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왔다. 각 정당이나 정치지망생들이 유권자들을 홀리는 달콤한 사탕발림이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마구잡이로 터져나오고 있다. 야당이 학교 무상급식을 들고 나왔을 때 포퓰리즘이라며 비난에 앞장섰던 여당이 스스로 포퓰리즘성 공약을 스스럼 없이 내놓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올해는 4월 총선에 이어 12월 대선까지 큰 장이 두 번 선다. 앞으로 10여 개월 내내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없이 달콤한 약속들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이미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4.11 총선을 앞두고 귀가 솔깃한 여야의 공약 남발 경쟁이 시작됐다. 이들이 쏟아놓는 감언을 듣다 보면 누가 이기든 천국의 문이 열릴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여야의 선심성 공약 남발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여당은 현 정부에서 논란 끝에 접은 남부권 신공항 건설 구상을 다시 꺼내 드는가 하면 사병 월급을 9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려주겠다는 공약도 추진한다고 한다. 또 핵심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대학생에게 2년간 장학금을 주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호기를 부리고 있다. 한 술 더 떠 남경필 의원은 사병월급을 50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5일제 수업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오는 3월 1학기부터 경기도내 거의 모든 학교에서 매주 토요일, 학교가 휴업하는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시행된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격주 ‘놀토’가 아니라 매주 놀토라는 것이다. 이 주5일제 수업에 대한 논의 가운데서 찬성론자들은 아이들이 학교의 공부지옥에서 벗어나 충분한 휴식과 취미생활을 즐김으로써 보다 즐겁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환영한다. 반대론자들은 오히려 주말 과외를 하는 학생이 늘어날 것이고 학원에서는 ‘주말수업’ 이라는 새로운 수업제가 생겨나 사교육비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시행 이후의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기왕에 주5일 수업제가 시행된다면 이제부터라도 저소득층과 맞벌이 가정에 방치되는 아이들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한다. 지역사회나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대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의견이다. 어찌됐거나 이제 주5일제 수업은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주5일제 수업에 따라 교원들의 휴가일수를 축소하는 ‘교원휴가 업무 처리요령’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지난달 말까지 찬반 의견을 수렴했기 때문이
이교범 하남시장이 취임 1년 반 동안 43가지의 공약사항 중 23건을 완료, 공약추진 이행률 53.5%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장은 지하철 5호선 연장에 대한 타당성 및 기본계획 계약 체결, 하남유니온스퀘어, 신개념 환경기초시설, 2012년부터 중학생까지 무상급식 확대 등 공약사항을 차근차근 이행해나가고 있다. ▲지하철 5호선 연장…타당성 및 기본계획 계약 체결 시는 시민의 가장 큰 염원이자 하남발전의 축이 될 지하철 5호선 하남연장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 해 8월 국회의원과 함께 국토해양부장관을 면담, ‘대도시권 광역교통시행계획’에 지하철 5호선 하남연장사업에 대해 시 재정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광역철도로 반영해 줄 것을 건의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12월9일 ‘경기도 철도망 구축 기본계획수립 연구’ 공청회를 통해 제시된 지하철 5호선 하남연장(총연장 8㎞, 1조584억원)을 포함한 16개 노선 철도 건설계획이 담긴 기본계획을 국토해양부에 승인 신청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12월30일자로 제2차 광역교통시행 변경계획에 하남선(5호선 연장)을 신규로 반영, 광역철도로 확
김석진(金奭鎭·1843. 1. 21 ~ 1910. 9. 8,음) 선생 일제 작위 회유책에 죽음으로 항거 국가보훈처는 김석진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김석진 선생은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을사늑약 파기와 을사5적 처형을 요구하는 강경한 상소를 올렸으며 경술국치 당시 일제작위 수여를 거절하고 음독자결해 애국을 향한 뜻을 꺽지 않았다. 김석진 선생의 호는 오천(梧泉)이며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주전론을 주장한 김상헌의 11세 손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생부 낙균과 남원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60년 정시문과에 급제해 승정원, 홍문관, 사간원, 호조, 사헌부, 성균관, 규장각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면서 호조판서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1894년 이후 일제의 침탈과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격으면서 그의 항거의 길이 시작됐다. 김석진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당시 “을미년의 변고에 하찮은 목숨을 버리지 못하였을 망정 어찌 차마 벼슬길을 찾을수 있겠습니까” 라면서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연양리 사안당(思安堂)에 은거, 매일 의기를 참지 못하고 격앙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눈물을…
