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공기의 이동이듯 인연은 삶 속의 동행 같은 것 아닐까. 잘 살아가는 방법은, 선한 삶을 꿈꾸며 때로는 살아온 과거를 즐기는 데 있다. 영국의 새무얼 존슨은 ‘글쓰기의 유일한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또 삶을 더 잘 견디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책 속에서의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것 또한 인연이겠지 싶어 하는 말이다. 나이 숫자가 높아 가면 병원에 가는 날도 기다려진다. 생사가 걸린 중병이 아니고 나이 따라 가볍게 겪는 질환으로서 진찰받고 약 지어오는 날의 병원 길은 자기 관리에 충실한 양 병원으로 향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서신 내과 J 의사와 만나게 됨은, 내 어머니와 의사 아버지와의 인연에 따름이다. 일찍이 의사 아버지 J 선생님은 교육대학을 졸업하시고 회문산 근처 초등학교로 초임 발령을 받았다. 어렵게 부임지에 도착해 보니 식당도 하숙집도 전무했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머물 곳을 물어보니 나의 아버지 존함을 알려주며 옆 동네 그 집으로 가서 사정해 보면 식구처럼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 말씀이 인연의 씨앗이 되었다. J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의 선한 결심으로 따지지 않고 식사
지난 칼럼에서 통상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고 2년 정도가 지난 경우 채권양도 절차를 통해서 처음 하자소송을 시작하게 된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행사나 시공사에 대하여 오랜 기간 동안 하자 처리에 대한 요구만을 하거나 협상을 하다가 결렬이 되어 뒤늦게 소송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하자소송의 궁극적인 목적은 손해배상금을 수령하여서 이를 통해 공용부분이나 전유분에 존재하는 하자를 치유하는 공사를 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법원의 감정을 통해서 적정한 보수비를 산정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법원의 감정을 통해서 보수비가 산정이 되더라도 실제 판결을 통해서 해당 금원이 모두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건에서 법원은 준공시로부터 감정을 위한 현장조사까지 또는 소제기까지의 기간 경과에 따라 대략 1년 5%의 비율로 책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이러한 책임의 제한의 근거로 드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파트의 자연적인 노후화가 진행되어 그것이 하자의 발생에 기여하고 이를 시공상 잘못과 구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자가 있더라도 입주자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차를 이용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이번 전승절 행사는 '반서방 세력의 집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서방 진영은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맞서 '다자주의'를 강력히 주장해왔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그러한 기조가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국가원수는 물론 주요 인사들을 전승절 행사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아직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미국과 일본은 이번 행사에 주중 대사조차 참석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서방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의전 서열 2위 우원식 국회의장을 참석시켰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권력 서열 2위인 리창(李强) 총리와의 단독 회담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서 '안미 경중(安美經中)은 불가능하다'고 발언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우리 언론은 우 의장과 김정은의 조우 여부에 주목하고 있지만, 양측 만남의 가능성 역시 극히 낮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북한은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큰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분석해 보면, 북한이 우리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대국민보고대회를 열고 123개 국정개혁과제를 발표하면서,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여성의 권익 신장과 양성평등을 중심에 두어 온 여성가족부가 이제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부처로 바뀌는 것이다. 이 변화가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과 영향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왜 굳이 여성가족부의 이름을 바꾸려 하는 것일까? 여성가족부는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로 출발했다. 여성 차별을 해소하고 지위를 높이며,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설립 취지였다. 이후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로 확대되었고,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두 차례 명칭이 오가다가 다시 여성가족부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여러 정권을 거치며 여성정책의 방향이 조정되어 왔다. 법적 기반을 보더라도,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여성발전기본법'을 제정했고,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이를 전부 개정해 '양성평등기본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보장하는 동시에,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목할 점은 여기서 성평등의 개념도 함께 언급되었다는 사실이
60세에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아직 젊다’는 위로를 들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정년 연장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법정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늘리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내놓았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 과정에서부터 강조되어 온 공약이자, 초고령 사회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핵심 대책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지는 상황에서, 정년 60세는 곧 5년의 소득 절벽을 의미한다.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어서는 시대, 60세는 은퇴하기엔 이르고, 노후를 즐기기엔 경제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나이다. 결국 ‘빈곤’이 노년의 가장 큰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내놓는 재취업·전직 프로그램도 몇년새 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제한된 직종은 다양한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중장년을 담아내지 못한다. ‘내려놓기엔 너무 젊고,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현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을 좌절하게 한다. 단지 나이 때문에 배제되는 고용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제도적 지원은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정년
