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는 못 갔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에겐 늘 ‘학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지명자의 이력이 연일 화제다. 청계천 판잣집촌 소년가장에서 고졸 신화를 일으키며 차관 아주대총장에 이어 부총리 후보자가 됐기 때문이다. 6.25 전쟁 직후 태어나 어려웠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표상이기도 하다. 덕수상고를 나와 은행에 다니며 야간이었던 국제대학을 다니고, 후에 미국유학도 해 엄밀하게 말하면 고졸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자라온 이력을 보노라면 ‘죽기 살기’로 공부를 더해보려는 악착같은 노력의 과정이었고, 당시 가정형편으로서는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을 거여서 더욱 빛이 난다. 입법고시와 행정고시를 동시에 합격한 김 내정자는 가정형편이 괜찮았다면 아마도 명문대학교에 들어가고도 남았으리라. 어쨌든 김 총장이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것은 명문대로 대별되는 학력주의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고난을 극복한 감동이 크기 때문이다. 김 총장과 같은 유사한 사례들은 우리 사회에 얼마든지 있다. 공고를 나와 1976년 금성사에 입사해 평생을 세탁기에 매달려 온
기네스 /전형철 혁명은 손끝으로부터 비롯되는 일 빈 잔 너머 깜박이던 피뢰침의 알전구를 타진하는 일 떠나간 옛 애인의 허리를 버즘나무 가로수를 안고 기억하는 일 불면의 밤마다 감은 눈동자에 맺히는 별자리를 헤아리는 일 덧니 난 입속을 유영하는 축축한 혀를 거두는 일 그립다는 촉수 같은 것은 스스로 잘라내는 일 성급한 고백은 납작한 표정으로 숨기는 일 심급의 주둥이에 납덩이 추를 달고 낚시하는 일 고통을 빚진 자를 찾아 신음하게 하는 일 작은 죄는 더 큰 죄로 경신하는 일 무한 수렴되는 신전의 기둥 외다리로 서 있다 투신하는 일 - 전형철 시집 ‘고요가 아니다’ 에서 ‘혁명은 손끝으로부터 비롯되는 일’ 이라는 첫 행의 출발이 예사롭지 않다. 뿐만 아니라 ‘기네스’라는 아일랜드의 맥주 브랜드가 등장한 것 또한 가히 혁명적이다. 화자는 혁명이란 정권을 탈취하고자 정부를 전복하는 것도 아니며, 모럴해저드로 인한 도덕적 해이와 안전 불감증, 그리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통용되는 혼돈의 이 어수선한 현 사회를 확 뒤집어엎고 혁명하자는 내용도 아니다. 어쩌면 이 시에서 내포하는 것은 현재까지 살아온 한 개인의…
세계 최초로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한 나라는 칠레다. 2006년 미첼 바첼렛(54)이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내각을 남녀동수로 구성했다. 정치성향이 보수적이던 칠레가 이처럼 내각을 획기적으로 구성하자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선진 각국도 내각에 여성 참여를 대폭 늘리기 시작했다. 2010년 재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각료의 약 3분의 1인 9명을 여성으로 채웠고, 다음해 이탈리아는 총 16명의 장관 중 8명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뿐만 아니라 외무, 국방, 교육 등 요직에 여성장관을 임명함으로써 주변국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해 캐나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쥐스탱 트뤼도(43) 총리가 캐나다 정치사상 처음 남녀 각각 15명씩 동수내각을 출범시켰기 때문이다. 젊은 총리의 선택에 당시 캐나다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런가 하면 일찌감치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 임원에 여성 참여를 보장해온 북유럽 국가들은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깨는 페미니즘의 단계를 넘어 모든 방면에서 ‘알파걸’ 시대를 열고 있다. 스웨덴은 56.5%가 여성 각료이고, 핀란드도 50%가 여성이다. 노르웨이는 47.1%, 네덜란드 46.7%