“대한독립 만세!”숭고한 그날의 외침 잠든 조국愛 깨우다 수원 3·1운동(三一運動). 1919년 3·1운동 당시 수원군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운동으로 브리태니커사전이 소개하고 있는 수원 3·1운동은 민족대표 48인인 김세환 등의 지식인과 젊은 학생 수백명이 화홍문 방화수류정 부근에 모여 시작한 최초의 만세운동이다. 서울 태화관과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서울 시내를 행진하며 수십만의 군중이 대한독립을 외친 서울의 3·1운동과 함께 조선독립의 첫 시작을 알린 수원 3·1운동은 이후 약 2개월간 많은 천도교도와 기독교도, 유학자, 농민, 학생과 기생까지 수원의 전계층이 참여한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시작된 수원 3·1운동은 이후 16일 수원면 장날에 서장대와 연무대에 수백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고, 21일과 23일에는 동탄면 오산리와 수원역, 서호 부근에서 계속되면서 고조됐다. 3월 28일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1천여명의 군중이 만세운동과 함께 순사 1명을 처단했고, 29일에는 김향화의 주도 아래 기생 30여명이 자혜의원
연날리기는 12월에서 아이들 방학이 끝날 무렵까지가 적기다. 논술 시간에 연날리기를 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논술시간에 무슨 연날리기냐고 했지만 아이들이 넓은 자연 속에서 뛰논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설득을 하자, 공부방을 운영하는 자치센터에서는 다른 아이들도 참여하게 홍보해 많은 아이들이 동참했다. 한지로 만든 가오리연은 꼬리가 2m나 된다. 꼬리에 자기 소원을 적고 예쁘게 꾸미게 했다. 아이들의 소원은 가지가지다. ‘공부를 잘하게 해주세요’, ‘우리가족 행복하게 해주세요’, ‘친구와 사이좋게 해주세요’ 등등 여러 가지다. 자디잔 글씨로 10가지는 족히 되게 쓴 아이도 있다. 아이들에게 소원을 하늘에 올린다고 하니 설레기도 하나보다. 실상 도심의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며 흥미를 유발하는 놀이다. 장소는 자치센터에서 7~8분 거리의 논이다. 긴 꼬리를 사려 잡고 달려간 논은 얕은 논두렁이 있고 벼 그루터기가 발에 걸리고 운동화에 논흙이 묻는다. 하나 둘 논으로 들어서니 모두 연을 날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좋다. 연이 하늘 높이 올랐다. 거침없이 오른 연은 까마득히 보인다. 아파트와 빌딩이 솟아있고 전봇대만 솟아있어 삭막하던 하늘의 풍
임진년 시작부터 ‘학교 폭력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대구에 이어 발생한 광주 중학생 A군 자살사건으로 일선 학교에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경찰은 학교 폭력 수사에 외근 경찰관 1만2천 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치안의 최우선으로 “학교 폭력 문제는 올 초 민생 치안의 최대 중요 정책”으로 규정하고 “생활안전 기능뿐 아니라 형사 기능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정부에서는 학교 폭력 신고전화를 117로 통합하기로 했으며, 이 시스템을 24시간 가동하기로 했다. 이러한 노력들에 대해 실효성 여부를 제기하는 시각들도 있지만 학교 폭력 문제가 더 이상 불거져서는 안 된다는 게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학교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기를 새해 소망으로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폭력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한 편의 시를 소개해 볼까 한다. 곽재구 시인은 대표작 ‘사평역에서’로 유명한 시인인데,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감싸 안고 있다. 곽재구 시인의 ‘받들어 꽃’에서도 그러한 시인
흔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함은 봄 같지 않은 봄을 일컫는다. 하지만 전래되는 고시(古時) 속에는 파란만장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여인의 한(恨)이 서려있다. 불행한 시절, 미인으로 태어나 부패한 관료체제의 불의에 의해 평생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고, 아들에게 시집가는 오이디푸스적 비극의 일말마저 얽혀 있다. 한나라는 건국 후부터 북쪽의 유목민족인 흉노의 침입에 시달렸고 몇 차례 전쟁에서 패한 후에는 엄청난 조공마저 바치는 입장이었다. 콧대가 높아진 흉노는 한나라 원제 때에 와서는 조공의 하나로 후궁 가운데 간택해 선우(왕)에게 바칠 것을 요구했다. 원제는 당시 관례에 따라 궁중화공이 그린 후궁의 화첩 중에서 가장 추한 얼굴을 골랐는데 그것이 왕소군(王昭君)이었다. 하지만 왕소군은 중국 역사상 월왕 구천에 의해 오왕 부차에게 보내진 서시와 삼국지에서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갈라놓는 역할을 하는 초선, 그리고 당나라 양귀비 등과 함께 4대 미인으로 꼽힐 정도로 경국지색의 미모였다. 다만 궁중화공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실물과 달리 추물로 그려졌을 뿐. 흉노로 끌려간 왕소군은 호한야 선우의 처가 돼 장남을 낳았고, 호한야의 사망 후에는 당시 흉노의
無急勝而忘敗 오직 이기는 일에만 성급해서 패했을 경우의 일을 잊어선 안된다 순자(荀子)에 이글이 있다. 이글과 대구가 되는 내용이 있는데, 무견리이불고기해(無見利而不顧其害)이다. 이익 되는 면만 생각하고 해로움이 올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또 무욕장이악폐(無欲將而惡廢)로 하고자 하는 것만 진행시키고 미워하는 것은 폐하는 일을 하지 말며, 무위내이경외(無威內而輕外)라 해 안으로는 위엄을 차리고 밖으로는 적을 가벼이 여기는 일을 하지 말라고 적고 있다. 내 앞의 이익에만 눈멀어 치부한 인사들이 언젠가 다 잃고 세상 밖을 떠도는 기가 막힌 사연도 있고 다 이겼다고 생각한 싸움에서 순식간에 뒤집혀 버리는 일도 있다. 또 자기가 잘한다고 하고 싶은 일만 빨리하고 못하거나 싫은 일은 버려두는 그런 사람도 있으니, 옛 사람들이 경계하기를 성급함이 금물이라 했다. 불가에서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많이 인용한다. 간각하(看脚下)라고도 하는데, 내 발걸음 하나하나를 돌아보라는 뜻이다. 사람이기에 어디든 어느 곳이든 가지 않을 수 없으니 가고 옴에 있어 나의 발자국에 후회스러움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도 된다. 공자(孔子)는 “살아가면서 아홉 번 생각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