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도 소리 없이 닫힌 문을 열고 들어와 어느 틈엔가 곁을 파고든다. 밤손님, 불면이다. 다음 날 오전 약속이라도 있는 날에는 더욱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어둠의 볼륨을 키우며 “오늘도 나와 함께 아침을 맞아야지”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괴로움이 아니다. 수면장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다. 단순한 개인의 고통이 아닌,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배경엔 스트레스와 불안, 트라우마 같은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원인들이 숨어 있다. 이야기 속에서 겪는 사건들은 특별하지만, 그 근원은 우리가 겪는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겪는 갱년기 증상, 병의 통증, 교대 근무나 야간 노동처럼 직업적 요인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외에도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수많은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에 따른 다양한 치료법도 나와 있다. 잠들기 전에 마시는 따뜻한 우유 한 잔, 멜라토닌 처방, 햇볕 쬐기, 가벼운 운동, 전자기기 사용 줄이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권장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뉴스 사막(News Desert)’이라는 개념이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가 매년 발간하는 <지역뉴스 현황(The State of Local News)> 보고서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미국에는 우리 시․군․구에 해당하는 3,100개가 넘는 카운티가 있는데, 이들 카운티별로 언론매체의 현황을 제시함으로써 뉴스 사막화 진행이 심각하다고 알리고 있다.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이후 3,200개가 넘는 신문이 사라졌으며 작성 기준 지난 1년 동안 130개 신문이 문을 닫았다. 일간신문이 주간신문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 전역을 언론매체가 있는 카운티와 없는 카운티로 구분해 표식하면, 사막과 같은 빈 곳이 많고 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지역언론의 암울한 현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가 된다. 우리는 어떨까? 언론매체 수로 보면 뉴스 사막은커녕 ‘뉴스 정글’에 가깝다. 2025년 4월 23일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기간행물 등록 현황을 보면, 일반 일간신문 343개, 일반 주간신문 1,274개, 특수 일간신문 40개, 특수 주간신문 1,686개, 외신신문 87개, 인터넷신문 12,567개다. 잡지, 뉴스
정조는 1789년 7월 11일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영우원(永祐園)을 수원의 읍치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3일에는 수원의 새읍치를 팔달산 밑으로 정했고, 10월 5일에 영우원을 수원의 옛읍치로 옮기고는 이름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정조가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여러 가지 규정을 담은 '원행정례(園行定例)'의 편찬을 명한 것은 9월 18일이다. 이때 한강을 건너는 방법으로 배다리(舟橋)의 건설도 결정했다. 정조는 1790년부터 사망하는 1800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현륭원 참배를 실천했다. 임금의 행차는 늘 경호 문제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대규모일 수밖에 없고, 한강처럼 큰 강을 신속하게 건너는데 배를 타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도 있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무덤을 영우원에서 현륭원으로 옮길 때 뚝섬나루에서 뜬다리(浮橋)를 임시로 만들어 건넜다. 전쟁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몇천, 몇만, 몇십만의 군대가 뜬다리 또는 배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넌 사례를 세계 여기저기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는 매년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배다리를 그때그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나루를 선택하여 똑같은 모
