권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치밀한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기에 임시응변식으로 대처하는 것보다 항구적인 노력을 해야 할 문제이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 영토로 편입됐던 ‘다오위다오&r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면서 벌써부터 추석선물에 관심이 간다. 과거에야 직장에서 챙겨준 선물세트와 부모님 선물 등이 몇가지 제품에 한정됐으나 이제는 다양화된 사회만큼 추석선물도 다양해졌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기있는 추석선물도 모습을 달리 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60~70년대 먹고살기가 고달플때야 설탕, 치약, 비누, 과자 등이 단연 인기를 끌었지만 80년대 이후 산업화에 따라 선호하는 선물이 급변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유명 소셜커머스가 20~30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인기없는 선물’을 조사한 결과, 과거 인기품목이었던 양말과 손수건 등 잡화세트가 41%로 1위를 기록했다. 또 비누, 샴푸 등 생필품세트가 26.6%로 그 뒤를 이어 변화무쌍한 추석선물의 기상도를 보여줬다. 결국 살만해지자 아무리 경제사정이 어렵다고해도 ‘실속형’으로 지칭되는 생필품이나 잡화는 인기가 급락하는 형편이다. 반면 같은 잡화라도 명품 지갑, 명품 넥타이, 명품 스카프 등 ‘명품’이 붙은 고가(高價)의 선물은 인기 정상을 달리고 있으니 ‘명품’에 죽고사는 세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꼭 고가의 상품만이 인기있는 것은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중저가이
연달아 한반도를 할퀴고 간 15호, 14호 태풍 ‘볼라벤’과 ‘덴빈’. 두 개의 태풍이 북상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전에 없었던 진풍경이 연출됐다. 짧은 기간 동안 가족, 친구, 학교, 직장 등 대한민국 국민의 대화와 관심은 온통 ‘태풍대비’였다. 약속 취소하고 일찍 귀가하기, 초등학교 전면휴업, 테이프나 신문지 활용한 창문 보호 작전, SNS메신저를 통한 태풍대비 문자열풍, 총리는 물론 대통령까지 나선 정부. 국가 차원의 훈련계획도 시나리오도 없었지만,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실제상황 재난대비훈련’이었다. 짧은 기간에 모든 국민이 위기극복을 위해 이토록 스스로 몰입한 적이 있었을까? 그동안 국민의 ‘안전의식’은 이토록 성숙돼 있었고, 어느새 국민의 ‘안전욕구’는 선진국 수준이 돼 있었다. 온 국민이 재난대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가 됐다. 이번에도 태풍의 길목인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전남·광주에서만 재난피해액이 4천500억원을 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 지역 전
김 동 수 (金東洙·1916.12.6~1982.2.20) 선생 김동수 선생은 강화에 세거한 양반가문으로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선생은 상해에서 민족교육의 상징인 인성학교를 다니며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고 화랑사 등 각종 소년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 인성학교와 공시중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1월, 제1차 상해사변 이후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학생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34년에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선생은 윤봉길의거 이후 독립전쟁의 군사간부 양성을 위해 설립된 중국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에 입학해 군사학을 연마하고 김구가 조직한 특무대에 들어가 반일운동에 참여했다. 낙양분교를 졸업한 선생은 1936년 중국군 장교로 복무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선생은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남경에 가서 임시정부에 합류해 피난 중의 임시정부 등 요인들을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임시정부가 중경에 도착한 이후 선생은 나월환 등 한인 청년들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했다. 이때 모집된 한인 청년들은 후일 한국광복군의 근간이 됐다. 1940년 9월17일 마침내 중경
손 원 일 (孫元一·1909.5.5~1980.2.15) 해군중장 손원일 해군 중장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독립유공자 손정도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상해에 있는 국립중앙대학 항해과 제3기생으로 입학해 1930년6월 우등으로 졸업했고, 이 후 해군에 몸담게 됐으며 우리나라 해군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손원일은 1945년 11월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창단했다. 이는 1894년 7월15일 조선수군이 폐지된 지 51년4개월 만에 조선수군의 맥을 잇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렇게 해방병단은 한국해군의 전선이며 모체가 된 것이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2월15일 대한민국 해군이 정식으로 발족됐으며 손원일 중장은 해군참모총장직을 맡아 해군 운영 원칙, 간부양성, 전투함 구입 등 대한해군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1948년 10월 해군은 여수·순천 사건 진압에 투입되었는데 이때 해병대의 필요성을 받아들여 1949년 4월15일 해병대를 창설했다. 6·25 전쟁발발 첫날부터 북한군의 해상침투를 막고 유엔해군과 더불어 동서남해에서 제해권을 확보한 손원일 제독은 해군 총참
같은 생각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의식도 같아지게 마련이다. 요즘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내게서 가끔 나오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생각이나 일의 정점에서 더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어진 대로 안일하게 사는 것이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이웃 도시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좋은 강좌가 있다고 지인에게 문자가 왔다. -00문화센터 00강좌 내일 00시 출발, 연락바람- 금방 가겠다고 답을 보낸다. 오랜만에 만나는 문학후배들이다. 항상 무언가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그녀들이다. 강좌 제안에 동의하면서 만난 그녀들은 여름방학동안 비어있는 시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중이라고 한다. 그녀들은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Y의 진취적인 성향은 우리들에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방송통신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외국어 학원을 경영하다가 더 공부해야한다며 잘나가는 학원을 접고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러더니 요즘같이 취직이 어려운 시기에 고등학교 계약직 선생으로 취직이 돼 대학원 공부와 겸하고 있는 그녀. 가녀린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지 우린 만나서 대화를 하는 중에 그녀에게
