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블록버스터의 시대는 끝이 났다. 천만 관객 운운은 쥬라기 월드 시대에나 가능한 꼴이 됐다. 물론 세계 영화계를 얘기하는 것, 특히 할리우드 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시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여전히 할리우드이며 유럽은 여전히 유럽이다. 그들의 극장 문화는 코로나19 이전으로 완벽하게 복귀했다. 한국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때에 비해 시장을 50~60% 복구 선까지 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1년 관객 수는 2019년 2억 2667만 명으로 최고점을 찍었으나 코로나 시기를 경유한 현재 올해 상반기는 4492만 명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이라면 올 한 해는 1억 명을 넘지 못하게 된다. 이건 꼭 국산 상업영화가 극심하게 부족해서만도 아니다. 국내 극장가에는 국산 영화로는 현재 ‘여름이 지나가면’ ‘봄밤’ 등 독립영화나 저예산 상업영화들로만 채워져 있다. 모두 5천 명 정도의 관객들을 모았다. 애초 규모의 경제학이 실현될 수 없다. 또 한편으로 흑묘백묘 전술도 안 먹히고 있다. 한국 영화가 안되면 할리우드 영화들이 잘돼 줘야 한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되지 않는다. ‘F1 더 무비’는 국내 관객 143만 명 선에 그치고 있어 주연인 브래드 피
요즘 감사하게도 바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저런 일정이 촘촘히 이어지면서, 말 그대로 ‘휴일 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피곤하다고 말하면 사치처럼 들릴까 조심스럽지만, 사실 가장 큰 고민은 딱 하루쯤 텅 빈 휴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각한 건 아니고 단지 잠깐, 아주 잠깐만 나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런 감정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번쯤 ‘번아웃’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번아웃(burnout)’은 원래 물리적인 용어다. 불에 타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상태, 혹은 연료가 고갈된 상황을 의미했다. 이 단어가 심리적, 직업적 맥락에서 쓰이기 시작한 건 1970년대다.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루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찰한 만성 피로, 무기력, 냉소적인 태도를 묘사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번아웃을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탈진 상태"라고 정의한다. 과거에는 특정 직군, 예를 들면 교사나 간호사, 예술가처럼 감정 노동 강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신화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아직 과학이 도달하지 못한 시대, 인간은 자연과 삶의 고통을 이야기로 설명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노동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중요한 행위로 등장한다. 노동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이 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가장 유명한 노동의 기원 신화는 성경 속 에덴동산 이야기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대가로 낙원에서 추방당하고, 흙을 일구며 땀 흘려 살아가야 했다. 노동은 신의 형벌이었고, 고통의 상징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판도라가 열어버린 상자에서 온갖 재앙과 함께 노동이 인간에게 주어졌다. 이 역시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결과로서 노동은 벌이었다. 그러나 모든 신화가 노동을 고통으로만 묘사하지는 않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는 신들이 지친 끝에 인간을 만들어 대신 노동하게 했고, 인간은 노동을 통해 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여기서 노동은 신과의 계약이자, 신성한 의무였다. 북유럽 신화의 토르 역시 번개와 천둥의 신이자 대장장이 신으로, 노동과 힘, 창조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노동은 고통이면서도 창조이고, 저주이면서도 축복이었다. 노동의 이중
오픈AI의 챗GPT가 세상에 나온 후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인공지능(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글로벌 IT 산업의 화두는 AI이며, 오픈AI CEO인 샘 올트먼 등이 AI 기술 진보를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인간 수준인 범용인공지능(AGI) 기술을 비롯해 인간을 초월하는 초인공지능(ASI) 또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힌튼 교수는 “5∼20년 안에 초지능이 등장한다”라고 예측하였으며 올트먼과 함께 AI 기술 양대 산맥으로 알려진 구글 딥마인드 CEO 허사비스도 “인간 수준의 AI가 5∼10년 내 나타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샘 올트먼은 “AGI는 트럼프 2기 중에 개발될 것이고, 딥러닝을 통해 초지능이 수천일 안에 나타날 수도 있다”라고 언급하였으며 초지능 기술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로봇이 로봇을 생산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 말은 AGI·ASI 기술을 장착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여 로봇 공장을 운영한다는 뜻이다. 인류 사회는 조만간 엄청난 파괴적 혁신을 보게 될 것이다.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는 “10년 내 ASI가…
6월은 계절의 경계에 선다. 봄은 자취를 감추고 여름의 숨결이 서서히 일상을 감싼다. 햇살은 짙어지고 공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자신만의 지혜를 찾아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술이다. 단지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절을 건너는 한 방식으로서의 술. 바로 과하주(過夏酒)다. 과하주는 이름 그대로 ‘여름을 지나기 위한 술’이다. 1418년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며,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주로 5월 무렵 담가 초여름부터 마셨다. 높은 온도에서도 상하지 않도록, 발효주에 증류주인 소주를 더해 보존성을 높였다. 그 풍미는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묵직한 안정을 주었다.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중요한 건 단순한 시원함이 아니라, 어쩌면 그런 ‘깊이’였는지도 모른다. 맛은 한마디로 깊고 조화롭다. 구수한 곡물 향이 먼저 퍼지고, 뒤이어 진한 단맛과 은은한 산미가 느껴진다. 차가움으로 혀를 자극하기보다, 온전한 발효가 주는 풍미로 입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특히 간장이나 된장 같은 짭조름한 장맛과 잘 어울려, 여름철 보리밥이나 찌개류와 곁들이면 더욱 궁합이 좋다. 고문헌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과하주를 지금은 몇몇 양조장에서 전
