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복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덕대왕은 세계제국의 위용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요절의 원인은 ‘지나친 과음’ 때문이었다. 젊은 세계정복자는 스스로를 ‘술의신(=디오니소스)’이라 여기며 늘 술에 쩔어 지냈다. 반만년 인류 역사상 금주법을 시행했던 나라는 엉뚱하게도 미국이었다. 1920년대는 미국인들에게 ‘굿 올드 데이스(good old days)’ 즉, 번영과 풍요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엔 폐허를, 미국엔 전쟁 특수(特需)를 남겼다. 거리엔 영화포스터와 재즈음악, 그리고 자동차가 넘쳤다. ‘주식과 여자의 스커트는 올라가기만 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금주령이 내려졌던 1920년대는 또한 ‘광란의 시대’이자 ‘무법의 10년’이기도 했다. 금주법의 최대 수혜자는 알 카포네였다. 마피아는 밀주 제조와 밀매, 밀송(密送)을 통해 밤을 지배했다. 검은돈은 부패한 정치인과 경찰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이권을 둘러싸고 갱들 사이에 총격전이 난무했다. 경제는 흥청거렸으나 정치는 무력했다. 전시의 금주령은 식량을 비축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의 금주법은 미운털이 잔뜩 박힌 독일인에 대한 히스테리가 다분히 작용한 결과였다. 지난 1
매년 신학기 초에 어김없이 겪는 학교배정에 대한 민원이 마치 교육청의 연례행사인 양 자리매김됐다. 금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내 신설학교에 배정된 학생과 학부모들의 일부가 배정취소를 요구하는 등 불만이 고조됐다. 특히 안양시 만안구 석수3동에 신설된 충훈고등학교 사태는 법정에까지 비화되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그나마 분규 40여일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정상화돼 다행이다. 물론 양측이 한발씩 물러난 타협의 결과다. 충훈고 사태는 학교를 완공시키지 않은데서 비롯된 사뭇 상식선에서 출발했다. 골조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학교에 학생들을 배정한 것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컴퓨터 추첨의 결과라지만 이러한 ‘공사중 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이 반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등록 대상 학생의 절반가량이 등록을 미룬 채 다른 학교로의 지배정을 요구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이들 학부모들은 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했다. 이른바 공사중 개교의 부당성에 대한 법원판결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교육청의 학교신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제, 오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신도시 건설 등 으로 학
미공군의 사격훈력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소음피해가 주민생활에 영향을 주었다면 위법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이는 한미행정협정(SOFA) 민사특별법 등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도 되거니와 유사한 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주민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은 1998년 2월이었다. 주민들이 사격장 근방에 정착한 것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으로, 당시만 해도 안보논리가 절대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소음 또는 인명피해 따위에 대해 항의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 공군의 폭탄투하와 사격훈련이 계속되면서 진동에 의한 가옥 훼손,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미 공군을 상대로 처절한 항의투쟁을 벌이는 일방 정부당국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번번히 묵살 당했다. 군이 내세운 보상불가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사격장이 설치된 후에 주민이 입주했다는 점을 들어 선취특권을 주장했고, 다른 하나는 국가 안보상 사격장 훈련은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 반세기 동안에 겪은 주민들의 고통과 희생은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컸을
남조(南朝) 양림천왕(梁臨川王) 소굉(簫宏)이 북위(北魏)를 침공하였다. 위나라에는 원영(元英)이 군사를 지휘하여 소굉의 침공에 대항하였다. 소굉군은 진격을 잠시 멈추었다. 원영의 수하가 그에게 이기회를 이용하여 하루빨리 낙수(洛水)를 차지해야 한다고 진언하였다. “아닐세. 소굉은 비록 우둔하다고 하지만 그 수하에 위예(韋叡) 등 명장이 즐비하네. 그들을 경시하고 경거망동했다간 큰코 다칠 걸세. 그러니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되네.”원영은 지기지피(知己知彼)를 행했다. 그런 그에게도 실수는 있었다. 그는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종리(鍾籬)를 공격한 것이다. 위나라의 형만(邢巒)이 이를 극구 제지시키지 위해 위왕으로 하여금 어명을 내려 후퇴하도록 했지만 원영은 어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 때가 천재일우의 기회로 생각하고, 출전만하면 대승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영은 조경종(曺京宗)과 위예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원영은 한때 지피지기하였지만 또 한때는 지기망피(知己忘彼)하였기로, 천추의 한이 되는 패장의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지피지기는 배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즉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
한국토지공사가 화성·동탄택지개발지구내의 토지를 현대산업개발 등 국내 유수 주택건설업체에 특혜분양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은 경제정의실천연합(이하 경실련)에 의해 제기 됐다. 특혜분양 받은 현대산업개발 등 8개 건설업체들은 2천675억여원의 이익을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경실련에 따르면 화성·동탄지구 설계공모에서 응모 자격이 없는 현대산업개발, 한화건설, 삼성물산 등 8개 민간건설업체가 지난해 12월 응모, 당선하여 수의계약을 통해 총5만5천여평의 토지를 분양 받았다. 그런데 현행법상에는 건축물 설계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고 건설업체 등 시공사는 건축물 설계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토공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민간건설업체의 건축설계응모를 받아 준 셈이다. 또 토공은 현상설계 공모시 3개사를 당선시킨다고 해놓고는 당선작 발표시에는 업체수를 6개로 늘려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에대한 토지공사의 해명은 의혹을 해소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의혹에 불을 질러 어처구니 없다. 