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존경하는 법학자 한 분이 있다. 대학총장까지 역임한 그는 ‘대한민국 헌법’을 정독한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헌법을 완독하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그를 한 모임에서 만났다. 소책자를 건네며 헌법 일독을 권했는데 전문(全文)을 끝까지 읽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30조(條)에 달하는 조문들의 법철학적 의미를 자세히는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헌법 내용대로만 된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성숙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총강(總綱), 국민의 책임과 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 개정 순으로 내용이 기술된 것 또한 흥미로웠다. 얼마 전, 필자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 하나를 접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민족통일 포기’를 선언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반을 뒤흔드는 중대한 도전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할 것'을 규정한 우리 헌법을 정면 부정하는 것이어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북한이 민족통일을 포기한다고 우리마저 그럴 필요가 없다. 대한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지역구 254석과 비례대표 46석으로 총 300명의 국회의원이 새로 뽑혔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이 38개나 되어, 해당 투표용지는 51.7cm로 역대 제일 긴 용지가 되었다. 당선인을 낸 정당은 국민의미래(1040만표, 18명), 더불어민주연합(757만표, 14명), 조국혁신당(687만표, 12명), 개혁신당(103만표, 2명) 4개에 불과했다. 당선인을 내지 못한 34개 정당이 얻은 표는 248만 1743표로 집계되었다. 유권자에 우송된 선거홍보물을 보니, 비례대표 후보 정당 중 14개 정당, 더불어민주연합, 국민의미래,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자유통일당, 조국혁신당, 가가호호공명선거대한당, 반공정당코리아, 국가혁명당, 새누리당, 소나무당, 자유민주당, 통일한국당은 홍보 유인물을 제작하였다. 공화당, 노동당, 노인복지당, 대한국민당, 대한민국당, 대한상공인당, 미래당, 여성의당, 우리공화당, 케이정치혁신연합당, 한국농어민당, 한나라당, 한류연합당, 홍익당, 이상 14개 정당은 유인물을 제작하지 않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공약사항을 게시하였다. 나머지 10개 정당, 가가국민참여신당, 가락특권폐지당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역에 야간 공습을 감행했다. 라파는 구호물자를 들여보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지역이면서 약 140만 명의 피란민이 밀집한 곳이다. 지상전이 벌어진다면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완벽한 승리를 위해 라파에 대한 공격을 예고해 왔다. 4월 초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했는데 미국은 이란에게 보복 공격을 하지 말라는 빌미로 라파 공격을 묵인할 것이 전망되고 있다. 이스라엘을 억제할 미국의 명분이 약해졌다는 우울한 분석이다. 이스라엘 안에서 반정부, 반전쟁 구호가 커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나흘 연속 이어졌다. 시위 참가자가 10만 명으로 집계되는데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 시위라는 점에 주목된다. 시위대는 네타냐후 전시 내각이 하마스를 섬멸하지 못하고 인질을 전원 구출하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미국 하원은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뿐 아니라 안보 지원을 하기로 법안을 가결했다. 대선을 앞둔 바이든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르면서 동맹국에 대한 전폭적 지원으로 태도를 굳힐 필요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확전을
여기, 딸을 기다리는 아빠가 있습니다. 아빠는 여섯 살 준원이가 벽에 그렸던 낙서를 이십 년째 쓰다듬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딸의 낙서는, 이십 년이 다시 흘러도 아물지 않을 상처입니다. 죽어 눈 감는 순간까지 놓을 수 없는 일말의 기대입니다. 2004년 4월, 여섯 살 준원이는 집 앞 놀이터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라짐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롭니다. 딸을 잃은 아빠의 시간도 그때 함께 멈췄습니다. 멈춘 시간을 더듬으며 딸을 찾아 떠돌던 아빠는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추락하고 희망으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준원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아빠의 시간은 오늘도 준원이가 사라졌던 놀이터 주변을 맴돕니다. 딸을 잃은 못난 아빠라서, 이름 대신 죄인이라는 명찰을 달고 서성거립니다. 해마다 이만여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준원이처럼 여전히 실종 상태인 아이들도 있습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이십년 넘게 실종 상태인 아이들도 859명이나 됩니다. 세 살이던 미정이는 1977년 서울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될 때, 미정이는 줄무늬 티셔츠에 맬빵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눈동자에 하얀 점이 있던 경실이는 1975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어디든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은 곧 인간관계에서 유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를 표현할 때,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들 한다. 여기서 피는 가족을 의미하며, 물은 가족이 아닌 남(타인)을 가리킨다. 타인은 아무리 가까워도 가족이 될 수 없다. 가족관계에서도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 간의 갈등 중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고질적인 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이다. 이를 고부갈등이라고 한다. 고부갈등은 결혼과 함께 시작되며, 순탄한 결혼 생활의 큰 걸림돌 중 하나로 꼽힌다. 고부갈등은 의견과 가치관의 차이, 이해관계와 감정적인 충돌 등이 그 원인이 된다. 고부갈등의 유형은 대체로 세대 갈등과 역할 갈등으로 나누어진다. 세대 갈등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을 말한다. 보편적으로 시어머니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집하는 반면에 며느리는 현대적인 가치관을 지닌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역할 갈등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갈등이다. 요즈음 며느리는 주부의 역할과 직장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대체로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주부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낯선 남자들이 낯선 여자들을 열렬하게 비판하고 손가락질 할 때만큼 본인들의 본성에 대해 솔직한 순간은 없는 것 같다. 