미국에 사는 한 노파가 변호사에게 두 가지 유언을 했다. 첫째는 죽게 되면 화장할 것. 두 번째로는 유골은 반드시 뉴욕 맨해튼 최대 번화가에 뿌려줄 것이었다. 의아했던 변호사가 노파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뉴욕 맨해튼입니까?” 노파는 말했다. “쇼핑을 좋아하는 내 딸들이 반드시 일주일에 두 번은 방문해 줄 것 같아서요.”라고. 사람도 나이 들어 동진강 폐선 같이 뻘 속에 처박혀 있는 듯하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관심 밖의 삶으로써 비루먹은 망아지 꼴이 되는가 싶다. 나는 해방둥이 세대로서 스스로의 심장을 펌프질하며 열광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그 힘으로 가정의 안정과 가족들을 건사했다. 열광하는 삶에서 한결같은 삶을 고집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쁠 것 없는 노인세대가 되었다. 미국 노파의 심정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남은 인생의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유머 같은 노파의 이야기가 울음보다 더 서글픈 정서의 현을 건드린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청년의 꼭지점에서는 우정에 대한 철학도 자못 심각했다. ‘대신 죽어줄 친구나 천하를 반분할 수 있는 우정의 도를 저울질하기도 했다. 공무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이던 2019년 시행했던 “청정계곡 복원 사업”을 통해 경기도의 청정계곡을 전 국민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 지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가평군의 청정계곡이 있는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계곡을 생태친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계곡 주변 주민들의 삶의 질도 향상시키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도 피서객들의 무질서한 계곡 이용으로 오염과 눈살 찌푸리는 상황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 비해 자율적으로 생태친화적인 피서를 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큰 변화 중 하나는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등의 불법 취사를 하기보다는 도시락에 조리된 먹거리를 담아와서 먹고 빈 그릇을 그대로 가져가 쓰레기 발생도 줄이는 피서객들이 늘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가져와서 발생한 쓰레기를 갖고 가는 일들도 늘어났다. 특히 수박 같은 경우는 쓰레기양이 많아서 아예 집에서 먹기 좋게 썰어서 도시락에 담아와 먹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물놀이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난감한 상황이 바로 반려견 수영의 경우다. 국립·도립·군립공원의 경우 '자연공원법'에 의해서 반려견 출입 자체를 제한할 수 있
K-Pop 데몬 헌터스의 OST가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 Top 10을 도배하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에스파의 ‘광야’ 컨셉은 옳았다. SM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너무 빨랐던 것이다. 버추얼 아이돌은 먹힌다. 버추얼 아이돌과 사람 아이돌의 시너지의 현실화가 목전이다. 그래서 뉴진스의 퇴장이 새삼 다시 안타깝다. K-컬쳐가 또다시 상승장의 물결을 탔는데, 물이 들어 오고 있는데, 노 저을 사공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버추얼 아티스트의 이점을 ‘휴먼 리스크’가 없다는 점에서 찾는다. 휴먼 리스크 중 상당 부분이 법률 리스크다. 멀게는 동방신기의 해체부터 가깝게는 뉴진스의 가처분까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휴먼 리스크는 결국 법정을 무대로 삼는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가 법정 싸움이다. 우리의 ‘높은 문화의 힘’을 더욱 드높이려면, 법질서의 분쟁 해결 기능이 더 나아져야 한다. 소송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1 아니면 0이 되기 마련이다. 현실의 분쟁이 전적인 선과 전적인 악 사이의 대결인 경우는 거의 없다. 시시한 약자와 시시한 강자의 싸움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가 구치소로 돌아갔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줄곧 “윤어게인(YOON AGAIN)”을 외친 지지자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공허하여라. 망상의 연대여~ 새정부가 출범한 후 엉망진창이던 나라가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 순간이 바로 어젯밤 윤석열의 재구속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제 전용면적 세평 남짓한 공간에서 독거노인이 되어 남은 평생을 보내게 되리라. 여름징역은 곱이다. 자업자득이요 사필귀정이다. 생각해보라.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자가 비상대권까지 갖겠다고 일으킨 내란! 조선조였다면 사직을 어지럽힌 죄로 삼족을 멸했을 대역죄인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내란 우두머리와 잔당들을 어떻게 징치하는가에 달려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내란범을 두둔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40%에 달한다. 기득권계층과 특정지역, 특정종교에 편중된 이들이 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앞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3년동안 30년을 퇴보해 나라가 폐허처럼 거덜났다. 도대체 얼마나 거덜났을까? 윤석열은 취임도 하기 전부터 나라의 기둥뿌리를 뽑아냈다. “청와대에는 죽어도 안들어 간다”며 용산에 들이부은 돈이 얼마나 될까?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 기준…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세력은 정부와 당 어디에서도 소수파에 불과하였다. 대선 기간에 군의 개혁 등 정치개혁을 주장했지만 누구도 그것은 그저 형식적인 입바른 소리로만 여겼다. 그러나 취임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3월 8일 김영삼은 군 개혁을 단행했다.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적으로 해임하면서 군부 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하나회 소속인 대장 7명과 중장 이하 장성 12명 등 명단에 오른 대부분의 장교가 강제 예편되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군 개혁이었다. 김영삼의 개혁 정치는 군부에 머물지 않았다. 취임 이틀 만에 스스로 재산 공개를 하면서 모든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실시해 그동안 무풍지대였던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이 공개되었다. 국민을 경악게 할 수준의 부도덕한 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더 이상 부정한 돈이 자리잡을 수 없게 했고 이름뿐인 지방자치제도 도입과 5공 청산, 역사바로세우기 등 김영삼의 초기 정치개혁은 80% 이상 국민의 지지가 유일한 무기였다. 국민은 비로소 자신의 한 표가 나라를 이렇게 개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