여름, 이라는 그를 늘여서 써보기로 했다 /송정현 달뜬 몸에서 열꽃이 핀다 붉은 칸나의 꽃물이 발진처럼 돋고 너의 뜨거움에 데인 상처를 데킬라 한 잔으로 잊으려 했던 저녁나절 백조자리 별 하나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여름이다 - 송정현 시집 ‘꽃잎을 번역하다’ 여름은 뜨겁다. 그 뜨거움을 위해 태양도 가장 강렬히 빛나고 지상의 나무들도 태양을 향한 잎들을 무성히 펼쳐놓는다. 나 또한 그러한 계절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대열에 맞춰 몸이 달뜨고 열꽃이 핀다. 하지만 너와의 경쟁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붉은 칸나의 꽃물 같은 발진이 돋고 그 뜨거움에 데인 상처를 데킬라 한 잔으로 잊으려 했던 저녁나절, 백조자리별 하나가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다. 그 순간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좌절은 그 비애는 여름이었던 너를 오래도록 잊을 수 없게 하는 것인데,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 또다시 접어둔 열정을 부채질해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도무지 잊히지 않는 너처럼 나아가보자. 굳세게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보자. /서정임 시인
‘대표없이 과세 없다’는 미국 독립전쟁의 철학적 기반이다. 영국은 식민지 아메리카에 새로운 세금을 연달아 부과했다. 설탕세, 인지세 등에 이어 1773년에는 ‘차세’까지 부과한다. 아메리카는 영국의 처사에 강하게 반발하였으며 급기야 보스톤 항에 정박중인 동인도회사 선박에 올라 342상자에 달하는 차를 바다에 던져버리는 보스톤 차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치정부가 수립되고 1776년 7월4일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과도하고 명분없는 세금부과가 미국 독립의 계기가 된 것이다. 미국의 납세제도는 세금의 대가를 보장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항한다는 정신이 깔려 있고,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현재 한·미간에는 사드 배치, 한미 FTA 개정, 한미동맹 강화 등 현안문제가 많다. 미국과의 현안을 푸는 데 이러한 합리적 주고받는 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본다. ‘함께 갑시다’라는 한미동맹이 64년간 공고히 유지되어 오고 있고, 양국 간 경제관계도 원만하지만 주고 받는 관계가 깨질 때는 미국과 미국의 납세자 들의 신뢰가 흔들릴 수도 있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ITF) 태권도시범단이 오는 6월24일부터 30일까지 방한할 예정이다. 이 시범단의 방한은 전라북도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리는 ‘2017 세계태권도연맹(WTF) 세계선수권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태권도시범단의 방한은 WTF의 ITF 초청에 의해 성사된 것이다. 지난 10일 WTF 조정원 총재가 ITF 리용선 총재에게 태권도시범단의 ‘2017 세계선수권대회’ 참석을 요청하고 이를 ITF측이 수락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번 북한 주도의 ITF 태권도시범단 방한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우선, 이번 방한은 남한에서 열린 WTF 주최의 대회에 ITF 선수단원이 처음으로 참석한다는 점이다. 1986년 세계태권도대회가 처음 열린 이후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등도 남한에서 개최되었으나, 비록 시범단 형식이지만 북한의 ITF가 이번에 처음으로 선수단원을 파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민족 전통무술인 태권도의 분단된 두 단체가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만남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민족의 태권도가 ITF와 WTF라는 두 개의 태권도 단체로 분단된…
경기도 분도(分道)문제가 또다시 거론되고 있다. 새정부가 출범하자고 내년 지방선거가 1년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경기북부 출신 여야 의원들이 경기남북도 분도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은 경기 북부지역을 경기도에서 분리해 경기북도(北道)를 설치하는 내용의 ‘경기북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을 21일 대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양주)과 바른정당 김영우 의원(포천·가평) 등도 이 법안 발의에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경기북부지역은 그동안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으로 경기남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음에도 규제가 완화되지 않고 있어 남부지역과의 경제·교육·문화·의료 등 분야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경제권·생활권 및 지역적 특성이 다른 경기도 북부를 경기도에서 분리해 경기북도를 