요즘 SNS에서는 20대 30대 여성들이 비혼주의, 싱글로서의 삶을 기록하고 콘텐츠화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댓글들을 읽어보면 상당수의 악플러들이 남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혼자 늙어 죽을 거라는 둥, 자식 안 낳고 결혼을 안 하는 그들의 선택이 이기적인 선택인 마냥 비판하고, 그렇게 살아서 뭐하냐는 둥. 그리고 마치 그들의 선택이 자의적인 것이 아닌 타의적인 것으로 간추리고 (연애운이 안 좋다거나 혹은 주변에서 ‘골라주는’ 남자들이 없어서) 남자 없이 독신으로 사는 거에 대한 선택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많이 품는데, 아마도 이건 그들이야말로 선택할 수 만 있다면 절대 독신을 선택하지 않을 거여서가 아닐까? 본인들의 정서적, 육체적, 심리적 욕구들을 충족해줄 수 있는 여성 파트너가 없는 거에 대해 같은 입장의 여자들보다 훨씬 삶이 비참하기에 그런 거 아닐까? 그래서 그들의 사고와 논리로 우리도 똑같이 이성 파트너를 갈망할 거라고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그들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이기에 독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다. 국회의원이라는 공직담당자를 뽑는 선거인데도 국민의 정서는 대체로 양극단으로 나누어졌다. 지역으로 보면 여당은 영남을 석권했고, 야당은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충청도, 호남지역에서 많은 지지표를 얻었다. 두 개로 나누어진 지역적 편향성은 한국사회가 병이 든 사회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는 1세기 동안 한국사회가 겪었던 분단의 역사와 경제의 압축성장과정에서 수반된 부산물이며 그동안 쌓였던 적폐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국가체계를 지탱하고 있는 제도적 장치와 행정관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국가자원의 배분이 민주적이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사회의 제반 분야에서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맞이하게 됐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혁신과 해결책이 요구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게 되는 정책수립과 정치과정에서는 지도층의 민주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즉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막강해진 검찰과 경찰권력의 전횡, 국회 입법과정에서의 비타협, 여당과 야당의 상호 적대의식, 보수와 진보세력 간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영남과 호남지역 간의 대결양상은 한국의 민주주의
나는 4월을 좋아했다. 사계절이 뚜렷한(점점 흐릿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4월은 마법 같은 날씨를 가지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밤이 되어 돌아올 때까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니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마음은 괜히 들떠 콧노래가 나온다. 길거리엔 개나리와 진달래가, 고개를 들어보면 벚꽃잎이 휘날린다. 시원한 커피를 한잔 사서 목적지 없이 걷기만 해도 즐거운 시간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마냥 즐겁지가 않아졌다. 올해로 10년째다. 세상엔 늘 크고 작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어왔고 계속 생겨나겠지만 아직도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악의 없이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일상을 되찾고 되레 수많은 날들은 그 일에 대해 생각조차 안 하겠지만 내년 4월이 오면 나는 또 하루 이틀은 그 날을 생각하며 울적해 할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며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올해의 크고 작은 다양한 목표를 적고, 헬스장 1년 결제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4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
이전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가구의 자산 구조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부동산 비중이 높고 현금성 자산의 보유 비중이 낮다. 세금과 관련해서는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면 사망으로 인한 상속세와 같이 갑작스럽게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싱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 외에도 사업에서 회계상의 손익과 현금 흐름의 시점 차이로 인해 법인세나 부가가치세 등의 납부에도 차질이 생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회계상 이익은 큰 금액으로 발생했지만 수금이 늦어지거나, 발생한 이익금을 사업에 재투자해서 당장의 현금이 부족한 경우 등이 그럴 것이다. 세금을 내야 할 기한을 어기는 경우 지연 납부 일당 2.2/1만(년8.03%)의 금액이 납부지연가산세로 추징되며, 체납세액이 있는 경우에는 납세자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에 대해 압류와 강제 매각까지 당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납세의지와 역량은 있으나 당장은 현금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납세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배려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 세법이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물납과 분납, 연부연납, 그리고 징수유예와 납기연장 등이 그것이다. 오늘은 간략하게나마 이러한 세금…
영화계의 중진으로 비교적 큰 영화사의 임원까지 지냈던 R씨는 요즘 주말에 택배 일을 한다. 은퇴 나이를 훌쩍 넘겨 영화 일을 그만 둔 지는 꽤 됐지만 노후를 위해 돈을 모아 두지를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현재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은 턱도 없는 얘기이다. 소일 거리라도 하며 주변 사람, 경조사 비용이라도 보탤 겸 하는 심정으로 그는 얼마 전부터 K 배달 업체 엡을 깔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잘 연결되면 주말 하루에 10만 원 정도 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 배급 전문가인 A씨는 요즘 풀 타임 택배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 간다. 영화계에서는 그가 일 할 공간은 이제 거의 없다. 그는 배급 마케팅 베테랑이다. 그의 오랜 영화산업의 경험과 지식은 외면 받고 있다. A씨는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닌다. “나는 괜찮은데, 혹시 영화 쪽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민망해 할 것 같아서”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사례는 무수하게 많다. 영화 현장 미술 스태프로 일했던 M씨도 요즘 편의점 심야 알바로 생계비를 번다. “일이 전혀 들어 오지 않는다”며 그는 한숨을 쉰다.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리 운전을 뛴다. 유명 영화에 나왔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