인권영화제 출품작들 대부분 ‘배려’와 ‘소통’이라는 가치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얼마 전 경찰청 인권센터 야외마당에서는 ‘경찰인권영화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식전행사로 ‘한여름 밤의 콘서트’가 열렸고, <여섯 개의 시선> 등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 4편과 수상 작품 6편이 상연됐다. 또 특별 미술작품 전시회도 열렸고, 사회복지법인인 YOURWAY에서 개최하는 범죄피해자 지원을 위한 음료 바자회도 열렸다. 이날 음료 바자회의 수익금 전액은 범죄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쓰였다. 한편 재미와 감동 모두를 주고자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라는 이벤트로 함께 열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이다. 경찰과 인권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으니, 경찰이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것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인간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가장 본질적인 인권 보호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청 산하기관인 인권센터에서는 인권 소식지인 ‘마주’를 정기적으로 발행해 배포
1961년 7월 2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서생이 아니라 행동하는 작가였던 헤밍웨이가 엽총으로 자살하자 그의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에서 그는 고기잡이 노인을 통해 고난을 초월하는 인간상을 극명하게 표현하였기에 충격은 더했다. 헤밍웨이가 자살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면 유명인의 자살패턴이 촘촘히 놓여 있다. 우선 그는 성공한 문학가로 세계 곳곳의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비행기 사고에서 2번이나 극적으로 생존할 정도의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또 불의에 대항하는 의기는 그로 하여금 스페인내전과 제1차세계대전에 직접 총을 들고 참여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작품의 성공에 대한 부담과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은 그의 정신을 좀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1월 10일 수필가 전혜린이 자살했다. 총명한 머리와 날카로운 이성은 그를 우상화했고, 1960년대 ‘앞서가는 여성’의 상징이었다. 서울대 법대를 중퇴하고 독일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남긴 저서중 가장 유명한 수필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청소년
옛 선시에 태어남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죽음은 또 어디로 가는 것인가(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것이며(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뜬구름은 자체가 원래 실체가 없으니(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삶과 죽음이 오고 감 역시 이와 같도다(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또 시 한수를 옮긴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시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 세상만사가 뜬구름과 같구나(空手來空手去 世上事如浮雲, 공수래공수거 세상사여부운). 묘지에 성토하고 장례객 다 떠나면 쓸쓸한 산위에 황혼달만 처량하네(成墳土客散後 山寂寂月黃昏, 성분토객산후 산적적월황혼). 자고 이래로 모은 재물을 지니고 저승 간 사람은 없다. 그러니 세상 살면서 애착을 노아라. 몸이 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아 허물어진다. 잠시 머무는 것뿐인데, 무엇을 탐한다는 것인가. 오늘은 일생에서 딱 한번 다시는 오지 않는다.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오늘을 보람있게 살아보라. 우리나라 재벌의 1인자였던 이병철 회장도 나이 들어 세상 떠나기 얼마 전 틈을 내 익혀오던 붓글씨
어느 집단이건 자신들이 취해야 할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 맞다. 한가지라도 더 확보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특권을 유지할려고 애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경기도민을 대표하는 도의원들은 다르다. 도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도정을 심의하고 예산안을 심의해야 하는 대의정치의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망각한 채 자신들의 특권유지를 위해 도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식을 풍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경기도의회 여야 의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안 심의에 뒷짐지고 있다는 본보 보도다.(7일자 1면) 도의회는 민주당 소속 조광명 의원(화성)이 발의한 ‘경기도의회 의원 지방의원 행동강령 조례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고 전체의원들의 눈치 보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조례안 심의에 착수해야 할 도의회 운영위원회 조차도 조례안 심의는 커녕 심의자체를 보류시켰다. 도의원들은 번번히 해외시찰이나 체육행사를 하면서 혈세를 낭비하거나 유관기관들로부터 찬조를 받아 빈축을 사왔다. 예산안 심의와 행정사무감사를 받아야 할 유관기관으로부터 협조를 받는다면 심의나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조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에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