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에게 목걸이는 무엇일까요?” 최근 한 인문학 모임에서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를 읽고 난 후 리더가 던진 질문이다. 세계 최고의 단편소설작가로 꼽히는 모파상의 ‘목걸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매력이 넘쳤지만 가난한 관리의 집에 태어난 평범한 처녀들 중의 하나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 마틸드는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문교부에 근무하는 하급 관리와 결혼하게 된다. 어느날 남편의 직장 상관인 문교부장관이 주재하는 파티에 초대를 받은 마틸드는 마땅한 옷 한 벌, 장신구 하나 없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치욕스러움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남편은 약간의 저축해놓은 돈으로 옷을 사도록 하고 친구에게 장신구를 빌리도록 제안한다. 새로 마련한 옷과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한껏 멋을 낸 파티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뭇 남성들의 주목을 받고는 승리와 행복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지만 곧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전 재산을 저당 잡히고 고리대금으로 빌린 삼만 육천 프랑을 지불해 똑 같은 목걸이를…
문상 /하린 이유를 물으려던 입을 다물었다 사진 속 네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생각하다 나이 어린 상주를 보고 말았다 감당해야 할 절의 무게가 버거운데 상복은 무심하게 헐렁했다 젊은 미망인이 아이를 보며 한 번 더 울먹였을 때 네가 웃으면서 울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 시집 ‘서민생존헌장’ / 2015 장례식장은 의정부를 한참 지난 곳에 있었다. 물어물어 식장을 찾아내고 어두컴컴한 지하 속으로 들어갔다. 상주가 졸린 눈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몇 개의 수화로 안부를 물었다. 평생을 벙어리로 사신 까닭에 고인의 장례식장은 지나치리만큼 적막했다. 가끔 알아듣기 힘든 소리가 났지만 반찬 몇 개가 전부인 저녁상으로 묵묵히 고개를 돌렸다. 얼음처럼 식어버린 밥을 꾸역꾸역 씹었다. 시인도 그러했을 것이다. 울먹이는 젊은 미망인과 나이 어린 상주 앞에서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절의 무게를 느꼈을 것이다. 웃음과 울음이 뒤엉켜버린 사진 속의 고인을 지켜보면서 까닭 모를 분노마저 느꼈을 것이다. 매순간 죽음과 맞닿아 있는 생(生)의 치명적인 오류에 대해, 그리고 우리와 무관하게도 무한히 펼쳐져 있는 삶의 끈질긴 지속과 생명력에 대해. /박성현 시인
천천히 뒤로 쳐지며 사라지는 산모롱이. 몇 개 구름이 아슴아슴 떠다니는 빠끔하게 드러나는 하늘. 자동차를 타고 오르는 구불구불한 이 길이 어쩌면 이다지도 정겨운지. 연거푸 숨고르기 하는 음악. 훤하게 뚫려있지 않아서 오히려 매력적인, 앞을 짐작할 수 없는 오르막길. 간혹 그날그날 해결해야 할 일이 턱에 차올라 지칠 때마다 이 길을 생각한 적이 있다. 오르고 오르는 그 숱한 날 중에 오늘은 특별히 팔공산 구불구불한 이 길을 따라 숨 고르러 간다. 어머니, 아버지 푸근한 사랑 그득히 채우러 ‘벼꽃마을 남매계’에 간다. 왁자하게 사람소리 끓어오르는 넓은 홀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참, 희한하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상이 보이고 공간 가득 음악이 흐르고 이십대의 조카, 질녀부터 오십대의 아재, 숙모, 이모, 삼촌, 어르신까지. 한 공간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혼연일체로 꾸미는 소박한 축제. 과거 소시민들의 잔치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싶다. 이 그림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은 어르신들의 무대다. 흥이 차오르자 춘향가 중에서 감옥에 갇힌 춘향이 이도령에게 쓴 편지를 노래로 해 보겠다는 팔순의 어머니와 아직도 청아한 목소리 그대로 유지하고 계신 칠순의 숙…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The winner takes it all)’ 6.13 지방선거의 관전평(?)을 누군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승자 독식’이라고 답할 것 같다. 미국 대선제도(Winner takes all: 주별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방식)과는 의미가 다른 ‘언어적 메타포(metaphor)’다. 팝(Pop)을 좋아하는 7080세대들은 귀에 익을 정도로 들어봤을 스웨덴 출신 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 제목이기도 하다. 30년 가까이 선거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지만 이번 선거처럼 ‘독식’이란 표현이 잘 들어맞는 경우는 딱히 없던 것 같다. 데드라인(deadline, 원고마감 시간)의 긴장감은커녕 까닭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기사 출고에 대한 ‘짐(상반된 결과를 대비한 편집 준비)’을 덜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각 방송과 신문에 보도됐던 판세 예측 여론조사 내용을 접하고 나름의 예견은 했어도 이렇게 까지 극명하게 명암이 갈릴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보…
누구보다 말의 위력을 잘 알았던 중국 오나라 명재상 풍도(馮道)은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입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이고)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다)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어 두면) 안신처처우(安身處處宇·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라며 말조심 하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다. 우리 속담에도 ‘세 치 혀가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혀를 잘못 놀려 큰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함을 빗댄 말이다. 사자성어엔 말조심에 관한 내용이 더 많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불급설(駟不及舌),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언비천리(言飛千里), 담에도 귀가 달려 있으니 말을 삼가라는 이속우원(耳屬于垣), 땀이 몸속으로 들어갈 수 없듯 한 번 내린 명령은 취소할 수 없다는 호령여한(號令如汗), 나쁜 소문은 세상에 빨리 퍼진다는 악사천리(惡事千里) 등등. 공연히 안 해도 될 쓸데없는 말로 남의 원한을 사거나 원망을 부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들이다. 그러나 어디 말을 안 하고 살 수 있나. 그래서 생겨난 말이 ‘가려