25년 전 영국에서 유학할 때였다. 지도교수에게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인으로 영국 땅에 와서 교수가 되었고, 지적재산권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프로페서가 되었기에 그가 어떤 학위논문을 썼는지 궁금했다. 그는 런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제목이 “센티멘털리즘에 대하여”였다.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파이낸스와 법 대학원의 교수가 되었다는 점도 그렇고, 센티멘털리즘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고서 지적 재산권 분야 저명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당시 나로서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인공지능이 만능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AI를 투영하지 않은 분야는 없는 듯하다. AI리터러시, AI와 학문, AI와 사회복지, AI저널리즘, AI시대의 창작, AI기반 광고전략, AI로 PR하기, AI와 디자이너의 변화, AI시대 소통의 기술, AI시대의 번역, AI와 철학의 전환 등 출간된 책 제목들을 보아도 세상의 창은 AI가 되었다. 그 뿐 아니다. ‘AI윤리에 대한 모든 것’,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AI는 차별을 인간에게서 배운다’, ‘4차 산업혁명시대 AI와 일자리 경쟁 그리고 공존’ 등 인공지능 시대를 진단하며 AI
지난주 우리 대학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미국 뉴욕의 데모크라시 프렙 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대학을 방문하여 시설도 탐방하고 한국의 식문화도 체험한 후, 학부 학생들과 함께 언어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특히 두 학교의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서울 시내 특별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일정한 시간 동안 한국어를 사용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과제를 완성하는 한국어 몰입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 뜻깊은 교류의 장이 되었다. 참가자들 모두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하게 될 것 같다며 이런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소감을 남겼다. 한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오고 싶은 꿈이 생겼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작은 만남이 이 자리의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미래의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될 작은 씨앗 하나 심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석 달 동안 미국의 선생님과 연락하며 행사를 준비한 필자 입장에서도 보람과 기쁨을 느낀 시간이었다. 데모크라시 프렙 고등학교(Democracy Prep High School)는 뉴욕 맨해튼 북부 지역에 위치한 공립형 차터 스쿨로, 전교생이 3년간 한국어를 필수로 이수해야 하며 졸업 시 뉴욕주에서 시행하는
4월이 가고 있다. 봄은 천지에 완연해지고 꽃은 누리에 화사하다. 봄과 꽃, 이 둘은 서로 어떤 인과로 이어지는가. 봄이 되어서 꽃이 피는가. 꽃이 피어서 봄인가. “그게 그거지, 아무튼 봄은 봄이다,”하고 말 것인가. 하지만 자분자분 짚어 보면 좀 다르다. 꽃을 지각(知覺)하는 우리 마음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서 꽃이 피는 건’ 자연의 법칙에 해당하는 것이고, ‘꽃이 피어서 봄을 느끼는 것’은 심리적 지각에 가깝다.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감흥이다. 감흥이란 아름다움을 느끼는 즐거움의 일종이어서, 누구나 그 감흥을 더 확장하고 싶을 것이다. 세상 꽃을 다 내게로 당겨오고 싶을 것이다. SNS에 사진 콘텐츠들이 왕성하게 소통되면서 봄이 되면 휴대전화 안에도 꽃이 그득하다. 산과 들의 꽃들, 골목과 갓길의 꽃들, 옆집 담 너머의 꽃들, 정원과 마당의 온갖 꽃들,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의 꽃들, 그리고 실내 탁자 화병에 담아 둔 꽃까지, 꽃은 도처에 있다. 이런저런 꽃의 표정과 자태가 휴대전화 안에서 요란하게 오간다. 먼 산의 꽃은 넉넉한 울타리처럼 바라볼 수 있어 좋다. 들녘에 하늘거리는 꽃은 멀리서도 고운 눈길 줄 수 있어 좋다
몇 달 전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선이 성큼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한다. “좋은 정부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가.” 영화 콘클라베에서 로렌스 추기경은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죄로 확신을 꼽는다. 