겉보기에는 평화롭고 문제없는 듯한 교실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끼리 조를 짤 때 특정 학생만 조에 끼지 못하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그 아이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름 대신 친구의 별명이나 비하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행동이 농담처럼, 웃음 속에 섞여 진행되는데, 그 중심에는 분명히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기가 흐른다. 예전의 따돌림은 비교적 노골적이었다. 쉬는 시간에 놀리거나, 일부러 어깨를 밀치고 지나가거나,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행동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의 따돌림은 훨씬 은밀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갈등조차 없어 보인다.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인을 제외하거나, SNS에서만 이어지는 대화를 현실에서 일부러 공유하지 않는 식이다. 문제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에 교사나 부모가 쉽게 눈치채기 어렵지만, 당사자는 매일 같이 외로움과 소외감을 견뎌야 한다. 이러한 침묵의 따돌림이 위험한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매일 상황을 지켜보는 교사조차 친구들끼리 안 친해서 거리감이 있는 거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당한 경험은 아이의 자존감에 깊은
대통령 관저는 단순한 집이 아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거주하는 공간이자, 국가 운영과 위기 대응의 최전선이다. 외국의 정상들이 방문하는 외교 무대이기도 하며, 국민의 신뢰와 자존심이 투영되는 국격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통령 관저의 위치와 조건은 단순한 ‘주거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국가 경영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 대통령 관저는 여러모로 대통령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1990년 현대건설이 공사를 맡아 지을 당시, 자연 지형을 거칠게 훼손한 사실부터가 문제였다. 암반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고, 본래 맑은 물이 흐르던 계곡을 매립해 관저 부지를 조성했다. 그 위에 15미터가 넘는 인공 축대를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대통령 부부가 머무는 안방마저 이 축대 위에 놓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웅장할지 모르나, 터 자체가 불안정하고, 자연을 거스른 인공적 구조물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또한 관저는 청와대 구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이는 외견상 위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고립감을 주고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지 않는 터다. 전통 풍수에서는 이를 ‘고한(孤寒)’이라
여행이란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훌쩍 떠났다가는 자신이 살던 곳이 그리워질 때 다시 찾아드는 과정의 모든 연속이다. 여행은 피곤하면서도 즐겁다. 또 많은 것을 실제의 경험을 통해 보고 듣고 먹으면서 즐기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만들어진 경험은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간접경험에 비해 훨씬 더 오랫동안 뇌리에 남게 된다. 세월이 지난 뒤에는 그때의 모든 과정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거나 또 진한 향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 모험심과 개척정신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여행을 통해 얻는 새로운 에너지는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된다. 그동안 일상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힐링이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낭비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Nâzım Hikmet)는 「진정한 여행」이라는 시에서 여행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
원행을묘 출발 10여 일 전인 1795년 2월 25일, 정조 임금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창덕궁의 후원에서 가마를 타고 가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윤2월 9일 아침 다섯 시, 정조가 평소 도서관으로 쓰던 창경궁의 영춘헌(迎春軒)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거둥했다. 곧 수정전(壽靜殿)에 들러 자신보다 일곱 살 많은 할머니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께 인사드린 후 돌아왔고, 6시 45분에 행군을 알리는 구령이 세 번 울렸다. 드디어 영춘문을 나서면서 7박 8일의 원행을묘가 시작됐다. 창경궁의 천오문-만팔문-보정문-숭지문-집례문-경화문-동룡문 등 작은 문을 지나 건양문(建陽門)을 통과했다. 이어 창덕궁의 외전(外殿)과 내전(內殿) 경계의 숙장문(肅章門)을 지나고 진선문(進善門)-금천교(禁川橋)를 통과하여 정문 돈화문을 나섰다. 궁궐 밖 참배 길의 시작이다. 필자는 2024년 9월 14일 토요일 9시 돈화문에서 원행을묘 백리길을 출발했다. 정조의 행렬은 필자보다 두 시간쯤 일찍 출발한 것인데, 부지런하거나 환갑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가는 엄청난 규모라서 이렇게 일찍 출발한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먼 길을 갈 때 최대한 일찍 출발하여…
낮은 저널리즘 품질, 지나친 상업화, 정파성이 강한 보도 등 현재 언론매체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존재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언론매체 자신에게 있다. 언론산업의 어려움이 나태한 저널리즘의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생존을 위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부 현상이라는 핑계도 가능하겠으나, 언론매체의 핵심 가치와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면 궁색한 변명이다. 언론매체의 생존과 언론산업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자기반성이 먼저다. 사회의 공기 혹은 제4부로서 언론의 존재 이유는 두 말이 필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언론산업의 경제적 위기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에 민주주의 근간이 위협받고 있어, 늦지 않게 언론산업 붕괴를 막을 사회적 조치가 필요하다. 공익을 실현하고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언론매체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언론정책이 개발돼야 한다. 이에 조금이나마 언론산업의 경제적 위기를 감소시키고 언론매체의 신뢰를 제고할 수 있는 미디어 바우처(media voucher)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바우처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조성된 재원을 가지고 뉴스 이용자에게 일정 액수 상당의 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