여러분들 감기에 자주 걸리시나요? 감기에 걸린다는 것은 면역력이 떨어졌을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외에도 입술에 물집이 잡히는 병 알고 계신가요? 바로 헤르페스라는 바이러스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면역력이 떨어졌을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런 감기나 헤르페스같은 바이러스는 면역력과 아주 관계가 많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바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병에 걸린분들을 만나면 저는 이렇게 여쭤봅니다. “혹시 요즘에 몸이 많이 피곤하셨나요?” 그럼 많은 환자분들이 “네 요즘에 많이 피곤했습니다.”라고 얘기하시는 데 간혹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잠도 많이 자고 시간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왜 자꾸 이런게길까요?” 글쎄요. 이런 분께는 다시한번 여쭤봅니다. “그럼 혹시 요즘에 신경쓰는 일이 있으신가요?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신가요?” 그러면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요즘 바짝 신경쓰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이런 게 생겼습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든…
마네가 5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바로 직전, 병과 싸우며 남긴 유작이라 하기에는 조금 놀라울 정도로 젊고 생동적인 감각의 그림이다. 파리 사교계의 주요 장소였다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아름다운 빛과 조명, 향기로운 소품들, 멋지게 차려 입은 인파들로 풍성함을 이루고 있다.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마네는 온몸이 매독으로 썩어 들어가는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도시의 향락과 빛깔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폴리 베르제르의 화려함을 등지고 서있는 여성은 무심한 듯, 고독한 듯,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서있었는지 바 위에 고정되어 있는 두 손과 팔목에는 벌겋게 핏기가 올라와 있다. 그녀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서있으므로, 그녀의 배경에 위치한 화려한 바의 모습은 사실상 그녀의 정면에 펼쳐진 풍경이라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느 곳에도 시선을 주고 있지 않다. 거울 속 풍경에서 유난히 밝은 동그란 조명이 눈에 띤다. 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워낙 무심하고 거친 터치로 처리되었기에, 자세한 옷차림과 동작은 파악할 수 없어도 아마 그들은 모두 세련된 차림의 도시남녀들일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
죽편(竹篇) /서정춘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시란 언어로 만든 오묘한 집이어서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정답이 없는 문제처럼 같은 시를 가지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 수만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이 시의 힘이다. ‘죽편’은 짧지만 웅숭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 지난하고 굴곡진 생활 앞에서도 대나무가 절개와 정절, 득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올곧은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리는 긴 시간, 삶의 마디마디 겪어야 할 어려움을 이겨내고 온전한 생의 꽃을 환하게 피우겠다는 의지도 오롯하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어들을 품고 사는 시인도 눈물과 그리움과 생에 대한 절실함을 품고 ‘칸칸마다 밤이 깊은’ 시절을 견디며, 대꽃이 피는 마을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내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꿋꿋하게 걸어가야 할 이유다. /김밝은 시인…
6·13 지방선거 결과 전국은 기초 및 광역단체장, 기초와 광역의회를 막론하고 파란 지도가 그려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 국민들은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이명박 대통령의 구속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쪽에 표를 몰아주었다. 선거 참패로 패닉에 갇혀 있는 자유한국당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 결과는 너무도 놀라웠다.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 패배에 이대로는 보수진영의 재건은 힘든 게 아니냐는 좌절감과 무기력 그 자체다. 결국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의 집단사퇴로 비상체제로 들어갈 전망이지만 현재로서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당 대표로 벌써 거론되는 인물들은 김무성 전 대표와 이완구 전 총리, 남경필 전 경기지사 등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각은 달갑지 않다. 해체 수준의 대혁신을 이뤄도 모자랄 판에 이른바 구 시대의 인물들이 거론됨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진영 전체가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지만 새롭고 젊은 인물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보수의 재건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시대를 아우르고 새로운 혁신의 마인드를 갖춘 보수 정치세력과 시민단체가 대거…
6·13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압승으로 끝났다. TK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이 파란 색깔로 물들었다. 사실 이번 선거는 미리부터 여권의 승리가 예상됐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시절의 적폐청산 요구가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호응을 얻고 있는데다가 평창올림픽 성공,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김정은 위원장-트럼프 대통령 간의 북·미정상회담 성공이라는 대형 이슈로 인해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한 인기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중간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논란이란 악재가 있었지만 문대통령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 실시해 4월 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국정수행 지지도는 무려 85.7%를 기록했다.(조사기관 한길리서치)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승리가 문대통령의 지지도에 힘입은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 찍어준 게 아님. 대통령보고 찍어준 것임. 대통령 하는 일에 딴지 걸지 말고 힘 실어주라고. 착각하지 말고 열심히 본분 다하시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