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경기도청 기자실. K기자는 100자 원고지에 살살 내려쓴 후 팩스 보내고 데스크에 전화하면 끝이다. 그날 송고해야 할 기사를 자리에서, 소파에서 구상한 후 이제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세로면 100자 원고지에 초서처럼 내려쓴 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팩스에 밀어 넣는다. 잠시 후 본사 지방부에 전화를 해서 도착여부만 확인하면 끝. 생각 2시간 기사작성 3분, 송고 2분이면 기사는 마무리다. 다른사 L기자는 원고지 200자에 오전 시간을 집중한다. 아침 10시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앞으로 자신에게는 8시 반에 미리 달라는 주문을 하면서 기사작성에 들어가 제공된 보도자료 위에 검정색으로 수정 가필한 후 읽어본다. 다시 100자 원고지에 옮겨적고 붉은색으로 가필한 후 청색으로 고치고 검정색으로 추가한다. 원고지 위에 교통지도, 도로망도가 그려진듯 복잡하고 글씨도 둥글둥글하다. 늘 바쁘신 L기자님은 점심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송고하러 가면 늘 팩스는 늘 만원이다. 약국 앞 마스크 구매 장사진이다. 소리소리 고래고래가 따로 없다. 전쟁이라도 터진 듯한 분위기다. 왜 바쁜 판에 팩스를 쓰느냐. 기존에 보내던 자료를 빼내고 자신의 원고를 보낸다. 왜 이리도 팩스
코로나19가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인의 관심과 집중을 끌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특히 국가적인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제된 행동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더불어 지구촌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고, 또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일까? 바로 ‘예(禮)’가 아닐까 싶다. 이 ‘예(禮)’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예학(禮學)’이다. 논산의 돈암서원은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을 모신 곳이다. 사계 김장생 선생은 명종 3년(1548)부터 인조9년(1631)까지 83년의 생을 살았다. 12세의 나이에 송익필로부터 예학을 배우기 시작해 20세 무렵에는 이이의 제자가 되었다. 30대 이후에는 꾸준히 예학을 연구, 83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50여년간 이어졌다. 예학을 배우는 시기까지 더하면 거의 평생을 예학에 몸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예학연구는 국가의례를 비롯해 양반의 생활예절,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그의 연구 저술은 51권의 ‘사계전서’로
2019년 2월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이다. N번방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까닭은 전례 없는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단순이 단체 대화방에서 음란물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하여 74명의 여성을 협박하고 강요하여 성노예처럼 학대한 매우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스마트 폰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폭력 행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성(sex)’과 ‘메시지 보내기(texting)’를 합성한 ‘섹스팅’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실시한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에서 전국 중·고생 6천423명 가운데 3년간 누적 111.1%가 ‘온라인 그루밍’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루밍 성폭력‘은 온라인상에서 피해자와 친분을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한 후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말해 미성년자와 성적 대화를 하고 성행위를 권유하거나 성적 사진과 영상을 올리도록 회유하는 행위를 말한다. N번방 사건에서도 성착취 가해자들은 피해자들로 하
공익법인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나 기부금을 재원으로 하여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단체이다. NGO(비영리민간단체)는 때로는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때로는 조력자가 되어 국가의 성장과 위기대응에 이바지했다. 나눔 문화 실천에 앞장서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바 컸다. 그래서 NGO는 입법·사법·행정·언론에 이어 ‘제5부’라고 불린다. NGO 중에서 공익법인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나 기부금을 재원으로 하여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법인 또는 단체다. 공익법인은 세재 혜택을 누리고 시민의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도덕적 책임과 법령에 따른 결산서류 공시, 전용계좌 개설 및 사용,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공개 등의 의무가 부여된다. 최근 공익법인 ‘정의기억연대’가 위와 같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특히 대표의 개인계좌로 기부금 지출입을 관리하는 등 부실회계로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국민의 공익법인에 대한 불신감이 커졌고 공익법인들은 기부금 모금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실 공익법인의 비위는 여러 형태로 존재했다. 최근의 다른 사례를 보면 A 공익법인 대표가 국가보조금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모친상 빈소에 주요 공직자들이 조의를 표한 일을 놓고 말이 많다. 수행 여비서를 성폭행한 죄로 수감 중인 안 전 지사가 모친상을 당하자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박병석 국회의장,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주요 정치인들이 조화와 조기를 보냈다. 