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4기의 출범을 지켜보는 진보진영의 심정이 찹찹하다. 아니 누구의 표현처럼 절망스러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에 울렸던 환호는 일장춘몽인가. 완벽하게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진보진영은 한나라당 일색의 지방정권을 보면서 부러움 이상의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논하기에는 앞으로의 과제가 너무나 산적하다. 원하는 반찬이 없다고 밥을 굶을 수는 없듯이 언젠가 찾아올 진보진영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더욱 이 시점에서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오히려 보수진영만의 사회에서 진보는 더욱 그 의미가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진보진영의 오랜 파당의 종결이다. 이 땅의 진보세력이 아직도 운동권 수준의 아마추어라는 비아냥은 그 시절의 노선 갈등이 아직도 앙금으로 남아 진정한 통합을 이루어 내지 못한 데에 원인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세력이 분열되어 통합치 못한다면 다시는 정권타령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뒤에는 보수정권이 지향하는 노선에 적절한 비판과 반대의 역할을 맡아주어야 한다. 단, 반대만을 위한 반대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왜 이 보수정권이…
지난 6월 16일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에서 발생한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는 예고된 것이었다. 이미 2003년에도 같은 업체에서 식중독 사고가 있었으나 그때도 원인균을 찾지못해 해당업체는 학교급식사업을 지속해왔다. 4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식중독으로 신음하던 그순간에도 업체는 즉각적인 조처없이 병원과 기업, 학교급식을 계속했고 먹거리에 대한 안전 불감증은 위험수위를 넘기고 있었다.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해당 업체는 학교급식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히고 국회에서는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지난 4년간 학교급식법을 개정을 위한 노력은 아이들의 고통을 등에 업고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학교급식법이 만들어진 것은 1981년이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했고 1996년에는 중고등학교에 까지 급식을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재정적인 문제로 위탁급식을 허용하도록 급식법이 개정되었다. 이후 2005년까지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급식 실시 비율은 99%로 늘어났다. 그러나 학교급식 정책의 피해는 아이들에게 떠넘겨져 부실한 식단과 식재료, 식중독 사고가 매년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위탁급식으로 인한 식중독 발
재건축 피라밋
무인도에 추락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그 결과 새로운 여당 지도부는 부동산 정책 등 정부의 기존 경제정책에 변화가 필요함을 적시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저항 없는 개혁은 없다”며 “부동산 및 교육 개혁과 관련해 교조적 논리로 정부 정책을 흔드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기존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대통령 특유의 독선적 발상을 내비췄다. 대통령의 발언은 금번 지방선거 참패의 근본원인을 몰라서 하는 말인지 전략적 발언인지 헷갈린다. 다만,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금번 선거참패 원인을 한국 정치사에서 되짚어 보고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직전 정권 또는 앞 세대에 대해 모든 과(過)를 돌리고 비판하는 고질적 굿판을 벌여왔다. 그 와중에 과거는 부정되고 좋은 전통과 성과는 모두 배척되어 왔다. 소위 새로 들어선 집권 엘리트들을 보면 지금 이 세상이 자기네 생각과 방식에 의해서만 개혁될 것이란 과신과 독단 그리고 자기들 편에 서 있지 않은 반대편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책임회피로 결국 국정을 농단하여 왔다. 결국, 독선과 오만함으로 과거 정권
사무실 한 켠에 붙어 있던 제12회 죽산예술제 리플렛을 뒤적거리다가 내몽고에서 온 한 부부의 강연이 눈에 띠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모 일간지의 한 면을 채운 소박한 한 부부의 사진을 보았다. 중국 내몽고 자치주 마오우쑤(毛烏素) 사막의 징베이당(井背塘)이라는 곳에서 20여 년간 나무를 심고 가꿔온 인위전(殷玉眞) 바위완샹(百萬祥) 부부이다. 이 두 부부는 황량한 사막에 20여 년간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이제는 80여호의 가구가 들어선 어였한 마을을 만들어 냈다. 기사의 행간에는 베르나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나 H.D 소로우의 “월든”, 그리고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감동을 뛰어넘는, 그들만의 서사로 가득 차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스쳤고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못 잡아도 여의도의 면적의 10배가 되는 면적을 숲으로 바꾼 이들은 방명록에 자기 이름을 쓸 줄도 몰랐다. 이 두 부부의 삶은 그 자체가 생명의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공존의 방식을 가장 무식하게 해결했다. 국가나 정부기관에서 한 푼의 지원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노동을 통해서 번 돈과 노력으로 사막을 숲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자연과 타인들에 대해 겸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님으로부터 '모쿠사츠(もくさつ)'라는 일본어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은사께서 모쿠사츠에 대해 "이 단어는 세상을 뒤바꾼 말"이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내각은 연합군측이 공식채널을 통해 최후통첩을 해 올 때까지 항복발표를 미루기로 했다. 당시 일본의 칸타로 스즈키 수상은 포츠담선언에 대해 신중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했다. 결정적으로 그는 모쿠사츠라는 단어를 사용해 "일본 내각은 '모쿠사츠'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뜻을 전했다. 모쿠사츠는 '당분간 미룬다', '무시한다'라는 2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연합군은 "일본은 항복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했고, 결국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초토화시켰다. 은사께서 "많은 사람들이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모쿠사츠 사건을 예로 들곤 한다"고 설명했던 게 기억난다. 지난 4일 김문수 경기도지사 취임 이후 처음 열린 실·국장회의에서 김 지사가 각 실무자의 업무보고를 받던 중 지시하거나 지적했던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환율 하락과 유가 급등, 국제경쟁 심화와 금리 인상 등 기업경영을 둘러싼 내외의 악재들로 인해 기업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기업경기 실사지수(BSI) 전망치가 2개월 연속 기준치(100)를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기업 체감경기는 지난달 10개월만에 처음으로 기준치 밑으로 떨어진 후 이달 들어서는 더 악화됐다. 이같은 경기 악화는 환율·유가 등 대외적인 요인에 기인한 바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경제는 속성상 순환하기 때문에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새롭고 의욕에 찬 경제정책이 의도한 만큼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경제학의 교과서적 기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이제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도 3년 반이 돼가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분배 중심 경제정책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거니와, 경기가 활성화되고 복지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분배 중심이 아닌 성장 위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장이 복지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경제의 고전(古典)이자 기본을 굳이 외면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지금 국민은 가뜩이나 높은 생활물가에
미군반환기지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생텍쥐페리는 그의 대표작 '어린왕자'의 시작을 동화로 풀었다. 자신보다 커다란 먹이를 삼키고 소화가 될 때까지 몇 달동안 잠만 자는 아마존의 보아구렁이 이야기다. 생텍쥐페리는 이 보아구렁이가 코끼리를 삼킨 것을 상상해 그림을 그렸다. 코끼리가 안에 있고 꼬리와 머리부분을 축 늘어뜨리고 자는 겉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짐짓 스스로 대견해 하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어른들은 보아구렁이가 코끼리를 삼킨 것을 알지 못하고 "모자를 아주 잘 그렸구나"라며 칭찬했다. 보아구렁이의 머리와 꼬리가 모자의 챙이고 안에 있는 코끼리를 모자의 윗부분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른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번에는 코끼리가 보아구렁이의 뱃속에 있는 실제적인 그림을 그려 역시 어른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줬다. 어른들이 시큰둥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려서 화가의 꿈을 꾸던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실체를 모르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어른들에 의해 화가의 꿈을 접게 된다. 이후 글을 쓰는 작가의 꿈을 키워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경기도내 31개 시·군들에서 매년 진행하는 크고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