설치함으로써 국토의 균형발전을 촉진하고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안은 경기도 북부의 10개 시·군을 경기도에서 분리해 경기북도를 설치하고 정부의 직할하에 두는 것을 골자로, 경기도지사 및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북도의회의원, 경기북도지사 및 경기북도교육감의 직을 내년 6월30일까지 겸직하도록 하는 내용이…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통점은 유난히 ‘경제’를 앞세웠지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경상도 사투리로 ‘갱제’를 강조했지만 ‘단군 이래 최대 경제위기’였다는 IMF사태를 불러왔다. IMF에 나라의 경제주권을 박탈당하고 국가와 국민은 그야말로 깡통을 찼다. 김영삼 정부 경제의 결과는 참담했다. 국가 부도를 초래했고 많은 기업들이 파산했고 많은 국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한 이명박 정부 5년간의 경제성적도 처참했다. 경제 성장률 7%를 공약했지만 엄청난 환경파괴를 초래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치중한 결과 경제는 형편없이 위축됐다. 이명박정권 5년간의 경제성장률 성적표는 2.9%였다. 가장 무능력한 정권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탄핵·파면·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 4년의 경제 성적표 역시 연 평균 2.9%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인 최근 7년간 한국의 GDP(국내 총생산) 성장률을 보자. 이명박 정권시기인 2010년 6.5%, 2011년 3.7%, 2012년 2.3%였으며, 박근혜 정권이 시작된 2013년 2.9%, 2014년 3.3%, 2015년 2.6%, 2016년 2.7%였다. 2010년 이후 급격한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숲에서 쏟아지는 초록의 싱그러움을 만끽하기에 좋은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오늘은 숲의 싱그러움을 함께할 수 있는 부여 부소산성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이른 아침에 출발한 덕에 부여 부소산성에는 예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부소산성은 사비성이라고도 하며, 성왕 16년을 전후로 완성되었다. 성이 위치한 부소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르는데, ‘부소’는 고대 백제어로 ‘소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부소산성 여행은 삼충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조금만 올라가면 삼충사를 만나게 된다. 삼충사는 말 그대로 세 분의 충신을 모신 사당이다. 세 분의 충신은 성충과 흥수 그리고 계백으로 마지막까지 백제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다. 외삼문인 의열문과 내삼문인 충의문을 지나면 핵심공간인 사당이다. 사당에는 세 분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세 분의 얼굴을 마주하고 잠시 묵념을 한다. 부여에서는 매년 삼충제를 지내 세 분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삼충사의 편액이 흥미로운데, ‘삼(三)’자 중 맨 아래 획을 제외하고 위에 있는 두 획이 하늘 쪽으로 바짝 붙어 있다. 이유는 정확치 않으나 세 분의 충신 중 두 분은 1품에 해당하는 ‘좌평’이
휘파람 새소리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구례 화엄사 톨게이트를 벗어나고도 거듭 이어지는 길. 길 따라 오른쪽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섬진강의 미소, 오월이다. 지금 막 꽃망울 터트리기 시작한 하얀 몸피 사이로 아카시아 향기가 뚝 뚝 떨어진다. 봄비 더불어 펼쳐지는 눈앞의 그림들은 자꾸 자동차를 멈추고 걸어보라, 걸어보라 재촉을 해왔다. 이미 젖기 시작한 섬진강. 그 말간 민낯 앞에서 봄비 밀어내는 우산은 사치라 생각했다. 차를 세우고 숫기 없는 찔레꽃 향을 지나 몇 걸음 걸어 오르자 산나물 몇 묶음의 인심이 내어놓은 가판대 위로 몇 봉지 뻥튀기 과자가 보이고 먼데 산이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우두커니 바라보는 먼 산, 굽이굽이 능선 사이로 물안개 일렁거리자 수년 전 물난리에 불어난 형산강을 마주하고 건네시던 아버지 말소리 드문드문 들리는 듯 했다. “야야, 강은 흐르고 산은 저렇게 가만히 서 있는데 어째 사람들만 저래 바쁘게 오고 또 정신없이 가는지 모르겠다. 오늘 저 강물이 꼭 길 잃은 사람들 같제? 빨리 제 길 찾아야 강물도 조용할 낀데” 제 길 찾아 일렁이며 유유히 흐를 줄 아는 푸근한 섬진강을 따라 다시 출발한 길. 그 길옆으로 눈에