토지공사는 건축사가 아닌 건설업체를 응모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건설주체 스스로 사업 타당성을 검토해 실현 가능한 안을 제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탄핵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친노단체의 탄핵 규탄과 반노단체의 탄핵 지지 집회가 이를 상징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강도 높은 시위에도 불구하고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 일이다. 탄핵소추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인데다 탄핵을 몰고온 정치적 배경이 미묘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찬반시위는 있을 법한 일이고, 어떤 의미에선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그러나 탄핵은 현실이 됐고, 내각은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체제로 전환됐다. 현직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권력 이동은 어느 나라에서나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마찰이나 동요없이 과도체제를 안착시켰다. 이는 우리 국민의 정치수준과 준법의식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우리 정부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위기감의 반작용 탓인지 국민과 정부가 탄핵 이전보다 냉정을 되찾은 감마져 없지 않다. 이제 정부와 국민이 할 일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탄핵을 현실로 받아드리고, 정파간 계층간의 갈등과 대립을 종식시키는 일이다. 이제와서 분노하고, 절규하며 찬성과 반대를 외쳐본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선 말기 학자이자 언론인인 위암(韋庵) 장지연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제목으로 을사조약이 국권피탈의 조약임을 알리는 동시에 을사 5적신을 규탄하는 사설을 실어 전국에 배포하였다. 1905년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이었던 장지연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논설을 써서 조약의 굴욕적인 내용을 폭로하고, 일본의 흉계를 통박하여 그 사실을 전국민에게 알렸다. 이로 인해 ‘황성신문’은 사전검열을 받지 않고 신문을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3개월 동안 정간되었으며, 장지연은 일본 관헌에 붙잡혀 90여일 동안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 논설의 요지는 을사조약을 체결시킨 일본의 침략적 저의를 폭로하고, 이 조약에 서명한 을사5적을 통렬히 공박하고 있다. 또한 ‘오늘에 이르러 목 놓아 통곡하는’ 전국민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다. 12일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후 인터넷 매체마다 ‘新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격문 성격의 글이 올라와 과거 장지연의 논설을 떠올리게 했다. ‘新시일야방성대곡’은 장지연 논설에서 제목만 따온 것이 아니라 문체까지 모방하고 있다. 내용인즉, 정치개혁을 부르짓는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땅을 치고 한탄할 일이 생겼다. 허탈하고 비애감이 넘치다 못해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 반세기만에 대통령을 탄핵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헌법에 의해 국가가 존립하고 있는 공화체제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할 일인 것이다. 후세에 우리 후손들이 이 시대에 살았던 우리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이 앞선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탄핵을 결의한 국회 및 우리 모두의 불행인 것이다. 국회는 지난 9일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여 12일 정오께 통과되어 설마하던 탄핵이 현실로 닥아 온 것이다. 박관용의장이 의사봉을 잡은 가운데 속개된 이날 국회는 열린우리당의 육탄저지가 만만치 않았으나 수의 열세에 몰려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195명이 투표에 참석하여 193명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정족수 181표를 훨씬 넘겼다. 이같은 결과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일부의원들이 투표에 참여했고 반대입장을 보였던 자민련의원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과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사유가 명백한가는 많은 문제점이 남는다고 하겠다. 직접적인 이유가 됐던 기자회견에서의 선거관여 발언을 곱
국회의원 정수가 273명에서 299명으로 늘어났다. 내용인즉 지역구 143명, 비례대표 56명이다. 국민들은 273명도 많다고 했는데 국회는 26명을 늘리고 말았다. 그것도 총선을 불과 37일 앞두고 통과시켰으니, 부작용과 차질이 우려된다. 과문의 탓이라 단언은 할 수 없지만 선거 한달여를 앞두고 선거구를 획정하고 관련 선거법을 통과시킨 나라는 대한민국 말고는 전례가 없을 것 같다. 그나마 국민들이 그토록 반대한 의석수 동결 내지는 감축을 외면하고 거꾸로 의석수를 늘렸으니 이는 국민을 무시한 ‘밥그릇 늘리기’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괴씸한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의석수 증설을 포함한 관련 선거법을 통과시킨 시점이, 대통령 탄핵안이 본회의에 보고된‘정치적 위기’와 맞물렸다는 점이다. 속된 말로 혼란을 틈타 벼락치기로 통과시킨거나 다름이 없다. 낙제점을 받은 제16대 국회는 원(院)의 생명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이제 법이 확정되었으니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뽑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26명이나 늘어난 국회원을 뽑는 국민의 실정이 어떨지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선거법 통과에 찬성한 국회의원 가운데 몇명이 제17대 국회에…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팔당호 주변 임야를 마구 파헤쳐 전원 주택단지로 조성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긴 부동산 투기꾼 35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투기꾼 가운데는 중앙부처의 전 찬관보와 전직 감사원 사무관을 비롯해 지역 환경단체 및 노조 간부 등이 포함돼 있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팔당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중요한 자연 자원이다. 2천만 수도권 주민의 젖줄인데다 대안이 없는 물의 보고(寶庫)인 까닭이다. 때문에 정부는 팔당호를 필사적으로 지킬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이루다 말할 수 없는 희생과 대가를 치러왔다. 특히 팔당호 주변 주민들은 지독한 규제 때문에 재산권 행사는 물론 주거 개선조차 못하는 불이익을 지금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만한 인간들이 팔당호의 허파에 해당하는 울울창창한 산림을 불법으로 개발한 것도 모자라,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행위까지 한 것이다. 특히 이들이 물정을 잘 모르는 원주민들에게 몇푼의 돈을 주고 명의를 악용한 행위는 가증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양민을 공범 아닌 공범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악랄하다. 일당은 ‘1개월 이상 거주한 현지 주민의 경우 토지형질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