이를 놓고 일부에서 야멸찬 비난이 쏟아내고 있다. 상사(喪事)의 비극에 인간의 정을 표시한 일을 놓고 펼치는 ‘강퍅한 정치’가 소름을 부른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안 전 지사 빈소에 여권 정치인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조화와 조기를 보내고 있다”며 “오늘의 행태는 정말 책임을 통감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오늘과 같은 행태가 피해자에게, 한국 사회에 ‘성폭력에도 지지 않는 정치권의 연대’로 비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정의당의 입장표명에 대한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의 날카로운 비판이 눈에 띈다. 하 의원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정의당 참 못됐다”며 “안희정 전 지사가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정치적 동지였던 사람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최소한의 슬픔을 나누는…
수원시와 고양시, 용인시, 경상남도 창원시 등 인구 100만 이상 4개 대도시 시장과 국회의원들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입법화에 적극 나섰다. 염태영·이재준·백군기·허성무 시장과 김진표(수원무)·심상정(고양시갑)·김민기(용인시을)·박완수(창원시의창구) 의원 등 4개 도시 지역구 국회의원 14명은 7일 국회에서 ‘4개 대도시 시장·국회의원 간담회’를 열고 전부개정안의 국회통과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이들 4개 도시는 인구가 100만이 넘는 광역시급 대도시임에도 기초지자체에 속해 있다. 수원시의 경우 지난 2002년 4월 기초지방정부 중 처음으로 인구 100만명을 넘어섰지만 ‘인구 50만 기초지자체 조직규모’가 획일적으로 적용됐다. 행정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음에도 공무원 수를 늘릴 수 없었다. 이는 시민들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수원시 인구는 123만명이었다. 광역시인 울산시 116만명 보다 많다. 하지만 공무원 수는 울산광역시 6천661명, 수원시 3천406명이다.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재정규모 역시 울산광역시 6조4천918억원, 수원시 2조9천120억원으로 절반도 안된다. 100만 기초 대도시 시민들은 복지 서비스도
“아악! 왜 이래요, 사장님! 아악! …사람 살려!”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가운을 막 교복으로 갈아입고 난 뒤였다. 탈의실로 쓰고 있는 주방 옆 작은 창고에서 나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황홀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무렵, 카페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누군가 뛰어들어와 윤희에게 달려들었다. 굵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박천수. 작은 도시 동천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내 한복판 번화가에서 가장 큰 건물인 이 그랜드 빌딩 건물주의 아들이자 윤희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2층 카페 아프리카의 대표이기도 했다. 박 사장은 일이 있다면서 초저녁에 일찍 카페를 나갔었다. 문을 닫으려는 가게에 다시 들어서는 박천수를 보자 윤희는 ‘뭐 잊어버리고 간 것 있으세요, 사장님?’하고 물어보려고 입을 막 열려는 참이었는데, 다짜고짜 와락 끌어안고 홀 바닥에 구른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박 사장을 떠밀면서 윤희는 다시 한번 외쳤다. “사장님! 아니,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대체 왜 이래요?” 그러자 박천수가 윤희의 교복 상의를 거칠게 벗겨 내렸다. 투두둑 하고 단추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박천수가 덜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윤희야, 제발 좀 가만히…
먼 곳 /박재화 낙타는 왜 석양으로 나아가는가 뒷걸음질 없이 고개를 추켜들고 눈 먼 세상 한복판을 묵묵히 가는가 무한 절대의 안팎을 품은 낙타의 등에 가만히 깃드는 달빛 서늘한 시간을 반추하며 나아가는 모래의 오롯한 혹 적막이 알을 품는다 낙타는 왜 다시 석양 속으로 들어가는가 하염없이 가뭇없이 ■ 박재화 1951년 충북에서 출생. 대전고, 성균관대·성균관대학원 졸업. ‘현대문학’ 2회 추천 완료로 등단. 시집 ‘도시(都市)의 말’, ‘우리 깊은 세상’, ‘전갈의 노래’, ‘먼지가 아름답다’ 등이 있음. 기독교문학상, 성균문학상, 다산금융상(茶山金融人賞) 등 수상.
음식은 담긴 그릇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작은 양의 스프를 큰 접시에 담아주는 양식의 멋스러움이 있다. 갈비탕은 냉면 그릇보다는 질그릇에 담아주면 먹음직스럽다. 냉면을 해장국 그릇에 담은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같은 밥이라도 안성유기에 담기면 고급스럽고 대중음식점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평범한 스테인레스 그릇속의 눌린 밥은 생동감도 없고 식고 굳어서 식감이 떨어진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형태가 고정된 그릇과 같지 않아서 모든 분야에 원만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군자는 모든 이들과 소통한다는 의미로 풀어 본다. 요즘시대에 군자를 풀어보면 언론인, 특히 기자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 사는 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입장과 위치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언론이야말로 군자불기를 실천한다. 이처럼 언론인, 그중의 기자들은 사회적으로 소금,목탁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은 어렵기만 한 상대다. 정치 초년생들도 언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더불어 대기만성(大器晩成)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그릇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그릇을 오래 쓰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많다. 59세에 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