확신이야말로 통합과 관용의 적이라고 하면서 그는 “의심할 수 있는 교황”을 위한 기도를 제안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교황의 자리에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의사결정권자를 대입해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확신하는 대통령보다 의심하는 대통령이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비도덕적 선택을 내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평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윤리적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심적 기술을 동원하는데, 이를 ‘중화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중화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람은 비도덕적 행위를 하면서도 나 자신이야말로 피해자라거나, 사실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거나,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거나, 세상이 자신에게 부당한 책임을 전가되고 있다거나, 헌법과 같이 보다 높은 가치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익숙한 말들이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러
“고향이란 버리기로 했다 일년에 몇 번 역마당에 서성대기도 했지만 끝내 고향이란 버리기로 했다. 돌을 깨어 오늘을 먹고 내일을 기다릴 뿐 손 끝에 스며드는 한기도 탓하지 않기로 했다. 고향이란 버리기로 했다.” 이 시는 내 친구 윤백이가 알려 준 시다. 그가 고등학교 때 내게 알려준 시인데 아직도 내 머릿속 한쪽 구석 폴더에 안전하게 자리잡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읊어 보는 시다. 그의 시가 아니라 그가 알려준 시다. 이 시의 작가는 그의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그 국어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그 선생님의 시를 공책에 정자체로 베껴놓고 줄줄 외어 자랑하듯 내게 알려주곤 했다. 그는 말 그대로 문학 소년이었다. 당시에 고등학교 2학년부터 이과반과 문과반을 나누었는데 내 친구 윤백이는 문과로 갔지만 가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이과반인 나를 찾아와 또 그렇게 자랑하며 시를 읊어대곤 했다. 그런 그 친구를 나는 무척 좋아했다. 사실 1학년 때 그를 만나 같은 지역의 친구가 되었고 친분이 두터워져 나는 그에게 내가 다니는 성당을 소개했고 그도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하여 내가 대부를 섰고 세례를 받게 하여 내가 그의 대부가 되었다. 대자 대부의…
명치가 막힌다는 느낌과 두통으로 내원한 그녀는 다양한 자율신경 이상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잠이 잘 들지 않고 밤에 소변 때문에 잠이 깨기도 하였다 가끔 피곤하면 이명이 있고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증상도 함께 있었다. 자주 더부룩하고 아랫배에 가스가 잘 차고 대변이 시원치 않다. 수년 전 과로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하시모토 갑상선염 진단을 받았고 갑상선 기능저하증으로 호르몬 보충제를 먹고 있었다. 수개월 전부터 증상이 심해져 다른 병원에서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데 조금 괜찮았지만 다시 나빠져서 한의학으로 치유하고 싶어서 내원했다. 증상이 심해진 시점에 어떤 일상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해보니 인사이동으로 상사가 바뀌었는데 업무지시가 일방적으로 이거 해 라고 하는 고압적인 방식에다가 체계 없이 오더를 던지능 상황에 중간 관리자로서 조율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였다. 소통이 안되는 상황을 견디는 시간이 6개월 정도 지나며 그때쯤부터 몸의 증상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녀에게 한약을 비롯한 통합 한방치료와 함께 한의학의 경혈학과 심리요법이 결합한 치료법인 감정자유기법(Emotional FreedomTechni
안과 밖이 있다. 창(窓)도 그렇다. 안에서의 창은 보기 위함이고 밖에서의 창은 가리기 위함이다. 보거나 혹은 가리거나, 얇은 유리창의 존재 이유조차 안팎으로 서로 나뉜다. 볼 것인가, 가릴 것인가. 결정은 내가 아니라, 내가 딛고 선 땅이 한다. 아니, 나와 함께 딛고 선 무리의 그늘이 한다. 이를테면, 학벌과 벌이와 행색과 씀씀이가 결정한다. 버려지는 명함과 살아남는 명함이 결정한다. 창의 존재 이유는 그렇게 나뉜다. 누군가 그랬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읽거나 듣고도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늘 문득 오줌을 누려다 창을 느꼈다. 아니 눈으로 읽히는 창을 보았다. 사내들이 서서 오줌을 누는 소변기에는 사내들만 아는 문양이 있다. 오줌발이 떨어지는 절묘한 각도에 새겨진 파리 한 마리가 그것이다. 파리는 연약한 생명이나 수천수만의 오줌발을 견디며 꿈쩍도 없다. 견뎌내는 모양새가 폭포수를 견디는 도인의 그것 같다. 그런데 오늘 만난 도인은 조금 달랐다. 길게 세워진 네모난 창에 모기가 있었다. 모기는 네모난 창처럼 길게 세워진 새하얀 소변기 속에 있었다. 소변이 낙하하는 절묘한 지점에 모기는 흡사 파리처럼 날개를 접고 있었다. 온갖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